아바스 1세
16세기와 17세기의 아바스 1세의 초상화 (이탈리아의 화가 작) | |
사파비 제국의 국장 (1501년~1736년), 사자와 태양 | |
사파비 왕조의 제5대 국왕 | |
재위 | 1587년 10월 15일~1629년 1월 26일 |
대관식 | 1587년 10월 15일 |
전임 | 모하마드 호다반다 |
후임 | 페르시아의 사피 |
이름 | |
휘 | 영어: Abbas the Great 페르시아어: شاه عباس بزرگ |
신상정보 | |
출생일 | 1571년 1월 27일 |
출생지 | 사파비 왕조 헤라트주 헤라트 (현재: 아프가니스탄) |
사망일 | 1629년 1월 26일 (57세) |
사망지 | 사파비 왕조 마잔다란주 베샤르군 중앙 관구 (베샤르군) 베샤르 |
국적 | 사파비 왕조 |
성별 | 남성 |
왕조 | 사파비 왕조 |
가문 | 아바스 가문 |
부친 | 모하마드 호다반다 |
모친 | 카이르 알니사 베굼 |
배우자 | 오그란 파샤 카눔 야한 베굼 파흐르 자한 베굼 카케티의 마르타 공주 파티마 술탄 베굼 타마르 아밀라호리 |
자녀 | 모하마드 바케르 미르자 술탄 아불나세르 삼 미르자 술탄 쉴레이만 미르자 술탄 하산 미르자 솔탄 모하마드 미르자 술탄 이스마일 미르자 이맘 콜리 미르자 샤자다 베굼 주바이다 베굼 자한 바누 베굼 이즈이샤리프 베굼 공주 세이이드 무함마드 다우드 아가 베굼 하바 베굼 샤흐르 바누 베굼 말리크 닛사 베굼 |
종교 | 시아파 |
묘소 | 이란 이스파한주 카샨군 중앙 관구 (카샨군) 카샨 아바스 대제의 묘비 |
능묘 | 이란 이스파한주 카샨군 중앙 관구 (카샨군) 카샨 아바스 대제의 묘비 |
아바스 1세 또는 아바스 대제(페르시아어: شاه عباس بزرگ, 1571년 1월 27일 ~ 1629년 1월 26일, 재위: 1587년 10월 15일~1629년 1월 26일)는 사파비 왕조의 제5대 국왕이다.[1]
주요 전력[편집]
오스만 제국과 그 동맹자인 타타르인의 연합군과 싸워 바그다드를 공격했다. 영국과 함께 포르투갈로부터 오름즈 성을 빼앗고, 외국인을 우대하여 유럽 여러 나라와의 친선을 꾀했다. 나라 안 정치 개혁과 상업 장려에 힘써 이슬람 교국의 부흥에 전력했다.
업적[편집]
즉위 후, 당시 국내에서 위세를 떨치던 튀르크계 키질바시족의 군단을 누르고, 이란인 관료를 육성하여 중앙 집권에 노력하고 또한 영국인 셜리 형제의 협력을 얻어 새로운 포병대를 편성했다. 동이란에 있어서는 우즈베크족을 쳐서 헤라트나 메셋을 합치고 서쪽으로는 오스만 제국과 싸워 아제르바이잔, 쿠르디스탄, 바그다드 등을 회복했다. 또한 1620년에는 호르무즈에서 포르투갈인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수도를 카즈빈에서 이스파한으로 옮기고 각지에 도로, 다리, 대상국을 건설하여 이란의 경제 발전에 노력한 점이 많았다. 그가 수도를 정한 이스파한은 그의 치세 아래 놀라운 발전을 이룩했다. 봉건 제후들의 세력은 제왕에도 필적할 정도의 영지를 갖고 있었는데, 이것을 삭감하는 데에 성공한 아바스 1세는 자신의 군대 재편에 착수하여 여러 부족으로 구성되었던 종래의 군단 대신에 상비군을 설치하고 그들에게 대포를 장비시켰다.[2] 나아가서 그는 영국인 여행자의 중개로 오스만의 적국인 러시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 유럽 나라들의 군주들에게 사절을 파견했다. 하지만 아바스 1세가 죽으면서 쇠퇴하기 시작하게 된다.[3]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 ↑ 김상훈 (2011년 9월). 《외우지 않고 통으로 이해하는 통아시아사 2》. 다산에듀. 43쪽.
- ↑ 김상훈 (2011년 9월). 《외우지 않고 통으로 이해하는 통아시아사 2》. 다산에듀. 44쪽.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 김상훈 (2011년 9월). 《외우지 않고 통으로 이해하는 통아시아사 2》. 다산에듀. 45쪽.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외부 링크[편집]
참고 자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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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하마드 호다반다 |
제5대 아바스 제국의 국왕 1587년 10월 15일~1629년 1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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