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조선)
이거(李蕖,1450년 ~ 1530년)는 조선 중기의 의병장이다.
자는 형백(馨伯)이고 호는 강개옹(慷慨翁)이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경전(經典) 및 사서(史書)를 두루 통달하였고, 경세치용(經世致用)에 중점을 두어 병법(兵法)‧복서(卜筮)‧음률(音律)‧의약(醫藥)‧천문(天文) 등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박학다식하였다.참고로 그의 증손자는 이순신 장군이다.
생애[편집]
임진왜란 때 의병들을 규합하여 청주일대에서 왜적을 크게 무찔렀으며, 당시 체찰사(體察使)를 맡고 있던 이원익(李元翼)에게 호서지역 방어 계책을 알려주었다. 또 이몽학(李夢鶴)이 이끄는 반란군이 홍주성에 진입하자, 노복 100여 명을 지휘하여 홍가신(洪可臣)을 도와 반란을 평정하였으며, 명나라 부총(副總) 해생(解生) 등을 도와 청주 일대에서 적의 퇴로를 끊고 적을 대파하는 데 일조하였다.
난리가 평정된 후 한성부윤중추부사 오위도총부도총관 분충장의적의청난원종공신(漢城府尹中樞府事五衛都摠府都摠管奮忠仗義迪毅淸難原從功臣)에 책정되었다. 그러나 공훈을 가지고 다투는 당시 조정의 분위기에 염증을 느끼고 고향으로 내려간 후 유유자적하며 여생을 보냈다.
가계[편집]
장남 이백복은 음보로 관직에 올라 1535년(중종 30) 형조좌랑을 거쳐 통훈대부 함종현령에 이르렀고, 차남 이백록은 생원시에 합격한 후 선교랑 평시서봉사에 이르렀다. 이순신은 둘째 아들 이백록의 손자이다.
평가[편집]
왕조실록에 의하면 '성격이 강직하여 언관으로 있으면서 부정한 관리에 대해서는 관직의 고하를 가리지 않고 탄핵하였다.'고 평가했다. 또한 왕조실록은 '이거는 젊었을 때에는 청직(淸直)하다고 이름이 났으나, 순천부사가 되어서는 자못 청렴하지 못하였다' 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