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대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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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대룡 房大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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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38년 3월 12일 일본제국령 조선 전라북도 정우면 (추정) (현 대한민국 전라북도 정읍시) |
사망 | 1983년 10월 11일 영등포구 적십자병원 | (45세)
사인 | 뇌출혈 |
국적 | 대한민국 |
본관 | 남양 |
학력 |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
직업 | 기업인 |
부모 | 아버지 방근석 |
형제 | 동생 방대남 |
배우자 | 이일순 |
자녀 | 딸 방정혜, 방정화, 방정난, 방정수, 방정미 아들 방정식 슬하 1남 5녀 |
방대룡(房大龍, 1938년 3월 12일 ~ 1983년 10월 11일)은 전 기업인이자, 기술자이다. 자택에서 음주 후 외출 도중 낙상하여 머리에 큰 부상을 입었고 하지만 한의원이나 약방에 가는 등 계속해서 치료가 늦어지자 상황은 심각해졌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지만 이미 늦은 후 여서 더 이상의 치료는 불가능하였고, 병실에서 식물인간 상태로 지내고 있었고, 오랜 투병끝에 병실에서 향년 45세로 사망한다.
생애[편집]
출생[편집]
방근석의 장남으로 출생하였으며, 본래 대지주였던(전주의 땅을 소유함) 집안이 일제강점기 토지조사사업으로 가지고 있던 토지가 전부 몰수 되어 집안이 몰락하는 상황이 일어났다.
유년시절[편집]
일제강점기 정우면 성동정(주청됨)에서 출생. 일본령 조선 전주고등보통학교다니지만 공부의 흥미가 없어 자퇴했다.
혼인[편집]
15세에 당시 17세였던 이일순과 결혼
혼인 후[편집]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북한 공산정권에 의해 대략 9년 정도 공산당정권에 속해있었고, 해방이후 지리산에서 대한민국정권이 들어서면서 공산당으로 몰리고 국가보안법에 의해 징역을 약 9년 정도 살아야했다. 석방이후 사업을 시작하였다.
사후안치장[편집]
사후 시신은 화장하여 인천 가족공원 납골당에 안치되어있다.
안치는 추모의집 지하에 안치됨.
학력[편집]
가족[편집]
- 아버지 : 방근석 (생몰년 미상)
문제점[편집]
1959년 대법원에서 국적문제로 재판을 받은적있음
- 한국전쟁당시 거주지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표기됨
현재 국적은 대한민국으로 변경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