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불습합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신불습합(일본어: 神仏習合)은 일본의 토착신앙인 신토와 외래신앙인 불교가 융합해 하나의 신앙체계로서 재구성된 종교현상을 말한다.[1][2][3]

도리이와 오층탑( 닛코 도쇼구 )
승형 하치만 신

일본에 불교가 도래한 당시에는 「불교가 주, 신토가 순」이며, 헤이안 시대에는 신전에서의 독경이나, 신에게 보살호를 붙이는 행위 등도 많아졌다. 일본에서 "불, 보살이 만일 신의 모습이 되었다"라며, " 아미타불의 수적을 하치만 신" "대일여래의 수적이 아마테라스"라고 하는 본지수적설이 대두해, 가마쿠라 시대에는 그 이론화로서 양부 신토가 발생했다. 한편, 신토측에서는 「신토가 주, 불교가 순」이라고 하는 반본지수적설이 주창되었다.

에도 시대에는 국학이라는 학문이 유행하면서 국학생들이 '신토가 우위'라고 설득하며 신토에서 불교적 요소를 제거하려고 했으며, 이후 메이지 유신으로 그들이 권력을 잡으면서 신불분리가 실시되었다.[1] 이 「신불분리」는 알기 쉽게 말하면, 반·신불습합의 움직임이다.

일본에서는 신들의 신앙은 원래 소박한 토착신앙이자 공동체의 안녕을 기도하는 것이었다. 일본의 「신」은 특정의 씨족이나 마을과 연결되어 있어, 그 신앙은 매우 폐쇄적이었다. 보편종교인 불교의 전래는 일본의 전통적인 '신' 관념에 큰 영향을 미쳤다. 불교가 사회에 침투하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신기신앙과의 융화가 벗겨져 고대의 왕권이 천황아마츠카미의 후손으로 하는 신화의 이데올로기와 도다이지 대불로 상징되는 불교에 의한 진호국가의 사상이 함께 채용되는 등 나라 시대 이후부터 신불관계는 점차 긴밀해졌고, 헤이안 시대 무렵에는 신전독경, 진구지가 퍼졌다.[4]

일본에 불교가 전래했을 때부터 일본 사람들에 의해 '신'과 '불'은 같은 것으로 신앙되고 있었으며, 그 소박한 신불습관 관념은 이윽고 불교의 부처를 본체로 하는 본지수적설로서 이론화되었다. 또한 센고쿠 시대에는 천도사상에 의한 「제종은 하나」로 하는 통일적 틀이 형성되어 되었다.[5]

이와 달리 일본의 신불습합이 신토와 불교가 완전히 섞여 '하나의 새로운 종교'가 된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합일하면서도 각각 독립성을 유지하려고 긴장관계가 유지되고 있다라는 측면도 있었다.[6] 또한, 최근에는 신불습합 시대의 신불 격리 현상도 주목받고 있으며, 미야나카 제사나 이세신궁에서는 불교의 관여가 제거되고 있던 점을 고려하면 신기신앙은 불교와 다른 종교 시스템으로서 자각되고 있었고 신불 관계가 모두 습합의 관념으로 파악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6] 신불습합은 불교가 우위에 서면서도 신기신앙이 불교에 흡수되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기신앙이 불교를 매개로 하여 자립적인 신토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었다.[6]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일본어)神仏習合』 - Kotobank
  2. “神仏習合について” (일본어). 神社人. 2022년 10월 13일에 확인함. 
  3. “神仏習合” (일본어). 時事用語事典 情報・知識&オピニオン imidas (イミダス). 2022년 10월 13일에 확인함. 
  4. 『概説日本思想史』 高橋美由紀
  5. 神田千里『宗教で読む戦国時代』(講談社、2010年) ISBN 978-4-06-258459-3
  6. 末木文美士 2003.

참고 문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