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토론:Xakyntos/2009 상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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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의견: 14년 전 (Xakyntos님) - 주제: 중국 연호

김운회에 관한 질문

한국사를 주로 편집하시니 아마 김운회 동양대 교수[1]에 대해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역사를 공부하고는 있으나 주로 서양사고, 한국사는 근현대사에 한정되어 있어 그 이전은 학부 1년생보다 딱히 나을 것이 없습니다. 김운회 교수의 경우, 제가 몇 번 편집의 근거로 삼은 박영규와 달리 '재야사학자'는 아니지만, 많은 주장이 저로서는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이 분의 주장들이 신빙성 있고 어느정도 인정받는 주장인지 아니면 허점과 오류 투성이인지 잘 판단이 되지 않습니다. 자킨토스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adidas (토론) 2009년 2월 9일 (월) 06:25 (KST)답변

김운회 교수는 역사학과 하등 관련이 없는 전혀 다른 학과의 교수입니다.(제가 찾아본 바로는 국제통상학 교수라는 군요.) 그러므로 그 역시 재야사학자가 맞습니다. (다른 전공의 교수들까지 정통 사학자에 넣을 수야 없지않습니까.) 게다가 그의 주장들은 실질적으로 박영규와 같은 재야사학자들의 주장과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신빙성은 물론이고 학계에서 그의 의견은 전혀 참고 대상이 되고 있지 않습니다.해당 주장들도 다분히 극단적인 국가주의-민족주의에 치우친 것이 많습니다. 허점이나 오류가 많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구요. 그리고 무엇보다, 김운회 교수는 역사학자가 아닙니다. 역사학자가 아닌 사람의 '소수 의견', 그것도 상당히 잘못되어 있는 의견도 위키에 반영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저는 회의적인 입장입니다. (박영규의 주장이 위키에 있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도 저는 부정적입니다. 그의 주장은 대부분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이루어진 것들이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해서 특정한 학설이라 말할 가치도 없습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9일 (월) 12:56 (KST)답변
음.. 역사학이 전공이 아니었을줄이야...(국제통상 맞군요) 제가 기초적인 조사가 부족했군요. 제가 보기에는 나름 민족주의 사학의 틀에서는 벗어나 있는 것 같습니다. 나름, 몽골-한국-일본을 잇는 '쥬신'의 역사를 밝히자는 주장으로, 일종의 '지역사'를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한국의 민족주의 사학, 일본의 제국주의 사학을 비판적으로 접근하더군요. 박영규도 마찬가지고 갖가지 사료들을 근거로 들어 특히 백제의 역사를 재구성하던데 일정 부분은 그럴듯해 보이는 주장도 있습니다. 박영규의 경우도 일정 부분 그럴듯해 보이는 부분은 약간 수록하였습니다. adidas (토론) 2009년 2월 9일 (월) 18:02 (KST)답변
김운회의 소위 '쥬신'이라는 것이야말로, 일제시대 극우사학자들이 주장한 '대아시아주의'의 삐뚤어진 변형에 지나지 않습니다. [2]를 참조하세요. 지역사는 커녕, 이미 과학의 영역에서도 가치가 없어진지 오래인 혈통주의에 기대서 자위하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럴듯해 보이는 주장일수록 더 엄정하게 검토하고 판명해야 합니다. 특히 위키에서는 더욱 그러하지요. 일개 개인이 일부 언론에 기고-연재하고 있는 연재물 따위가 위키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참 통탄할 일입니다. 조금 더 엄격한 눈으로 살펴보고 검증해 주세요. 필요하시다면 제가 검증에 힘써 드리겠습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9일 (월) 18:26 (KST)답변
저도 김운회의 이상한 혈통주의 등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그의 주장에 근거하여 위키백과에 글을 올리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저는 김운회라는 인물에 대해 안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가 기존 재야사학을 비판적으로 보면서(소위 말하는 '환빠'는 아닌 것 같습니다) 백제사 등을 재구성하는 작업이 흥미로워 보였습니다. 백제사 부분에 있어서 김운회 주장의 요체는 '백제와 왜는 서로 동질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인데, 이 부분에 있어 부분적으로 동의하는 입장입니다. 물론 일본서기 관련 연구 논문만 본 적이 있는지라 확신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혈통주의는 나치의 '아리아 인종주의'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 외에 일정 부분은 공감할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adidas (토론) 2009년 2월 9일 (월) 18:39 (KST)답변

(개그) 제가 사는 동네 이름이 박달동인데 '밝달동'이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adidas (토론) 2009년 2월 9일 (월) 18:39 (KST)답변

배달에 대해서

기껏 신문에 보도된 내용을 인용하여 배달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지적하였는데 내용이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되돌려 놓았더군요. 물론 견해가 다르니 되돌려 놓을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배달은 실국시기(일제강점기를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맞다고 보기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인용한 내용대로 조선 숙종 2년(1675년) 3월 상순 북애노인(北崖老人)이 지은 '규원사화'라는 역사책에도 나오는 어휘입니다. 그래서 '한국학에 전통한 당시 고서심의위원이었던 이가원(李家源), 손보기(孫寶基), 임창순(任昌淳) 등이 1972년 11월 3일, 심의를 하여 규원사화가 숙종 때 쓰여진 진본임을 확인하였다'는 것을 인용하였던 것입니다. 분명 '배달(倍達)'은 실국시대이후에 나온 말이 아니고 이전에도 쓰였던 어휘입니다. 오히려 의미의 혼동을 주기 위하여 일제가 만들었다고 추측되는 '배달(配達)'이라는 일본식 한자어가 실국시대 이후에 만들어진 글자라고 생각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고 있는 '반도(半島)'라는 글자에서 찾을 수 있는데 영어로 'peninsula'라 하여 육지가 바다에 길게 돌출하여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부분을 일제가 자신들의 나라를 '온섬' 혹은 '완전한 섬'과 대칭되는 말로 '반쪽 섬'이라는 의미로 '반도(半島)'라 하였고 우리나라를 '한반도(韓半島)'라 하였던 것과 같은 경우일 것입니다. 이것을 증명하라면 이미 100년 가까히 사용하여 학술용어가 되어버린 현재, 무능력하게 되어 버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정말 '반쪽 섬'입니까? 한자를 사용하는 나라는 한국,중국,일본,대만뿐이라는 것을 상기한다면 그 간악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 紫桃꽃 2009년 2월 10일 (화) 12:55 (KST)

강점기 이전에도 쓰였다고 하는데, 규원사화 이전에는 아예 출처가 없지 않나요? adidas (토론) 2009년 2월 10일 (화) 17:28 (KST)답변
네. 맞습니다. 규원사화 이전에는 사용되었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또한 규원사화 자체도 아직 신빙성이 의심받고 있는 사료이니만큼, 규원사화가 공개된 1920년대 이전으로는 소급 적용이 불가능합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10일 (화) 17:49 (KST)답변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쥬신'같은 경우는 대쥬신제국사라는 소설 말고는 출처가 전혀 없는 것이 맞는지요? adidas (토론) 2009년 2월 10일 (화) 17:51 (KST)답변
물론입니다. 일단 쥬신의 쥬라는 글자 자체가 한문을 사용하던 시대에는 아예 표현이 불가능한 것이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한글 창제 이전에는 아예 쥬신이라는 말 자체가 존재할 수가 없죠. 게다가 쥬신이라는 말은 대쥬신제국사의 작가 김산호 씨가 직접 '내가 창작한 말'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10일 (화) 17:55 (KST)답변

고구려 태조왕에 대해서

항상 질문만 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태조왕 편집하신 내용 중에, 태조왕의 가계에 관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해당 내용은 차대왕, 신대왕이 태조왕의 동생이 아니라 아들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차대왕이 왕위에 오른 후 태조왕의 두 아들을 살해했다고 하는데, 이 아들들과 차대왕, 신대왕의 관계도 궁금합니다. 현재 출처로 달려있는 논문에 잘 설명이 되어 있는지요? adidas (토론) 2009년 2월 19일 (목) 06:32 (KST)답변

태조왕의 아들들에 대한 내용은 기본적으로 《삼국사기》에만 등장하는 것입니다. 삼국사기는 차대왕을 태조왕의 동생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아들들은 당연히 조카로 등장합니다. 태조왕의 두 아들과 차대왕, 신대왕의 관계에 대해서 연구한 논문은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제가 출처로 삼은 논문은 태조왕과 차대왕, 신대왕의 관계를 밝히는 것 보다는, 태조왕 이전의 고구려 왕계와 태조왕의 왕계가 다를 수도 있다는 주장을 다루고 있습니다. 태조왕 자체가 주몽-유리와의 세대관계를 조금 더 끌어 올리기 위해 기년 및 재위기간이 늘려진 것으로 보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의견입니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워낙에 주장이 다양해서 정확하게 한정하여 말하기는 어렵습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19일 (목) 10:01 (KST)답변
그런 이야기가 있었군요.. 개론 시간에 김부식이 신라가 고구려, 백제보다 앞서 건국되었다고 주장하기 위해 고구려의 건국연대와 신라의 건국연대를 조작했다는 '의견'은 들은 바 있지만 자세히 공부하지 않아 위와 같은 내용이 있는 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참고가 될 만한 내용 알려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adidas (토론) 2009년 2월 19일 (목) 10:12 (KST)답변
저 역시 차대왕과 신대왕이 굳이 태조왕의 아우들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실제 정사인 삼국사기에 그렇게 쓰여져 있으니 일단 정설로 받아들여야겠죠. 그런데 정말 저도 궁금한 것이 정말 고구려가 기원전 37년이 아닌 기원전 200년경에 세워졌다는 게 맞나요? (원삼국 시대의 고구려는 기원전 200년경에 있던 게 맞습니다만 그 고구려와 고주몽의 고구려와 같은지가 궁금합니다. 설마 그 건국연도가 '조작'이라니... ) -- 윤성현 기여F.A 2009년 2월 19일 (목) 10:21 (KST)답변
일단 태조왕이 당시에 100살 넘게 살았다는 사실 자체가 신빙성이 매우 떨어집니다. (개인적으로 신화집으로 보고 있는) 환단고기에 나오는 배달국이니 환국이니 하는 데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나이와 비슷하죠. 따라서 해당 기록은 무조건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사료비판을 통해 받아들여야 합니다.
또한 기원전 3세기설은 여러가지 얘기가 있죠. '고주몽'이라는 존재 자체가 이후 왕들이 죄다 해씨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또한, 고주몽 이전에 있었던 모종의 '고구려'와 우리가 알고 있는 '고구려'가 연속성이 있는지도 논란이 많고요. 어느 사서에는 보장왕이 "나 때문에 고구려 900년 사직이 종말을 맞이하게 생겼구나"라며 탄식하는 내용이 있다고 어디서 본 적이 있는데 기억이 명확하지가 않군요. 고구려가 고주몽이 등장하자마자 나름 의미있는 세력으로 등장하고, 3대만에 동부여를 몰락시키는 성과를 거둔다는 점에서, 고주몽 이전에도 고구려라고 불리는 세력이 있었다는 점은 나름 설득력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제가 위에 쓴 '조작'이라는 표현은 그 교수님이 고구려는 원래 900년인데 700년으로 조작이고, 신라는 박혁거세 때 듣보잡이었는데 고구려와 대등하게 서술했다는 점에서 조작이라는 뜻으로 쓴 것입니다. 물론 당시에도 정확한 '근거'는 듣지 못했고, 저도 전공은 아니라 자세히 알아보지는 않았습니다. adidas (토론) 2009년 2월 19일 (목) 11:06 (KST)답변
건국연도에 대해서는, 적어도 김부식이 조작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할 무렵에는, 고려 정계에는 김부식의 정적인 윤언이가 세력을 잡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김부식이 조작을 가했다면, 삼국사기가 공개된 이후 상당한 파장이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김부식에 의한 기년 조작은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신라의 건국 연도를 끌어올린 것은 통일신라 시기에 신라인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학계의 의견입니다.
주몽 이전의 고구려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졸본부여라고 알려져 있는 고구려의 전신을 말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고구려라는 명칭 자체는 현도군의 고구려현에서 등장하며, 현도군이 설치된 것이 기원전 107년이기 때문에 고구려라는 명칭의 연원은 최대상한이 기원전 107년이 됩니다. (기원전 200년이라는 것은 아마도 기원전 2세기에서 유추된 것으로 보입니다만, 실상 기원전 2세기는 기원전 101년~기원전 200년까지니까 기원전 107년도 기원전 2세기가 되죠.) 일반적으로 이때 등장하는 고구려를 주몽이 세운 고구려의 전신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때의 고구려는 국가라기 보다는 일종의 부족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고구려족이 있었고, 후에 부여에서 내려온 주몽이 고구려족을 통합해서 고구려를 건국한 것이죠.
고구려 900년설은 보통 《신당서》 고구려전에 기록된 가언충의 발언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고구려의 기년에 대해서는 삼국사기의 715년(기원전 37년~668년) 말고도 상당히 다양하죠. 신라본기에서 문무왕이 고안승을 책봉하는 표문에서는 800년이 등장하고, 낙양에서 발굴된 고자(高慈)의 묘지명에는 708년이 나옵니다. 어느 것이 맞는가는 저도 잘 모릅니다만, 아무래도 가장 상세하고 체계적인 사적을 전하는 삼국사기가 기준이 되는 것이 맞겠죠.--Xakyntos (토론) 2009년 2월 19일 (목) 11:55 (KST)답변

안녕하세요

[3] 이곳에도 의견을 남겨주셨으면 합니다. adidas (토론) 2009년 2월 21일 (토) 22:11 (KST)답변


정확히 문제가 되는 부분을 리스트로 만들어 지적바랍니다.(토론 게시판 말고, 당신이 의문 나는 사항을 말하는 것입니다) 관리자 게시판은 지저분하니까 거기 말고. 전부 설명과 소스 제시 가능합니다. 단, 제가 작성한 문장에 한해서만. 구체적으로 문장을 열거해주십시오.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1일 (토) 23:53 (KST)답변

Raisekept님은 스스로의 편집에 대하여 모두 출처를 제기할 수 있기 때문에 이번 고발이 잘못되었다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또한 모두 독자연구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죠. 그렇다면 저는 그에 대하여 검증을 하고자 합니다. 검증 결과 독자연구가 아님이 밝혀진다면, 흉노 문서와 관련된 고발 내용은 근거가 없었음이 밝혀지겠지요. 그러니 스스로의 정당성을 위해서라도 검증에 참여해 주시길 바랍니다. 토론:흉노에 구체적으로 리스트를 작성하여 놓았습니다. 가서 보시지요.--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1일 (토) 23:57 (KST)답변

최기호, 〈알타이어족설의 문제점〉, 《한글》 제227호, 1995. 3, pp. 71 ~ 106 / 김방한, 〈알타이 제어와 한국어 Korean and the Altaic Languages〉, 《동아문화》 제15호, 1978. 12, pp. 3 ~ 52 이 논문 어디에 한민족이 알타이어족이 아닌지, 해당 문장을 발췌해서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입증을 못할시 대충 인터넷 검색해서 논문 제목만 제시한 '독자 연구'로 간주해서 해당 내용은 기각하겠습니다.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2:28 (KST)답변

연호

유유의 송나라 연호 작업하느라 수고하십니다. 다름이 아니라 송나라하면 대표적으로 조광윤의 송나라를 떠올리니 유유의 송나라 모든 연호에 들어가는 (송) 괄호를 (유송) 괄호로 바꾸려 하는데 어떠십니까? -- 윤성현 기여F.A 2009년 3월 5일 (목) 15:37 (KST)답변

의견 감사합니다. 저도 비슷한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송나라를 유송으로 바꾸게 되면, 남조의 제도 남제로 바꾸는 등 바꿔야 할 나라가 꽤 많아질 것 같습니다. 현재 해당 국가의 메인 타이틀도 으로 되어 있고, 일반적으로 조광윤의 송나라는 북송·남송이라는 타이틀로 불리는 일이 더 많으므로 굳이 바꿀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습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3월 5일 (목) 15:46 (KST)답변
남제, 남량, 남진 역시 그래야겠죠. 하지만 송이라면 아무래도 조광윤의 송나라로 생각하는 사용자나 독자들이 많을까봐 그런 겁니다. 물론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요. ^^-- 윤성현 기여F.A 2009년 3월 5일 (목) 15:48 (KST)답변
본문에 설명해주면 되지 않을까 합니ㅏ다 adidas (토론) 2009년 3월 6일 (금) 02:34 (KST)답변

안녕하세요

최근 소백손, 박특 등의 문서가 생성되고 있는데, 족보 이상에 근거있는 출처가 있는 인물들인지 궁금합니다. 한국사는 깊게 공부하지 못해서 해당 인물들의 실존 여부가 의심이 되긴 하지만, 없다고 단언하기 망설여집니다. adidas (토론) 2009년 4월 16일 (목) 22:15 (KST)답변

진주 소씨 문제는 상당히 복잡한 문제입니다. 저는 완전히 허구라고 생각합니다만, 남의 조상 문제를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이 링크를 참조하신다면 더 이해가 빠르겠습니다. [4], [5]--Xakyntos (토론) 2009년 4월 16일 (목) 23:51 (KST)답변
박특의 경우 예전에 제가 '박씨 족보에 따르면...' 식의 표현을 삽입한 적은 있습니다만.... 사실 족보라는게 역사적으로 신뢰할 가치가 거의 없긴 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완전 가짜다라고 하기는 제가 부족해서 그냥 보고 있습니다. adidas (토론) 2009년 4월 17일 (금) 00:47 (KST)답변
아울러 가능하시다면 리노이에 모토히로 문서에도 의견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didas (토론) 2009년 4월 16일 (목) 22:15 (KST)답변

낙선 사례

안녕하세요. 두 번째 관리자 낙선한 adidas입니다^^... 사용자:Kys951께서 추천해 주셨지만 저의 부족함 때문에 결과는 이렇게 되었습니다. 제게 찬성, 반대를 막론하고 관심 보여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이번 선거 결과에 나온 의견들을 토대로 좀더 여러분께 신뢰받는 사용자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adidas (토론) 2009년 4월 25일 (토) 01:17 (KST)답변

경의를 표합니다

유사역사학과의 계속되는 투쟁의 선봉에 서서 분투하고 계신 점에 대해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역사학을 학문의 범주에서 끌어내려 정치의 수단으로, 공상의 수단으로, 전도의 수단으로, 정신승리의 수단으로 삼고자 하는 무리들의 간악한 시도에 맞서 진리와 학문을 수호하는 귀하의 건투가 계속되기를 기원합니다. --United97 (토론) 2009년 5월 2일 (토) 22:51 (KST)답변

한사군 위치

하지만 한사군이 꼭 한반도 북부에만 있는 것은 아닌데.... 낙랑국이라는 국가도 있잖아요? 그리고 아직 우리 역사가 재대로 밝힌 것은 아닌건데..... 경고조치는..... 고조선 사라진 역사는 시중에 발간된 책 이름이에요. mewto씀

질문

화랑세기에 근거하여 미실을 생성하였는데, 이 인물에 대한 좋은 자료가 어디 없을까요? 화랑세기 번역본만 보고 생성한거라 제대로 내용이 통했는지 모르겠습니다. adidas (토론) 2009년 5월 6일 (수) 16:50 (KST)답변

저는 화랑세기를 위서로 보고 있는지라, 미실이라는 인물 자체가 화랑세기에만 등장하는 만큼 다른 자료는 구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내용은 무난한 것 같네요. --Xakyntos (토론) 2009년 5월 6일 (수) 17:49 (KST)답변

재야사학의 문제점에 대한 토론

토론:환단고기에서 옮겨왔습니다. 제 임의로 옮겨온 점 죄송합니다.

2

紫桃꽃 님의 발언에 대한 작은 반론입니다.
지엽적인 얘기들, 이를테면 '일제강점기에는 우리민족의 상고사 왜곡에 적극 참여하였고 해방후에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역사가 난도질 당하는 시점에 와있어도 그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것은 사실에 입각한 현실을 말한 것이지
저는, 이미 토론:배달에서 자도꽃 님의 지엽적인 이야기들 하나 하나가 모두 거짓된 것임을 밝혀드린 바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우리 민족의 상고사 왜곡에 적극 참여한 바가 없다고 낱낱이 밝혀드렸으며, 이번에 위에 예시를 들었듯이, 중국의 동북공정에도 최소한 재야사학이 미치는 치명적인 피해에 비해 보자면 몇 배는 더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보여 드렸습니다. 이미 adidas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재야사학이라는 사람들이 동북공정을 기회로 자신들의 세를 불리기에 여념이 없었던 사이, 주류 학계에서는 고구려연구재단, 동북아역사재단과 같은 기관을 설립하여 그 누구보다도 더욱 적극적으로 동북공정에 대처하였습니다. 재야사학이 동북공정에 과연 어떤 대처를 했을까요?? 재야사학만이 동북공정을 이길 수 있다는 프로파간다 말고 실질적으로 동북공정에 대하여 어떤 대처를 했는지 궁금할 뿐입니다. 아무튼, 위에서 말했다시피, 자도꽃님께서 하신 저 발언조차도 사실이 아님을 저는 이미 수차례에 걸쳐서 증거를 통해 보여드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도꽃님께서는 여전히 강단에 대한 적개심을 거두지 못하고 계십니다. 저 역시 재야를 증오하고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저는 재야를 증오해야 할 명백한 이유도 있고, 아직까지 그 누구도 그 이유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주지 못했습니다. 뭐, 자도꽃님께서 강단에 대해 적개심을 가지시는 것이야 제가 알 바가 아닙니다만, 그러한 적개심의 이면에 존재하는 협잡을 제가 이미 몇차례나 밝혀드렸는데도 같은 이야기를 하시는 것은 심히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어차피 이런 내용은 여기서 토론할 바는 아닙니다만, 자도꽃님께서 하도 잘못된 이야기를 계속 하시기에 이렇게 잠시 키보드를 두드렸습니다. 저의 진심어린 고언을 삼가 귀귀울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이만.--Xakyntos (토론) 2009년 5월 6일 (수) 18:37 (KST)답변

Xakyntos님은 자꾸 의미를 확대해가는 것같습니다. 재야사학만이 동북공정을 이길 수 있다는 말을 꺼낸 적이 없는데 확대해석하여 프로파간다로 몰고 있습니다. 동북공정은 어느 학계의 문제만이 아니고 강단이던 재야이던 강력히 대응하고 대처해야겠지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분개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자꾸 분리하여 '강단이 이렇게 나서고 있는데 재야는 한일이 무엇이냐?'라는 물음은 다분히 공격성을 갖고 있는 말입니다. 위의 글을 차분히 읽어본 분들이라면 누구나 알게 될 것이고 과연 누가 적개심을 가지고 확대하여 계속 말을 꺼내고 있는지 느껴질 것입니다. 과거얘길 한번 해볼까요? 동아일보 논설위원이었던 이규행씨의 얘기를 한번 빌어 보겠습니다. "김구 주석이 이끌었던 상해임시정부는 세 가지 점에서 높이 평가 되어야 하리라고 믿는다. 첫째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초기 단계에서 절대적인 구심체 역할을 했다는 점이고, 둘째는 국호를 최초로 대한민국(民國)으로 표방했다는 점이다. 대한 제국(帝國)이 일제에 병합된 후의 국권회복운동을 ‘민국’으로 내세운 선인들의 탁견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셋째는 임시정부의 공식교과서로 ‘배달민족사’라는 역사책을 펴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그렇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독립운동의 주체적 사상활동과 교육을 위해 ‘배달민족사’를 펴냈다는 것은 새롭게 조명되어야 할 줄 안다. 더군다나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은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상해 임시정부에서 펴낸 역사교과서에 아무런 관심을 표시하지 않거나, 무지로 일관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문제라고 아니할 수 없다. ‘배달민족사’는 이른바 식민사관을 지양(止揚)한 웅장한 대륙사관 내지는 주체사관을 표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배달민족사’의 끝 대목은 남조(南朝)인 대한제국은 일본에 패망하고, 북조(北朝)인 청(淸)은 한족(漢族)에 망함으로써 유구한 역사 속에 최초로 남북조가 모두 패망하는 비운을 겪은 사실을 통탄하는 것으로 마무리짓고 있다. 한족(漢族)사관이 중국 중원중심으로 닫혀 있는데 비해 배달민족사는 중원과 만주, 한반도를 우리 역사의 무대로 본 열린 역사관인 것이다" 이글을 읽어보면 새삼 다시 알게 되는 것이지만 '배달민족사'라는 어휘 사용에서부터 법통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의 시절부터 진정한 민족주의자는 따로 있었습니다. 결코 강단사학자들의 주장으로 국내의 독립운동이 시작된 것은 아닙니다. 해방후 이러한 것들이 어떻게 증명되었지요? 이규행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단재 신채호 선생은 중국의 역사왜곡과 날조를 통렬하게 비판한 바 있거니와 이러한 비판은 오늘날에도 고스란히 유효하다고 강조되어야 마땅하다.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해서는 주은래(周恩來) 전수상도 지적한 바 있다. 주 전수상은 동북 지역의 역사가 조선인에게 귀속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인식 또한 시대상황에 따른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렇게 학계에서 주장하는 말과 숨겨진 진실은 다른 것입니다. 이규행은 동북공정에 대해서 이런 얘기도 들려줍니다. "중국 지도층의 역사인식과 관련해서 백범 김구 선생의 일화가 문득 머리에 떠오른다. 일제의 대륙침략에 따라 중칭(重慶)으로 후퇴한 장개석(蔣介石) 총통은 함께 피난 온 상해임시정부의 김구 주석 일행을 위로하기 위해 만찬에 초대했었다고 한다. 이때 장 총통은 자기 고향이 옛 백제 땅이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우의를 다졌다고 한다. 장 총통은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는 동지적 입장에서 이런 역사인식을 말했다고 할 수 있다" 과거 중국인들의 생각과 현재 중국의 현실은 매우 다르지 않나요? 이렇게 아무리 진실처럼 얘기해도 기록은 남아있어 이것을 재야사학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강변하고자 하는 얘기일 것입니다. 紫桃꽃 2009년 5월 6일 (수) 20:08 (KST)

과연 확대해석일까요? 자도꽃님께서는 이렇게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역사가 난도질 당하는 시점에 와있어도 그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정체성의 오류도 겪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자, 이것이 동북공정은 어느 학계의 문제만이 아니고 강단이던 재야이던 강력히 대응하고 대처해야겠지요.라고 말씀하신 분께서 같은 손가락으로 두드린 글이 맞는 겁니까?? 확대해석이라 말씀하시기 전에 스스로 하신 말씀을 곰씹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규행 씨의 말에도 수없이 많은 오류와 협잡들이 보이지만, 일단 그것은 차회에 살펴보도록 하고, 위에서 본인이 직접 하신 말씀들의 모순을 먼저 해결하심이 옳을 듯 합니다. 아울러 그렇다면 과연 재야사학이 동북공정에 대처해서 한 일이 대체 무엇인지도 좀 알려주시지 않겠습니까?? --Xakyntos (토론) 2009년 5월 6일 (수) 21:02 (KST)답변

이규행의 사설이 지닌 오류

  •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배달민족사라는 책을 편찬한 적이 없습니다. 임시정부 공보는 물론이고 독립기념관의 데이터베이스, 국립중앙도서관의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의 데이터베이스를 모두 뒤져봐도 그와 같은 책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 책의 제목은 배달족 역사거든요. 독립기념관 제공 배달족 역사 개요 책 제목조차 헷갈리는 글이라니, 참 가관입니다.
  • 그리고, 배달족 역사라는 책은 임시정부가 편찬한 것이 아닙니다. 대종교에서 편찬한 책으로서, 임시정부에서 교과서로 지정하였을 뿐이지요. 물론 그런 책이 있다는 것과 책의 내용이 사실인가 하는 문제는 애초에 별개의 문제입니다. 엄밀하게 말해서, 대종교의 배달족 역사와 같은 책과 환단고기는 거의 극과 극을 달리는 대척점에 서 있지요. 왜인고 하니 대종교 계열의 역사책은 일본을 제외한 동북아 제민족이 같은 계통이라 말하고 있지만, 환단고기는 일본을 포함한 제민족을 말하거든요. 일제에 처절하게 항거하고 있던 시대에 일본도 우리와 같은 계통의 민족이라고 주장하는 책이라니. 세상에나.
  • 물론 주은래니 장개석 하는 말도 사실무근이지요. 백범일지에도 등장하지 않고, 대체 출처라고는 하나도 대지 않고 장개석이니 주은래니 하는 인물들의 발언을 줄줄 얽고 있는 것 자체가 기가 막힌 것입니다. 최소한 정말 장개석이 그런 말을 했는지 증거라고 가져와야 믿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제가 지금 모택동이 한민족이 중국 대륙을 지배했다고 말했다라고 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말을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했는지, 그리고 그런 말이 기록된 회담록이나, 아니면 최소한 그런 증언이 기록된 책이라도 가져올 일이지요. 증거가 전무한 채 누가 그랬더라 하는 말을 그냥 덥썩 믿는 것부터가 참 경이로울 따름입니다.
  • 주은래가 했던 발언은 고작해야 이런 것 뿐입니다. 고구려와 발해는 한민족이 세운 나라(1963년) 이 말이 어느새 동북지방의 역사는 조선인에게 귀속된다라는 경이로운 발언으로 변신합니다. 정말 대단하군요.
  • 장개석 운운 하는 부분은 저로써는 도대체 출처를 찾을 수가 없군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백범일지에는 물론이고, 저와 같은 말을 전하고 있는 기록은 제가 찾은 한도 안에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체 무엇을 보고 저리 말했을까요?? 설마 생판 날조??

일단 이 정도만 할까요? 이렇듯, 자도꽃 님께서 열심히 재야사학자들의 주장을 찾아다 붙여봤자 그 대부분은 이렇게 거짓이라는 것이 밝혀지는군요. 아니면 도대체 출처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알 수 없는 내용 뿐이지요. 이에 대한 답변을 한 번 들어보고 싶군요.--Xakyntos (토론) 2009년 5월 6일 (수) 23:46 (KST)답변

국한문. 대종교 종사였던 김교헌(金敎獻)이 중학생의 교과용으로 지은 '배달민족사'이다. 1914년 중국 동북지역(남・북만주)에서 한국민족에게 가르칠 목적으로 저술되었다. 본책은 해방후 다시 복간한 것이다. 시대는 상고(上古)・중고(中古)・근고(近古)・근세(近世)로 구분했고, 정치제도는 물론 종교・제도・문학기예・풍속 등을 서술하고 있다.

책 제목조차 헷갈리는 글이라구요?? 참으로 어처구니 만행이네요. '배달민족사'는 위의 인용문같이 분명히 존재하여 이규행씨의 말이 사실임을 님이 추천한 '독립기념관의 데이터베이스'를 찾아보니 명징되는 자료구만 독선적인 주장만 하고 있으니 님도 큰 문제입니다. 이제는 대종교 종사였던 김교헌의 저서이고 출판도 임시정부가 편찬한 것이 아니라 대종교에서 하고 있으니 관련이 없다 우겨댈 판이로군요. 사실무근, 거짓, 생판날조라고 거침없이 말하면서 이렇게 모두 것을 자의적인 해석에 의존하고 있으니 이게 님의 한계라는 것입니다. 紫桃꽃 2009년 5월 8일 (금) 08:46 (KST)
이제 아주 대놓고 날조를 하시는군. 댁이 인용해다 놓은 부분의 원래 타이틀은 숨겨놓고 배달민족사라고?? 책 타이틀은 어디다 팔아먹었습니까?? 《신단민사》라는 타이틀은 어디다 버리고 날조를 하고 있는게요?? 이런 것이 바로 재야사학자라는 사기꾼들이 하는 사기 술법이오. 이제 자신이 존경해 마지않는 재야사학자들이 하는 행위를 그대로 따라하는군. 오호통재라.--Xakyntos (토론) 2009년 5월 8일 (금) 09:20 (KST)답변
왜 자꾸 재야사학자를 폄하하는 말을 계속하는지 모르겠지만 님은 자꾸 재야사학자들을 거짓, 사기, 협잡(挾雜,옳지 아니한 방법으로 남을 속임.‘속임’으로 순화)으로 얘기하고 있군요. 지금까지 강단사학자를 이렇게 말한 적인 없건만 계속 상대 못할 사람쪽으로 몰고 있습니다. 님이 이규행씨에 대해서도 그말의 진위와 출처가 의심스러워 믿지 못하겠다고 하지만 그 얘기는 국정브리핑에 있는 내용입니다([6]) 제발 예의를 지킵시다. 사기꾼, 협잡꾼으로 몰아서야 되겠습니까? 다 같은 대한민국 국민이고 배울만큼 배운 사람들인데요..서로간의 예의는 지키면서 논의를 펴야지요. 위의 있는 인용문도 강단사학자와 재야사학자를 동등하게 보고 누구의 잘못이라고 하지 말자는 취지에서 한말입니다. 잘못은 강단사학자가 우선 책임을 느껴야지요.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정통사학자로 자부하고 있고 전체 역사교육을 시키고 있는 입장에 있으니 책임이 있는 건 당연하지 않습니까? 이것을 강단사학자나 재야사학자 그리고 우리같은 관심자까지도 대한민국의 국민이니 동등한 책임을 느껴야한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리고 고대사중 '고구려와 발해역사'가 '고대사와 상고사'에 포함되고 있으니 '고대사' 혹은 '상고사'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잘못된 말입니까? 제발 확대해석을 하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이곳은 사용자토론이니 더이상의 얘기가 필요없을 듯 하군요. 이곳을 찾는 것은 한번으로 족할 것같습니다. 이해바랍니다.
'배달'문서에서 인용되었던 율곡의 기자실기(箕子實記)와 주은래의 말에 대해서 누군가 얘기한 것이 있어 옮겨봅니다. 그리고 동북공정과 주은래에 대한 얘기가 있어 참조해 봅니다. 참고기사:[7]
주은래니 장개석 하는 말도 사실무근이란 말에 대해서..

없다니요. 이미 은(殷)나라의 건국설은 중국 사학자들도 『동이족(東夷族)』이 세운 나라임을 알고있습니다. 문제는 이 동이족(東夷族)이 우리 한민족(韓民族)을 뜻하느냐, 숙신(肅愼), 산융(山戎)이냐 동호(東胡) 등...중국 영토 동쪽에 있는 이민족의 나라 중 어느나라 인지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주은래(周恩來)는 "조선(朝鮮 고조선)의 역사 중 『기자조선(箕子朝鮮)』은 이치에 맞지않다. 은나라의 기자는 중국 땅을 벗어난 적이 없다고 『산해경(山海經)』은 그리고 있다." 라고 발표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율곡 이이(李珥)가 쓴 『기자실기(箕子實記)』를 보고선 "이 글쓴이는 완전 허황된 글을 쓰고있다. 기자가 은나라의 최고의 군신이었으며 자신이 (고)조선의 최초임금과 황제(黃帝)를 자칭하니 사마천(司馬遷)이 크게 비웃을 것이다." 라고 율곡(이이)를 비웃기까지 하였으며 또한, "이 율곡(이이)이라는 사람이 주자의 주해와 번역으로 만든 책을 보지않고 직접 중국어로 된 『논어(論語)』의 원서를 조금이라도 보았다면 가히 삼국지연의와 같은 비허구적인 역사서를 그리지 않았을 것이라며 말하였다고 합니다."(만약 이말까지 진위가 의심된다면 더이상 할말이 없군요..)

답변

본인이 직접 인용하신 주은래의 발언에는 귀하께서 위에서 하신 내용과 전혀 다른, 지극히 정상적인 현대 역사학의 이론이 들어 있습니다. 기자조선이 현대 역사학계에서 부정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요. 여기서 해당 논쟁과 아무런 관련도 없고, 현대 역사학에서 이미 정립된지 오래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무용한 일입니다. 기자실기 운운 하는 것은 이 논쟁과 무관하니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 애초에 고대사니 상고사니 하는 언급조차 없이 동북지방의 역사는 조선인에게 귀속된다라고 적혀 있는데, 이제와서 그건 고대사 얘기다라고 하는 것은 정말 우스운 변명일 뿐이죠.
  • 국정브리핑이라고 해서 무슨 대단한 권위라도 지닌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국정브리핑에도 얼마든지 오류는 존재할 수 있지요. 게다가 해당 내용은 칼럼, 국정브리핑 홈페이지에서는 칼럼 제일 하단에 이런 문구까지 붙여놓고 있습니다. 외부 기고는 정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규행이라는 분께서 우행을 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 엄밀하게 말해서 이규행 씨께서도 재야사학자라고 하는 사기꾼 집단에게 사기를 당한 것 뿐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재야사학자라는 집단이 행한 수많은 거짓말들을 낱낱이 밝혀드렸는데, 여전히 그와 같은 말씀을 하시는 모습에 참으로 가슴이 아플 뿐입니다. 자도꽃 님이 지금까지 열심히 가져오신 재야사학자들의 발언 가운데 거짓말이 아닌 것이 도대체 무엇이 있었습니까?? 이병도를 골수 친일파로 몰아가던 것도 거짓, 동북공정에 재야사학이 특효약이라는 주장도 거짓, 배달민족사라는 책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고, 근거 하나 없이 누가 그랬대 하는 권위에 호소하는 거짓말이나 하고 있고, 이렇게 수도 없이 그들의 거짓된 모습을 알려드렸는데도 여전히 그런 사기꾼 집단의 말을 신용하고 있는 것이 참으로 참담할 뿐입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지요. 저는 재야사학자라는 작자들은 진정한 매국노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스스로 우리나라를 위대하게 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갖가지 거짓말을 하겠지요.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서 그들이 하는 그런 거짓말 때문에 우리나라가 국제적인 역사학계에서 비웃음을 사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자신들은 애국을 하고 (거기에 덤으로 돈도 벌고) 있겠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들의 행동은 말 그대로 매국 행위일 뿐입니다. 역사학이라는 것은 엄정한 학문입니다. 재야사학자라는 자들이 만들어내는 거짓말 같은 것은 명함조차 내밀지 못할 정도로 말이죠. 저는 감히 말합니다. 재야사학자들은 사기꾼입니다. 그들에게 말 그대로 속아서 낚인 자도꽃 님과 같은 분들이야 잘못이 없지요. 하지만 그러한 거짓말들을 생산해내는 일부 재야사학자들, 정용석이라든가, 이중재, 이미 죽었지만 이유립, 문정창, 최동, 임승국, 박창암 같은 자들은 하나 같이 학자는 커녕, 권력에 빌붙어 영달을 꾀하며 나라를 팔아먹은 작자들 뿐입니다. 임승국이나 박창암이 5공 정권에 충성을 바친 것은 이미 저와 같이 재야사학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요. 이유립이나 문정창 등이 골수 친일파였던 것은 말할것도 없고요. 이런 자들이 민족을 말하는 것 자체가 저는 용납되어서는 안될 범죄라고 생각합니다.

자도꽃님께서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시는 마음은 저도 진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방법이 잘못되었습니다. 민족의 역사가 올바로 서려면 재야사학자들의 사기와 협잡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진짜 제대로 된 역사학을 공부해야 할 일입니다. 아니, 최소한 재야사학자들의 주장을 덮어놓고 믿기 전에 그 주장이 사실인지라도 한 번 쯤 확인하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신뢰할만한 출처가 제시된 주장만 허용하는 위키백과의 지침과 같이 행동하신다면, 재야사학자들이라는 사기꾼들에게 절대 속을 일이 없을 것입니다. 저의 진심어린 고언을 한 번만 귀귀울여주신다면 자도꽃님이 그토록 사랑하시는 민족의 역사가 올바로 설 수 있을 겁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5월 7일 (목) 09:49 (KST)답변

자꾸 말꼬리를 잡는군요..님의 말대로 사기꾼이던 아니던 매국노이던 아니던 사기집단이던 아니던 일단은 법의 테두리안에서 얘기합시다..그래야 말이 될 것같습니다..아직 그사람들이 사기꾼,협잡꾼으로 판명이 난 것도 아니고 이완용같이 모두가 인정하는 매국노도 아닌데 님은 계속 님의 생각대로만 지칭하고 있습니다. 박사급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거져 받거나 허위로 받은 학위도 아닌데 수준낮은 학자로 매도하지 않나.. 마치 세살먹은 사람처럼 상대방을 생각없고 지각없어 사기를 당하거나 혹세무민의 논리에 낚였다고 생각하는군요. 이건 상대방에 대한 커다란 실례입니다. 님은 님의 생각대로 생각하면 됩니다. 강요하지는 마세요. 님이 아무리 얘기해도 그렇게 느껴지지 않으니 12년 넘게 공부한 역사공부를 무시하고 재야사학자의 말을 믿어보고 싶은게 아니겠어요? 믿고 안믿고는 개인의 문제이니 간섭하지 마시고 이병도, 신석호(申奭鎬), 정만조, 어윤적, 이능화, 송호정 같은 친일식민사학자 및 얼빠진 실증사학자들이 있는것도 사실인데 있는 것은 없다고 부정하고 없는 것은 있는 것처럼 몰아부치니 할말이 없습니다. 님이 언급한 최동(崔棟, 1896~1973)같은 이는 법의학자로서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장을 역임하였던 사람인데 대표적인 친일대학중의 하나쯤으로 생각하는 자칭 일류대학에서 님의 얘기를 들으면 펄적 뛸 것입니다. 이렇게 어폐있는 논증으로 증명하는 것마다 자의적인 느낌밖에 안드는데 공격적인 말만 되풀이하고 있으니 답답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만 하자구요. 같은 대한민국의 국민끼리 입이 아프도록 아닌 님말마따나 손가락이 아프도록 두드려봐야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니 여기서 끝내자구요. 서로 감정만 격해지는 것같습니다. 이곳에 무슨 말을 하든 이제 정말 더이상의 방문은 없을 것입니다. 배운분이니 최소한의 상대방에 대한 예의는 지켜주시길.. 건필을 빕니다. 紫桃꽃
최동마저 옹호하시다니 참.... 친일인명사전에도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나 계십니까?? 뭐, 좋습니다. 더 이상 코멘트를 안하시겠다 하니 그리 알지요. 하지만 한 가지는 대답을 받고 넘어가야 겠습니다.

정만조 선생님... 저의 은사님이십니다. 겨우 귀하같은 사람이 감히 얼빠진 실증사학자라고 말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정식으로 사과하세요. 아니면 그분께서 얼빠진 실증사학자인지를 직접 증명하십시오. 저는 이미 귀하에게 수없이 재야사학자들을 사기꾼이라 부를 수 있는 근거를 보여드렸습니다. 귀하께서는 단 한 번도 강단사학자들이 얼빠진 실증사학자인 근거를 보여 준 적이 없지만 말이죠. 더 이상의 코멘트가 없으시다 하니 다른 것은 따지지 않겠습니다. 정만조 선생님께서 얼빠진 실증사학자라는 증거를 보이시거나, 아니면 정식으로 사과하십시오.더불어 송호정 교수 역시 제가 존경하는 학자분입니다. 이 분에 대해서도 같은 것을 요청하겠습니다. 귀하의 비난을 증명하거나, 아니면 사과하십시오.

최동을 옹호한다? 친일대학이 어느 대학들인지나 아시오? 그 대학들의 캠퍼스에는 오늘도 친일파의 동상들이 즐비하게 세워져 있소..어느 대학은 초대총장마져 외국인 대위의 군무관출신이고 친일파로 분류되는 상고출신의 총장도 존재하오..우리나라 대학의 많은 수가 이런 친일부역자들이 세운 대학이거나 총장으로 있었던 대학이니 지금도 곳곳에 출신부역자의 동상이 있는게 아니겠오?..사실이 이러한대 최동을 옹호한다고요? 그리고 사과하라고요? 대체 무엇을 사과하라는 것인지 나원 참..紫桃꽃 2009년 5월 7일 (목) 17:01 (KST)
ps. 배운 분 운운하면서 예의를 지키라 하는 사람이 이런 무례를 범하고 있으니, 참으로 개탄스럽군요.--Xakyntos (토론) 2009년 5월 7일 (목) 11:40 (KST)답변
이 부분에는 저의 오해가 하나 있었군요. 자도꽃 님이 말씀하신 정만조는 저의 은사님이 아니라 일제시대에 활동했던 정만조를 말한 것 같네요. 그렇다면 이에 대한 사과 요구는 제가 오해한 것이니 철회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송호정 교수에 대해서는 오해의 여지가 없으니 확실하게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송호정 교수가 얼빠진 실증사학자라는 증거를 보이시거나, 아니면 사과하십시오.--Xakyntos (토론) 2009년 5월 7일 (목) 14:17 (KST)답변
역사는 종교가 아니라 학문이죠. 상대가 이성적, 논리적인 근거를 들어 "왜 그것이 틀렸냐면.."하며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면 거기에 한번쯤 귀기울이실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무조건 '넌 그렇게 생각해라. 난 이렇게 생각하겠다'고 나오는 것은 그리 적절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adidas (토론) 2009년 5월 7일 (목) 13:42 (KST)답변

이 양반이 말을 함부로 하는군만..좋게 끝내려고 하는데 이런 시비는 대체 무엇이오? 그만큼 예의를 지켜 얘기했으면 받아 드릴 일이지 말꼬리를 잡는 이유는 무엇이고 대체 무슨 경우요? 이 정도밖에 안되는 사람이었습니까? 그리고 내가 당신한테 얼빠진 실증사학자로 얘기했던가요? 사과를 하면 송호정교수에게 할일이지 당신이 대체 무엇이란 말이오? 당신은 그렇게 재야사학자들을 사기꾼이니 협잡꾼으로 얘기해 놓으면서 지금까지 악의적이고 자의적 해석밖에 안드는 자료를 올려놓고 그게 그 알량한 증거라고 사과 한마디 없는거요? 당신의 논리라면 이덕일 소장에게는 최소한 사과는 있어야겠소이다. 더구나 마치 함정을 파놓고 얘기하는 것처럼 요리조리 말꼬리를 잡으면서 나의 실수만을 바래 약점이나 잡자는 계략이요? 술수가 아주 악의적인 느낌밖에 안드네요..당신은 당신의 생각이나 믿음대로 살면 될 것을 대체 같은 국민이고 동족끼리 무슨 짓을 하는 거요? 제발 고만합시다..더이상 상대하고 싶지 않으니..그리고 재언하건대 무엇이 문제인지 진정으로 아직 깨닫지 못하는 것 같소..사학계가 어떤 상황에 와 있는데 송교수에게 사과하라는 것인지 참으로 적반하장이오..그러니 송호정교수에게 사과할 일은 하나도 없을 터, 지금 다음같은 기사가 사학계의 현실을 말해주고 있소이다.. 이거나 챙겨 보시오..[8],[9] 紫桃꽃 2009년 5월 7일 (목) 16:35 (KST)

적어도 이덕일과 같은 소설가에게는 사과할 일이 없습니다. 이덕일이라는 작자가 한국고대사를 한답시고 벌인 웃기지도 않는 짓거리는 이 링크에만 가 보아도 낱낱이 밝혀져 있으니 쓰레기라 욕해도 이덕일은 할 말이 없을 겁니다. 귀하께서 내가 재야사학자들을 비난하는 것이 거슬리고 그것을 시정할 것을 요구하고 싶으시다면 제 비난의 근거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면 될 일입니다. 귀하처럼 근거조차 제시하지 않은 채 무조건 얼빠진 실증사학자라고 무시하는 무례와 저의 비난은 질적으로 다른 문제라는 것을 모르시겠습니까?? 얼빠진 실증사학자라는 비난에 대하여 자의적이든 뭐든 근거라는 것을 가져와 보십시오. 근거도 대지 못한 채 하는 것은 말 그대로 비난일 뿐입니다.
또한 귀하가 링크한 신문기사에는 귀하가 원하는 사학계의 상황 같은 것은 전혀 나와있지 않다는 것을 모르고 계시군요. 소위 재야사학자들의 일방적인 주장과 정통사학계의 합리적인 비판 말고는 아무런 내용도 없거늘 무슨 사학계의 현실을 말해준다는 걸까요? 게다가 두 번째 기사는 과연 읽기나 한 것인지가 의심스러울 뿐입니다. 두 번째 기사의 내용은 동북공정과 관련된 언론의 설레발을 지적하는 것이거늘 무슨 사학계의 현실을 말해주는 기사인지 원. 최대한 에누리해서 두 번째 기사에서 사학계의 대응에 대하여 지적한 부분을 인정한다손 칩시다. 그럼 대체 재야사학계에서는 동북공정에 어떤 대응을 했답니까?? 제발 그들이 한 대응이 뭔지 한 번 알려나 주세요. 정통사학계에서 제대로 대응 못했다고 계속 말씀하시는데, 그럼 대체 재야사학계에서 한 일은 뭐랍니까??--Xakyntos (토론) 2009년 5월 7일 (목) 17:32 (KST)답변

송호정 교수님, 기원전에 사람이 살면서 어디 뚜렷한 증거를 남기면서 살아갑니까? 생활의 흔적을 남길 수는 있지만 그건 오랜 세월에 남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듯이 역사가 증거를 가지고 있는것과 진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며, 증거의 유무는 받아 들이는자의 사고를 깨는 이해의 문제란 말이요. 당신의 할아버지가 만주에서 개장사를 했다면 증거가 있을수도 있고 없을수도 있지만 당신의 할아버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 아니요. 증거가 없다고 조상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게 바로 식민사관이란 말입니다. 다시말해 당신과 당신의 추종자들이 부인하든 말든 단군은 우리의 조상이라는 얘기입니다.

더이상의 얘기를 나누고 싶지 않지만 송호정교수에게 누가 얘기한 말이 가슴에 와닿아 마지막으로 인용해 봅니다..그리고 이젠 그만 합시다..더이상의 논쟁은 아무 의미없는 시간낭비일 것같소이다..
누가 이야기했는지는 몰라도 참으로 통탄할만한 인식이로군요. 학자에게 증거는 없지만 인정해라라고 말하는 것이 가슴에 와닿는 말이라니. 학문을 원하는 겁니까? 종교를 원하는 겁니까?? 그래 저 말이 귀하께서 송호정 교수를 얼빠진 실증사학자라고 매도하는 근거입니까?? 오호통재로다.--Xakyntos (토론) 2009년 5월 7일 (목) 17:58 (KST)답변

--베이징 (토론) 2009년 5월 7일 (목) 21:37 (KST)답변

'외부 글' 관련

영어 위키백과의 관련 글을 찾고 있었습니다만, 참조 바랍니다. jtm71 (토론) 2009년 5월 8일 (금) 21:56 (KST)답변

저런 지침도 있군요.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참고하여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5월 8일 (금) 23:05 (KST)답변
부탁드립니다. (한국어 위키백과의 정책이나 지침에는 없는 내용입니다만) 링크의 다음 구절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jtm71 (토론) 2009년 5월 12일 (화) 21:49 (KST)답변
Posting personal attacks or defamation off-Wikipedia is harmful to the community and to an editor's relationship with it ...
해당 구절은 사용자와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라고 해석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해당 사용자와 같이 스스로의 오류를 인정치 않고 자료를 조작하는 사용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픈 생각이 없습니다. 또한 외부의 글은 위키백과에 통제를 받지 않는 저만의 독자적인 것이니만큼 저는 삭제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시는 점은 십분 이해합니다만, 저의 태도는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위키백과의 규칙을 준수하고 올바른 사고를 가진 사용자 분들과는 언제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교류하고 싶습니다. 그런 분들께 이와 같은 무례를 저지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확실하게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걱정과 조언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한 부탁에 제대로 응해드리지 못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Xakyntos (토론) 2009년 5월 13일 (수) 18:14 (KST)답변

중국의 황제 틀

한 1년 간 손뗀 일... (사실은 통일황조만 다했습니다만...) 남조 황제 틀을 시작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 윤성현 기여F.A 2009년 5월 15일 (금) 10:48 (KST)답변

그냥 중국의 연호 작업을 시작하고 나니 틀 작업도 필요한 것 같아서요. 오호십육국은 굳이 틀까지 필요하지는 않은 것 같아서 일단 제외했습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5월 15일 (금) 10:50 (KST)답변
아 그리고, 유송 틀을 보니 전폐제와 후폐제를 하셨는데 전 자와 후 자는 제가 알기론 시호에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식 시호도 없어서 일단 일괄적으로 폐황제로 표기하였습니다. -- 윤성현 기여F.A 2009년 5월 15일 (금) 10:54 (KST)답변
사실 전·후와 같은 특정한 호칭이나, 선주, 후주, 전한의 고조와 같은 별칭·통칭을 어떻게 표현하는 가는 분명 문제입니다. 전한 고조만 해도 고조는 명백하게 묘호가 아니지요. 고구려의 태조대왕을 묘호라고 부를 수 없듯이 말이죠. 이와 같은 것을 정확하게 표현할 지침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엄밀하게 말해서 폐제라는 것도 시호는 아니지요.--Xakyntos (토론) 2009년 5월 15일 (금) 10:56 (KST)답변
뭐 선주, 후주는 작게나마 표현했으니 괜찮죠. 말씀하셨듯이 폐황제, 말황제, 소황제는 그냥 임의로 붙힌 거지요. 아, 유소가 뭔가 걔는 시호를 찾으려고 했는데도 아예 없네요. 원흉(元凶)이라고 있긴 한데 이걸 올릴까요? -- 윤성현 기여F.A 2009년 5월 15일 (금) 10:59 (KST)답변
유소는 아예 황제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시호 자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황제의 숫자를 세는 대수도 비워놨지요. 통용 표현 자체가 그러하니 굳이 쓸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찬탈군주라고 작은 글씨로 표기하는 것도 방법이겠네요. 후연 문서에서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5월 15일 (금) 11:03 (KST)답변
찬탈이라.... 그냥 비워두죠. 찬탈이라 하면 가까이는 수 양제나 세조(수양대군)부터 저런 유소까지 다양하기에 비워두고 나중에 문서를 만들어서 이 인간이 왜 시호가 없는지 적당하게 알려주면 될 것 같습니다. ^^ -- 윤성현 기여F.A 2009년 5월 15일 (금) 11:08 (KST)답변

중국 연호

일부 동음이의 문제가 될 수 있는 위험이 있어보입니다. 고려하시면서 옮기시는건가요? -- ChongDae (토론) 2009년 6월 12일 (금) 18:30 (KST)답변

네. 모두 동음이의어가 있는지 확인하면서 옮기고 있습니다. 동음이의어가 있지만 아직 생성되지 않은 문서의 경우 옮기지 않거나 동음이의 문서를 만들었습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6월 12일 (금) 20:19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