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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 관련 정보
* 연관 문서: 도 계통의 종교
* 상위 문서: 강일순
동곡마을 태을법당
동곡마을 태을선
태을선도(太乙仙道)
로고
설립년도 2004년
분류 증산계통 종교
신앙 대상 강일순(姜一淳) · 고판례(高判禮)
도주[1] 배승환(裵承煥)[2]
본부 전북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동곡마을
신자 수 약 50여명
공식 카페 태을선도
기타 카페 도통판(양신출태)
채널 태을선도 유튜브, 태을선도 카카오tv

개요[편집]

일도자호 대선사님

1980년 봄, 배승환(裵承煥)이 서울에서 창교한 민족주의와 민족선도 성향의 종교며 '태을선도회'라는 이름으로 수련단체를 세웠고 2004년에 '태을선도'라 개명했다. 도 계통의 종교인 증산(甑山) 계열 종교들 중 하나인데 증산 계열의 종교의 교조인 증산 강일순(姜一淳)을 우주의 주재자인 상제라고 믿는다.[3] 또한 정음정양으로 강일순(姜一淳)을 하늘님, 고판례(高判禮)를 땅님으로 두 사람을 천지부모님으로 모신다.

교단 내에서는 강일순의 셋째 부인인 고판례가 1911년에 개창한 '선도(교)'가 기원이라고 하며[4] 종통맥과 도통맥이 고판례를 거쳐 고판례의 수석 제자 고민환(高旻煥)과 고민환의 큰며느리 김순자(金純子)의 서쪽 맥으로 이어졌고 김순자의 선법제자를 통해 일도자호(一道慈護) 배승환(裵承煥)으로 전달 됐다고 주장한다.[5]

법통맥은 선도교 또는 태을교의 고판례 사망 후 강일순과 고판례를 천지부모님으로 모신 단체가 고민환, 김순자의 오성산 성덕리 교단이 1936년에 나온 첫 번째 교단이고 이상호, 이정립의 용화동 대법사 증산교는 1945년에 나온 두 번째 교단이며 안세찬, 안경전의 증산도의 중앙 맥이 1974년에 나온 세 번째 교단이며 태을선도 배승환이 1980년에 나온 네 번째 교단으로 이어졌고 고판례가 "네 번째 노둣돌이 내 새끼니라." 라고 말한 데로 네 번째로 나온 태을선도가 진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다음 태을도의 이훈오는 1998년에 나온 다섯 번째 교단이며 천지조화정부 강석봉은 2009년에 나온 여섯 번째 교단이고 증산법륜도와 증산선도는 2016년과 2017년에 나온 일곱 번째 교단이다.

또한 환국시대 국선도와 단군시대 기천문의 선맥과 개운조사 해탈문의 불맥과 주자의 성리대전 유맥을 계승했다고 주장한다.

강일순과 고판례의 언행을 수록한 모든 증산계열경전을 다 읽는 것을 권장하고 육체수련, 단전호흡, 주문수행, 현무경 공부, 예장공부 등 모든 수련, 수행, 수도방법을 종합하여 병행하며 닦는 유일한 단체이다. 정기행사로 치성(천주교의 미사, 개신교의 예배)을 지낸다.

태을선도가 관리하는 사이트로는 태을선도, 암을 이기는 의통수련방, 도통판(양신출태), 태을선도 유튜브 채널, 태을선도 카카오tv 채널 등이 있다.

연혁[편집]

1953년(계사년)ㅡ5월 30일(음력 4월 18일) 춘말하초(지기금지 사월래)에 경남 해금강과 계룡산이 있는 거제도에서 태어나심


1958년(무술년)ㅡ6세때 부모님 고향이 이북이시기 때문에 제사 때만 되면 우시니깐 그 모습이 가슴 아파 남북통일의 큰 뜻을 품으심


1960년(경자년)ㅡ8~13세 초등학교때 남북통일을 이루기 위해 깡패 두목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하심


1966년(병오년)ㅡ14~16세 중학교때 남북통일을 이루기 위해 장군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하심


1969년(기유년)ㅡ17~19세 고등학교때 남북통일을 이루기 위해 판검사가 되어 정치인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하심


1972년(임자년)ㅡ20세때 천하유력을 하시며 전국 명산들을 찾아가 남북통일을 이루기위한 사색을 하심

1972년(임자년)ㅡ공군본부 하사관으로 입대하셨으나 병장들의 하극상이 심하여 내가 있을 곳이 못된다 판단하시고 미친척을 하여 의병 재대를 하심


1974년(갑인년)ㅡ22세때 계룡산 먹뱅이 바위굴에서 수도하시다가 기천문 대양선인을 만나 최상근기로 내가신장 30분을 버티심

1974년(갑인년)ㅡ최상근기로서 내가신장 자세 30분을 버티시고 기천문 문도생이 되어 단전호흡과 육체수련 자세를 배우심


1976년(병진년)ㅡ24세때 계룡산 맥뱅이 바위굴에서 화두(이뭐꼬) 수도 중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 무릉도원에 와있는 체험을 하심


1978년(무오년)ㅡ26세때 건국대학교 원예과에 입학하시고 운동권 서클도 들어가서 살펴보시면서 수도에 정진하심

1978년(무오년)ㅡ남북통일을 이루기 위해 민족문화 공부로 서점에서 동학문명과 증산도의 진리책을 읽으시고 증산사상을 처음 접하게 되심

1978년(무오년)ㅡ대전 모교단을 찾아가 입도하시고 주문수행을 배우시고 서울 도장 개창 활동에 이바지 하심

1978년(무오년)ㅡ겨울방학때 지리산 영신대에서 수도하시다 축지, 등천, 풍운조화, 사람 쳐다만 봐도 낫고, 말하는 대로 되는 상등도통 체험하심

1978년(무오년)ㅡ이에 전국 명스님(성철, 구산, 송담, 경봉)들을 찾아다니시며 문답하니 하나같이 그 능력을 다 버리라 하니 그 능력을 버리시는데 3년이 걸리심


1980년(경신년)ㅡ28세때 대전 모교단 안씨 종정의 처세에 불만이 많고 개벽놀음에 회의감이 들어 뜻있는 도생들과 함께 안씨 종도사에게 탄원서 제출하심

1980년(경신년)ㅡ안씨 종도사가 탄원서 제출 맴버중 당시 나이가 제일 많은 배승환 선생님을 정식집에 초청하여 아들 안씨를 어찌할 수 없다 함

1980년(경신년)ㅡ대전 모교단을 탈퇴하시고 전북 김제 용화동 일대의 증산법종교를 시작으로 주문파, 법문파 30여개의 모든 증산교단들을 찾아 다니심

1980년(경신년)ㅡ증산교단마다 읽는 주문과 신앙의 대상이 다 다른 것을 아시고 신앙의 대상을 통일해야 겠다고 생각하심

1980년(경신년)ㅡ포교의 원년인 경신년에 태을선도회(太乙仙道會)를 창립하심으로 2030년까지의 치천하 50년 공부가 시작됨

1980년(경신년)ㅡ불교의 육도윤회가 현실속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라는 것을 깨달으심


1983년(계해년)ㅡ31세때 일곱살 차이 나시는 24세 김씨 사모님과 결혼하시고 그 해에 고급무당을 통해 영가천도식을 올리심


1983년(계해년)ㅡ계해년 계해월 계해일(12월 1일)에 순천도 현무경파 모임에 참석하시어 법문(현무경) 공부 중 영적 체험을 하심


1984년(갑자년)ㅡ32세때 겨울에 국선도 책을 구입하시고 국선도 도인술과 단전호흡법을 공부하심


1986년(병인년)ㅡ34세때 소백산 원통암에서 100일 공부 중 불교 해탈문과 인연이 되시어 능엄경, 유가수련증험설, 선불가진수어록을 공부하심


1988년(무진년)ㅡ36세때 스스로 도호를 일우(一友)라 칭하시고 수도하시던 중 영생, 불사의 원리를 깨달으시고 정립하심


1990년(경오년)ㅡ38세때 비로소 해탈 도리의 원리도 깨우치시고 정립하심


1994년(갑술년)ㅡ42세때 [수도에서 득도까지]라는 책을 집필하시어 출판, 태을선도회 수련단체를 여시고 수도인들에게 선술, 선악, 선학 가르치심


1995년(을해년)ㅡ43세때 [선약 상, 하]권의 책을 집필하시어 질병완치의 원리를 정립하심


1996년(병자년)ㅡ44세때 선천 수련법으로 30대의 여제자를 양신출태(초통) 시켰으나 마음을 항복시키시지 못하여 양신출태 다음 단계 공부법을 가르치시지 않으심


1998년(무인년)ㅡ46세때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신앙(섬김)대상 정립과 종교통일 원리를 정립하심


1999년(기묘년)ㅡ47세때 6월 3일 날 기묘한 교통사고로 병원에 8개월간 입원하게 되심으로 척신과 묵은하늘의 개입을 깨우치심

1999년(기묘년)ㅡ동지때 오성산 성덕리 교단에 동지치성을 참석하시어 암행어사 선법제자를 처음 만나 기묘한 만남이 일어남


2000년(경진년)ㅡ48세때 2월 4일 입춘절날 오성산 성덕리 교단에 참석하시어 암행어사 선법제자를 통해 일전 선운(一田 仙雲)이라는 도호를 선관에게 받으심

2000년(경진년)ㅡ3~4월(음력 2월)에 1999년부터 2000년에 걸쳐 내려온 천강서인 태을비결(太乙秘訣)과 도학(道學)을 암행어사 선법제자로부터 전해 받게 되심

2000년(경진년)ㅡ천상 선관들이 배승환 선사님을 일전 선운(一田 仙雲)이라 부르다 도광 용운(道光 龍雲)이라 부르며 암행어사 선법제자와 함께 천지신행을 보심

2000년(경진년)ㅡ5월달(음력 4월)에 천강으로 예장(禮章)이 내려와 암행어사 선법제자가 신필로 받아내려 배승한 선사님께 드림


2001년(신사년)ㅡ49세때 6월 3일 교통사고 당한지 정확히 2년 뒤가 되는 날에 경기도 광명시 서독산 태을선도회(태을신선도) 유리법당을 개창하심

2001년(신사년)ㅡ법당 개창치성때 천지부모님을 비롯한 천상 고급선관들이 모두 참관한 가운데 증산 상제님의 성령으로부터 친히 일도 자호(一道 慈護)라는 도호를 받으심

2001년(신사년)ㅡ3년간 선법제자와 함께 천지신행을 보면서 용천검, 담뱃대, 부채, 손님수건, 일월목걸이, 의통인패 등의 성스러운 물건들과 망량주와 조화주와 용적으로 바뀐 칠성경과 곤적으로 바뀐 개벽주 등 여러가지 주문들을 전달 받으심


2002년(임오년)ㅡ50세때 전북 군산 삼불산으로 내려오셔서 12월 30일날 삼불산 자락 수라마을로 태을선도회 법당을 옮기심

2002년(임오년)ㅡ[도통]책과 [신명(성령)역사와 주문수련]책을 집필하여 출판하심


2003년(계미년)ㅡ51세때 음력 4월에 예장공부를 통해 하루만에 하단전 포태가 이루어지는 체험을 하심.

2003년(계미년)ㅡ여름에 국내 사대문(고부 남 두승산, 계화도 서 황산, 익산 북 미륵산, 진안 동 뱃재) 공부를 시작하심

2003년(계미년)ㅡ[종교통일원리와 종교혁명의 당위성], [예장]책 집필하시고 출판하심


2004년(갑신년)ㅡ52세때 하지에 전북 군산 삼불산에서 갑을로 기두하여 작지부지성의웅약의 새정신의 새종교인 태을선도(太乙仙道)를 정식 출범하심

2004년(갑신년)ㅡ여름에 신천지 건설의 사회대혁명 원리를 정립하시고 도통판(백운산, 지리산, 팔공산, 운장산, 무등산, 한라산, 금강산) 공부를 하심

2004년(갑신년)ㅡ<신선도 예장도통(개명장)>카페를 개설하심


2005년(을유년)ㅡ53세때 5월 30일에 백두산 공부를 마치시고 6월에 차가버섯의 선약과 인연이 되심. 그 해에 [도술 상]책을 집필하여 출판하심


2006년(병술년)ㅡ54세때 태을차가버섯 선약사업을 시작하시고 <암을 이기는 의통수련방> 카페를 개설하심

2006년(병술년)ㅡ동지부터 외국 사대문(북 러시아, 동 일본, 남 중국, 서 미국) 공부를 시작하심


2007년(정해년)ㅡ55세때 4월에 사대문 공부 중 동 일본 공부를 마치신 후 천지사업종합계획을 수립하심


2008년(무자년)ㅡ56세때 3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질병의 완치>를 목표로 의통수련방을 개설하심


2009년(기축년)ㅡ57세때 3월에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태을선도 선요가라는 단체명으로 수련도장을 여심. 그 해 [도술 중], [의통 상, 하]책을 출판하심

2009년(기축년)ㅡ3월에 <태을 선도> 다음 공식 카페를 개설하심


2011년(신묘년)ㅡ59세때 예장공부를 다시 시작하심. 그 해에 [도술 하]책을 집필하시고 출판하심


2012년(임진년)ㅡ60세때 제자들에게 처음 예장공부를 전수해주심


2013년(계사년)ㅡ61세때 증산참신앙 노씨 도생이 일도자호 대선사님 댁으로 찾아와 만나게 되심


2014년(갑오년)ㅡ62세때 7월 말에 모악산 도통사 빈절에서 공부 중 일무(一戊) 도생을 원평장터에서 처음 만나게 되시고 한달간 진법수도를 전수하심

2014년(갑오년)ㅡ11월 말일 고수부님 화천절날 오성산 성덕리 교단에서 남씨 여사님을 만나신 후 일무와 함께 천관산에 오르시어 남조선배에 시동을 걸고 불 켜는 공사를 보심

2014년(갑오년)ㅡ12월 26일에 일무와 함께 개벽시간표 증보판, 신명(성령)역사와 주문수련 증보판, 진법수도와 성숙한 사회 소책자 증보판 책을 출판하심


2015년(을미년)ㅡ63세때 백운동 안내성 후손 집 공부터에서 공부 중 일무의 인도로 일의(一意) 도생이 찾아와 만나게 되심

2015년(을미년)ㅡ서울 모교단 측으로부터 명예훼손과 저작권 침해로 소송을 당하게 되심

2015년(을미년)ㅡ하지에 일의의 도움으로 제비창골 용화사 아래 바위굴에서 공부하시면서 구릿골 김씨 자손들과 인연을 맺게 되심

2015년(을미년)ㅡ9월에 구릿골 김씨의 도움으로 동곡 마을 약방 근처로 거처를 옮기시고 일의와 일무의 도움으로 10월에 태을선도 천막법당을 세우시고 남조선배 짐 실는 공사를 보심


2016년(병신년)ㅡ64세때 8월 25일에 일무의 연결로 문공신 교단의 물형부서와 주문집을 문하생이었던 이씨 도생을 통해 받게 되심

2016년(병신년)ㅡ9월 23일 추분 하루 다음날에 마을 사람들과 여러 도생들의 도움으로 구릿골 동곡 마을 태을선도 천막법당을 허물고 비닐하우스 태을법당으로 재건하심

2016년(병신년)ㅡ11월 16일 일무와 함께 <도통판(양신출태)> 다음 카페 개설하심

2016년(병신년)ㅡ11월 20일 소설을 이틀 앞두고 태을선도 태을법당 준공식을 하여 남조선배 태을선을 출항시켜 무이구곡의 9년 항해가 시작됨


2017년(정유년)ㅡ65세때 2월 4일 입춘에 동지때부터 들었던 일무의 제안을 받아들여 붉은장닭 판밖소식 진법강의 1강 총론을 시작으로 일무의 촬영과 편집으로 페이스북과 유튜브, 도통판 카페에 개시됨

2017년(정유년)ㅡ3월 2일 일무가 카카오티비 태을선도 채널을 개설하여 붉은장닭 판밖소식 진법강의를 개시함

2017년(정유년)ㅡ3월 9일 일무가 태을선도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를 개설하여 붉은장닭 판밖소식 진법강의를 올림

2017년(정유년)ㅡ3월 25일 일무가 카카오티비 태을선도 진법강의 라이브 방송을 첫 방영함

2017년(정유년)ㅡ3월 26일 일무를 통해 대구의 천명자 노선생님과 인연이 됨

2017년(정유년)ㅡ4월 9일 일도자호 대선사님께서 일무와 함께 천명자 노선생님이 있는 대구로 만나러 가서 천지대사를 함께 논의하심

2017년(정유년)ㅡ4월 15일 대구의 천명자 노선생님과 일행들이 전북 김제 선사님댁으로 와서 태을선도 일행들과 함께 이틀간 000공사를 보시고 도담을 나누심

2017년(정유년)ㅡ5월 19일 조명이라는 분이 1959년에 내려받은 천서를 일무가 발견하여 전달 받아 읽어 보심

2017년(정유년)ㅡ5월 27일 지리산 어느 숯굽는 노인이 가지고 있던 비서 개천록을 일무가 발견하여 전달 받아 읽어보심

2017년(정유년)ㅡ5월 31일 일무가 현무경을 예장배치와 같이 조립 병합하여 예장의통장, 직업의통장, 성사의통장을 만든 것을 전달 받아 살펴보심

2017년(정유년)ㅡ8월 7일 입추에 수제자 일무가 난법을 행한다고 판단하여 태을선도에서 퇴출시킴

2017년(정유년)ㅡ11월 14일 일무와 함께 태을법당(비닐하우스) 바닥 철거 작업을 시작하심

2017년(정유년)ㅡ11월 30일 일무와 함께 제비산에 올라 소소하게 산제를 지내고 태을선도 용화성전 건축 모금 공고문을 낭독케 하심


2018년(무술년)ㅡ4월 18일 삼월삼짇날에 일무가 태을선도 제비창고 용화성전 건축 모금 공고문2를 작성함

2018년(무술년)ㅡ11월 15일 음력 10월 8일 제 128주년 김후비님 탄강절에 일무와 함께 동곡서원 청운도장에서 열린 김후비님 진영 봉안식에 참관하셨는데 이전까지 법륜 수부님(고수부님)을 빼고 모셨던 동곡서원이 이날부터 증산 상제님과 법륜 수부님과 묘향 후비님(김후비님) 세 분을 금산사 삼존불과 동일하게 신앙의 대상으로 모시기로 결정남으로써 일무가 2017년 11월 동곡서원에서 봤었던 공사가 1년 뒤에 그대로 이루어짐

2018년(무술년)ㅡ11월 25일 일무와 전도생과 함께 용안대에 올라 텐트를 세울 수 있게 바닥 평탄화 작업을 함. 일무와 함께 식혜를 만들어 다음 날 홀로 용안대에 올리심

2018년(무술년)ㅡ일무는 12월 22일 동지부터 4월 5일 한식까지 제 1회 동지한식백오제 전염병 대비 태을주 정성수도를 시작함

2018년(무술년)ㅡ12월 26일 일무의 권유로 재생신하신 증산 상제님의 강탄절을 최초로 봉행하게 됨


2019년(기해년)ㅡ67세때 1월 1일 신정에 32세 일무와 함께 아침에 금평저수지에서 해돋이를 보고 증산법종교에 가서 신정 맞이 영대와 삼청전을 알현하고 방명록을 작성하고 떡국을 대접받았고, 점심에는 용화동 대법사 증산교 건곤사당에 천지부모님을 알현하고 탈북자 김도생님(태을선도 출신)이 만든 북한식 떡국을 대접 받은 후 증산교 종령과 도생님들과 도담을 나누심

2019년(기해년)ㅡ1월 23일 일무는 태을주 수도 중 윗층의 민원으로 경찰이 출동해 신원조회를 통해 저작권위반 벌금 100만원 안낸 것 때문에 체포되어 전주 교도소 벌금방에서 10일을 살다가 2월 1일에 출소하게 됨으로써 문공신 종도의 문왕도수와 독조사 도수가 실현됨

2019년(기해년)ㅡ일무는 3월 24일에 전주 용머리고개가 있고 서천교가 있고 풍남문이 있고 한옥마을 오목대와 향교가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풍남문, 서천교, 오목대 공사를 보게 됨

2019년(기해년)ㅡ3월 26일에 일무를 불러 비법을 전수해주시고 다음날 27일에 함께 서울로 올라가 구로구 남부효요양병원에 구씨의 지속적인 사기 때문에 끝내 뇌경색과 급성위암말기로 입원하시게 되어 일무가 열흘동안 정성스레 비법을 쓰면서 병간호를 하여 통증이 사라지는 기적이 일어남

2019년(기해년)ㅡ4월 4일 서울 보라매병원으로 수혈을 받으시기 위해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가시게 됨. 이 날에 전라도를 제외한 모든 도에서 산불이 일어남

2019년(기해년)ㅡ4월 28일에 하늘에서 부르시므로 가족들을 불러모아 유언을 남기시고 심장충격기를 비롯한 일체 의료행위를 거부하심

2019년(기해년)ㅡ일무는 4월 29일에 김제 용화동 대법사 증산교에 가서 교육을 듣고 다음날 30일 아침에 법륜 수부님 탄강절 치성을 드림

2019년(기해년)ㅡ4월 30일 음력 3월 26일 자시 법륜수부님 탄강절에 해탈 선화하심으로 이릉비의(異陵非依)와 비의원공배태묘(非衣元功配太廟)가 실현됨

2019년(기해년)ㅡ일무는 5월 1일 서울 구로동 고대구로병원 장례식장에 참석 후 다음 날 2일에 일도자호 대선사님 가족들과 함께 발인 후 수원에서 화장하여 파주 동화경모공원에 일도자호 대선사님의 이북출신 부모님께서 안치되어 계신 옆에 매장하여 안장 후 참배드리고 가족들께 태을선도를 이어서 유지해야 겠다고 말씀드리고 태을선도 관련 유품들을 보관하겠다고 하여 허락을 받은 후 김제로 내려와서 태을선도 관련 유품들(용천검(성신검), 담뱃대, 부채, 손님수건, 일월목걸이, 의통인패, 예장, 문영상 교단 부적, 증산교 수련법 등) 전주 일무 집으로 옮김

2019년(기해년)ㅡ일무는 5월 4일 음력 3월 30일 자시부터 49제겸 49일(허령공부 7일, 지각공부 21일, 신명공부 21일) 철야집중수도를 시작함

2019년(기해년)ㅡ일무는 다시 태을선도 관련카페 운영자가 되어 5월 6일 입하에 제비창고 용화성전 합동 건축 권공문3을 써서 온라인(일무 블로그, 태을선도 관련 카페, 옥단소, 제비창고, 범증산 밴드 등)에 공개함

2019년(기해년)ㅡ일무는 5월 11일에 김씨 도생과 함께 마이산 암마이봉에 올라 청마 떨어뜨리는 공사를 봄

2019년(기해년)ㅡ일무는 6월 1일에 지리산 백무동 코스를 올라 영신대에 도착하여 6월 21일까지 지리산 영신대에서 49제 겸 49일 집중수도를 무사히 마치고 다음날 22일에 지리산 노고단에서 태을선도 2변도운 출범 천제를 올리고 선사로 등극되어 태을선도 2대 교주(대표)가 됨

2019년(기해년)ㅡ일무 선사는 6월 28일에 태을선도 네이버 밴드를 개설함

2019년(기해년)ㅡ일무 선사는 7월 4일에 과거 문공신 종도가 득도했었던 모악산 고소재(고수재)에 들어가 8월 8일이 입추까지 옥추통공부 36일 정성수도를 마치고 득도(진신출태, 견성, 초통)에 성공하여 입추에 결실하여 나와서 일도자호 대선사님을 일도자호 태상 대선사님으로 추대해 드리고 일무는 대선사로 등극됨

2019년(기해년)ㅡ일무 대선사는 8월 10일에, 2000년 경진년 양력 12월 26일에 환생하신 증산 상제님을 친견하신 분으로부터 연락이 오고 의통 능력이 있는 전주 점술가 분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인연이 됨

2019년(기해년)ㅡ일무 대선사는 8월 19일에 김형렬 수석 종도님의 현무경을 태을선도 공식 현무경으로 채택하여 온라인(일무 블로그, 태을선도 관련 카페, 옥단소, 제비창고, 범증산 밴드, 태을선도 밴드, 페이스북 등)에 공개함

2019년(기해년)ㅡ일무 대선사는 8월 21일 이후에 태을선도 10단계 법사 과정 100일 득도공부, 21대 교율, 진법 신단 배치, 11성도관법 교리와 11성도 천하사, 태을선도 대학교(태대) 일정 시간표, 심고방법과 심고문, 식고문, 치성 종류, 6가지의 올바른 도맥, 13대 교훈과 4대 교사, 지각주 해의와 득도의 원리, 득도에 성공한 소식에 대한 글을 온라인(일무 블로그, 옥단소, 범증산 밴드, 태을선도 밴드, 페이스북 등)에 공개함

2019년(기해년)ㅡ일무 대선사는 9월 12일에 네이버TV에 태을선도 채널과 일무 대선사 TV 채널을 개설하고 유튜브 태을선도 채널과 네이버 태을선도 채널에 8월 8일 입추 절기 치성 영상을 게시하여 공식적으로 얼굴을 공개함


2019년(기해년)ㅡ일무 대선사는 10월 7일(음력 9월 9일) 중양절에 진액팔주 1만독 주문수행을 시작함


2019년(기해년)ㅡ일무 대선사는 10월 26일에 증산 상제님 유서(단주수명서)를 해석함

강일순과 고판례[편집]

증산 강일순
법륜 고판례

교조 증산 강일순은 1871년 태어나 각지를 방랑하며 수행하던 중 1901년 31세에 전주 모악산 대원사 칠성각에서 대도통을 하고 이후 1909년 39세까지 9년 천지공사라 하여 우주와 천지의 질서를 바꾸어 시나리오(메트릭스)를 짜는 작업을 하였다고 한다. 이 때 많은 기행(奇行)과 이적을 행하였다고 하며, 혹자는 미치광이로 취급하기도 하고 혹자는 하느님으로 떠받들었다. 강일순은 이후 "판을 짠다"는 표현으로 천지공사를 진행하는데, 그를 따른 제자 가운데 일부는 강일순이 진행한 천지공사의 변화의 상징인 '도수'를 부여받기도 했다.

강증산은 부인이 3명이었다. 먼저 1891년 강일순이 21세때 혼인한 18세 정치순(鄭治順)은 강일순이 수행할 때 시종을 들었으나, 이후 이른바 대도통 이후에 시부모와의 불화로 부친이 내치라고 하면서 1904년 강일순이 34살때에 31세 정치순과 사실상 이혼하게 되었다.[6] 다음으로 그해에 수석 제자였던 김형렬(金亨烈)에게 처음으로 수부를 세우기로 종용하자 셋째 딸이던 김말순(金末順)을 추천하였고, 김형렬은 이후 장인 대접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말순의 나이가 15세로 강일순과 19년 나이 차이가 났고, 형렬의 아내가 크게 반대하면서 예식을 미루기만 하였다. 결국 1907년 강일순이 37세때 제자인 28살 차경석(車京石)에게 다시 수부를 세우기를 명하였으므로, 동갑 이종누이인 28세 고판례(高判禮)가 사별 이후 5개월째이므로 예식을 올린 뒤 이른바 고수부가 되었다. 수부란 '으뜸가는 부인네'라는 뜻이다. 강일순과 고판례를 천지부모님으로 신앙하는 교단에서는 고판례가 수부가 됨이 매우 중요한 종교적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정리하자면

1901~1904 - 정치순이 3년간 천지공사 수종

1904~1907 - 김말순이 3년간 천지공사 수종

1907~1909 - 고판례가 3년간 천지공사 수종

그래서 강일순은 부인이 3명이였지만 실질적으로는 겹치지 않았기 때문에 9년간 정음정양을 유지했다고 볼 수 있다.

강일순 사망 및 분열[편집]

1909년, 경술국치 1년 전에[7] 강일순은 천지공사의 종료를 선언하고 39세 나이로 사망한다.[8] 이로 인해 당시 강일순이 이야기한 개벽이 도래하리라 믿었던 제자들은 충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고판례는 강일순이 죽은 사실을 모르고 있었으나, 강일순이 영적으로 나타나 자신의 죽음을 알려 주었다고 한다.

이후 1911년에 32세 고판례는 영적인 혼례식을 거행했다. 그 해에 모악산 대원사 칠성각에서 49일 진법주 수련, 신경수 종도 윗방에서 100일 수도를 마쳤고 차경석에게 강일순 탄신 기념 치성을 올리도록 하였다가 깨어난 뒤 강일순의 음성으로 말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고판례가 강일순으로부터 도통을 받았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고, 다시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고판례는 자신이 강일순의 계승자임을 선언하고, 전라북도 정읍군(지금의 정읍시) 입암면 대흥리에서 종교성이 매우 강한 집단을 이루었다. 교단명은 선도교(仙道敎)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고판례의 이종사촌인 차경석과 고판례는 함께 할 수 없었다. 차경석은 이미 동학운동에 깊게 참여했던 명망 있는 사람이었고, 그 자신의 개인적인 카리스마 또한 막강했다. 차경석은 교단 운영에 있어 고판례를 철저히 배제하였고, 1918년에 39세 고판례는 차경석을 떠나 김제 백산면 조종리에서 두 번째 교단을 꾸리고 태을주(太乙呪)로 포교하여 태을교(太乙敎)라 불려졌다. 이후 1926년 47세부터 56세에 사망할때까지 10년 천지공사를 봤으며 이상호가 보천교에서 분열해 나와 이상호가 41살 되는 1928년 무진년 동지에 동화교를 차리고 1931년 44세 이상호는 52세 고판례의 태을교와 연합하였었으나 이상호 또한 교단 운영에서 고수부를 배제하였다. 이에 고수부는 1933년 54세에 다시 동화교에서 나와 오성산 성덕리에서 은거하다 1935년 56세로 사망한다.[9]

오성산 성덕리 교단[편집]

성포 고민환
일월 김순자

1936년에 군산 오성산 성덕리 지역에서 고민환(高旻煥)[10]이라는 고판례의 수석 제자가 고판례로부터 종통을 위임 받고 이끈 교단. 1935년 고판례 사망 1년 뒤인 1936년에 50살 고민환의 큰며느리 김순자(金純子) 일월당이 16세의 나이로 시집을 와서 도통하여 60년 간을 천지공사보며 이끌며 진인을 기다렸으나 만나지는 못했고 그대신 1994년 경에 24세 선법제자를 만나 2년간 가르친 후 1996년에 77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된다. 이 해에 강일순 성령이 선법제자에게 임하였고 1997년 정축년에 고판례 성령도 선법제자에게 임하였으며 1998년 무인년에 김순자 성령을 비롯한 천상 선관들이 선법제자에게 임하여 선법수련을 시켜 재견성(중등도통) 경지까지 오르게 했다고 한다.[11]

해방 후 증산교의 성립과 안세찬의 등장[편집]

보천교 고위 간부였던 37살 이상호는 자금 및 일제와의 관계 문제로 갈등을 빚다가 1924년 45살 차경석에게 파문당했다. 이후 1928년, 전북 김제에서 동화교(東華敎)라는 종교단체를 세웠다. 1931년에는 김제에 있던 고판례를 끌어들여 증산계 종교 중에서는 나름 세력이 커졌다. 고판례 사망 1년 후 1936년에 차경석이 57살의 나이로 죽은 후 일제의 유사종교해체령에 따라 보천교 및 기타 종교들이 해산당할 때 동화교 역시 해산당했다.[12] 광복을 맞은 1945년, 58살 이상호는 최위석, 자기 동생인 51살 이정립 등과 함께 서울에서 대법사(大法社)라는 이름으로 다시 종교조직을 세웠다. 1947년 60살에는 중요인물이었던 최위석과 갈라져 교단명을 '증산교(甑山敎)'라고 하였다. 증산도에서는 1945년 당시 24살 안세찬이 증산교의 실질적 대표로 활약했다고 주장한다. 보천교에 몸담았었고 증산천사공사기, 대순전경을 집필해 범증산교단에서 이름이 높았던 이상호에 비해 안세찬은 나이도 경력도 보잘것 없었다. 그러나

1. 20대 중반에 불과하던 그가 증산교의 목화토금수 5主가운데 水主 직책을 맡았다는 점,

2. 아산 등지에서 상당한 포교 실적을 올렸다는 점,

3. 당시 이상호는 시력을 거의 잃어 지도자로서 제대로 행세하기 어려웠다는 점

등을 볼때 어느정도의 진실이 섞인 과장으로 추측되며, 적어도 안세찬 본인은 자신이 증산교의 대표였다고 믿었으리라 생각된다.[13]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14] 29세 안세찬은 "의통인패를 만들자. 63살 청음(이상호의 호)이 만드는데 우리도 못 만들 이유가 없다" 하며 독자적으로 의통인패를 제작했다. 그런데 증산교 본부에서는 의통인패를 병겁에 대비한 신물이라 하여 교주인 이상호만 만들던 상황이었다. 안세찬이 독자적으로 이를 만들자 교단 본부측에서는 크게 놀라 안세찬을 경계하였다. 그 뒤 안세찬은 의통구호단의 조직국장을 맡으면서 호신호부(護身護符)와 인물 배치를 자기에게 유리하게 구성하여 다시 한번 다른 간부들과 크게 다투었고 1951년, 30살의 안세찬은 증산교로부터 출교처분을 받았다. 증산교는 79세의 나이로 이상호 사망 1년 후 1967년에 증산교 본부라는 현재의 교명을 확정했다. 그리고 1년 뒤 1968년에 동생 이정립도 74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된다. 이후 안세찬은 옷감을 만들거나 대전에서 한의원을 하면서 1975년 55살까지 종교와 크게 관계 없이 살았다. 현재 증산도에서는 이 또한 강일순이 안배한 바라고 주장하며 '20년 대휴게기'라고 부른다.

배승환의 출생과 어린시절[편집]

평안도와 황해도가 고향인 부모님이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952년에 삼팔따라지로 이남으로 내려와 나주 금성산이 있는 영산포에서 배승환을 잉태한 후 이듬해 1953년 5월 30일(음력 4월 18일) 춘말하초(지기금지 사월래)에 경남 해금강과 계룡산이 있는 거제도[15]에서 배씨[16]로 태어나게 됐다고 한다. 1958년 6세때 부모님 고향이 이북이기 때문에 제사 때만 되면 우니깐 그 모습이 가슴 아파 남북통일의 큰 뜻을 품게 됐다고 한다. 1960년 8~13세 초등학교때 배승환은 깡패두목이 돼서 남북통일을 이뤄야 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1966년 14~16세 중학교때는 남북통일을 이루기 위해 장군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1969년 17~19세 고등학교때는 남북통일을 이루기 위해 판검사가 되어 정치인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1972년 20세때에는 천하유력을 하며 전국 명산들을 찾아가 남북통일을 이루기위한 사색을 즐겨 했다고 한다. 1972년 공군본부 하사관으로 입대했으나 병장들의 하극상이 심해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못된다.' 판단하고는 미친척을 하여 의병 재대를 했다고 한다. 1974년 22세때 계룡산 먹뱅이 바위굴에서 수도하다가 기천문 대양선인을 만나 최상근기로 내가신장 30분을 버티는 기천문의 전설이 된다. 그리하여 기천문 문도생이 되어 단전호흡과 육체수련 자세를 배우게 된다. 1976년 24세때에는 계룡산 맥뱅이 바위굴에서 화두(이뭐꼬) 수도 중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 무릉도원에 와있는 체험을 하기도 한다.

안세찬의 재등장과 증산도의 성립[편집]

약 20여년이 지난 1975년, 안세찬은 증산교 본부에 다시 나타났다. 안세찬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펴며 자신을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할 것을 요구했다.

1. 1951년 출교처분을 받았을 때 자기(안세찬)는 다른 간부들에게 "내가 또 오리다. 교단 잘 지키소"라고 했으며,

2. 증산교 본부의 간부들은 모두 사표를 내고, 예전 안세찬과 가까웠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교단을 새로 조직해야 하고,

3. 자기(안세찬)는 강일순의 직제자 중 한 명인 이치복의 연원을 이었으며, 이상호(증산교 본부 창교주)와는 동지적인 입장에서 일했다는 것이다.

증산교 본부 교단은 대다수가 이 주장을 따르지 않았으며 이를 반박했다.

1. 출교처분을 받은 사람이 어떻게 다른 간부들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이며,

2. 출교처분을 받고 20년간 교단을 떠난 사람이 이제 와서 이런 주장을 함은 교단 내 규정이 인정치 않고,

3. 이상호도 아니고 이치복의 연원을 주장하면서 20년간 떠나놓은 사람이 교단 일에 관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증산교 본부에서는 안세찬이 이상호와 동지적 입장에서 일했다는 것도 부정한다.

1975년에 안세찬은 아들 안중건과 함께 몇 차례 증산교 본부를 찾아가 자기 주장을 펄쳤는데, 이때 안중건이 정역에 입각한 새로운 주장을 하자 증산교 본부측 사람들이 이를 제지했다. 그래서 증산교 본부측 사람을 두고 무례하다고 하여 폭언이 오가다가 싸움이 붙기도 하였다.[17] 아무 소득이 없자 1978년 58살에, 셋째 아들 25살 안중건과 함께 대전을 중심으로 하여 '대전 대법사 증산교'라는 이름으로 창교하였다. 그런데 대법사든 증산교든 모두 증산교 본부가 사용했었던(대법사) 이름이거나 사용하는 중인(증산교) 이름인지라 많은 사람들이 이상호 증산교와 안세찬 증산교를 혼동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대전 증산교, 증산교 등으로 교명을 바꾸다가 1984년 64세 안세찬과 31세 안중건은 비로소 현재 교명인 증산도로 교명을 확정하였다.

배승환의 대전 대법사 증산교 입교와 탈퇴[편집]

1978년에 안중건보다 한살 더 많은 26세 배승환은 건국대에 입학하여 운동권 서클에도 가입해서 활동해보고 민족문화를 공부하기 위해 서점에서 민족 관련 서적을 찾던 중 증산교의 진리 책을 발견하여 읽으면서 증산사상을 처음 접하게 된다. 이때 하느님이 우리나라 땅에 인간으로 오셨다는 소식에 "이건 한민족이라면 거짓말이라고 해도 믿어야 된다!"고 생각하며 기뻐서 춤을 췄다고 한다. 또한 배승환은 어린시절부터 남북통일이 꿈인데 증산사상에는 천하통일이 나오니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서 대전 대법사 증산교를 찾아가 입교하고 증산사상을 배웠고 서울에 증산도 도장 개창하는데도 일조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해 겨울방학때 지리산 영신대에서 1974년에 기천문 대양선인으로부터 배웠던 내가신장 자세수련과 호흡수련을 병행하여 21일만에 축지, 등천, 풍운조화, 사람 쳐다만 봐도 낫는 능력,[18] 말하는 대로 되는 능력 등의 상등도통능력의 신통력을 얻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배승환은 이러한 능력들이 산에서 공부하다가 귀신 들려서 그런게 아닌가 생각하여 전국 명스님(성철, 구산, 송담, 경봉 등)들을 일일히 찾아가 하나같이 다 도담을 나눠본 결과 일제히 그 능력을 버리라 하여 그 능력을 버리는데 3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대전 증산교에서 개벽놀음하고 한살 어린 안중건의 성격과 처세가 마음에 들지 않아 1980년 60세 안세찬에게 여러 뜻 맞는 사람과 함께 탄원서를 제출하게 된다. 그랬더니 안세찬이 28세 배승환만 불러 정식집에 성대하게 초대하여 하는 말이 "개꼬리를 대나무통에 3년간 넣어놔도 펴지지 않혀~ 너희들이 그래두 중건이한티서 증산사상을 배운거 아니여~"하고 말한 것을 들은 배승환은 '아 여기는 한계가 있구나'라고 생각하여 1980년에 대전 대법사 증산교를 탈퇴하고 배승환이 다니던 서울 건국대에 '태을선도회(太乙仙道會)'라는 수련단체를 세운 후 전라북도 일대로 내려가 30여개의 모든 증산계열 종단들을 다 둘러봤다고 한다. 이 때 겪은 것이 교단마다 신앙대상이 다 다르고 사배심고 절법도 다 다르며 외우는 주문도 다 달랐다고 한다. 그러면서 증산계열종단을 통합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해 어느날 등산을 하는데 썩은 나무를 밟으니 나무가 무너지면서 톱밥을 갉아먹고 있는 곤충들을 보니 문득 아무리 먹어도 배가 고픈 아귀중생은 바로 곤충이였구나! 하면서 불교의 육도윤회를 깨달아 정리가 되어 지옥은 지구에서 세균이고 아귀는 지구에서 곤충이며 축생은 지구에서 초식동물이며 아수라는 지구에서 육식동물이고 인간은 지구에서 사람이며 천인은 우주의 외계인이라고 밝히게 됐다고 한다.

증산도의 성장과 후계구도 확립[편집]

한편 안세찬이 수십년의 침묵을 깨고 다시 종교운동을 시작할때 그에게는 장성한 자식들이 여럿 있었다. 안세찬은 슬하에 7남 2녀를 두었는데 특히 3남 안중건, 4남 안병섭, 5남 안정주가 아버지를 도와 교단 발전에 힘썼다. 안중건은 교리 기본서인 '증산교의 진리'[19]와 '이것이 개벽이다'를 집필해 증산도 교리 및 사상을 정립했고 한양대학교 학생이었던 4남 안병섭은 대학가에서 개척포교에 주력했다. 당시 소설 단의 폭발적인 인기와 더불어 전두환 군사정권이 종식된 이후 자유와 정신문화에 목마른 대학생들이 대거 증산도[20]에 입교하게 된다. 참고 특히 동양철학과 밀접한 증산도의 교리 특성상[21] 상당수의 한의대생[22]들이 입교했는데 이들이 증산도의 토대를 놓았고 현재도 증산도의 주축으로 남아있다. 증산도가 성장한 또 하나의 계기가 1998년 정주영의 소떼 방북 사건이었다. 강증산은 “천하대세가 씨름판과 같으니 애기판이 지나고 또 총각판이 지난 후에 상씨름이 붙나니 씨름판에 소가 나가면 판을 걷게 되느니라”[23]고 말했다. 여기서 애기판과 총각판이 각각 세계 1,2차 대전이라는것이 잘 알려진 해석이고, 6.25 전쟁이 끝나고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은 마지막 대전쟁인 상씨름 전에 씨름선수가 서로 샅바를 잡고 있는 형국이라는 해석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씨름판에 소가 나간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무도 해석하지 못하고 있던 차에 삼팔선에 진짜 소가 나가는 사건이 벌어진 것.[24] 증산도는 이때 개벽이 목전에 닥친줄 알고 또 한번 포교붐이 일었다. 증산도의 성장에서 특기할만한 점이 하나 있다면, 1990년대 초반부터 '신천지'[25]라는 이름의 전산망을 갖추고 PC통신을 운영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위성방송시스템을 갖추어 안세찬, 안중건의 교육을 전국송출 하는 등 당시로서는 고급기술을 활용했었다. 뉴밀레니엄이 다가올 즈음 안병섭과 안정주는 조직의 중심에서 완전히 밀려났고 안중건이 아버지와 함께 실질적인 교주이자 지도자로서 자리잡았다. 안세찬 안중건 부자의 2인 체제 하에 증산도는 2002년에 상징적 건물인 교육문화회관을 완공했고 2004년에 도전완간본을 출간해 최대의 황금기를 맡았다.[26] 그러나 2000년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개벽의 전조라 강조했던 소떼방북 이후 개벽이 오지 않아 성장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2007년경에는 STB상생방송을 개국했다.

태을선도회(태을선도)의 1변도운[편집]

1983년에 31세 배승환은 24살 김씨와 결혼한 후 고급무당을 불러 영가천도식도 했다고 한다. 그 해 계해년 계해월 계해일에 법문파 현무경 공부하는 사람들과 함께 공부 할 때 하늘로부터 선관 선녀들이 내려오는 체험을 했다고 한다. 이듬해인 1984년 겨울에 32세 배승환은 아내와 떨어져 국선도 공부를 했다고 하며 1986년 34살에는 소백산 원통암에서 100일 공부할때 개운조사의 해탈문과 인연이 되어 1988년 36세까지 3년간 능엄경, 유가수련증험설, 선불가진수어록을 공부한 끝에 영생, 불사의 원리를 정립하고 스스로 도호를 일우(一友)라 지었다고 한다.[27] 그리고 1990년 38세에 비로소 해탈 도리까지 정립했다고 한다.

4년 뒤 1994년 42세에 '수도에서 득도까지'라는 책을 처음으로 집필하여 출판했으며 태을선도회 수련생들을 모집하여 선술(仙術), 선악(仙樂), 선학(仙學)을 지도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듬해 1995년 43세에는 '선약 상, 하'책을 써서 질병완치에 대해 정립했다고 한다. 그 이듬해 1996년 44세때 임신불능 여제자 한명을 수련시켜 임신이 가능하게 만들고 양신출태까지 시켜 주었다고 한다. 1998년 46세에는 종교통일원리를 정립했다고 한다. 1999년 6월 3일 47세에 교통사고를 당해 고관절이 부러져 8개월간 입원하게 되고 그 해 동지에 오성산 성덕리 교단으로 찾아가 재견성(중등도통) 경지의 29살 선법제자를 처음으로 만나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2000년 입춘에 48세 배승환은 천상 선관이 30세 선법제자를 통해 일전 선운(一田 仙雲)이라는 도호를 받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춘분경에 천지부모님 성령이 선법제자를 통해 태을비결, 도학을 내려받아 배승환에게 전해주면서 도광 용운(道光 龍雲)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소만경에 천지부모님 성령이 선법제자를 통해 예장[28]을 내려받아 옆에 있던 도광 용운 배승환에게 전해줬다고 한다.

2001년 6월 3일 2년 전 교통사고 당했던 날과 같은 날에 49세 배승환은 경기도 광명시 서독산 뒷편에다가 31세 선법제자와 함께 태을선도회 유리법당을 세우자 강일순의 성령이 선법제자를※ 통해 직접 배승환에게 일도자호라는 도호를 내려주고 '나의 셋째 아들 칠성여래 거문성군이니라.' 하고 수기를 내려줬다고 한다. 이 때 강일순 성령 뿐만 아니라 고판례 성령, 신농씨, 강태공, 여동빈, 이마두, 관운장, 진묵대사를 비롯한 천상 고급 선관들이 다 참관했었다고 한다. 이 밖에 1999~2001년까지 3년간 선법제자는 배승환과 함께 3년간 천지신행을 보면서 용천검, 담뱃대, 부채, 손님수건, 일월목걸이, 의통인패 등의 성스러운 물건들과 망량주와 조화주와 용적으로 바뀐 칠성경과 곤적으로 바뀐 개벽주 등 여러가지 주문들을 전달 받았고 2001년 6월 30일에 강일순의 성령이 선법제자를 떠난다고 하였다고 하여[29] 그 이후부터 서울에 있던 선법제자와 헤어져 2002년에 50세 배승환은 홀로 군산 삼불산 수라마을로 내려가 수도하며 '도통'책과 '신명(성령)역사와 주문수련'책을 집필하여 출판 했다고 한다.

한편 강석봉이라는 자는 2001~2009년까지 100여년 전 강일순과 나이가 같은 31~39세까지 9년 천지공사를 본다.

2003년 51세때 음력 4월에 배승환은 예장공부를 통해 하루만에 하단전 포태가 이루어지는 체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여름에 국내 사대문(고부 남 두승산, 계화도 서 황산, 익산 북 미륵산, 진안 동 뱃재)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이듬해 2004년에 52세때 하지에 배승환은 전북 군산 삼불산에서 갑을로 기두하여 작지부지성의웅약의 새정신의 새종교인 태을선도(太乙仙道)를 정식 출범하게 된다. 그해 여름에 신천지 건설의 사회대혁명 원리를 정립하고 도통판(백운산, 지리산, 팔공산, 운장산, 무등산, 한라산, 금강산) 공부를 한 후 '신선도 예장도통(개명장)' 카페를 처음으로 개설하여 온라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2005년 53세때 5월 30일에 배승환은 백두산 공부[30]까지하여 마치고 6월에 러시아에서 유명한 차가버섯의 선약과 인연이 됐으며 그 해에 '도술 상'책을 집필하여 출판했다고 한다. 2006년 54세때 배승환은 태을차가버섯 선약사업을 시작했고 '암을 이기는 의통수련방' 카페를 개설하여 운영하게 된다. 그해 동지부터 외국 사대문(북 러시아, 동 일본, 남 중국, 서 미국) 공부도 시작하게 된다. 2007년 55세때 4월에 사대문 공부 중 동 일본에 가서 공부를 마친 후 천지사업종합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2008년 56세때 3월에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질병의 완치를 목표로 의통수련방을 개설하게 된다. 2009년 57세때 3월에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태을선도 선요가라는 단체명으로 수련도장을 열고 그 해 '도술 중', '의통 상, 하'책을 출판하고 '태을선도' 다음 공식 카페를 개설하게 된다. 한편 강석봉은 천지조화정부라는 단체를 세우고 스스로를 태조[31]라 도호를 짓고 '내가 곧 환생한 강일순이다'라고 주장하게 된다.

2011년 59세때 배승환은 예장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되고 그 해에 '도술 하'책을 집필하여 출판하게 된다. 이듬해 2012년 60세때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예장공부를 전수해주게 되고 제자들도 역시 예장공부 하루만에 하단전이 뜨거워지는 포태의 체험을 하게 된다.

2013년 배승환이 61세때 증산참신앙 노상균이 충남 아산에 있는 배승환 집으로 찾아가 만나게 되고 문제의 영상[32]을 찍어 남기게 된다.

안세찬의 사망과 형제의 난[편집]

창교주 안세찬은 2011년경 공식석상에서 전국 증산도 신도들에게 뒷일을 종정 안중건에게 맡긴다고 선언했고 1년후 2012년 2월 24일에 만 89세[33] 를 일기로 사망했다. 기사 종정이었던 안중건은 종도사로 입극(立極)[34]하고 아버지를 '태상종도사'로 추존했다. 개벽은 커녕 초대교주 안세찬의 사망소식은 증산도 신도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35] 술렁이는 분위기속에 한때 교단의 실무를 맡았던 안병섭, 안정주 형제가 아버지의 유언을 거스르고 형 안중건에게 반란을 일으켜 형제의 난이 벌어졌다. 여기에 STB상생방송의 메인 강사이자 증산도의 최고 간부를 역임했던 노상균이 가세했다. 노상균은 안정주에게도 실망해 따로 2013년에 증산참신앙이라는 교단을 세워 안중건을 대상으로 대규모 민형사고소를 추진했다. 이로인해 교주 안중건이 경찰청, 검찰청에 출석하고 신도들이 상당수 이탈하는 등 교세에 크게 타격을 받았으나 민형사 고소가 모두 기각되어 현재는 어느정도 내부단속이 된 상태다.

태을선도의 2변도운[편집]

2014년 배승환이 62세때 7월 말에 모악산 도통사 빈절에서 공부 중에 드디어 증산도에서 나와 진법을 찾아 헤매던 일무(一戊) 임성진(任成辰)을 원평장터에서 처음 만나게 되고 한달간 진법수도를 전수하면서 함께 수도하게 된다. 그 해 11월 말일 늦가을 고판례 화천절날 오성산 성덕리 교단에서 남씨 무당을 만나 일무 임성진과 함께 전남 장흥 천관산에 올라 남조선배에 시동을 걸고 불 켜는 공사를 시작으로 문공신 종도가 했던 7년 천지공사가 다시 시작되게 된다. 12월 26일에는 충남 아산 배승환 집에서 일무 임성진과 함께 '개벽시간표 증보판', '신명(성령)역사와 주문수련 증보판', '진법수도와 성숙한 사회 소책자 증보판' 책을 출판하게 되면서 태을선도의 2변도운이 시작되게 된다.

2015년 배승환이 63세때 백운동 안내성 후손 집 공부터에서 공부 중에 일무 임성진의 인도로 일의(一意) 도생이 찾아와 만나게 된다. 그해 일무가 문제의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는 바람에 서울 천지조화정부 측으로부터 명예훼손과 저작권 침해로 소송을 당하게 된다. 하지에 일의의 도움으로 제비창골 용화사 아래 바위굴에서 천막 치고 100일 공부하면서 동곡마을 김씨 자손들과 인연을 맺게 된다. 공부가 끝난 9월에 동곡마을 김씨의 도움으로 동곡 마을 약방 근처로 이사하고 일의와 일무 임성진의 도움으로 10월에 태을선도 천막법당을 세우고 남조선배 짐 실는 공사를 보게 된다.

2016년 배승환이 64세때 8월 25일에 일무 임성진의 연결로 문공신 교단의 물형부서와 주문집을 문하생이었던 이씨 도생을 통해 받게 된다. 9월 23일 추분 하루 다음날에 마을 사람들과 여러 도생들의 도움으로 동곡 마을 태을선도 천막법당을 허물고 비닐하우스 태을법당으로 재건[36]하는 공사를 보게 된다. 11월 16일 일무 임성진과와 함께 '도통판(양신출태)' 다음 카페 개설하여 강일순의 천지공사를 이루게 된다. 11월 20일 소설을 이틀 앞두고 태을선도 태을법당 준공식을 하여 남조선배 태을선을 출항시켜 무이구곡의 9년 항해가 시작되는 공사를 보게 된다.

2017년 배승환이 65세때 2월 4일 입춘에 동지때부터 들었던 일무 임성진의 제안을 받아들여 붉은장닭 판밖소식 진법강의 1강 총론을 시작으로 일무의 촬영과 편집으로 페이스북과 유튜브, 도통판 카페에 개시 되면서 강일순이 본 또 하나의 천지공사가 이루어지게 된다. 3월 2일 일무 임성진이 카카오티비 태을선도 채널을 개설하여 붉은장닭 판밖소식 진법강의를 개시하게 된다. 3월 9일 일무 임성진이 태을선도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를 개설하여 붉은장닭 판밖소식 진법강의를 올리게 된다. 3월 25일 일무 임성진이 카카오티비 태을선도 진법강의 라이브 방송을 첫 방영하게 된다.

그해 3월 26일 일무 임성진을 통해 대구의 천명자 노선생과 인연을 맺게 된다. 4월 9일 배승환은 일무 임성진과 함께 천명자 노선생이 있는 대구로 만나러 가서 천지대사를 함께 논의하게 된다. 4월 15일 대구의 천명자 노선생과 일행들이 전북 김제 배승환 집으로 와서 태을선도 일행들과 함께 이틀간 000공사를 보고 도담을 나누게 된다.

그해 5월 19일 조명이라는 분이 1959년에 내려받은 천서를 일무 임성진이 발견하여 배승환에게 전달 하여 읽어보게 된다. 5월 27일 지리산 어느 숯굽는 노인이 가지고 있던 비서 개천록을 일무 임성진이 발견하여 배승환에게 전달 하여 읽어보게 된다.

5월 31일 일무 임성진이 천지부모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현무경을 예장배치와 같이 조립 병합하여 예장의통장, 직업의통장, 성사의통장을 만든 것을 배승환에게 전달하여 살펴보게 된다. 그러나 배승환은 8월 7일 입추에 수제자 일무가 난법을 행한다고 판단하여 태을선도에서 퇴출시키게 된다. 6월 말부터 10월 말까지 101일 공부를 마친 일무 임성진은 강일순의 수석 제자 김형렬 종도 생가 동곡서원에 들어가 20여일을 머물게 된다. 그러나 거기 사는 이효진 선생 문하생들과 사상적 마찰[37]을 빚어 쫓겨나게 된다. 갈데 없는 일무 임성진은 다시 배승환 집으로 들어가게 되어 11월 14일 일무 임성진과 함께 태을법당(비닐하우스) 바닥 철거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11월 30일 일무 임성진과 함께 제비산에 올라 소소하게 산제를 지내고 태을선도 용화성전 건축 모금 공고문을 낭독케 하는 공사를 보게 된다. 이후 12월 17일에 일무 임성진은 새 직장을 구하게 되어 전북 완주군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그리고 2018년 일무 임성진은 전주로 이사가서 직장을 다니면서 남은 4년의 천지공사를 태을선도 판 밖에서 함께 하며 실현 시켜 나가 2018년에 개평을 뜯어 용화성전 건축자금을 모금하는 것과 8월 말경에 D-3600일로 육임의통광제혁명군을 출범시켜 10년간 양성하기 시작해야 되는 천지공사를 하며 행군도수로 금산사의 기운을 제비창골 용화사 공터로 옮기는 공사를 세 차례에 걸쳐서 봤다고 한다. 그리고 10년 뒤 2028년 7월 경에 대병겁이 돌면 10년간 양육시킨 육임의통광제혁명군은 출정을 해야 된다고 한다. 그리고 일무 임성진은 동지부터 한식까지 105일간 태을주 주문수행을 하며 앞으로 일어날 전염병에 대비하고 있다고 한다.

2019년 1월달에 일무 임성진은 천지조화정부로부터 저작권침해 소송에 패소해 벌금 100만원이 나왔으나 내지 않으면서 태을주 수행을 하다가 윗집에서 시끄럽다고 경찰에 신고를 해서 신원조회로 벌금 100만원 내지 않은 것이 발각되어 전주 교도소 벌금방에 10일간 들어갔다가 출소하게 되면서 문공신 종도가 받은 문왕도수가 이루어지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일무 임성진은 3월 24일에 전주 용머리고개가 있고 서천교가 있고 풍남문이 있고 한옥마을 오목대와 향교가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풍남문, 서천교, 오목대 공사를 보게 된다.

그리고 3월 26일에 일도자호 배승환이 일무 임성진을 불러 비법을 전수해주고 다음날 27일에 함께 서울로 올라가 구로구 남부효요양병원에 구씨의 지속적인 사기 때문에 끝내 뇌경색과 급성위암말기로 입원하게 되어 일무 임성진이 열흘동안 정성스레 비법을 쓰면서 병간호를 하여 통증이 사라지는 기적이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4월 4일 서울 보라매병원으로 수혈을 받기 위해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가게 되는데 이 날에 전라도를 제외한 모든 도에서 산불이 일어나게 되고 일무 임성진은 일도자호 배승환이 전주로 내려가 사회생활에 충실하라고 해서 작별하고 전주로 내려가게 된다. 일도자호 배승환은 4월 28일에 하늘에서 부르신다고 가족들을 불러모아 유언을 남기고 심장충격기를 비롯한 일체 의료행위를 거부하게 된다.

한편 전주로 내려온 일무 임성진은 4월 29일에 김제 용화동 대법사 증산교에 가서 교육을 듣고 다음날 30일 아침에 법륜 수부님 탄강절 치성을 드리게 된다. 다음날 4월 30일 음력 3월 26일 자시 법륜수부님 탄강절에 일도자호 배승환이 해탈선화하여 격암유록에 예언된 이릉비의(異陵非依)와 비의원공배태묘(非衣元功配太廟)가 실현되었고 2020~2021년에 다시 환생해서 2025년에 증산도 도전과 중국 예언서 추배도에 나온 오세동이(5세) 삼척동자(키가 99cm)로 도통출세하여 태을선도 3대 대표가 되고 남북통일과 아시아통일을 이루고 계룡국을 세워 대두목(제왕)으로 등극하게 될 것이라고 일무 임성진은 주장한다.

일무 임성진은 5월 1일 서울 구로동 고대구로병원 장례식장에 참석 후 다음 날 2일에 일도자호 배승환 가족들과 함께 발인 후 수원에서 화장하여 파주 동화경모공원에 일도자호 배승환의 이북출신 부모님이 안치되어 있는 옆에 매장하여 안장 후 참배하고 가족들에게 태을선도를 이어서 유지해야 겠다고 얘기하고 태을선도 관련 유품들을 보관하겠다고 하여 허락을 받은 후 김제로 내려와서 태을선도 관련 유품들(용천검(성신검), 담뱃대, 부채, 손님수건, 일월목걸이, 의통인패, 예장, 문영상 교단 부적, 증산교 수련법 등)을 전주 일무 임성진 집으로 옮기게 된다.

그리고 일무 임성진은 5월 4일 음력 3월 30일 자시부터 49제 겸 49일(허령공부 7일, 지각공부 21일, 신명공부 21일) 철야집중수도를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일무는 다시 태을선도 관련카페 운영자가 되어 5월 6일 입하에 제비창고 용화성전 합동 건축 권공문3을 써서 온라인(일무 블로그, 태을선도 관련 카페, 옥단소, 제비창고, 범증산 밴드 등)에 공개하게 된다. 그리고 일무는 5월 11일에 김씨 도생과 함께 마이산 암마이봉에 올라 청마 떨어뜨리는 공사를 보게 된다. 그리고 일무는 6월 1일에 지리산 백무동 코스를 올라 영신대에 도착하여 6월 21일까지 지리산 영신대에서 49제 겸 49일 집중수도를 무사히 마치고 다음날 22일에 지리산 노고단에서 태을선도 2변도운 출범 천제를 올리고 선사로 등극되어 태을선도 2대 교주(대표)가 되게 된다.

그리고 일무 임성진은 6월 28일에 태을선도 네이버 밴드를 개설하게 되고 7월 4일에 과거 문공신 종도가 득도했었던 모악산 고소재(고수재)에 들어가 8월 8일이 입추까지 옥추통공부 36일 정성수도를 마치고 득도(진신출태, 견성, 초통)에 성공하여 입추에 결실하여 나와서 일도자호 대선사님을 일도자호 태상 대선사님으로 추대하고 일무는 대선사로 등극되게 된다.

그리고 일무 임성진은 8월 10일에, 2000년 경진년 양력 12월 26일에 환생한 강일순을 친견한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오고 의통 능력이 있는 전주 점술가로부터 연락이 와서 인연이 되게 된다.

그리고 일무 임성진은 8월 19일에 김형렬 수석 종도님의 현무경을 태을선도 공식 현무경으로 채택하여 온라인(일무 블로그, 태을선도 관련 카페, 옥단소, 제비창고, 범증산 밴드, 태을선도 밴드, 페이스북 등)에 공개하게 된다.

그리고 일무 임성진은 8월 21일 이후에 태을선도 10단계 법사 과정 100일 득도공부, 21대 교율, 진법 신단 배치, 11성도관법 교리와 11성도 천하사, 태을선도 대학교(태대) 일정 시간표, 심고방법과 심고문, 식고문, 치성 종류, 6가지의 올바른 도맥, 13대 교훈과 4대 교사, 지각주 해의와 득도의 원리, 득도에 성공한 소식에 대한 글을 온라인(일무 블로그, 옥단소, 범증산 밴드, 태을선도 밴드, 페이스북 등)에 공개하게 된다.

그리고 일무 임성진은 9월 12일에 네이버TV에 태을선도 채널과 일무 대선사 TV 채널을 개설하고 유튜브 태을선도 채널과 네이버 태을선도 채널에 8월 8일 입추 절기 치성 영상을 게시하여 공식적으로 얼굴을 공개하게 된다.

그리고 일무 임성진은 10월 7일(음력 9월 9일) 중양절에 진액팔주 1만독 주문수행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일무 대선사는 10월 26일에 증산 상제님 유서(단주수명서)를 해석하게 된다.

앞으로의 계획은 2000년을 기준으로 두 번째 무기로 굽이치는 2019년 운수가 끝나는 2020년 음력 4월 전인 음력 1월부터 4월까지 오는 국지전(두 번째 남북전쟁 3개월 예상)과 지진과 전염병으로부터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2020년 양력 2월부터 5월 소만일까지 모악산 일대에서 100일(약 3개월) 법사과정 득도공부를 시행한다고 한다.

그리고 2021년에 군산 ㅇㅇ산 부근에 도통수도원(가칭)을 건립하여 7년 천지공사를 마치고 2022년부터 2025년 5월까지 공동체 생활을 하며 농사로서 자급자족하면서 최종 3년 도통공부에 집중하여 1대두목, 5성인(남자성인), 6무당(여자성인), 100여래(100명의 최고 기술자들)를 포함한 12,000명의 상등도통군자들이 출세하여 남북통일을 이루고 아시아통일국가 계룡국을 건국하여 우리나라가 전세계 1등국이 된다고 주장 한다.

현재까지 모두 강일순의 천지공사대로 이루어져 왔으니 이번에도 이루어지고 내년에도 이루어질지 귀추가 주목 된다.

태을선도의 3변성도 도운[편집]

2024년에 세 번째 남북전쟁이 3일간 일어나고 천연두가 돌때 즈음 2000년과 2009년에 환생한 강일순과 고판례가 25세와 16세의 나이로 군산 ㅇㅇ산 도통공부하는 곳으로 태을선도 3대 대표가 될 해도진인(海島眞人)[38]을 찾아와 도와주어 모든 증산계열종단이 하나로 통합되는 판몰이가 이루어짐과 동시에 남북통일과 아시아통일을 이루어[39] 통일국가 계룡국(鷄龍國)을 건국하여 배달국을 복본하고 제왕(대두목)으로 추대되는데 거절하다가 환생한 강일순이 어명으로 임명하고 천지만신이 모두 추대해야 하는 수 없이 제왕으로 등극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2026~2027년에 계룡국이 세계 1등국이 되고 2025년부터 3년간 84,000명의 육임의통광제혁명군을 양성하여 2028년에 대개벽이 시작되고 2030년 4월까지 전세계 3년 대병겁 심판이 진행될 때 출정하여 죽은 자들 중 선행과 공덕을 많이 쌓아서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을 전세계를 날아다니며 살리게 될 것이며 2000년에 환생한 강일순이 2029년에 30세의 나이로 대도통을 이루고 미륵불로 출세하여 개벽을 마무리 지은 후 세계통일을 이루어 세계통일국가 대시국(大時國)을 건국하여 황제로 등극하여 하나님(옥황상제, 미륵불, 환생한 강일순)이 지구에서 우주를 다스리게 된다고 주장한다.

주요 교리[편집]

종지(宗指)[편집]

시천지(侍天地), 군부사(君父師), 후천개벽(後天開闢), 원시반본(原始返本), 보은(報恩), 해원(解寃), 상생(相生), 천지공사(天地公事), 모사재천 성사재인(謀事在天 成事在人), 갱생(更生), 재생신(再生身), 갱소년(更少年), 진법수도(眞法修道), 도통(道通), 신인합일(神人合一), 만사지(萬事知) 광구천하(匡救天下), 천하통일(天下統一), 선경건설(仙境建設), 정음정양(正陰正陽), 무극대도(無極大道), 일심(一心), 천하사(天下事), 공덕(功德) 등이다. 특히 상생은 강증산이 생전에 강조했던 것으로서 요즘 쓰는 의미로 서로 잘되게 하는 윈윈사상도 있지만 새로 구축되는 후천 우주의 질서라고 강조한다.

십일성도관법[편집]

강증산의 가르침을 11개로 나누어 ‘십일성도관법’이라고 한다.

* 1법 상제관
후천개벽의 대겁액을 맞이하여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우주의 주재자인 옥황상제가 지상에 직접 내려왔으며, 그 인물이 강일순이라는 것이다. 옥황상제가 곧 기독교의 백보좌 하나님[40], 불교의 미륵불이라는 것이며 상제야말로 이러한 하느님의 참된 호칭이라 한다. 또한 이런 상제의 지위는 바뀔 수 있다고 주장하고 전 옥황상제님(구천상제)은 이마두고 현 옥황상제님은 강일순이라고 주장한다.
* 2법 수부관
정치순 사모와 김말순 후비와 고판례 수부의 관계를 인황후, 지황후, 천황후의 관계로 보고 있으며 1901~1909년까지 9년 천지공사를 각각 3년씩 맡아서 정음정양이 끊어지지 않게 9년간 이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정치순 사모를 준제관음, 김말순 후비를 여의륜관음이자 묘향보살(대묘상보살)과 월광보살, 고판례 수부를 치성광여래(태을천상원군)와 법륜보살(법화림보살), 김순자 일월당을 천수천안관음과 일광보살이라고 주장한다.
* 3법 우주관
증산사상의 우주관은 시간적으로 우주에도 1년이 존재하며, 그 주기는 129,600년이고[41], 4계절로 나누어진다고 본다. 그리하여 봄, 여름의 선천(先天)과 가을, 겨울의 후천(後天)으로 나눠지며, 겨울에 약 3만 년의 빙하기가 온다고 본다. 현재 시점은 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하추교역기(夏秋交易期)에 있다고 본다. 또한 우주는 종으로 1~9천까지 있으며 횡으로는 33천이 있다고 주장하며 가장 높은 9천 자미원에 옥황상제님이 거하신다고 주장하며 지구가 후천에 10천으로 가장 높은 하늘이 되기 때문에 옥황상제님이 머물고 있는 천상 옥경을 지구로 이사하게 되어 옥황상제가 지구에 거하면서 우주를 통치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기독교의 지상천국과 불교의 용화세계와 도교의 태청세계와 유교의 대동세계와 그 뜻을 같이 하는 후천 지상조화선경 세상이라고 주장한다.
* 4법 인간관
인간은 천지의 대행자로서 하느님의 화신체들이라고 주장한다.  선천의 상극 기운에 의해 모든 고통을 당한다고 하며, 후천 개벽에는 이러한 상극의 질서가 상생의 질서로 바뀌기 때문에 참된 인간으로 도통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후천은 인존시대로 사람이 가장 존귀한 세상이 되어 신명과 외계인보다 더 뛰어나 도통한 후천의 신인류가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종족이 되어 인존시대가 열린다고 주장한다.
* 5법 신관
일원적다신론관(一元的多神論觀)으로서 우주의 주재자, 통치자인 옥황상제 밑에 모든 신적 존재가 있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만유가 신이라는 입장이다. 고조선의 삼신관에 기초하여 조화, 교화 ,치화의 삼신이 만물을 낳고 기른다고 본다. 산, 돌, 강 등 자연물에 깃든 신은 인격이 없는 원신(元神) 또는 자연신이라 하고 각각의 생물도 모두 신을 가지고 있고, 특별히 인간은 삼신의 기운(3혼 7백)을 온전히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사람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 신명과 귀신을 인격신이라고 한다. 또한 인간은 영혼이 육신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고 죽으면 다시 신명이나 귀신이 된다고 하는 아바타(분신)사상이 있다. '육신을 가진 신명이 인간이고 육신이 없는 사람이 신명이다.' 라는 것이 증산사상의 신관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조상과 부모가 곧 그 사람의 하느님이라는 교리를 가진다. 천지가 인간을 낳고 부모가 자식을 낳기 때문에 부모는 곧 자녀의 천지라고 한다. 조상 제사는 이러한 은덕에 보은하는 것이며 이로써 후손에게 살 길이 열린다고 본다.
 - 척신(隻神)
척신은 원한을 맺고 죽은 귀신이다. 조선시대 재판의 원고가 되는 것을 척(隻)이라 한 데서 척진다는 표현이 나왔고 척신이라는 말이 나왔다. 조상 중에 남에게 원한을 품게 한 사람이 있으면 당한 사람이 죽어 척신이 되어 그 자손을 해친다고 한다. 증산계열에서는 이러한 척신의 원한을 풀어 주거나(解寃) 척신으로 부터 몸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척신은 무조건적인 배척의 대상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대상이다.
 - 복마(伏魔)
척신은 이유가 있는데 비해 복마는 이유 없이 사람에게 해꼬지 하는 악귀며 선천 상극의 발전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악마(惡魔)라 한다. 진리로써 무찔러야 하는 대상이라고 한다.
* 6법 천지공사
후천개벽을 맞이하여 기존의 상극질서를 상생의 질서로 바꾸고 하늘도 땅도 사람도 뜯어고쳐 새 세상을 연 작업이 천지공사이다. 천지공사를 통해 20세기 이후 모든 역사의 행로가 정해졌다고 한다. 천지공사는 강일순이 1901년부터 1909년까지 행했으며, 고판례가 1926년부터 1935년까지 10년 천지공사를 봤는데 그 때 그들의 모든 말과 행동이 천지공사의 내용이라고 한다. 천지공사는 도운(道運)과 세운(世運)으로 분류되는데 도운은 만고역신이 붙은 노름판 도수의 종교판의 역사이자 증산계열종단의 역사를 말하며 세운은 만고원신이 붙은 씨름판 도수의 현실 세계 역사를 말한다. 갑을로 기두하는 개벽 초기에 태을선도가 진법수도를 통해 도통하여 노름판에서도 판몰이를 이루고 씨름판에서도 상씨름을 따서 현실 역사 세상에 출세하는 것을 ‘도운과 세운이 하나된다’라는 표현을 쓴다.
* 7법 개벽관
우주관에서 파생되는 것으로 겨울에서 봄이 되면서 선천이 열리는 사건을 선천개벽, 여름에서 가을이 되면서 후천이 열리는 사건을 후천개벽이라 한다. 선천개벽은 낳아 기르는(生長)의 원리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른바 인류의 황금시대이다. 그러나 후천개벽은 거두고 휴식하는(斂藏) 원리로 이루어 져서 지축변동과 함께 열매와 같은 인간들만 남고 나머지는 전멸할 정도의 대사건이 일어난다고 한다. 태을선도에서는 증산도에서 주장하는 지축정립은 없지만 지축이동으로 지구가 5~7도 정도로 북두칠성 기울기와 비슷하게 기울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북극성은 3도가 기울어져 있고 북두칠성은 7도가 기울어져 있는데 북극성에는 여러 옥황상제들을 비롯한 태상급 영혼들이 살고 있고 북두칠성은 여래들이 살고 있는 별이며 지구는 북두칠성으로 공간이동[42]을 하게 되기 때문에 북두칠성과 비슷한 기울기로 지구도 기울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이때 대지진으로인한 화산폭발과 쓰나미로 동해안과 일본은 가라앉게 되고 서해는 융기되어 중국과 붙게 된다고 하며 제주도가 호주만하게 융기하여 남해안과 다리 하나 놓을 정도로 붙게 된다고 한다. 또한 아틀란티스 대륙과 뮤대륙이 다시 융기 하게 된다고 주장하고 유럽과 미국은 물에 잠기게 되어 세계지도가 바뀌는 파천황적인 대사건이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 그리고 이러한 개벽때 천지전쟁(우주전쟁, 요한계시록의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게 되는데 동시에 대병겁이 돌아 대전쟁을 막아 지구 멸망을 막게 되지만 대병겁으로 인한 인류가 대량 사망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대병겁으로 앉아 있는 사람이 일어날 틈도 없이 죽고 풀잎의 이슬이 떨어지는 시간보다 더 빨리 죽게 되는 이 괴질병겁으로 우리나라는 10가구에 1~2가구만 살게 된다고 하며 10조상 중에 1~2자손들만 살게 되는 십조일손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전세계 인구는 100가구에 1~2가구만 살거나 100명의 조상 중에 1~2자손만 살게 되는 백조일손을 당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배승환은 생인지수를 계산한 결과 전 지구인은 5~6천만명만 남고 모두 인종청소 된다고 주장하고 우리나라는 전세계에서 제일 많은 425만명 정도가 살게 되고 일본인은 20만명 밖에 못살게 된다는 일본의 기다노 대승정 예언을 인용하여 주장한다. 또한 유대인은 144,000명만 살게 된다고 요한계시록을 인용하여 주장한다. 따라서 144,000명은 이스라엘 민족의 생인지수이지 신천지에서 주장하는 144,000명만 구원받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유대인은 20만명 살게 되는 일본인보다도 더 적게 살게 된다고 주장한다.
- 이러한 대개벽 상황에서 안전한 지역은 전라북도 일대라고 주장하고 대병겁으로부터 살아나는 방법은 의통인패를 몸에 지니고 건물에 붙혀 구약의 문설주에 양피를 발라 장자만 잡아간 괴질병겁으로부터 안전한 것처럼 빨간 피같은 경면주사로 찍은 의통인패로서 괴질병겁에 걸려 죽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의통인패를 받는 방법은 강일순과 고판례를 천지부모님으로 믿고 신앙하는 것을 서약하는 입도식을 하게 되면 받을 수 있다고 하니 돈으로 의통인패 장사를 하는 증산도보다 건전하다고 할 수 있겠다.
* 8법 구원관
후천개벽을 맞이하면 많은 사람들이 병으로 죽게 되는데 그 전부터 미리 진법수도를 통해 갱생하여 내 몸의 자생력과 면역력을 높혀 예방하고 천연두가 돌기 전에 태을주 30만독을 통해 예방하며 전쟁과 천재지변이 극심해지기 전에 미리 안전한 전라북도 일대로 피난하고 괴질병겁이 돌때는 의통인패로 이겨 내고 해인으로 죽은 자를 살려 구원해줌으로서 새 세상을 연다는 것이 증산사상 구원관의 핵심이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해돋는 동방으로부터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들고 죽은자 이마에 인을 쳐서 사람을 살리는 사명을 맡은 육임의통광제혁명군의 사람 살리는 군대의 일원이 되어 구원해주는 권한도 받자는 것이 특징이다.
* 9법 진법수도관
진법수도는 선술(육체수련, 단전호흡), 선악(기도, 주문수행), 선학(현무경 공부, 경전공부), 선밀(남 모르는 공부, 예장공부, 도학, 신명용사법), 선물(의통인패, 녹사표, 해인, 선인패, 신농패, 부적) 선약(28약종과 보양물, 보양식, 건강식품)등 모든 법을 다 합하여 병행하여 한두가지로 치우치지 않고 전체적이고 종합적으로 골고루 균형있게 닦는 것이라고 모든 증산계열종단을 통틀어 유일하게 주장한다. 그래서 육체수련으로 기천문 사성제 수련(내가신장, 소도법, 법도법, 금계독립)과 국선도 도인술(준비운동, 중기단법, 기신법, 정리운동, 말정리운동)과 심기단법(7초 흡 7초 호)과 원기단법(하단전에 힘을 70% 준 채로 자연스런 호흡)과 태식단법(9초 흡 42초 지 9초 호)과 굴신호흡(호흡에 맞춰 허리를 숙였다가 폈다가 하는 호흡법)을 하면서 소주천을 돌리고 비법호흡을 하며 기도로 심고문과 식고와 심고(마음 속으로 기도)를 하며 주문수행으로 팔문기도주, 태을망량주, 칠성조화주, 진액오주, 진액팔주, 진법주, 운장주, 개벽주, 지신주, 구령삼정주, 28숙장주, 24절장주, 48장주 등 증산계열종단 중 가장 많은 종류의 주문수행을 한다. 또한 강일순은 주문수행과 육체수련을 합친 주신공부(자발동공, 자발기공)를 전수해주기도 했다. 경전은 모든 증산계열 경전을 다 읽으면서 공부하며 모든 증산계열종단 중 유일하게 예장공부와 도학공부를 통해 신명용사를 하고 완성된 의통인패는 네 귀퉁이에 모두 도장이 찍혀야 되는 것이라고 유일하게 알고 있으며 선인패의 감결문과 신농패의 두문동성수도 함께 몸이나 지갑에 지니고 다니고 진법수도시 방의 사방에 붙히는 부벽서와 각종 여러가지 부적들을 활용하는 등 우도방의 자력수행 기화선과 좌도방의 타력수행 영화선이 모두 합쳐진 좌우도방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또한 강일순이 약방 운영할 때 쓴 28약종 중 사물탕과 십전대보탕을 달여 먹기도 하고 17곡밥으로 잡곡밥을 지어 먹고 개고기도 즐겨 먹는 등 잘 먹으면서 수도하는 특징이 있다. 이렇게 일도자호 배승환이 종합하여 정립한 것들을 일도사상이라고 칭하고 거기에 일무 임성진이 현무도의 자연무나 강일순의 주신공부 등을 더 추가하여 정립한 것을 일무사상이라 부른다.
- 그리고 100일 법사과정 득도공부로 용봉공부 2일로 임독맥을 타통시키고, 진액공부 3일로 중맥을 타통시키며, 신장공부 5일로 12경락을 타통시키고 당태종의 24장 중에 1명을 주인신장으로 선정하고 광무제의 28장 중에 1명을 보호신장으로 선정하며, 의통공부 5일로 하단전에 양신을 도태시키고 병이 치유되거나 병을 고치는 능력이 생기고, 허령공부 7일로 상단전에 영신을 영태시키며, 지각공부 21일로 중단전에서 양신과 영신이 서로 만나 합하여지고 진신으로 변화되며 심통이 이루어지고, 신명공부 21일로 진신이 전신에 퍼져서 돌아가고 하단전에 금단이 형성되어 대력이 발휘되고 상단전에 여의주가 형성되어 대령이 발휘되며, 옥추통공부 36일로 진신이 백회 위로 출태되어 아기양신에서 어린양신으로 소년양신으로 성숙한 어른 양신으로 만들어 득도(진신출태, 초견성, 초통, 사다함)를 이룰 수 있는 공부를 하며 후에 진행될 상등도통법방의 부주술의 비법호흡과 중등도통법방의 부주술과 하등도통법방의 부서공부의 도통맥을 다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 10법 종통관(수부관)
고판례를 강증산의 도를 이어 받은 수부(首婦)로 받든다. 수부는 남성인 증산상제와 동격으로 천지(天地)와 같이 음양 짝으로서 똑같이 10년 천지공사를 수행하고 인류구원의 도통맥을 이어 주었다고 한다. 이의 근거로서 도전에 나오는 '수부의 치마폭을 벗어나면 죽으리라'는 강증산의 말이라든가 고판례가 '일등방문공사'등의 주요 공사에 참여한 사실 등을 든다. 그리고 고판례를 후천의 태을천상원군(太乙天上元君)이라 본다. 이는 원군은 도가에서 여자신선을 호칭하는 용어이기 때문에 타 증산계열종단들과 같이 태을천상원군을 할아버지 하나님이나 강일순으로 보지 않고 어머니 땅님이자 여자 하나님인 고판례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기도주는 강일순을 모시는 주문이고 태을주는 고판례를 모시는 주문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태을주의 훔치는 천지를 부르는 소리라는 말과 훔치훔치의 낙반사유는 어머니의 네 젖꼭지를 잘 빨아야 산다는 말이라는 강일순의 말을 근거로 한다.
- 그리고 강일순의 수석 제자 김형렬의 셋째 딸인 김말순을 고판례가 밝혀줬듯이 금산사 좌우 보처 중 묘향보살의 후신으로 보고 고판례는 좌우 보처 중 법륜보살의 후신으로 봐서 강일순과 고판례와 김말순을 금산사 미륵전의 삼존불로 본다. 또한 강증산과 고판례의 법통이 수석 제자 고민환과 일월당 김순자를 거쳐 선법제자 강석봉을 통해 배승환으로 전달 되어 법방만 알면 된다고 하는 것이 태을선도 종통관의 핵심이다.
- 그리고 네 번째로 강일순과 고판례를 천지부모님으로 모시는 교단으로 등장했으며 증산도 고욤나무에서 태을선도 감나무를 접붙혀 이루어지는 법통맥이 핵심이며 기천문과 국선도와 같은 민족선도의 맥을 이은 선맥과 개운조사 해탈문의 맥을 이은 불맥, 주자의 성리대전 맥을 이은 유맥과 강일순과 고판례의 성령이 선법제자를 통해 내려준 예장의 의통맥까지 다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으며 태을선도 교단명 또한 진법교단명이라 주장하는 특징이 있다. 이는 강일순이 말한 태을도인과 고판례가 말한 선도가 합쳐 지어진 이름이 태을선도라는 것이다. 실제로 고판레는 선도교도 쓰고 태을교도 씀으로 이 둘을 합하면 태을선도가 된다.
- 또한 강일순이 한반도를 기준으로 세 줄기로 도맥을 전했다고 주장하는데 동쪽 맥은 양맥으로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신도 수가 많고 도를 아십니까로 가장 많이 알려져있는 조철제의 부산 태극도에서 박한경의 서울 대순진리회로 이어졌다고 보고, 중앙 맥은 음양맥으로 규모도 어느 정도 있고 신도 수도 어느 정도 있고 대순전경으로 어느 정도 알려져 있는 김제 증산교에서 규모도 크고 신도 수도 많고 상생방송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대전 증산도로 이어졌다고 보며, 서쪽 맥은 음맥으로 규모도 작고 신도 수도 적지만 종통맥과 진법신앙이 있는 군산 오성산 성덕리 교단에서 진법신앙과 진법수도가 있는 군산 태을선도로 종통맥이 이어졌다고 주장한다.
- (1)증산 상제님 → (2)두목 법륜 수부님 → (3)성포 수석 종도님 1대 대리두목(암행어사) → (4)일월당 수부님 2대 대리두목(암행어사) → (5)선법제자 3대 대리두목(암행어사) → (6)태을선도 1대 대표 일도자호 태상 대선사님 4대 대리두목(암행어사) → (7)태을선도 2대 대표 일무 대선사 5대 대리두목(암행어사) → (8)미래의 태을선도 3대 대표 계룡국 대두목(환생하신 남자 해도진인) → (9)미래의 대시국 태조 황제와 태후 황후(환생하신 천지부모님)
* 11법 일꾼관
강일순과 고판례가 본 천지공사의 도수와 천하사를 전세계 인류가 이룬다는 성사재인의 사상을 가지고 있다. 진천사 대인명. 그 중에서 태을선도 태을도인들은 3년 도통공부를 통해 12,000상등도통군자를 출세시켜 남북통일과 아시아통일을 이루는 개국공신이 되고 세계 1등국으로 만들고자 하며 대개벽때 해인을 용사하여 죽은 자를 살리는 의통성업과 후천 지상조화선경낙원을 건설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여긴다. 특히 8법 구원관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 가져야할 태을도인으로서의 몸가짐, 마음가짐, 행동거지, 생활 수칙등의 계율을 말한다.
- 강일순이 가르친 십계명

1. 마음을 속이지 말라.

2. 생명을 해하지 말라.

3. 인륜(人倫)을 상(傷)하게 하지 말라.

4. 사람들을 그릇 인도하지 말지라.

5. 간음하지 말라.

6. 재물을 탐하지 말라.

7. 스스로 분수를 지켜 즐거워할 줄 알라.

8. 마음 닦는 공부를 잘하라.

9. 정성스러운 마음이 잠시라도 끊어지지 않게 하라.

10. 날마다 더 널리 덕을 베풀기에 힘쓰라.

- 고판례가 내려준 십일계율

(1) 투도(偸盜)하지 말라.

(2) 간음(姦淫)하지 말라.

(3) 척(隻)짓지 말라.

(4) 시기(猜忌)하지 말라.

(5) 망언(妄言)하지 말라.

(6) 기어(綺語)하지 말라.

(7) 자만심(自慢心)을 갖지 말라.

(8) 도박(賭博)하지 말라.

(9) 무고히 살생(殺生)하지 말라.

(10) 과음(過飮)하지 말라.

(11) 자기의 허물을 생각하여 천지에 사죄하라

불교 십선업과 비슷하다.

경전과 도서[편집]

태을선도에서는 수많은 책을 펴냈다. 그 중 사회대혁명, 예장과 도통, 개벽 시간표, 신명(성령)역사와 주문수련(주문집) 4개 도서가 핵심 일도사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증산계열경전을 다 읽고 참고하여 모든 증산계열종단의 경전을 다 합친 통합경전을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다. 또한 성구 모음집을 만들 계획 또한 가지고 있다.

증산계열경전[편집]

* 동곡비서 : 강일순의 가장 맏제자인 김형렬이 지었다. 성화진경이라고도 한다.
* 증산천사공사기(甑山天師公事記) : 훗날 증산교 본부를 창교하는 이상호가 아직 보천교 고위간부이던 시절에 강증산에 대해서 쓴 편년체 자료. 내용은 짧으나 강증산의 행적을 기록한 첫 번째 기록이라는 점에서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자료다. 보천교의 공식문서기도 했으나, 차경석이 이상호 형제를 파문한 후로는 보천교에서는 증산천사공사기를 자기네 문서로 인정하지 않았다.
* 대순전경(大順典經) : 대순전경은 대법사 교주 이상호가 강일순을 직접 겪었던 증산계 8개 종단 원로들의 증언을 수집하여 만든, 강일순에 대한 사실상의 1차 사료이다. 도전[43]이든 전경[44]이든 모두 대순전경을 기본사료로 삼았다. 그러나 증언을 하지 않은 원로들이 많았고(박공우, 문공신, 안내성 등), 유교적 관점에서 강일순을 바라보고 표현을 윤색하거나 누락시킨 증언이 많아 강일순을 전적으로 파악하기엔 매우 부족한 자료이다. 판본을 찍어내면서 대법사 교주(이상호, 이청음)의 우상화나 신격화를 시도했기 때문에 오히려 초판본이 가장 정확하다는 의견도 있다. 김제시에 위치한 증산교 대법사에서 구할 수 있다. 이름 때문에 햇갈릴 수 있으나 대순진리회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 천지개벽경 : 강일순에 대한 내용을 다른 경전. 이중성이 쓴 것과 정영규가 쓴 책이 서로 제목을 같이 한다.
* 용화전경 : 태을주 뿌리 김경수(김경흔) 도인 집안 자손 김낙원이 1972년에 지은 오동정 교단의 경전. 강일순의 첫째 부인 정치순에 대한 내용이 많고 강일순을 미륵세존 관점에서 쓴 경전.
* 중화경(中和經) : 강일순에 대한 일반적인 내용의 경전과는 성향이 좀 다르다. 유교적인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강일순이 남긴게 맞는지 저자가 누구인지에 논쟁이 있다. 증산법종교에서 구할 수 있다.
* 현무경 : 강일순이 남긴 부적과 글의 모음집. 홍범초 교수의 범증산교사에 따르면 제자 안내성이 소유하고 있었으나 차경석에게 들어갔다고 한다. 또한 현무경파에서는 고판례가 소유하고 있다가 차경석이 보는 앞에서 장기준이 열쇠를 열어 최초로 꺼냈다고 주장 한다.
* 화은당실기(華恩堂實記) : 강순임이 세운 증산법종교에서 1960년에 발행한 기록. 화은당(華恩堂)은 강순임의 별호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강순임의 행적을 중심으로 엮은 기록이라, 여기에도 상당부분 강증산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강일순의 무남독녀 화은당 강순임의 진술을 바탕으로 작성이 되어있는 책.
* 본주대경전 : 인정상관 또는 본주, 여처자로 불리는 여원월의 일대기와 10년 지천공사 내용을 쓴 인정상관 교단 경전. 강일순의 가르침과 다른 부분이 있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경전. 지구의 주인 관세음보살 관점에서 봐야 이해하기가 쉽다.
* 증산도 도전 :  대전에 있는 증산도 교단에서 편찬한 통합경전. 그러나 모든 내용을 다 실고 있지 않고 입맛에 맞게 골랐으며 왜곡, 조작, 날조, 짜깁기가 되어 있는 등의 문제점이 있다. 그렇지만 김호연 종도가 증언한 내용을 실고 있는 유일한 경전이기도 하다.
* 전경(典經)  : 대순진리회의 경전. 이상호, 이정립이 쓴 대순전경과 99%의 내용이 일치한다. 대순진리회 참조
* 무극진경, 태극진경 : 태극도의 경전. 무극진경은 전경과 내용이 같고 태극진경은 도주 조철제를 신격화하여 쓴 경전이다.
* 범증산교사 : 불의의 사고로 작고한 홍범초 교수의 역작. 당시에도 많은 교파가 난립하여 있었는데, 답사와 고증으로 많은 증산교단의 역사를 정립하였다.
* 고부인신정기 : 이상호, 이정립 형제가 쓴 고판례 일대기.
* 선도신정경 : 천지개벽경을 쓴 증산교 정영규가 쓴 고판례 일대기. 이상호가 쓴 고부인신정기에 나오지 않는 내용들이 다수 실려 있다.
* 선정원경 : 수석 제자 고민환이 쓴 고판례 일대기.
* 고후불전 : 고판례 일대기.
* 태을비결(太乙秘訣) : 선법제자가 강일순과 고판례의 성령으로부터 받아내린 말씀들이 비결서 형식으로 적혀 있는 태을선도 비결서.

의통 상, 하[편집]

도서 의통 상
도서 의통 하

질병 치료 방법이 종합 정리 되어 있는 책. 배승환은 의통의 의는 몸을 고칠 의라고 해석하며 통은 실마리 통으로 마음을 고치는 통이라 해석한다.

사회대혁명[편집]

사회대혁명

배승환이 증산사상은 결론만 있지 구체적인 실천 과정이 없다고 판단하여 신천지 건설의 구체적 대안을 제시한 책

예장과 도통[편집]

1999년 선법제자와의 만남과 2001년까지 본 천지신행 내용과 예장의 풀이와 뜻이 담겨 있고 도통할 수 있는 진법수도 법방이 종합 정리되어 있는 책

개벽 시간표[편집]

배승환과 임성진이 모든 증산계열경전을 참고하여 종합 정리한 개벽 시간표. 그 밖에 태을비결 해석과 도학이 실려 있고 의통인패 모음이 실려 있으며 동서양 예언 등이 실려 있다.

신명(성령)역사와 주문수련[편집]

태을선도 주문집

태을선도 주문집. 도교 주문을 비롯해 여러 증산계열 종단의 주문과 선법제자로부터 받은 주문과 배승환이 경전 내용을 주문화 시킨 것 등 100여개의 주문과 현무경과 현무경 해석이 실려있는 종합 주문집. 일무 임성진이 교정작업에 참여 했다.

기타[편집]

* 수도에서 득도까지(1994. 9) : 선천 유불선 수련법을 종합 정리한 책.
* 선약 상, 하(1995. 9) : 질병 치료에 필요한 약재에 대해 종합 정리되어 있는 책.
* 21세기 신문명과 나를 찾아서 수도(2001. 7) : 선법제자에게 받은 태을비결이 처음으로 실려 있으며 여러가지 주문도 정리 되어 있는 책.
* 도통(2002. 2) : 배승환이 가장 아끼는 책. 이 책을 쓰기 위해 집중하느라 머리털이 하얘졌다는 얘기가 있다. 도통법방에 대해 종합 정리되어 있는 책.
* 신명역사와 주문수련(2002. 10) : 초판 주문집.
* 종교통일 원리와 종교혁명의 당위성(2003. 4) : 제목 그대로 종교통일 원리와 유불선 기독교의 모순과 한계를 비판한 내용의 책.
* 예장(2003. 12) : 예장과 도통 초판본이라 보면 된다.
* 도술上(2005. 10) : 선천 수련법 총 정리 1탄
* 도술中(2009. 9) : 선천 수련법 총 정리 2탄
* 도술下(새기운의 새정신 일도사상, 2011. 7) : 일도사상의 진법수도가 총정리 되어 있는 책.
* 신명(성령)역사와 주문수련(복록성경신, 수명성경신, 천치성경신, 2012. 12) : 주문집 재판본.
* 개벽의 시간표와 개벽의 실상(시절변화를 알아야 성공한다, 2012. 12) : 개벽시간표 초판본. 문제의 시행착오 내용이 실려 있다.
* 진법수도와 성숙한 사회(소책자 증보판 2014. 12) : 배승환이 쓴 여러 책의 내용이 짧막하게 되어 있는 소책자. 일무 임성진이 교정작업에 참여했다. 책을 주문하면 이 소책자를 무료로 동봉하여 보내준다.
* 그 밖에 다양한 소책자들

신앙문화[편집]

천지부모님 영정

고판례가 채용신 화백을 통해 그리게 한 강일순의 초상화를 영정으로 걸어놓고 선법제자가 전달해준 예장 중 옥황상제령을 신단에 붙여놓고 청수를 모시고 촛불을 켜고 향을 사르고 사배심고하면서 속으로 심고문을 외우고 기도한 후 예장 중 대팔문경과 칙령도통신명, 천지성사령을 치고 배치한 후 태을선도 주문집에 나온 주문을 가지고 주문수행과 선법제자가 전달해준 도학[45]에 나오는 호흡수행을 한 후 배치한 예장을 길게 접어 밖으로 가지고 나와 태양을 보면서 태워 소지시키고 또한 육체수련도 병행하여 모든 법을 합하여 닦는 진법수도 신앙문화가 있다.

그리고 교주신앙을 하지 않고 스승과 제자관계로 모시는 문화가 있다. 잘 먹으면서 진법수도를 해야 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진법수도를 해야 되는 문화가 있다. 기념일과 절기에 치성을 드리는 문화가 있다. 예장값 300만원을 가능한 일시불로 내고 불가능하면 분할납부하는 성금문화가 있다. 제물을 올리고 입도식을 하여 천지에 서약하는 문화가 있으며 진법수도를 전수받아 스스로 닦는 문화가 있다. 배승환이 쓴 책과 모든 증산계열종단 경전을 다 읽어보라는 종합공부 문화가 있다. 종합 대학의 성질과 좀더 심화된 대학원과 성향이 비슷하다 할 수 있다.

정기모임과 치성[편집]

태을선도 치성 동영상 클릭

태을선도는 한달에 두 번 정도 격주로 주말에 정기 모임을 갖고 합동 수도를 한다. 앞으로 지어질 용화성전에서 봉행되는 치성은 다음과 같다.

태을선도 8대치성
정삼시무치성 법륜수부님
탄강절
증산상제님
화천절[46]
증산상제님
도통절
증산상제님
탄강절
법륜수부님
화천절
증산상제님
재생신절
동지설치성
음력 1.3 음력 3.26 음력 6.24 음력 7.7 음력 9.19 음력 10.5 양력 12.26 매년 동지

치성 종류

① 기념일

1. 상제님 탄강절 1871년 신미 음 9月 19日 子時(18日밤 11시)

2. 상제님 화천절 1909년 기유 음 6月 24日 巳時

3. 지고후비님 탄강절 1880년 경진 음 3月 26日 丑時

4. 지고후비님 화천절 1935년 을해 음 10月 5日 亥時(5日밤 10시)

5. 정사모님 탄강절 1874년 갑술 음 1月 29日

6. 정사모님 선화절 1928년 무진 음 8月 15日

7. 일월당님 탄강절 1920년 경신 음 4月 19日

8. 일월당님 선화절 1996년 병자 음 6月 22日 卯時

9. 인정상관님 탄강절 1887년 정해 음 3月 19日

10. 인정상관님 선화절 1954년 갑오 음 12月 23日

11. 화은당 탄강절 1904년 갑진 음 正月 15日 子時

12. 화은당 선화절 1959년 기해 음 4月 1日 未時

13. 김호연 탄강절 1897년 정유 음 10月 20日

14. 김호연 선화절 1992년 임신 음 9月 6日 卯時

15. 김후비님 탄강절 1890년 경인 음 10月 8日

16. 김후비님 선화절 1911년 신해 음 9月 25日

17. 일도자호 태상 대선사님 탄강절 1953년 계사 음 4月 18日 子時

18. 일도자호 태상 대선사님 선화절 2019년 기해 음 3月 26日 子時

19. 증산 상제님 재생신 강탄일 양 12月 26日 子時

20. 증산 미륵존불 출세일 매해 음 4月 8日과 가까운 절기


② 6대 정성일

1. 음력 정월 3일 : 천지 대치성

2. 신농씨 제사일(음 6월 15일) : 의학, 농업, 건강사업 종사자 및 의통, 건강기원

3. 칠월칠석(음 7월 7일) 도통절 : 도통, 진강, 건강, 제앙구복

4. 백중(음 7월 15일) : 백발백중 목표달성(사업, 연구, 학업, 조상 천도, 기타 각종 소원 성취)

5. 중양절(음 9월 9일) : 10단계 법사과정 100일 득도공부 입공·결공치성, 중천신 천도, 성지순례와 성묘참배

6. 고난절(음 12월 26일) : 금식, 대속, 백의군왕 백의장상


③ 8절후

1. 동지(설날) : 앞으로 원리가 정립되면 동지가 설이 된다.

2. 입춘, 3. 춘분, 4. 입하, 5. 하지, 6. 입추, 7. 추분, 8. 입동


④ 납제

동지로부터 세 번째 미일(未日)인 납일에 납향을 올린다.

납제는 임금이 납일에 올리는 제향으로 백신에게 그해의 농사 작황과 큰일들을 고하고 백성과 국가의 안녕을 기원한다.

증산 상제님께서 소멸음해부에 전하는 납향(臘享)은 인간으로 태어나 그동안 지은 죄와 허물을 상제님과 천지대신명께 고하고 참회하므로 용서를 구하는 의식이다. 소멸음해부의 만신(萬神)이 음해를 소멸하기 위해서는 천지부모님께 그동안에 지은 죄와 허물을 진실하게 참회하므로 천지부모님께 용서를 구하고 용서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알아야 한다.


⑤ 천도식

직선조, 외선조, 처선조, 처외선조들을 천상 자미원 도솔천(대라천) 옥경으로의 천도를 천지부모님께 기도발원 드려서 조상해원과 보은을 실천하고 자손된 도리를 다하는 예식 치성이다.

자손이 조상 천도식을 희망하여 계획하면 조상이 자손 천도비 마련을 위해 도와주고 힘써주어 천도비가 들어와 준비 된다.

또한 천도식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조상의 역사와 내력, 숨은 사연들이 밝혀지고 드러나게 되어 뿌리를 바르게 알게 되며 천도식 기도문에 들어가 조상 해원이 된다.

천도식 후에는 조상의 영향력이 극도로 강력하게 작용한다.


⑥ 입도식

태을선도에 정식적으로 입도하는 예식.

태을선도 입도시 우주에서 가장 높으신 천지부모님을 모실 수 있는 정식 자격이 주어지며 천지부모님의 천진(진영), 모든 전염병과 질병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호신부와 건물을 보호하는 호가부, 모든 음해를 소멸시키는 소멸음해부 스티커를 하사 받을 수 있다.


⑦ 정기치성

매주 2회, 수요일 저녁과 일요일 오전에 모여 함께 봉청수를 모시고 천지부모님 전에 사배심고를 올린 후 합동 주문수행을 하고 집정관님의 강훈(훈시)과 공지사항 전달, 점심식사 및 회의 등을 통해 친목을 다지는 예식.

청수 문화[편집]

물 떠놓고 기도하던 한민족 특유의 정안수 문화를 그대로 수용했다. 각 법당 및 태을선도 신도들의 가정의 가가도장에는 반드시 청수를 담는 그릇이 비치되어 있다.

사배심고[편집]

증산교 관련 기록에는 4배에 관한 기록이 여러군데 나온다. 증산사상에 따르면 대우주 통치자 하느님에게는 4배를 한다고 한다. 그냥 절 하는게 아니라 하늘기운과 땅기운을 잡아당겨 내 몸에 실는 반천무지(攀天撫地) 절법으로 네 번 절하면서 네 번째 절할때 부복심고를 한다. 다만, 각 교단마다 사배심고의 방식이 조금씩 다르고 증산도는 오배심고를 하는 오점이 있다.

태을선도 대학교[편집]

매달 한번씩 태을선도에 입도한 태을도인들을 대상으로 1박 2일의 일정으로 실시되는 집체교육이다. 2014~2017년 중반까지는 매달 두 번씩 소집교육을 실시했으나, 2017년에 일무 임성진이 퇴출된 이후로는 거의 시행되고 있지 않다가 2019년에 일무 임성진이 태을선도 대표가 되어 2020년 1월부터 매달 첫째주 주말마다 다시 시행 예정이라고 한다. 강일순의 대학교 도수는 김경학 종도가 받았고 김경학 종도는 순천도 현무경파를 창당한 장기준에게 전해줬다. 고로 현무경(玄武經) 공부가 대학교 도수라 볼 수 있으며 김경학 종도가 자신의 노모가 죽었으나 태을주를 정성껏 간절하게 외워서 되살아남으로 이로부터 태을주를 가지고 포교를 해서 도세가 크게 왕성해졌기 때문에 태을주 주문수행 또한 대학교 공부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태을선도 대학교(태대) 일정 시간표

매월 첫째주 토~일요일

토요일

12:00~ - 도착

12:00~13:00 - 점심식사 및 휴식

13:00~14:00 - 일도자호 태상 대선사님의 태을선도 소개 영상 시청

14:00~15:00 - 일무 대선사님의 태을선도 소개와 11성도관법 핵심 설도

15:00~16:00 - 1. 상제관 2. 수부관 교육

16:00~17:00 - 3. 우주관 교육

17:00~18:00 - 4. 인간관 5. 신관 교육

18:00~19:00 - 일무 대선사님의 주도로 선술 이론 강의 및 체험(준비운동, 사성제수련, 비법호흡)

19:00~20:00 - 저녁식사 및 휴식

20:00~21:00 - 일무 대선사님의 주도로 선악 이론 강의 및 체험(주문수행, 주신공부)

21:00~22:00 - 6. 천지공사관 교육

22:00~23:00 - 7. 후천개벽관 교육

23:00~06:00 - 자시기도 및 철야수도 또는 취침


일요일

06:00~07:00 - 기상 및 선술체험(준비운동, 중기단법, 기신법, 정리운동)

07:00~08:00 - 아침식사 및 휴식

08:00~10:00 - 선학 이론 및 체험(현무경 공부)

10:00~12:00 - 선학 이론 및 체험(예장 공부)

12:00~13:00 - 점심식사 및 휴식

13:00~14:00 - 붉은장닭 판밖소식 진법강의 1~17강 시리즈 요약 영상 시청

14:00~15:00 - 일무 대선사님의 임명장 수여와 포상금 하사 및 설도 군령

15:00~16:00 - 8. 구원관 교육

16:00~17:00 - 9. 진법수도관 교육

17:00~18:00 - 10. 도맥관 교육

18:00~19:00 - 11. 일꾼관 교육

19:00~ - 귀가

쾌지나 칭칭 나네[편집]

배승환이 좋아하는 노래. 이 노래를 들으면 신명이 난다고 한다. 그래서 태을선도 대표 노래로 태을선도 카페 배경음악으로 설정되어 있다.

포덕 및 활동[편집]

도생포덕, 강의포덕[편집]

태을선도의 오프라인 포덕법은 항상 책을 중심으로 한다. 증산교인들 위주로 책을 전해주며 포덕한다. 또한 수도인 모임에 초청되어 강의해주며 포덕한다. 배승환은 여러 증산계열교단 교인들과 친분이 좋아 왕래가 자유로워 여러 교단(오성산 성덕리 교단, 용화동 증산교, 인정상관 교단, 순천도 현무경파, 증산법종교, 오동정교단, 대순진리회 반대파 등)의 치성을 참석하여 도담을 나누고 책을 홍보하는 방법으로 포덕을 한다. 또한 서울에서 사업하거나 네트워크 다단계하는 사람들 인맥이 많이 있어 그런 모임에 참석해서 알리는 방법으로 포덕하기도 한다. 그리고 여러 절의 스님들과도 친분이 있어서 찾아가 도담을 나누며 포덕하기도 한다.

홍보용 책으로는 사회대혁명, 개벽시간표, 신명(성령)역사와 주문수련 주문집 등이다.

인터넷 포덕[편집]

2000년대 초 이후 다음카페를 활용한 포교법이다. 주로 수련과 건강 관련 카페를 개설했는데, 대표적으로 신선도 예장도통(개명장), 태을선도, 암을 이기는 의통수련방, 도통판(양신출태) 등을 태을선도에서 만들었다.

카페 개설 후 주로 다음 4가지 방법을 많이 썼는데, 스마트폰이 없던 당시에는 아주 좋은 방법이었다.

1. 수련 체험기를 공유하며 수련에 호기심과 흥미를 느끼도록 유도해 포덕하는 방법

2. 질병 완치 사례를 공유하며 수련에 호기심과 흥미를 느끼도록 유도해 포덕하는 방법

3. 다음카페 좌하단에 표시된 현재 접속자와 1:1 채팅을 해서 관심사를 묻고 만남을 유도해 포덕하는 방법

4. 어느 교단에도 속해 있지 않고 개인신앙하고 있는 증산교인들에게 책 구입을 종용하며 증산사상의 원형신앙과 태을선도 일도사상을 알려 포덕하는 방법

그러나 이런 쪽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소수라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지 않는 단점이 있다.

그리고 일무 임성진이 운영하고 있는 참사람을 찾습니다!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미스테리에 예언, 신비주의에 관심이 많고 어느 교단에도 속해 있지 않은 증산교인들이 많이 연락이 와서 배승환에게 연결시켜주어 입도를 하게 하여 포덕하는 방법을 써서 카페보다 효율성이 좋은 블로그를 통해 태을선도가 좀 더 많이 온라인 상에서 알려지고 증산교인들에게도 많이 알려지게 됐다.

그리고 일무가 증산교인들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댓글을 남기거나 카톡을 주고 받아서 포덕하거나 증산참신앙 사이트나 증산법륜도 사이트, 옥단소 사이트[47] 등의 증산교인들이 운영하는 사이트에 태을선도 일도사상과 일무사상을 홍보하여 노이즈마케팅을 이용한 포덕을 하기도 한다.

카카오톡 포덕[편집]

일무 임성진이 카카오톡 미스테리 오픈방을 운영하여 거기에서 진법수도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배승환에게 연결시켜 주어 포덕한 방식과 증산사상을 아는 모든 사람들을 모아놓은 단톡방을 통해 태을선도 일도사상과 일무사상을 홍보해 관심을 가지게 한 후 책을 구입해서 읽어보기를 권장한 후 배승환에게 연결시켜주어 입도하여 진법수도를 전수받게 한 포덕 방법.

기타 활동[편집]

태을선도 유튜브, 태을선도 카카오tv 유튜브 태을선도 채널과 카카오tv 태을선도 채널의 진법강의와 진법수도 영상을 통해 포덕한다.

주요 교단 목록 및 관계[편집]

증산계열종단 도맥
오선위기도

증산 계열 교단은 약 70여개에 이르는데 그 중 강일순과 고판례를 천지부모님으로 모시는 교단들과는 아주 친밀한 관계에 있다.

현재 대부분의 증산계열 교단은 몰락한 상태이다. 상당수의 교단이 포교에 적극적이지 않은데다 신앙인들 거의 다 고령이고 가족끼리 믿고 있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현재까지 명맥이 이어지는 교단은 대략 다음과 같다.

* 증산도

1974년에 대법사 증산교라는 교명으로 창교되었으나 1984년에 '증산도'라는 교명을 확정하였다. 1980-90년대에 유행한 민족주의에 편승하여 역사 바로찾기 운동을 하는 등 포교와 연결지어 활용하여 교세가 빠르게 확장되었다.[48] 이러한 포교전략은 특히 대학생들에게 먹혀서 전국 대학 동아리방에 증산도 학생회가 폭넓게 조직되기도 하였는데, 이때 입교한 대학생들이 나중에 증산도의 중심적인 세대가 되었다. 케이블 방송국(상생방송)을 개국하여 태상종도사 운산 안세찬, 종도사 경전 안중건의 환단고기 북콘서트 등 다양한 컨텐츠를 포교에 활용한다. 증산계통 종교들 중 가장 이론적인 교리 정립에 심혈을 기울인 단체로 평가받는다. 교단에서는 자기네 경전 '도전'이 기존 다른 증산종교들의 경전 내용에 자신들이 답사하고 확인한 내용까지 더하여 내용이 가장 정확하고 풍부하다고 선전하며, 외국어로 번역도 하였다.[49] 산하 출판사 상생출판은 강일순의 사상이나 관련도서, 그리고 환단고기 등을 발간한다. 민족주의를 적극 받아들여 환단고기유사역사학적 주장이 교리의 일부나 다름없다. 본부는 대전광역시 한밭대로에 있는 태을궁 증산도교육문화회관이다. 2012년에 안세찬이 죽고 형제의 난이 일어나고 노상균과 이석남이 주도하여 증산참신앙을 만들어 증산도의 내부 비리와 문제점들을 다 까발리고 홍성렬 교수 부부 살인사건이 탄로 나고 각종 협박, 겁박 사건과 성추행, 성추문 의혹과 시한부 개벽설, 성금갈취, 마패사기, 안세찬 신격화 등등 온갖 대순진리회보다 더 한 사이비 행각 때문에 현재 많이 쇠퇴된 상태이고 내리막 길을 가고 있는 추세며 옥단소 마달숙과 소송 중에 있는 상태다. 홈페이지


* 증산법종교

증산과 첫째 부인인 정씨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유일한 친혈육 강순임 여사가 중심이 되어 1937년에 창교된 단체이다. 그러나 강일순은 생전에 첫째 부인과 사이가 극도로 좋지 않았고(정씨부인이 문제였다. 걸핏하면 증산에게 투정을 부리고 증산의 어머니에게 막대하고...한마디로 갖은 사고를 다 쳤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강일순이 수제자 김형렬에게 박처함을 알리고 오라 하나, 김형렬은 일부러 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강일순은 정씨부인에게 생전 내내 냉정하게 대한다. 아무튼 강일순이 숨을 거둔 후 시신을 둘러싸고 다툼과 문제가 많았는데, 강순임 생전에 증산법종교의 신앙대상이자 자기 아버지기도 한 강일순의 유해를 증산법종교 내부로 이장하였다. 중화경, 화은당실기, 증산법종교 60년사 등 다양한 서적들을 간행하였다. 증산법종교의 건물은 시대의 양식을 파악하는 데 중요하다는 이유로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여러 증산종교인들이 강일순의 무덤에 참배하고 증산미륵존불상을 보고자 증산법종교 중앙본부로 성지순례를 자주 온다. 강순임의 남편 김병철의 아들 김삼일이 세운 청도대향원은 증산법종교에서 분파되었다. 홈페이지


* 순천도

강일순이 부적 등을 그려 남겼다는 현무경(玄武經)을 중심으로 하는 파. 장기준(張基準)이라는 사람이 강일순의 수제자 김형렬의 밑에서 있었는데 김형렬의 예언 등이 실패하자 크게 실망하여 이탈하였다. 그 후 서전서문 만독으로 득도하고 차경석 집에서 필사한 현무경을 바탕으로 1920년에 순천도를 창교하였다. 지금도 종교단체로 운영되며 신도들은 직접 현무경 일기를 치며 공부한다. 다른 증산계열 종교와 달리 강일순의 본의가 현무경에 있다 하여 주문과 현무경을 병행한다. 1922년에 장기준이 사망한 뒤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남양리 법방이 본부고 부산법방의 대산장과 공산장이 유튜브와 카페를 통해 알리고 있다.


* 모악교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출생한 여처자(余處子, 1887-1954)의 교단을 흔히 일컫는다.[50] 차경석이 황석산에서 제사를 올릴 적에 자리에 참석하는 등 보천교와 관계가 깊어서 보천교도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여처자가 보천교에 입교한 적은 없다고 한다. 차경석에게 청혼받았으나 거절했으며, 1945~1954년까지 10년 지천공사를 보면서 여러 기행과 신기로 추종자들을 많이 모았다고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6.25 전쟁을 예측했다는 일화가 있다. 모악교에서는 여처자를 본주(本主), 인정상관(仁正上觀)이라고 부른다. 증산교 대법사와 마찬가지로 용화동에 본부가 있다. 태을선도에서는 인정상관을 관세음보살의 후신으로보고 남원무당으로 환생한 여자진인[51]으로서 해도진인과 영적인 반려자 관계에 있다고 본다.


* 오성산 성덕리 교단

강일순의 셋째 부인 고판례는 오성산 성덕리에 사는 수제자 고민환 집에 1933년에 와서 1935년에 사망하였다. 1936년부터 1996년까지는 고민환의 큰며느리 일월당 김순자(金純子, 1920-1996)가 고판례를 보고 모인 신자 집단을 이끌었으며, 지금은 고민환의 손자가 이끈다.


* 대법사 증산교

청음(靑陰) 이상호(李祥昊, 1888-1966), 남주(南舟) 이정립(李正立, 1895-1968) 형제가 1945년 광복 후 세운 교단. 이상호는 한학에 통달한 사람이었고 이정립은 일본유학까지 한 지식인이었다. 본디 보천교의 신앙인으로서 월간지 보광을 발간하고 시대일보를 인수하려고 노력하였다. 이후 강일순의 수제자 김형렬 등을 만나기도 하였다. 형제가 강일순의 둘째 부인 고판례를 모시고 동화교를 창립하였으나, 일제시대에 탄압을 받아 해산하였다. 광복 후에 증산교 대법사를 창립하였다. 이상호 이정립 형제는 증산계열 종교단체에 필요한 여러 책을 다수 집필하였다. 증산계열의 대표적인 경전인 대순전경을 비롯하여 대순전경의 전신인 증산천사공사기를 비롯 고부인신정기(천후신정기), 대순철학, 증산교사 등 여러 저서를 남겨 강일순의 흔적을 후대에 전했다. 범증산교사를 작성한 홍성렬(범초)교수가 증산교 대법사에서 종령을 역임하였고 이중성의 천지개벽경과 다른 천지개벽경과 선도신정경을 발간한 정영규 선생도 이곳에서 종령을 역임하였다. 아직도 신앙인들이 있어 신앙을 계속 이어간다. 본부는 김제시 금산면 용화동에 있는데, 통천궁을 중심건물로 삼고, 강일순이 박공우에게 전해주었다는 의통인패의 원본을 보관한다. 증산도 신도가 홍성열을 살해한 사실이 밝혀진 현재, 서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대순진리회보다 더한 원수라고 봐도 무방하다.


* 대순진리회 계통[52]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증산계열 종교로서 조철제가 사망한 1969년에 박한경에 의해 창교되었다. 증산계통 종교에서는 신도수가 가장 많다. 대한민국 인구주택총조사의 종교 항목에서 명시된 8개 종교명에 대순진리회가 있을 정도였다. 즉, 대순진리회 하나만으로도 통계상 대한민국 8대 종교에 해당한다. 1대 교주 박한경 도전이 사망한 뒤 현재 수십 개 방면으로 분열되었는데, 심지어 분열된 방면들도 증산계통 종교 중에서는 규모가 상당할 정도이다. 증산도 신자들도 교리서 표절이나[53] 사칭 등 이유로 대순진리회를 매우 싫어한다. 대순진리회에서는 사회복지, 교육사업 등 다양한 사회사업을 하는데, 대표적으로 대진대학교와 상생복지회 등이 있다.


* 진혜원(종교)

유산스님이 이끌고 있는 미륵불신앙 성향의 단체. 증산참신앙에서 마패사건을 계기로 알려지게 됐다.


* 증산진법회

배용덕이 만든 종교. 증산 사상을 학술적으로 연구를 많이 한 종교이며 증산계열 종단 통합 운동을 시도한 단체이다.


* 태을도

증산도를 탈퇴한 이훈오(노상균과 고등학교 동창 사이)가 1998년에 김제 구성산 기룡리에서 태을도를 창교하였다. 단주의 후신이라 주장하며 충(忠)자 돌림의 제자들과 증산사상에 대해서 토의하고 토론하는 형식과 태을주 수행 중심으로 운영한다. 서울에 본부가 있다. 다음 카페


* 풍류도

증산도를 탈퇴한 김준걸이 배경환의 삼신대도를 근간으로 2000년에 만든 음양쌍도태 수련 단체.


* 천지조화정부

증산도를 다니다 탈퇴한 강석봉(1971-)이 2009년에 세운 단체. 다음 카페


* 현무경미륵천도회

순천도 부산 법방이며 대산 박정수와 공산 이보득이 주가되어 운영되며 유튜브에 각각 채널을 운영하면서 순천도 본부 남양리 법방에는 없는 용담도와 황극력[54]을 만들어 가르치고 있다. 다음 카페


* 미륵을 기다리는 카페

2014년 4월 4일에 개설한 다음 카페. 카페지기는 강증산이라는 닉넴을 쓰고 운영자는 김형렬, 김자현, 김갑칠의 닉넴을 쓴다. 환생한 강일순이 강원도 동해시에 있다고 주장한다. 카페지기가 2014년 5월 30일에 증산참신앙 사이트에 글을 올렸다가 퇴출 당한바 있다. 미륵을 기다리는 카페


* 증산법륜도

증산참신앙 노상균과의 불화로 떨어져나와 2016년에 만든 단체. 대구에 본부가 있다. 증산법륜도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네이버 밴드에 '범증산도생방' 등을 운영하면서 오직 강일순과 고판례만을 신앙하고 '대두목 교주신앙' 등을 경계한다. 각 지역에 도방이 있다. 홈페이지


* 증산선도

증산도에서 나온 노상균과 이석남 등이 2013년에 만든 구 증산참신앙으로 대전에 본부가 있다. 2017년 3월에 증산선도라 개명했으며 2017년 6월에 노상균은 증산선도 대표직을 사퇴한 상태이다. 홈페이지



현대에 들어 새로운 종단을 형성하기도 하지만, 증산계통 종교인들이 종단을 만들지 않고 개인적으로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공부방' 형식으로 운영하는 곳들도 많다. 대표적인 곳이 '천부경과 증산천지공사'를 집필한 현암 석명수가 전라북도 군산시 방축도에서 운영하는 공부방이며, 이 밖에도 여러 작은 공부방들이 있다.

비판 및 사건사고[편집]

시행착오 개벽설[편집]

강일순은 구체적인 개벽시기를 말하지 않고 갑을로 기두하고 무기로 굽이친다는 말처럼 천간만 따로 말하거나 사오미 개명, 진사에 성인출 오미의 낙당당과 같이 지지만 따로 말하거나 그랬다. 그렇지만 유일하게 천간과 지지를 같이 말한게 있는게 그게 병자정축 1996~1997년이다. 그걸 기준점으로 삼아 40년이 넘지 않는다고 배승환은 해석한다. 그러나 2013년에 노상균이 찾아왔을때 2014년을 갑을로 기두하는 병목운수가 온다고 시행착오[55]를 한 바가 있다. 그러나 2014년 5월 말 소만 절기가 지나도 천연두가 터지지 않자 10년 후 2024년에 온다고 연장한 바 있다.

자민족 중심주의[편집]

교리적 특징으로는 민족주의를 강조하고 세계사적 흐름에서 한국의 역할을 강조한다.

극도의 민족주의 때문에 당연한 귀결로 극도의 선민사상에 빠져 다른 민족과 문화를 사실상 열등하다는 결론으로 유도한다.

우주의 질서를 4계절에 비유하여 현재는 여름의 말기에 해당하고, 곧 가을로 변하는 대변혁이 일어나는데 이를 개벽이라 하며 개벽의 때에 죽는 사람들을 살리자는 주장을 핵심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은 한국이 개벽 이후 세계에서 정신문명의 최선진국이 된다고 주장하며, 개벽 이후 오는 우주의 가을, 즉 후천세계에서는 5만 년간 풍요를 누린다고 말한다.

도전 5편 11장에 "우리나라 문명을 세계에서 배워 가리라"라는 구절이 있지만, 같은 도전 5편 332장 내용인

"앞세상에는 족속에 따라 나라를 세우리라." 하시고 다시 여쭈기를 "저희들이 성도(成道)하는 날에는 만국언어에 능통하게 됩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어찌 능통하지 못하겠느냐." 하시니라.

...를 들어 꼭 민족주의를 표방하지는 않는다고 말하는 증산교인도 있다. 하지만 저 구절은 탈민족주의적 관점 보다는 '도통의 효력'을 말한 것이다.

타종교 및 문화와의 관계[편집]

이들의 교리 의의는 쉽게말해 불교, 기독교 등 기존 종교에 대해서는 그들은 그 시대적 역할을 다 하였고, 이젠 증산사상이 그들 교리의 정수를 거둬서 새시대의 참 진리를 내놓았다는 입장이다. 더하자면 당신들 종교가 미개한건 아니지만 우리 종교야말로 인류를 진보시킬 단하나의 진리이고 정의이며 이건 하늘의 민족인 한국인이 중심이 되어야 된다는 의미라는 가치관으로 공개적으로 기존 종교를 비판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인터넷상에서 증산교인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기존 종교인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특히, 선천의 성자들도 상제인 증산 강일순이 내려보냈고, 그들이 편 가르침이 기존 종교들이기에 기존 종교들과 그 종교들의 성자들의 기적이나 구원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고는 하지만, 결국 자신들의 종교의 근거가 되는 성자를 증산 강일순이 내려보냈다는 이야기가 되므로 유일신교인 기독교는 당연하며, 불교 등도 기분이 나쁜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증산사상이 킹왕짱이란 것이지 다른 민족과 문화가 열등하다고 보는 것은 아니고, 다만 한민족이 세계 문화의 시원민족이고 전세계에서 각기 발전한 모든 문화를 증산사상이 모조리 흡수통일한다는 것'이라고 항변하지만, 애초에 그러한 생각 자체가 다른 민족과 문화가 한민족보다 열등하다는 말과 같은 소리며, 국수주의 사상이기도 하다.

민족주의가 발현할 시기인 일제강점기를 거친 탓에 이렇게 되었다는 변명도 있지만 바로 아래 문단에 나오듯 일제 강점기가 증산 강일순의 명에 의한 것이라고 아예 도전에 명시돼 있다.

근본적으로 혈통에 따른 민족주의를 주장한다. 즉 후손으로서 자기 조상의 영혼과 자기 민족신을 제사를 지내어 받들고 위하지 않으면 환부역조(換父逆祖: 아비를 바꾸고 조상을 거스름)이며, 조상신과 민족신이 이러한 패륜 때문에 노하여 자손을 돕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들이 가장 먼저 하는 말이 왜 다른나라의 종교를 믿으며 다른 민족의 신을 섬기냐는 말인데 되려 이런 작자들의 포부는 전세계인들을 우리 문화에 동화하게 만들며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한국인들이 세계를 리더하고 이끌어야 하며 이건 하늘의 선택을 받은 우리의 임무라는 주장이다.

일제강점기에 대한 해석[편집]

증산도 도전에 "조선 국운을 일본에게 맡기려면 명치(明治)를 불러와야 하리니 이제 명치의 혼을 부르리라."라는 구절이 있는걸 보면 흠좀무. 신이 계시는데 나라는 개털리는 상황을 설명하려 한 거겠지만 현실은? 증산의 명령이었다. 그 이유는?

>"일본 사람이 천지의 일꾼이 되어 조선에 와서 남의 집을 사는데 부지런히 일을 하고는 필경 품삯도 받지 못하고 빈주먹으로 돌아가리라." "조선은 원래 일본을 지도하던 선생국이었나니 배은망덕은 신도에서 허락하지 않으므로 저희들에게 일시의 영유는 될지언정 영원히 영유하지는 못하리라."

라고 증산이 말했다는 도전을 인용해 해명한다. 증산 신앙인들 대부분은 독립운동과 연관이 있었거나 일제가 반드시 몰락한다고 자손들에게 가르쳤다는 것이 증산사상의 입장. 일본 통치를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최악보다는 차악이라는 것.

주술성[편집]

민족주의 감정과 함께 주술력을 강조한다. 태을주와 운장주는 증산종교에서 두루 쓰는 주문이다. 두 주문의 주술력을 강조한다. 물론 증산교인들은 저 두 주문의 힘이 전세계 모든 종교에서 사용하는 어떤 주문이나 진언과 만트라, 기 수련이나 요가 등 보다도 바르고 순정하며 강력하고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민족선도[편집]

민족선도 수련인 육체수련과 단전호흡을 증산사상 안에 포함시켜야 되는가 마는가로 옥단소 사이트에서는 시시비비 상쟁하고 있다. 과연 국선도와 기천문이 사문에 없는 법일까? 포함되는 법일까?

비판적인 입장에서는 강일순이 제자들에게 단전호흡을 가르치지 않고 육체수련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없는 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3년간 버린 상등도통능력[편집]

만일 버리지 않았다면? 교주노름 했을까.

재생신의 해석 차이[편집]

이 역시 옥단소에서 논쟁하고 있는 주제였으며 재생신이 일무 임성진이 주장하는 환생이냐 아니면 갱생과 같이 거듭나는 개념이냐 그것도 아니면 강일순의 백골이 뭍혀 있는 곳에서 부활하는 것이냐

예장값 300만원[편집]

이 역시 옥단소에서 논쟁거리가 되고 있으며 종교장사냐 아니냐를 두고 논쟁한바 있다. 상제님만세 박정희는 증산사상도 잘 모르면서 돈을 받는 행위는 무조건 안된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판밖 해석 차이[편집]

강일순은 판밖에서 성도해서 들어온다고 했기 때문에 판안을 증산계열종단으로 보면 대두목은 종교를 만들면 안된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판안을 세상 정치판으로 본다면??

천지조화정부와의 소송관계[편집]

배승환이 강석봉의 자료를 무단으로 써서 저작권침해를 저질렀다? 그리고 색과 돈을 밝힌다고 하고 차경석의 도수를 강석봉이 받았다고 명예훼손을 한다?

수제자 일무 임성진 퇴출[편집]

일무 임성진

과연 태을선도의 2변도운을 이끌고 있는 일무 임성진을 태을선도에서 퇴출시킨 것이 잘 한 것일까?

일무 임성진은 2015년 9월과 2017년 8~9월에 요한계시록을 인용해서 하늘에서 메테오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예언했으나 다 빗나간 역사가 있다. 그래서 퇴출 시킨 것일까?

아니면 현무경 공부법을 새로 개발하고 정역용담팔괘를 내놓고 그런 것이 난법으로 보이고 못마땅했을까?

아니면 진법강의 촬영시 의견의 마찰과 증산사상 해석의 차이가 있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배승환과 임성진이 같이 사는게 사생활 침해라 느끼고 불편해서 그랬을까?

아니면 배승환이 계속 사기 당하는 모습을 수양아들이자 수제자에게 보이기 꺼려해서 그랬을까?

아니면 임성진이 배승환의 자료와 정보들을 다 가지고 있는게 자기 법을 다 도둑질 한걸로 생각해서 그랬을까?

아니면 수양아들인 임성진을 강하게 키우기 위해 사회생활에 충실케 하고 자립심과 독립심을 길러주기 위해 일부러 때어놓으려고 그랬을까?

아니면 배승환이 난법을 행하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임성진이 하극상을 하고 배승환에게 쓴소리하고 충언하는 것이 듣기 싫고 꼴보기 싫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은두장미해야 살아남는데 일무 임성진이 감추는 법 없이 다 드러내고 까발려서 경계의 대상으로 생각해서 그랬을까?

아니면 일무 임성진이 100일공부 할때 태을선도 도생들 빼가고 후원금 받는다고 오해해서 그랬을까?

이유야 어찌 됐든 태을선도의 2변도운을 일으켰고 태을선도가 만든 여러 카페들의 운영자였고 입도를 제일 많이 시켰으며 진법강의 촬영하고 편집해서 유튜브에 업로드까지 했던 임성진을 퇴출 시킨 것은 배승환으로서도 가슴 아픈 일이고 태을선도 홍보에도 저해가 되고 포용력이 높은 배승환이 자신의 덕을 상하게 한 사건이였다고 할 수 있다.

사기 당하는 배승환[편집]

누가 몇백억 줄테니 몇십만원씩 보내달라고 하는 것에 몇년동안 속아주고 있고

누가 코인 대박 나니깐 한 구좌 들라고 네트워크 다단계 코인사업에 속아줬으며

또 누가 뭐 해줄테니 뭐를 해달라고 하면 배승환은 거절하지 않고 속아주어 남의 돈은 따보지도 못하고 제 돈만 잃어 바닥을 치고 있다.

강일순 말대로 독조사 도수를 받아서 그럴까?

새벽녘에 개평을 뜯어 본전을 회복하는 수가 있다고 했으니 과연 그리 될까??

배승환의 타계[편집]

2019년 4월 30일(음력 3월 26일) 고판례 탄강절날 태을선도 1대 대표 배승환이 뇌경색과 위암말기에 걸려 타계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옥단소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 진법수도의 방법이 잘못돼서 그렇게 된거 아니냐 하는 논란이 생겼다.

그리고 일무 임성진은 2022년에 갱소년을 이뤄서 흰머리가 검어지고 빠진 이가 다시 나고 2024~2025년에 도통하여 남북통일과 아시아통일을 이루고 대두목이 된다고 주장했으나 배승환이 타계하는 바람에 예언도 빗나가 버리게 됐다.

과연 그럴까?

태을선도 후계자 논란[편집]

일무 임성진보다 먼저 태을선도에 입도했던 일부 도생들이 태을선도 2대 대표로 일무 임성진을 인정하지 않는 부분도 논란이 되고 있다.

과연 일무 임성진은 태을선도 2대 대표가 될 자격이 있을까?

비판에 대한 반론[편집]

1. 시한부 개벽설 : 배승환은 항상 이번이 아니면 10년 뒤라고 10년의 여유를 줬다고 주장한다. 즉 확정적으로 말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2. 자민족 중심주의 : 일루미나티가 세계통일을 하면 전세계 인구가 노예가 되는 반면에 우리민족이 세계통일을 이루어야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

3. 타종교 및 문화와의 관계 : 지금은 가을철이라 열매진리가 나왔는데 언제까지 뿌리와 줄기와 가지와 잎사귀의 케케묵은 진리만 붙들고 있을 것인가?

4. 일제강점기에 대한 해석 : 당시 조선이 서양에 먹혔다면 영영 독립할 수 없게 되고 중국은 뒷감당을 못하니 일본에게 의탁하여 묵은 조선을 근대화 시킬 수 밖에.

5. 주술성 : 태을선도는 주술의 좌도방 뿐만 아니라 육체수련과 단전호흡의 우도방까지 하기 때문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종합적이고 전체적이다.

6. 민족선도 : 고판례가 우리 도는 신선이 하는 일이니 선도라고 했는데 민족선도가 빠지면 앙꼬없는 찐빵아닌가.

7. 3년간 버린 상등도통능력 : 그 덕분에 이론적으로 학문적으로 합리적으로 깊고 넓게 정립하여 책을 출판할 수 있었다고 배승환은 얘기하곤 했다.

8. 재생신의 해석 차이 : 재생신이 다시 새롭게 태어난다는 거듭남의 뜻도 되지만 그건 증산사상에 갱생이라는 용어가 따로 존재하며 재생신 한자가 다시 재, 날 생, 몸 신이기 때문에 다시 몸을 받아서 태어난다는 환생이 맞으며 미륵하생경에도 미륵이 인간의 몸으로 와서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증득하여 미륵불이 된다고 나온다.

9. 예장값 300만원 : 단체를 운영하려면 운영비가 있어야 되는 것은 당연지사. 수련단체도 월 회비가 10만원 이상이다. 300만원을 3년으로 분할해보라.

10. 판밖 해석 차이 : 세상의 저해를 피해서 판밖에서 성도하게 된다고 했으니 판안은 세상판이 되기 때문에 판밖은 도판이 되고 증산계열종단이 된다.

11. 천지조화정부와의 소송관계 : 법적으로는 저작권침해에 적용되지만 어디 성경이 저작권이 있던가. 인정상관 왈. "그게 어찌 네 것이냐 천지 것이지."

12. 수제자 일무 임성진 퇴출 : 태을선도 안에서 3년 천지공사를 봤으니 태을선도 밖에서 남은 4년 천지공사를 보는게 북두칠성 선기옥형에 맞아 떨어진다.

13. 사기 당하는 배승환 : 배승환은 돈을 잃어 손해 보는 것보다 사람을 잃어 손해보는 것을 더 싫어한다. 그래서 알면서도 속아주어 인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

14. 배승환의 타계 : 진법수도가 잘못돼서 타계하신 것이 아니라 해탈선화하고자 일부러 수도를 안하고 끼니도 제대로 안 챙겨먹으면서 기운을 빼면서 몸 안의 정기를 흩었고 상한음식을 많이 먹고 겨울에 마루에 화목난로를 때면서 발생한 연기를 다 마시고 구씨 사기꾼이 계속 사기를 쳐대니 스트레스도 많이 받은 등의 복합적인 문제로 타계한 것이기 때문에 태을선도 진법수도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그리고 오히려 강일순의 천지공사대로 됐다. 2020~2021년에 다시 환생해서 2024~2025년에 증산도 도전에 기록된 오세동이(5세)로 도통출세하고 추배도 예언서에 기록된 삼척동자(키 99cm, 4~5세 아이의 평큔 키)가 전쟁을 말리고 통일시킨다는 예언대로 될 것이라고 일무 임성진을 비롯한 태을선도 도생들과 타 증산계열 일부 도생들은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격암유록의 이릉비의와 비의원공배태묘, 성수하단대로 그대로 이루어졌다.

또한 일무 임성진과 인연이 된 전주 점술가가 타계한 배승환의 사주를 보더니 이미 태어날때부터 67세에 위암으로 돌아가시게 되어 있다고 봐줬다고 한다.

15. 태을선도 후계자 논란 : 일무 임성진은 이에 대해 일무 블로그에 자신이 태을선도 후계자 자격이 있는 8가지 이상의 이유로 해명했다.

(1) 태을선도에 가장 공덕이 많아(수도 경지, 책 교정, 20여명 포덕, 진법수도와 진리 정립 등) 증산 상제님의 이전덕전에 부합되며

(2) 일도자호 태상 대선사님과 오해를 풀어서 나의 진심을 알아주셨었으며

(3) 일도자호 태상 대선사님으로부터 ㅇㅇ을 전수 받아 후계자가 됐었으며

(4) 일도자호 태상 대선사님의 가족들로부터 태을선도 관련 물품 보관과 태을선도를 내가 이끌면서 유지하는 것을 허락 받았었으며

(5) 일도자호 태상 대선사님의 성령께서 나를 태을선도 후계자로 심전해 주셨었으며

(6) 천지부모님으로부터 49제 겸 49일 정성수도와 지리산 노고단에서 태을선도 2변 도운 출범 치성으로 태을선도 새로운 대표로 선사님의 지위로 천제를 올린 것을 윤허 받아 이루어졌었으며

(7) 모악산 고소재(고수재)에서 옥추통공부 36일을 통해 득도에 성공하여 대선사의 자격을 천지로부터 부여 받은 것과

(8) 태을선도 2변 도운 새로운 시스템 제도를 천지부모님으로부터 영감, 알음귀, 계시를 받아 정립하였으니

일무 임성진은 충분히 태을선도 새 대표가 될 자격이 있으며 대선사라 불리울 권한이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일무 임성진보다 먼저 태을선도에 입도했든 나중에 입도했든 상관 없이, 나이가 많고 적은 것과는 상관 없이 모두가 합심하여 일무 임성진을 태을선도 새 대표로, 대선사로 받들어 따르면서 서로 협동하여 일심과 혈심으로 화합하며 천지부모님의 천지공사 도수와 천하사를 반드시 우리 손으로 성사재인 시켜야 할 것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근황[편집]

태을선도 2대 대표가 된 일무 임성진은 22일 동지대치성 전까지 진액팔주 1만독 채우기 주문수행을 하면서 사회봉사를 나가고 있으며 영상 편집과 수도일기, 해명이오 시리즈 등의 글을 쓰고 있으며 카톡에 수행과 마음공부와 영성 관련 오픈방들에 들어가서 포덕을 시도하고 있으며 미라클 월드(미월)라는 영성단체가 12월 21일 동지대치성 전날에 와서 1박 2일로 태을선도를 체험하기로 약속을 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11월 1일(음력 10월 5일)에 고판례 화천절날 전씨 여도생이 입도를 하면서부터 내년에 있을 대부흥의 시작을 열었다고 하며 인연자, 사명자들이 유튜브와 일무 네이버 블로그 등 인터넷과 카톡 오픈방 등에서 보고 연락들을 많이하고, 찾아가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그리고 태을선도의 일무 임성진이 내년 2월에 모악산 일대에서 100일 법사과정 득도공부를 시행할 예정이니 참여자들을 모집하고 있는 중이다.

관련용어[편집]

각주[편집]

  1. 교단의 성격상 교주보다는 도주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2. 1953.05.30 ~ (날짜 표기는 양력). 호는 일도자호(一道慈護). 경상남도 거제도 출생으로, 그의 호는 2001년 강일순의 성령으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다. 2004년에 태을선도회를 태을선도라 개명했다. 태을선도 내부에서는 배승환을 두고 '대선사님'이라고 호칭한다.
  3. 강일순은 살아생전 자신을 옥황상제, 미륵불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강일순의 외동딸이 세운 교단인 증산법종교에서는 강일순을 미륵불로 받들며, 수석제자 김형렬이 세운 교단의 교명도 미륵불교다. 강일순의 주요 제자인 차경석은 보천교를 세우면서 천사라고도 했으며, 그외에도 상제라고 부르는 종파도 있는 등 호칭이 각양각색이다.
  4. 강증산의 종통이 고판례에게 이어진다고 주장하는 교단은 오성산 성덕리교단, 용화동 증산교, 대전 증산도, 군산 태을선도, 김제 태을도, 서울 천지조화정부, 대전 증산참신앙으로 크게 일곱 교단이 있고 나머지 증산계열 교단은 고판례를 인정하지 않는다.
  5. 김순자와 배승환은 서로 만난 적이 없다. 그래서 김순자가 선법제자를 키워 그를 통해 배승환에게 전하도록 했다고 주장한다.
  6. 다만 이후에도 교류나 교단 내에서 함께 있었던 바도 있었다. 이 해에 슬하에 딸 이순(二順)을 낳았는데, 나중에 남편과 함께 증산법종교를 개창하면서 이름을 순임(舜任)으로 바꾸었다는 주장도 있고 태어날때부터 순임이라는 이름이였다는 증산법종교 측 주장도 있다.
  7. 안중근 의사가 강일순의 천지공사대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해이며, 순종황제 융희 3년이기도 하다. 사망년도가 1909년이므로 강일순은 일제시대를 겪은 적은 없다.
  8. 증산계 종교에서는 화천하였다, 즉 천지공사를 마치고 천상 보좌로 돌아갔다는 표현을 많이 쓴다.
  9. 증산계 종교에서는 화천 또는 선화하였다, 즉 천지공사를 마치고 천상 보좌로 돌아갔다는 표현을 많이 쓴다.
  10. 율곡이이의 후신이라고 고판례가 밝혀준바 있다.
  11. 강일순이 본 병자정축 공사와 고판례가 본 차경석의 거울, 암행어사 도수 참고
  12. 이때 대순진리회의 전신인 무극도 또한 함께 해산됐다.
  13. 이때 증산교의 입교서류에 안세찬이 총사수(總師首)로 기재되어 있었다는 주장이 있는데, 해당 서류를 추가 바람.
  14. 한국전쟁 당시 증산교의 교명은 증산대도회(甑山大道會)였다.
  15. 격암유록에는 산금강과 해금강이 귀신양단 갈랐더니 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를 풀이하면 군산과 거제도가 양쪽으로 나뉘어 졌다고 풀이할 수 있다.
  16. 격암유록에는 활만비의라고 배씨의 파자가 나오니 배씨가 모두를 살린다고 풀이할 수 있고, 이중성 천지개벽경에도 북녘하늘에 천하사 하는 삼태 허정성으로 배씨가 두번 등장하고 정영규 천지개벽경에도 이도삼을 배도삼으로 바꿔 부르면서 배씨가 개국공신 이상의 중요 인물로 한 번 등장한다.
  17. 이때 이정립의 아들이 안세찬의 싸대기를 갈겨 쫓아 냈다고 한다.
  18. 내 눈을 바라봐 허경영은 천령(성령)을 넣어주어 면역력을 높혀 자가치유로 낫게 하는 기독교적인 방법을 쓰는 반면에 배승환은 환자의 병기운을 자신에게 빨아 당겨 대속하는 불교 방식으로 낫게 하는 방법의 차이점이 있다.
  19. 교명을 바꾸며 증산'도'의 진리로 바꿨다.
  20. 1984년에 대전 대법사 증산교를 증산도라 개명 했다. 그로부터 27년 뒤 안세찬이 죽으면서 증산참신앙 사이트에서는 안교주도 27년 헛도수를 받은 자라고 하기도 했다.
  21. 증산도에서도 한의학의 필수인 음양오행설을 가르친다. 또한 강일순은 염제신농씨를 매우 중요한 인물로 여러번 언급했는데, 한의학과 중국 의학에서도 염제신농씨를 의약의 시조로 본다.
  22. 당시 한의대생의 위상은 의대생 못지 않았다.
  23. 웹에서 이 문구를 검색하면 대부분 증산도 도전이 나오는데, 최초출처는 용화전경이다. 증산도 도전은 용화전경의 이 부분을 거의 그대로 실었다.
  24. 이는 정주영이 정도령의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야욕으로 측근이 동양비결서를 해석하여 1001마리의 소를 북한으로 보낸 것이라고 허경영이 강연때 언급한 바 있다.
  25. 물론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과는 무관
  26. 이 해 7월 말에 일무 임성진은 제주도에서 증산도를 만나 신앙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편 배승환은 군산에서 태을선도를 공식 출범하게 된다.
  27. 이 해 7월에 일무(一戊) 임성진(任成辰)은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게 된다.
  28. 격암유록에는 단서용법 천부경이라고 나온다. 이를 풀이하면 붉은 경면주사로 쓰는 하늘의 부적과 글을 모은 경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강일순이 남긴 현무경에는 지기금지 사월래 원위대강 예장 의통이라고 나오는데 실제 음력 4월달에 예장을 받은 것이다.
  29. 여색과 돈을 밝힌 선법제자는 배승환과 함께 창녀촌을 가려다 김순자 일월당 혼령이 나타나 발로 선법제자의 싸대기를 갈겼다는 일화도 있고 용천검을 만들기 위해 배승환에게 디자인값으로 돈을 내놓으라고 하기도 했다고 한다.
  30. 강석봉은 2002년에 백두산에 올라가 천지공사를 봤다.
  31. 강석봉의 아내는 자하라는 도호를 쓴다. 현재는 강석봉을 떠났다.
  32. 이 영상에는 강석봉이 재물과 색을 밝힌다는 내용이 나오고 2014년에 개벽이 온다고 때를 잘못 본 시행착오 내용이 나온다. 이는 100여년 전 강일순의 수석 제자 김형렬이 미륵불교 교단을 세운 후 몇년 몇날 몇시에 일이 된다고 예언 했으나 이루어지지 않아 허사가 된 사건과 매우 흡사하다고 볼 수 있다.
  33. 한국식 나이로 91세. 그런데 이상하게 언론에서는 만 나이도, 한국식 나이도 아닌 90세 일기로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기자들 중 누구도 정확한 나이 확인을 하지 않고, 단순히 2012-1922=90이라는 수식만 보고 90세라고 보도한 듯하다.
  34. 황극제의 자리에 섰다는 뜻. 기사
  35. 안세찬은 강증산과 고판례의 대행자로서 개벽기의 대환란에 인류를 구원할 ‘태극제’라는것이 증산도의 교리였다. 스스로도 수백살을 산다고 공언했던 그의 죽음은 증산도 교리상 있을수 없는 일이었다. 안세찬 사후 증산도는 교리서적을 수정해 재출판했다. 이때 일무 임성진도 증산도에 실망하여 도장에 발길을 끊게 된다.
  36. 이 사건은 격암유록에 '십승변이 불구자년적후로다'라고 나오며 풀이하자면 '십승지가 변하는 때는 병신년 때이다.'라고 풀이 할 수 있다.
  37. 이효진 선생 제자들은 강일순을 미륵불로 보지 않고 옥황상제로만 보는 난법적 요소가 심하다. 그리고 고판례를 종통으로 보지 않고 김말순을 더 중요시하게 모신다.
  38. 격암유록에는 이 해도진인을 묘사한 36가지 이상의 조건(생년월일, 태어난 고향, 부모님 고향, 성씨, 성품, 일생, 성스런 물건 소유, 거주지, 수도 방법, 만나는 사람과 나이 등)이 있다. 이 모든 조건에 조금만 부합되는 문재인은 해도진인이 아니지만 모든 조건에 모두 부합되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배승환이라는 놀라운 사실이다.
  39. 허경영은 해도진인의 조건에 모두 부합되지 않으니 아시아통일과 남북통일과 세계통일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내부를 통일시키고 아시아통일과 남북통일과 세계통일을 이루기 위한 기초 기반은 닦아놓을 수 있는 첫 번째 정도령에 해당될 수는 있다. 선천비결 믿지말라 정첨지는 허첨지니라.
  40. 여호와랑은 다른 신으로 본다.
  41. 태양의 공전주기와 빙하기의 주기라고 보면 된다.
  42. 천지조화정부에서도 이렇게 주장한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도 하늘이 두루마리처럼 떠나간다고 하면서 지구가 블랙홀로 빨려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또한 강일순도 이 때 땅을 석자 세치로 태워 옥토로 만들게 된다고 말한 바가 있다.
  43. 증산도 경전
  44. 대순진리회 경전
  45. 단전호흡 자세와 방법이 쓰여 있다. 주천을 세 줄기로 돌리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46. 태을선도에서는 강일순고판례 모두 화천하셨다고 말한다.
  47. 일무 임성진과 다중닉과의 싸움이나 일무 임성진과 상제님만세와의 싸움이나 일무 임성진과 미륵을 기다리는 카페와의 싸움 등이 볼만 하다. 그런데 일무는 행인님 외에 옥단소 사람들에게 다굴로 공격당하고 있으나 꿋꿋하게 대응하고 있다.
  48. 증산도의 포교전략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민족주의 감정을 자극하였다. (1) 여러분, 우리 민족의 역사가 왜곡되었음을 아십니까? 환단고기에 따르면... (2) 그렇습니다. 우리 민족은 정말 위대합니다! (3) 위대한 우리 민족에게 상제(上帝) 신앙이 있었지요. (4) 우리 민족이 믿던 그 상제님이 바로 강증산이십니다! ..라는 식으로, 민족주의 감정을 포교활동으로 연결하였다.
  49. 그러나 탈퇴자들이나 다른 증산계열 종교인들은 도전이 증산도 교단의 입맛에 맞는 내용만 실었고 왜곡하였다고 비판한다.
  50. 처자(處子)란 단어가 미혼여자(처녀)란 뜻이므로 '여처자'는 '여씨 처녀'란 의미지만, 마치 이름처럼 여처자로 알려졌다. 본디 이름은 원월(圓月)이라고 한다.
  51. 격암유록에는 화룡적사 동방해우반도 천하일기 재생신이라 나오니 풀이하면 1977년 정사년에 경주와 포항일대, 부산 쪽에 태어난 여자 무당이라 할 수 있다. 누군지 아직 모르고 만나지 못한 상태인데 일무 임성진은 박진여가 여자진인의 4~5가지 조건과 부합되어 후보로 생각하고 있다.
  52. 나무위키에서는 대순진리회에서 갈라져나온 대진성주회나 용화대미륵선도회 등 분파들도 함께 대순진리회로 묶어서 설명한다.
  53. 관련도서마다 표절을 금한다는 경고문구가 있다.
  54. 용담도는 방위가 틀린 것 말고는 잘 밝혀 냈는데 황극력은 강일순이 말한 것과 김일부가 말한 정역에는 후천에는 음력과 양력이 같아진다고 나와 있는데 부산 법방 황극력은 반대로 음력과 양력을 다르게 쓰고 있는 우를 범하고 있다.
  55. 강일순의 수석 제자 김형렬이 미륵불교를 세운 후 예언 했으나 틀린 것과 비슷하다. 배승환은 김형렬이 환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그래야 김형렬이 진표율사의 후신이라는 개념이 성립될 수 있다. 진표율사는 훗날 대국왕의 몸을 받게 된다고 했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