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전재
구례군의 향토문화유산 | |
종목 | 향토문화유산 제9호 (2005년 5월 18일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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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
주소 |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476-3 |
좌표 | 북위 35° 12′ 13″ 동경 127° 30′ 50″ / 북위 35.20361° 동경 127.51389° |
곡전재(穀田齊)는 대한민국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위치한 가옥이다. 2005년 5월 18일 구례군의 향토문화유산 제9호로 지정되었다.
개요[편집]
이 건물은 1929년 박승림이 건립하였으며 1940년에 이교신(호-곡전) 씨가 인수하여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거처하고 있다. 조선 후기 한국 전통 목조 건축 양식의 주택으로서 부연을 단 고주집, 문살의 외미리 형식, 기둥 석가래 등이 매우 크고 지붕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당시 영 호남지역에서 발견되는 부농의 민가 형식 주택으로 문간채, 사랑채, 안채가 모두 ―자형으로 배치되었으며 2.5m 이상의 호박돌 담장을 설치하여 집터의 환경을 금환(金環)의 개념을 도입한 점 등이 독창적이다.[1]
건립[편집]
박승림은 오늘날 승주군에 속하는 옛 순천군 황전면 대치리에 살던 7천석 대지주였다. 처음에는 구례읍 봉북리로 이사하였으나 풍수지리설을 쫓아 백방으로 명당을 물색하다가 지금의 터에 집을 짓기로 하였다.[2] 박승림은 집터를 정하기 위해 많은 지관(地官, 풍수지리설을 쫓아 명당을 찾는 사람)을 풀어 1910년 무렵부터 땅을 알아 보았는데 지금의 집터를 정하는 데 10년을 보냈다고 한다. 이 때 함께 땅을 알아 보러 다닌 사람이 이교신으로 1929년 박승림과 함께 집을 지었다.[3]
집터는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정하였고 풍수지리설의 금환락지(金環洛地 - 선녀가 금반지를 떨어뜨린 자리)에 해당한다고 보아 집터 자체를 반지 모양으로 둥글게 조성하였다.[4] 오미리가 금환락지에 해당한다는 이야기는 인근의 운조루를 비롯한 오미리 마을 옛집에 두루 전하는 이야기이다.[2] 풍수에서 금환락지란 생산이 풍부한 땅을 의미한다.[5]
구조[편집]
원래 지어진 집은 모두 여섯채 53간 규모였으나 현재는 1998년 일부 복원하여 5채 51간 규모이다.[3] 담장을 높이 올려 안을 전혀 들여다 볼 수 없다. 내부는 문간채와 행랑채, 안채를 기본으로 하여 지어 남부 지방의 부유한 민가의 트인 ㅁ자 구조를 잘 보여준다.[6]
집이 지어진 시기는 1929년으로 일제강점기에 해당하지만, 건물은 조선 후기의 전통적인 한옥 구조를 따라 지었다. 집 안 동편으로 밖에서 물을 끌어들여 동행랑채 옆에 연못을 마련하였고, 마루방을 만들어 여름철을 보낼 수 있게 하였다.[7] 연못의 물은 집을 감아 돌아 대문 옆 정원을 거쳐 빠져나간다.
역사[편집]
1929년 집을 지은 박승림은 서울에 사업채를 차리고 살았고, 집의 관리를 이교신에게 맡겼다. 1940년 박승림이 서울에서 사망한 뒤 유족인 며느리가 집을 이교신에게 매각하였다. 이후 이교신의 호인 곡전(穀田)을 따 집의 이름이 곡전재가 되었고 지금까지 5대째 후손들이 살고 있다.[5] 2003년 학술 조사가 진행되어 2005년 구례군 향토문화재가 되었다.[5]
이교신의 후손인 이병주는 2006년 한옥 고택의 보존과 문화재 관람객의 편익을 위한 팬션 사업을 시작하였다.[3] 2010년 한옥 팬션업으로 인허가되어 관람로와 손님방을 꾸미고 영업 중이다.[8] 전통 한옥 생활 방식의 바닥 방과 침대를 마련한 방이 있다.[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