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노 히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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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노 히로시(일본어: 宮野 裕史, 1970년 4월 30일 ~ )는 일본살인자이다. 부모는 아버지 미야노 료큐, 어머니 미야노 시즈에, 둘다 1942년생.여고생 콘크리트 살인 사건의 가해자들 중에서도 최악으로 평가받는 범인이다. 현재 요코야마(横山)로 성을 바꾸었다.전세계에서 독보적인 수준의 유도 최강국인 일본에서 엘리트 유도선수로서 4년을 활약했지만 귀가 조금도 뭉개져있지 않다.이것은 유도나 레슬링에서 다른 엘리트체육 선수들과의 셀수도 없이 많은 연습 및 대련에서도 교착 상태가 별로 없었다는 것으로 기량이 극단적으로 뛰어난 극소수의 케이스 에서만 간혹 나타나는 현상이다.거의 대부분의 엘리트 유도인들은 귀가 뭉개진 일명 만두귀이고 일반인 사이에서 소위말하는 인간 전투병기를 구별하는 기준이 되지만 그 엘리트 유도인 사이에서는 귀가 A와 같이 교자 형태로 멀쩡한 상태로 남아있다는 것은 기량이 매우 특출한 극소수에 속한다. 2013년1월 유선사기 혐의로 불구속입건 되었지만 증거불충분으로 인한 무혐의 처분. 아래는 그의 지인의 증언이다.

그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에 관해서는 그다지 좋은 소식이 없다. 그들 중 누구도 양심의 가책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자유를 되찾았고 다른 소녀들과 데이트했다.

2009년 석방된 후 미야노 히로시는 이름을 요코야마로 바꾸었다. 그러나 그는 살인 사건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매우 솔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얘기를 하는 동안 그는 마치 자신의 일이 아닌 것처럼 장난스럽고 들뜬 태도를 보인다. 그는 또한 친구들을 바베큐 파티와 스트립 클럽에 데려가고, BMW를 타고 과속하고, 값비싼 브랜드 옷을 입고, 조직 범죄 및 다단계 마케팅 계획과의 관련성을 자랑하는 고급 라이프스타일로도 유명하다. [ 2 ]

석방 4년 후인 2013년, 미야노는 사기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러나 증거가 충분하지 않아 추가 혐의나 선고 없이 석방됐다. 현재 그는 킥복싱 헬스장 단골손님과 좋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른쪽 하단에 노란색 텍스트: "그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그녀가 토할 정도로 입에 넣었다"이다.

하단에 하얀 글씨: “소문을 들었을 때 믿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나는 그에게 술을 마시며 물었다.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여고생 살인 사건(후루타 준코 살인)의 가해자 중 한 명이 당신이라는 것은 거짓말이죠? 그의 표정이 갑자기 멈추고 창백해졌다. 올해 8월에 있었던 일이다. 그 다음날, 나는 [Miyano]와 거의 매일을 함께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연락도 받지 않았다.”

사진작가 M씨는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M은 상의를 벗은 남성이 벤치에 앉아 피스 사인을 던지고 있는 사진을 공개했다.

"그 남자(Miyano)는 자신을 "K"라고 불렀다. 우리는 약 3년 전에 만났다. 저는 제가 통근하던 도쿄 서부의 체육관에 합류했다. 그는 저에게 큰 형처럼 느껴졌고 그와 어울리는 나를 초대했다. 이것은 사진(패널 3, 미야노(K)의 얼굴은 검게 그을린 양복 차림의 세 남자와 픽셀화 된 얼굴의 두 남자)는 이번 여름 초 우리가 가진 바베큐에서 찍은 것이다. 살인 사건에 대해 알지 못한다… "

1988년 말 후루타 준코의 살인 사건이 기록되었다. '가면 속에 숨어 있는 야만인들의 행실'로 일컬어지는 살인사건은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2009년에 출소한 후 [미야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나 자신이 그렇게 잔인한 범죄자와 가까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가 [Furuta의 살인] 주요 가해자 중 한 명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평소 유도나 성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여자들과 섹스할 때 "입에 물고 토할 정도로" 자랑을 하기도 했다. 섹스. 그도 43세이고, 그것은 바로 그의 얼굴이다. K를 만난 친구들은 나에게 [Miyano]의 사진을 보내며 의심할 여지 없이 동일인물이라고 말했다.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 사건[편집]

1988년 11월 25일, 리더격인 미야노 히로시('대장', '소년 A', 당시 18), 부 리더 격인 오구라 유즈루(小倉譲, '소년 B', 17)를 비롯, 미나토 신지(湊伸治, '소년 C', 15), 와타나베 야스시(渡邊恭史, '소년 D',16) 등을 위시한 여러 명의 소년들은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귀가 중이던 여고생 후루타 준코 (古田順子, 당시 17세)를 납치하여 미나토 신지의 자택 2층 거실에 감금하고 40일 이상에 걸쳐 최소한 5백~8백회가 넘는 강간 행위나 가혹한 폭행을 반복했다. 그 결과로 후루타는 사망했고, 1989년 1월 5일 사망을 눈치채어 시체의 처리에 곤란을 느낀 가해자들은 사체를 드럼통에 넣어 콘크리트로 채워 도쿄도 고토구 와카스에 있는 매립지에 유기했다.

주범이라고 일컬어지는 네 명은 형사 처분의 근거가 상당하다는 이유로 가정재판소에서 검찰청으로 송치되어, 형사 재판에 회부되었다. 도쿄 고등재판소는 주범 격인 미야노를 징역 20년, 오구라, 미나토, 와타나베를 각각 징역 5년이상 10년이하, 징역 5년이상 9년이하, 징역 5년이상 7년이하에 처했다. 그 외 비교적 혐의점이 작은 세 명의 소년은 소년원에 송치되었다.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