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구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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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朴球: 미상~1289년 8월 21일(음력 8월 5일)[1])는 고려 후기의 무신이다. 원나라의 일본 원정에 참여했다.[2] 그의 조상은 부유한 상인이었는데, 박구가 그 재산을 물려받아 그가 살았던 때에 큰 부자[饒財]라고 불렸다.[3]

약력[편집]

  • 생년: 미상. 울주(蔚州: 오늘날 울산광역시)에 속한[4] 갑화부곡(甲火部曲: 오늘날 부산광역시 기장군으로 추정[5])에서 태어남.[6]
  • 고종 재위기: 군인이 됨.[7]
  • 원종 재위기: 상장군(上將軍: 정3품)으로 임명받음.[3]
  • 1276년(충렬왕 2): 원나라의 사신이 다루가치 석말천구를 문초했지만 자복하지 않자 옥에 갇힘. 충렬왕이 박구를 보내 석방을 요청하자 이내 풀려남.[8]
  • 1278년(충렬왕 4): 우승지(右承旨: 정3품)로 임명받음.[9]
  • 1279년(충렬왕 5): 밀직부사(密直副使: 밀직사 종2품)로 임명받음.[10]
  • 1280년(충렬왕 6): 김주정(金周鼎)과 함께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 종2품)로 임명받음.[11]
  • 1283년(충렬왕 9): 황제의 생일을 축하하려 원으로 감.[12]
  • 1289년(충렬왕 15): 찬성사(贊成事: 첨의부 정2품)로 죽음.[1][3]

전기 자료[편집]

  • 《고려사》 권104, 〈열전〉17, 김방경 부 박구

각주[편집]

  1. 《고려사》 권30, 〈세가〉30, 충렬왕 15년(1289년) 8월 5일(신해)
  2. 이와 관련한 내용은 다음 논고에서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김위현, 〈麗·元 日本征伐軍의 出征과 麗·元關係〉, 《국사관논총》 9, 1989년.
  3. 《고려사》 권104, 〈열전〉17, 김방경 부 박구
  4. 1018년(현종 9년)부터 울주 소속이었음. 《고려사》 권57, 〈지리지〉2, 경상도 양주 기장현.
  5. 한국향토전자문화대전의 갑화부곡 (울산) 참조.
  6. 《고려사》 권104, 〈열전〉17, 김방경 부 박구, "朴球, 蔚州屬部曲人."
    《세종실록》 권150, 지리지 경상도 경주부 울산군, "部曲一, 甲火。 (중략) 甲火姓二, 朴、金。"
  7. 박종기, 《고려사의 재발견》, 휴머니스트, 2015년, 324면.
  8. 《고려사》 권28, 〈세가〉28, 충렬왕 2년(1276년) 7월 21일(갑인)
  9. 《고려사》 권28, 〈세가〉28, 충렬왕 4년(1278년) 10월 10일(경신)
  10. 《고려사》 권29, 〈세가〉29, 충렬왕 5년(1279년) 12월 18일(신묘)
  11. 《고려사》 권29, 〈세가〉29, 충렬왕 6년(1280년) 12월 5일(계유)
  12. 《고려사》 권29, 〈세가〉29, 충렬왕 9년(1283년) 7월 19일(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