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안동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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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안동 김씨
新 安東 金氏
이칭장동 김씨(壯洞 金氏)
나라한국
관향경상북도 안동시
시조김선평(金宣平)
중시조김습돈(金習敦)
집성촌서울특별시 종로구
경상북도 안동시, 의성군, 예천군, 청송군
충청남도 논산군, 청원군, 괴산군, 연기군
충청북도 음성군, 부여군
경기도 고양시, 경기도 광주시, 포천시, 양평군
주요 인물김계권, 김계행, 김번, 김원효, 김극효, 김상용, 김상준, 김상관, 김상헌, 김광욱, 김광찬, 김광혁, 김광현, 김수흥, 김수항, 김창집, 김창협, 김창흡, 김이소, 김이교, 김병교, 김병기, 김병지, 김온순, 김달순, 김매순, 김희순, 김조순, 김명순, 김문순, 김수근, 김홍근, 김흥근, 김좌근, 김삼근, 김성근, 김병학, 김병덕, 김병국, 김병시, 김병기, 김병기, 김병덕, 김병원, 김병지, 김병필, 김병익, 김병학, 김호규, 김덕규, 김창규, 김옥균, 김성락, 김경진, 김동진, 김덕진, 김복진, 김영진, 김성진, 김석진, 김익진, 김좌진, 김가진, 김기진, 김광림, 김상년, 김익기, 김인기, 김무연, 김광현, 김시현, 김세현, 김모임, 김범일, 김명동, 김익동, 김복동, 김옥숙, 김증한, 김영한, 김두한, 김수한, 김종한, 학조대사, 영빈김씨, 순원왕후, 효현왕후, 철인왕후
인구(2020년)30,030명[1]

신 안동 김씨(新 安東 金氏)는 경상북도 안동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역사

시조 김선평(金宣平)은 경순왕(敬順王)의 방계승통으로 진골이며 고창녕국(古昌寧國)의 성주였다. 930년(고려 태조 13년) 김선평(金宣平), 권행(權幸), 장길(張吉) 삼사는 군사들을 이끌고 전쟁에서 승리하여 고려 태조를 도운 공로로 태사 작위를 받았다.[2] 이후 고창부에서 안동부(安東府)[3]로 승격되었다. 이후 신 안동 김씨가 형성되었다.[4] 공수부정 김습돈(金習敦)을 중시조로 한다.

조선조에 들어와 후손 비안현감 김삼근(金三近, 1390. ~ 1465.)이 안동시 풍산읍 하리리 부근에 살다가 소산리으로 옮겨 정착한 이래 크게 번성하였다. 장자 김계권(金係權, 1410. ~ 1458.)은 한성판관이고, 차자 김계행(金係行, 1413. ~ 1517.)은 대사헌으로 재임하였다.

김계권(金係權, 1410. ~ 1458.)은 5형제를 두었는데 큰아들은 세조의 국사를 지낸 명승 학조대사(學組大師)이고, 둘째 김영전(金永詮, 1837.)은 사헌부감찰, 셋째 김영균(金永勻, 1822. ~ 1872.)은 진사, 넷째 김영추(金永錘, 1443.)는 수원부사, 다섯째 김영수(金永銖, 1716. ~ 1786.)는 사헌부장령으로 재임하였다.

다섯째 사헌장령 김영수는 3형제를 두었는데 큰아들 김영(金瑛, 1475. ~ 1582.)은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참의으로 재임하였고, 둘째 김번(金璠, 1479. ~ 1544.)도 문과에 급제하여 평양서윤으로 재임하였고, 셋째 김순(金珣, ~ 1623.)은 진사시에 합격하여 형조좌랑으로 재임하였다.

평양서윤을 역임한 김번(金璠, 1479. ~ 1544.)의 후손들이 분파하였는데, 왕비 3명, 후궁 1명, 부마도위 2명, 종묘공신 6명, 판서 35명, 당상관(정3품 이상) 140여 명 등 가장 많은 고관대작을 배출하였다.

손자 동지돈녕부사 김극효(金克孝, 1542. ~ 1618.)와 그의 아들 김상용(金尙容, 1561. ~ 1637.), 김상헌(金尙憲, 1570. ~ 1652.) 형제가 현달하여 인조 때 상신에 올랐다. 김상헌(金尙憲, 1570. ~ 1652.)의 손자 김수항(金壽恒, 1629. ~ 1689.) 영의정의 자제들인 김창집(金昌集, 1648. ~ 1722.) 영의정, 김창협(金昌協, 1651. ~ 1708.) 대제학, 김창흡(金昌翕, 1653. ~ 1722.) 사헌부집의, 김창업(金昌業, 1658. ~ 1722.) 이조참의, 김창즙(金昌緝, 1662. ~ 1713.) 왕자사부, 김창립(金昌立, 1666. ~ 1683.) 형제는 덕망과 명망으로 높게 현달하고 당대를 지배하였던 인물들로 서인 노론 세력의 중추가 되었다.

김창집(金昌集, 1648. ~ 1722.) 영의정의 현손 김조순(金祖淳, 1765. ~ 1832.) 부원군의 딸이 순조의 왕비 순원왕후(純元王后, 1789. ~ 1857.)가 되면서 김조순(金祖淳, 1765. ~ 1832.)은 국구로서 영안부원군에 봉해졌고, 헌종왕비 효현왕후(孝顯王后, 1828. ~ 1843.), 철종왕비 철인왕후(哲仁王后, 1837. ~ 1878.)에 이르기까지 세도 가문이 되었다. 이들 후손들은 한양 백악산 아래 장의동에 세거하여 장동 김씨(壯洞 金氏)라고 하였다. “금관자(金貫子)가 서 말인 집안”이라고 말하며, 17세기 이후 최고 명문가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인물

중세

근대

현대

항렬

22세 23세 24세 25세 26세 27세 28세 29세 30세 31세 32세 33세 34세 35세 36세 37세 38세 39세 40세 41세 42세 43세 44세 45세 46세
□순(淳) □근(根) 병(炳) □규(圭)
□균(均)
□진(鎭) □한(漢) □동(東) □현(顯) □년(年)
□기(基)
□일(鎰)
□종(鍾)
□구(求) □모(模) 연(然) □배(培) □선(銑) 원(源) □영(榮) 사(思) □준(浚) 선(善) □택(澤) □식(植) □환(煥) □철(喆) □용(鏞)

인구

  • 2020년 30,030명

유적

서원

묘역

역사

세도

박해

각주

  1. 인구의 0.0057%. 문헌 :《朝鮮封建王朝實錄》.
  2. 문헌 :《고려사 권57 지 권제11》.
  3. 본래 고창녕국(古昌寧國)이 신라에 정복되어 고타야군(古陀耶郡)이 되었다가 757년(경덕왕 16)에 고창군(古昌郡)으로 개칭되었고, 이후에는 980년(경종 5년) 영가군(永嘉郡), 1197년(명종 27) 안동도호부, 1204년(신종 7) 안동대도호부, 1308년(충렬왕 34) 복주목(福州牧),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의 침입으로 피난 온 공민왕을 섬긴 공으로 안동대도호부가 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의 토성(土姓)으로 권(權)·김(金)·강(姜)·조(曺)·장(張)·고(高)·이(李) 7성이 기록되어 있으며 약 1100년 이상의 유적들이 남아 있다.
  4. 문헌 :《高麗史, 新增東國輿地勝覽》.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