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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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신(白光臣, 1133년[1] ~ ?)은 고려 중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남포(藍浦)다.

생애[편집]

신라 간관(新羅 諫官) 백중학(白仲鶴)의 후손으로 태복경(太僕卿)을 지낸 백사청(白司淸)의 아들이다.

고려 명종 때 과거 급제[2] 이후 1200년(신종 3) 임유(任濡)를 지공거로,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조문발(趙文拔)과 진화(陳澕)를 선발했다.[3] 판비서성사(判秘書省事) 한림학사 지제고(翰林學士知制誥)로 치사(致仕)했다.[4]

1205년(희종 원년) 최충헌(崔忠獻)의 모정(茅亭)에서 시작(詩作)을 경연함에 심사를 맡아 급제 정공분(鄭公賁)의 시를 제1등급으로 뽑았다.[5][6] 수사공(守司空)으로 치사한 이준창(李俊昌), 호부상서(戶部尙書)로 치사한 현덕수(玄德秀), 수사공(守司空)으로 치사한 이세장(李世長), 수태위(守太尉) 문하시랑(門下侍郞) 동 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를 지낸 최당(崔讜), 태복경(太僕卿)으로 치사한 장자목(張自牧), 동궁시독학사(東宮侍讀學士)를 지낸 고영중(高瑩中), 수태부(守太傅)를 지낸 최선(崔詵), 국자감대사성(國子監大司成)으로 치사한 조통(趙通) 등과 함께 해동기로회(海東耆老會)[7]를 만들어 만년을 시와 술로 소요자적(逍遙自適)하니 세상이 그들을 지상선(地上仙)이라 했다.[8][9]

가족관계[편집]

  • 부 : 백사청(白司淸), 태복경(太僕卿) 증 삼중대광(贈三重大匡)
    • 부인 : 김씨(金氏), 김명(金明)의 딸
      • 아들 : 백분화(白賁華, 1179년 ~ 1224년), 경산부부사(京山府副使)
      • 자부 : 임씨(林氏),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 판삼사사(判三司事) 임유겸(林惟謙)의 딸
        • 손자 : 희심(希諗), 출가(出家) 조계선사(曹溪禪士)
        • 손자 : 숙명(淑明)

각주[편집]

  1. 1206년 해동기로회 당시 74세라 했다. '해동기로회', 민족문학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820520&cid=46644&categoryId=46644"
  2. [참고]고려사 지(誌) 선장(選場) 신종 3년 조 '백광신' 각주 255번
  3. 고려사 지(誌) 선장(選場) 신종 3년 조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673575&cid=49630&categoryId=49793"
  4. [참고]국어국문학자료사전 백분화(白賁華) 참고,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689344&cid=41708&categoryId=41711"
  5. 국역 고려사 열전 최충헌전,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672514&cid=49632&categoryId=49632"
  6. 국역동국통감 권29 고려기 '고려 희종 원년, 을축년(乙丑年), 1205년 여름 5월 조',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890916&cid=49624&categoryId=49685"
  7. 진솔회(眞率會) 또는 구로회(九老會)라고도 했다. [참고]고영중묘지명(高瑩中墓誌銘), 1209년. "http://gsm.nricp.go.kr/_third/user/frame.jsp?View=search&No=4&ksmno=515"
  8. 국역동국통감 권29 고려기 '고려 고려 희종 7년, 신미년(辛未年), 1211년 가을 9월 조',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890922&cid=49624&categoryId=49685"
  9. [참고]'해동기로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820520&cid=46644&categoryId=466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