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암의 관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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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암의 관등(태국어: บรรดาศักดิ์)은 시암이 전제군주제 하에 있었을 때 통용되던 관등의 단계이다. 이를 처음으로 정비한 것은 15세기 아유타야 왕조보롬뜨라일로까낫(태국어: สมเด็จพระราเมศวรบรมไตรโลกนาถบพิตร 솜뎃프라라메수안보롬뜨라일로까낫보핏[*], 1431년~1488년, 재위 1448년~1488년) 왕이다.[1][2] 처음 도입되었을 시 품계는 9품계로, '솜뎃짜오프라야', '짜오프라야', '프라야', '짜믄', '루앙', '쿤', '짜', '믄', '판'이 있었으나 이후 짜믄이나 짜 등은 사라졌다.[2]

아유타야 시대 말기에는 8품계의 관등이 있었으나, 톤부리 왕조 시대에 다시 최고위 관등 솜뎃짜오프라야가 추가되어 9품계가 되었고 이것이 이후 짜끄리 왕조 시기까지 이어졌다.[3] 삭디나가 10~25라이인 평민은 이 9품 아래의 위치로, '프라이(태국어: ไพร่)'라고 불렸다. 5라이의 삭디나를 갖는 노예, '탓(태국어: ทาส)'은 이보다도 낮은 계급이다.

유럽의 작위와 개념상 유사했기 때문에 관등을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 한 외교적 업무에서는 비슷한 격위의 유럽 귀족이 파견되기도 했다.[4] 이 9품계 제도는 시암의 입헌혁명기에 폐지되었다. 그러나 '나이' 등 일부는 현대어에서도 살아남아 '~~씨' 등을 뜻하는 경칭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관등표[편집]

품계 명칭 유럽식 작위와의 비교
1품 솜뎃짜오프라야 대공위와 동격
2품 짜오프라야 공작위와 동격
3품 프라야 후작위와 동격
4품 프라 백작위와 동격
5품 루앙 자작위와 동격
6품 남작위와 동격
7품 본격적인 귀족 대접.
8품
9품 타나이(나이) 귀족 대접을 받지는 못함.

유명인의 관등[편집]

각주[편집]

  1. 김영애, 《태국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2001, 57쪽.
  2. 같은 책, 76쪽.
  3. 같은 책, 129쪽.
  4. 뉴욕 타임스의 1887년 8월 1일자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