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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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찬수(安燦洙, 1915년 12월 15일(음력) ~ ?)은 대한민국언론인이다. 본관은 경기도 광주이다.

안찬수는 보성전문을 졸업하고 1938년 경성일보 기자로 출발, 해방후 대공일보, 조선일보, 연합신문 등에서 편집부국장으로 활동하였다.[1] 보성전문재학시 농촌계몽운동인 브나로드 운동에 책임대원으로 참가하였다.[2]

안찬수는 1949년 5월26일 대한민국 최초로 있었던 언론과 군수뇌부와의 좌담회를 주관하였다.[3] 이 좌담에는 육군참모총장 채병덕, 육군참모부장 정일권 등 군수뇌부가 참가하였다. 안찬수는 6.25 직전인 6월1일자로 연합신문 주일 특파원(이사)에 임명되었고 연합신문은 6월2일 사고를 통해 안찬수 특파원 일행이 곧 일본으로 떠날 것을 알렸다. 그러나 며칠 후에 발생한 한국전쟁으로 7월 5일 서울에서 내무서원에게 납치된 이후 생사가 알려지지 않았다.[4] 그의 납북은 '6·25전쟁 납북인사가족협의회(이사장 이미일)가 미국의 국가기록보존소(NARA)에서 발굴, 2013년 공개한 '1950년 10월 15일 CIA가 입수해서 작성한 납북자 명부'를 통해 다시 화제가 되었다.[5]

각주[편집]

  1. 정진석 (2006년 8월 14일). 《납북》. 기파랑. 110쪽. ISBN 8991965822. 
  2. [동아일보 1932년 8월5일, "아동의 감사, 수효는 갈수록 증가"]
  3. 정진석 (2006년 8월 14일). 《납북》. 기파랑. 111쪽. ISBN 8991965822. 
  4. 김춘빈 (1992년 12월 1일). 《한국언론인물사화》. 한국언론인회. 43~48쪽. 
  5. 조선일보 "6·25 직후 美 CIA 작성, 가장 오래된 납북자 명단 찾았다"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