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전씨
나라 |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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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향 | 전라남도 나주시 |
시조 | 전경(全卿) |
원시조 | 전섭(全聶) |
주요 인물 | 전명조, 전봉초, 전화황 |
인구(1985년) | 17,687명 |
나주 전씨(羅州全氏)는 전라남도 나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도시조 전섭(全聶)은 백제 십제공신(十濟功臣)이다. 중시조 전경(全卿)은 전섭(全聶)의 30세손으로, 고려 충렬왕 때 성균좨주(成均祭酒)를 지냈고, 1332년(충혜왕 19년)에 조적(曺頔)의 난을 평정한 공을 세워 정난공신(定難功臣)이 되었고, 1334년(충숙왕 3년)에 나성군(羅城君)에 봉해졌다.
기원[편집]
도시조(都始祖) 전섭(全聶)은 기원전 18년 고구려 동명왕(東明王)의 셋째 아들 온조(溫祚)가 백제를 개국할 때 마려(馬藜), 오간(烏干), 을음(乙音), 해루(解婁), 흘간(屹干), 곽충(郭忠), 한세기(韓世奇), 범창(笵昌), 조성(趙成) 등 9사람과 함께 공을 세워 십제공신(十濟功臣)으로 환성군(歡城君)에 봉해졌다. 전씨(全氏)는 도시조인 전섭으로부터 18본이 분적되었다.
시조[편집]
나주 전씨(羅州全氏)의 시조 전경(全卿)은 도시조 전섭(全聶)의 30세손이다. 전경은 고려 충렬왕 때 성균좨주(成均祭酒)를 지냈고, 1332년(충혜왕 19년)에 조적(曺頔)의 난을 평정한 공을 세워 정난공신(定難功臣)이 되었고, 1334년(충숙왕 3)에 나성군(羅城君)에 봉해졌다.
인물[편집]
- 전명조(全命肇, 1690년 ~ ?) : 조선 후기 문신. 자는 품초(稟初)이다. 본관은 나주(羅州). 부친 통훈대부(通訓大夫) 행 병조좌랑(行兵曹佐郞) 전성준(全聖準)과 모친 이직(李溭)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1735년(영조 11) 증광시에서 생원 3등 27위로 합격하였고, 1740년(영조 16) 개성별시 문과에서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1744년(영조 20) 민수언(閔洙彦) 등과 함께 정언(正言)에 임명되었다. 이후 장령(掌令) 등을 역임하였다.
- 전봉초 : 음악가
- 전화황 : 서양화가
과거 급제자[편집]
나주 전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6명을 배출하였다.[1]
- 문과
전명조(全命肇) 전석구(全錫九) 전성신(全聖臣) 전성준(全聖準) 전성택(全聖澤) 전여초(全汝初)
- 무과
전상룡(全祥龍) 전응각(全應珏) 전진욱(全振郁)
- 생원시
전경회(全慶會) 전기태(全氣泰) 전대균(全大均) 전대열(全大烈) 전대익(全大益) 전대제(全大濟) 전대진(全大震) 전대훈(全大勳) 전명록(全命祿) 전명조(全命肇) 전명혁(全命赫) 전석천(全錫天) 전성빈(全聖賓) 전최호(全最浩) 전최홍(全㝡洪) 전황(全晃)
- 진사시
전기조(全基肇) 전명룡(全命龍) 전상겸(全象謙) 전최질(全最質)
항렬자[편집]
23世 흥(興), 24世 광(光) 규(奎), 25世 석(錫), 26世 태(泰), 27世 근(根), 28世 희(熙), 29世 배(培), 30世 진(鎭), 31世 수(洙), 32世 주(柱)
집성촌[편집]
- 황해도 개풍군 청교면 일원
- 황해도 개풍군 서면 광정리
- 황해도 봉산군 덕재면 대구리
- 평안남도 대동면 남형제산면 장산리
- 평안남도 영변군 연산면 화석리
- 평안남도 영변군 연산면 문봉리
인구[편집]
- 1985년 3,961가구, 17,687명
- 2000년 1,629가구, 5,169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