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나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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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나우만
Erich Naumann
출생일 1905년 4월 29일(1905-04-29)
출생지 독일 제국 작센주 마이센
사망일 1951년 6월 7일(1951-06-07)(46세)
사망지 서독 란츠베르크암레흐 란츠베르크 교도소
국적 독일
복무 질서경찰
최종계급 질서경찰 소장
주요 참전 제2차 세계대전

에리히 나우만(독일어: Erich Naumann, 1905년 4월 29일 ~ 1951년 6월 7일)는 나치 독일의 친위대 여단지도자이자 질서경찰 소장이다.

생애[편집]

독일 제국 작센주 마이센에서 태어난 에리히 나우만은 16세에 학업을 마친 후 상점에서 견습점원으로 일했다. 1929년나치당에 입당한 그는 돌격대에도 가입했지만 긴 장검의 밤 사건 이후 친위대로 이적했다. 1935년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친위대 본부 대외첩보부 부장이던 하인츠 요스트 휘하에서 일한 나우만은 뉘른베르크의 보안경참 감독관을 지냈다. 1939년에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후 아인자츠그루펜 VI의 사령관이 된 나우만은 독소전쟁이 발발한 후인 1941년 11월아인자츠그루펜 B 부대의 사령관이 되어 1943년 2월까지 1년간 이 부대를 이끌었다. 그 사이 유대인을 비롯한 수많은 포로를 총살하였는데, 특히 스몰렌스크에서 17,000명을 처형한 책임자이기도 했다.[1] 1942년 12월에 나우만은 베를린에 134,298명을 처형했다고 보고했었다. 1943년 9월부터 1944년 7월까지 네덜란드의 보안경찰 및 친위대 사령관으로 일한 나우만은 베를린 공방전 때 시내에 있었지만 살아남아 전후 뉘른베르크 특수작전집단 재판에서 아인자츠그루펜 사령관으로 기소되었다. 나우만은 총살형 및 가스로 인한 처형도 했다고 인정했다. 사형판결을 받은 그는 1951년 6월 7일에 다른 아인자츠그루펜 지휘관들과 함께 란츠베르크 형무소에서 교수형이 집행되었다.[2]

외부 링크[편집]

각주[편집]

  1. The Einsatzgruppen: Erich Naumann
  2. "Five death sentences were confirmed: the sentence against Oswald Pohl, as well as those passed against the leaders of the Mobile Killing Units, Paul Blobel, Werner Braune, Erich Neumann, and Otto Ohrlendorf. . . . In the early morning hours of 7 June, the [...] Nazi criminals were hanged in the Landesburg prison courtyard." Norbert Frei, Adenauer's Germany and the Nazi Past: The Politics of Amnesty and Integration.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2. p. 165 and p. 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