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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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종
沈悰
고려의 성균관 예하 강독관
임기 1390년 3월 1일 ~ 1391년 3월 31일
군주 공양왕

조선의 경기도 병마절도사
임기 1395년 3월 1일 ~ 1413년 5월 31일
군주 조선 태조 이단
조선 정종 이경
조선 태종 이방원
섭정 문하정승 조준(前)
문하좌정승 심덕부(前)
정안군 이방원(前)
왕세자 이제(前)

이름
별명 청원후(靑原侯), 청원군(淸原君)
신상정보
출생일 ?
사망일 1418년 3월 15일
국적 조선
경력 조선부마도위
정당 무소속
부모 부친 : 심덕부
모친 : 인천 문씨(낭장 문필대의 딸)
형제자매 심징(형)
심온(형)
심정(아우)
배우자 경선공주
친인척 심원부(작은아버지)
조선 태조(장인)
신의황후 한씨(장모)
진안대군(동복 손윗처남)
정종 (조선)(동복 손윗처남)
익안대군(동복 손윗처남)
회안대군(동복 손윗처남)
조선 태종(동복 손윗처남이자 사돈)
덕안대군(동복 손윗처남)
이애(동복 윗동서)
경신공주(동복 처형)
무안대군(이복 손아랫처남)
의안대군(이복 손아랫처남)
이제(이복 아랫동서)
경순공주(이복 처제)
이등(이복 아랫동서)
의령옹주(이복 처제)
홍해(이복 아랫동서)
숙신옹주(이복 처제)
양녕대군(처조카)
효령대군(처조카)
조선 세종(조카사위이자 처조카)
소헌왕후 심씨(조카)
성녕대군(처조카)
이명신(사위)
종교 유교(성리학)
상훈 정사공신 2등

심종(沈悰, 아명(兒名)은 沈淙, ? ~ 1418년 3월 15일)은 조선 태조 이성계부마도위(駙馬都尉)이다. 1398년 조선 정사공신에 책록되었다가 1416년 회안군(懷安君) 이방간(李芳幹)과 내통한 죄로 추탈되었으며, 본관은 청송(靑松), 작위는 청원군(淸原君), 조선개국공신 청성백(靑城伯) 심덕부(沈德符)의 아들이고, 조선 세종의 국구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 안효공 심온(沈溫)의 아우이며, 조선 태조의 차녀(次女) 경선공주의 남편이다.

생애[편집]

1390년 음서로써 고려 하급 관직에 천거된 그는 1391년 고려 하급 관직을 사퇴하였으며 1392년 고려가 멸국된 후 조선 창건이 되고 나서 1393년(태조 2년) 태조 이성계의 차녀 경선공주(慶善公主)와 혼인하여 부마도위(駙馬都尉)가 되어[1] 청원군(淸原君)에 봉해졌다.[2] 1398년(태조 7년) 왕자를 공(公)으로, 종친을 후(侯)로, 정1품을 백(伯)으로 봉할 때, 부마(駙馬)로써 청원후(靑原侯)에 봉해졌다.[3] 그 해에 제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정사 2등 공신에 책록되었다.[4] 1401년(태종 1년) 다시 청원군(淸原君)에 봉해졌다.[5] 1408년(태종 8년) 경상도 절도사에 임명되었다.[6] 1416년(태종 16년) 회안군(懷安君) 이방간(李芳幹)과 내통한 죄로 교하(交河)에 안치(安置)되었다가[7] 직첩(職牒)과 공신녹권(功臣錄券)이 거두어지고 폐서인(廢庶人)되어 토산현(兎山縣)에 자원안치(自願安置)되었다.[8] 1418년(태종 18년) 토산현(兎山縣)에서 사망하였다.[9]

가계[편집]

각주[편집]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