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소년형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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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소년형무소(開城少年刑務所)는 대한민국의 옛 교도소이며, 경기도 개성시에 위치하였다.

1923년, 경성형무소 개성분감을 승격시켜 개성소년형무소가 신설되었다. 개성소년형무소는 18세 미만의 남자 소년과 이에 준하는 자를 수용하였다.[1] 광복 이후 개성시가 38선 이남에 있었던 관계로 대한민국에 귀속되었다. 이 형무소는 38도선에서 불과 1km 남쪽에 있었다.

1950년 6월 25일, 조선인민군의 기습 남침이 일어나 형무소(당시 명칭)가 포위되자, 당시 우학종(禹學鍾) 교도소장은 교도관들 및 일부 소년 재소자들과 함께 10시간 동안 형무소를 사수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자살하였다. 1989년 그의 동상이 서울구치소에 세워졌다.[2] 개성소년교도소 자리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통치하에서 1952년 수립된 개성방직공장이 들어서 있다.[3]

한편 개성소년형무소는 1950년 이후 대한민국에서, 잠시 동안 서류상의 기관으로나마 존속되었다. 1961년 12월 23일 형무소가 교도소로 개칭됨에 따라 개성소년교도소(開城少年矯導所)로 개칭되었으며,[4] 1963년 9월 3일, 대한민국 각령 제1476호로 개성소년교도소가 개성교도소(開城矯導所)로 개칭되었다[5]. 그러나 같은 해 10월 5일, 각령 제1594호로 개성교도소가 폐지되었다.[5]

각주[편집]

  1. 이영우, 범죄 청소년의 교정 처우에 관한 연구 Archived 2016년 3월 5일 - 웨이백 머신 - 천주교
  2. 1989.6.24. 중앙일보, 6·25때 개성교도소 사수 - 우학종소장의 흉상 제막[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3. 북한지역정보넷
  4. 교정본부 연혁
  5. 교정본부 - 한국교정행정의 연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