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195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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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
출생1952년 12월 10일(1952-12-10)
대한민국 경상북도 포항
사망2024년 4월 7일(2024-04-07)(71세)
성별남성 위키데이터에서 편집하기
국적대한민국
학력국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

연세대학교 대학원 행정대학원 정치외교학 외교안보학 석사 과정 (수료)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최고지도자과정 (수료)
직업정치인
종교개신교
의원 선수1
의원 대수19
정당무소속
선거구경북 포항시 남구·울릉군(19)

김형태(金亨泰, 1952년 12월 10일~2024년 4월 7일)는 대한민국의 방송 기자·정당인이다.[1] 제19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79년 KBS에 공채기자로 입사하였다. 2003년까지 주로 정치부, 사회부 기자로 활동하였고, 사건팀장, 법조반장, 뉴욕특파원, 국회반장, 기동취재부장, 사회2부장, 문화과학부장, 사회1부장, 시청자센터 주간을 거쳤다.

2003년에 KBS를 퇴사한 뒤, 제17대 국회의원 출마하기 위해 정치계로 입문하였다. 2012년 4월 11일 실시된 대한민국 제19대 총선에서 포항남ㆍ울릉 선거구의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허나 선거기간부터 과거 제수씨 성추문 의혹으로 곤욕을 치렀다.

김형태는 당선 직후인 2012년 4월 18일 보도자료를 내고 성추문 의혹에 대해 소상한 경위를 밝혔다. 관련기사

그는 "동생이 1995년 암으로 사망한 이후 제수씨에 대해 여러 가지 금전적인 도움을 주었으나, 내가 불가피하게 주택에 대해 가압류조치를 한 이후 제수씨는 나에게 적대적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그는 2001년 제수씨가 부산 소재 주택이 경매에 넘어가게 됐다며 돈을 빌려 달라고 요구해서 KBS 신한은행 지점에서 김형태 명의로 5000만원을 신용 대출해 제수씨에게 빌려줬다. 하지만 제수씨가 원리금을 전혀 갚지 않아 김형태 부부가 5천만원과 이자를 모두 갚았다.

제수씨의 궁핍한 상황에서 제수씨의 주택문제가 악화해 4~5명의 채권자가 주택을 가압류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김형태도 2002년경 뒤늦게 가압류를 했다.

김형태는 많은 사석에서 "나 역시 월급쟁이지만 조카들을 생각해 생활비를 대가 없이 보태줬다. 생활비와 별개로 큰 돈을 빌려주기도 했다. 제수씨는 내가 빌려준 돈을 전혀 갚지 않으면서 오히려 돈을 더 받아내기 위해 나의 성추문 의혹을 만들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리하여 당선 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지내다가 20대, 21대 총선은 출마하지 않았다.

이후에는 국토사랑방송 명예회장과 세계한인언론인협회 상임고문을 지냈다.

2024년 4월 7일 별세하였다.

역대 선거 결과[편집]

실시년도 선거 대수 직책 선거구 정당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락 비고
2004년 총선 17대 국회의원 경북 포항시 남구·울릉군 무소속 7,437표
6.27%
4위 낙선
2012년 총선 19대 국회의원 경북 포항시 남구·울릉군 새누리당 45,775표
41.24%
1위 초선

각주[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