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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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응정(梁應鼎, 1519년 ~ 1581년)은 조선의 문신이다. 본관은 제주(濟州)이며, 양팽손(梁彭孫)의 아들이다. 자는 공섭(公燮), 호는 송천(松川)이다.

생애[편집]

1540년(중종 35) 생원시에 합격하고, 1552년(명종 7)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공조좌랑으로서 1556년 중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호당(湖堂)에 뽑혔다.[1]

1565년(명종 20년) 홍문관 수찬이 되었다.[2] 진주목사를 거쳐 1574년(선조 7) 경주부윤으로 재직 중 진주목사로 있을 때 청렴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탄핵되었다.

1578년 공조참판으로서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성균관 대사성(大司成)에 이르렀다.[3]

저서[편집]

  • 『송천집』
  • 『용성창수록(龍城唱酬錄)』

가족[편집]

  • 증조부 : 양담(梁湛)
    • 조부 : 양이하(梁以河)
    • 외조부 : 김화(金話)
      • 모 : 금산 김씨(錦山金氏)
        • 형 : 양응태(梁應台)
          • 부인 : 임구령(林九齡)의 딸
            • 아들 : 양산룡(梁山龍)
            • 아들 : 양산숙(梁山璹)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