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위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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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위거왕
簡位居王
부여의 제?대 국왕
재위 전후 3세기~ ?
대관식 간위거왕(簡位居王)
전임 위구태왕(尉仇台王)
후임 마여왕(麻余王)
부왕 위구태왕(尉仇台王)
이름
간위거(簡位居)
이칭 위거(位居)
별호 미상
묘호 미상
시호 간위거왕(簡位居王)
연호 미상
신상정보
출생일 생년 미상(生年 未詳)
출생지 부여(夫餘)
사망일 몰년 미상(沒年 未詳)
사망지 부여(夫餘)
왕조 부여(扶餘)
가문 미상
부친 위구태왕(尉仇台王)
모친 공손씨(公孫氏)
배우자 미상
자녀 마여왕(麻余王)
묘소 미상

간위거왕(簡位居王, 생몰년 미상)은 부여의 왕으로, 이름은 간위거(簡位居)이다. 위구태왕(尉仇台王)의 뒤를 이어 부여의 왕이 되었다.

생애[편집]

간위거는 위구태의 아들로 생몰년은 알 수 없다. 어머니는 공손탁(公孫度)의 종녀(宗女)인 것으로 추정된다. 3세기 초에 위구태가 죽자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치세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며, 적자를 남기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제가(諸加)들이 협의하여 서자인 마여를 후계자로 추대하였다.[1]

가족관계[편집]

각주[편집]

  1. 진수(3세기),《삼국지》〈권30 오환선비동이전〉“... 度以夫餘在二虜之間,妻以宗女。尉仇台死,簡位居立。無適子,有孽子麻餘。位居死,諸加共立麻餘。”(....(공손)탁은 부여가 이들 두 나라 사이에 끼여 있음을 보고 왕실의 딸을 위구태 왕에게 시집보내었다. 위구태왕이 죽자, 간위거가 왕이 되었다. (간위거는) 적자가 없고, 서자인 마여가 있었다. 위거가 죽자, 제가들이 함께 마여를 왕으로 세웠다. )

참고 문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