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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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광(金義光: 미상~1296년 7월 13일(음력 6월 12일)[1])은 고려의 관료로, 원래는 충주 관노 출신이다.[2]

이력[편집]

  • 생년: 미상. 김장(金壯)의 아들로 태어남.[2]
  • 1234년에서 49년 사이[3]: 아버지가 최우에게 청탁해 진양부(晉陽府)의 내수(內竪[4][5]: 내료(內僚))가 되었음.[2]
  • 1269년(원종 10): 충렬왕이 세자일 적에 세자 곁에 시종함.[6]
  • 1273년(원종 14): 원나라에서 황후와 황태자를 책봉한 사실을 알려오자 원나라에 가서 책봉을 하례함. 이때 그의 관직은 보승(保勝) 소속 별장(別將: 정7품)이었음.[7]
  • 1278년(충렬왕 4): 내료로서 낭장(郎將: 정6품) 정승오(鄭承伍), 강석(姜碩), 이서(李恕) 등과 함께 신문색(申聞色: 액정국(掖庭局))이 됨.[8]
  • 1282년(충렬왕 8): 충렬왕이 세자일 적에 세자 곁에 시종한 것을 인정받아 일등 공신이 됨.[6]
  • 1284년(충렬왕 10): 내료로서 높은 관직을 받음.[9]
  • 1288년(충렬왕 14): 충렬왕과 제국대장공주가 묘련사(妙蓮寺)에 행차했는데 그곳에서 환관인 장군(將軍) 최세연(崔世延)과 함께 채붕(彩棚)을 설치하고 잡희(雜戱)를 벌임.[10]
  • 1296년(충렬왕 22): 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 종2품)로 죽음.[1]

참고 자료[편집]

  • 《고려사》
  • 《고려사절요》
  • 이승휴, 《동안거사집》

각주[편집]

  1. 《고려사》 권31, 〈세가〉31, 충렬왕 22년(1296년) 6월 12일(기유)
  2. 《고려사》 권123, 〈열전〉36, [폐행], 이지저
  3. 《고려사》 권23, 〈세가〉23, 고종 21년(1234년) 10월 25일(경인); 권129, 〈열전〉43, [반역], 최충헌 부 최이(구 최우)
  4. 그를 언급한 《고려사》의 다른 부분과 《고려사절요》에는 모두 내료(內僚)라고 되어 있다.
    다른 부분의 예 1: 《고려사》 권123, 〈열전〉36, [폐행], 이지저, “有金義光者, 亦以內僚拜將軍”
    다른 부분의 예 2: 《고려사절요》 권20, 충렬왕 10년(1284년) 9월, “大將軍李之氐將軍金義光皆以內僚受高爵”
    다른 부분의 예 3: 《고려사》 권104, 〈열전〉17, 김주정, “內僚郞將鄭承伍·金義光·姜碩·李恕·河汭"
  5. 참고로 이승휴의 《동안거사집》에는 내시(內侍)라고 되어 있다. 이승휴, 《동안거사집》 권4, 빈왕록 서문, "內侍保勝別將金義光" 이승휴의 생몰연대(1224~1300)가 김의광의 생몰연대(?~1296)와 겹친다.
  6. 《고려사》 권29, 〈세가〉29, 충렬왕 8년(1282년) 5월 2일(경신)
  7. 이승휴, 《동안거사집》 권4, 빈왕록 서문
  8. 《고려사》 권104, 〈열전〉17, 김주정; 《고려사절요》 권20, 충렬왕 4년(1278년) 10월
  9. 《고려사절요》 권20, 충렬왕 10년(1284년) 9월
  10. 《고려사》 권30, 〈세가〉30, 충렬왕 14년(1288년) 1월 18일(계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