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잉군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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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잉군 초상
(延礽君 肖像)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보물
가장자리가 불에 타서 1/3이 결손 되었지만 얼굴과 흉배 등 중요한 부분이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다.
종목보물 제1491호
(2006년 12월 29일 지정)
수량1점
시대조선시대
소유국유
주소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자로 12,
국립고궁박물관 (세종로)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연잉군 초상(延礽君 肖像)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 있는 조선 시대초상화이다. 2006년 12월 29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491호로 지정되었다.[1]

지정 사유[편집]

<연잉군 초상>은 화면의 좌측 상단에 “初封延仍君古號養性軒”(초봉 연잉군 고호 양성헌)이라 적혀 있어 이 본이 영조가 임금이 되기 이전에 제작된 연잉군(延礽君) 시절 도사본(圖寫本)임을 알 수 있다. 사모(紗帽), 백택 흉배(白澤 胸背)를 부착한 녹포단령(綠袍團領), 서대(犀帶), 검은색 녹피화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정장 관복 차림에 공수 자세로 앉아 있는 좌안 8분면의 전신 교의 좌상이다.[1]

이 상은 영조 21세(1714년) 때 진재해(? ~ 1735년 이전)가 그린 것으로 영조 21년(1745년)에 경희궁 태녕전(慶熙宮 泰寧殿)에 봉안되었다가 정조가 즉위하자 잠시 경현당(景賢堂)에 두었다가 정조 2년(1778년) 3월에 선원전으로 이봉되었다. 이 본은 오른쪽 가장자리 부분이 불에 타서 1/3 정도가 결손되었으나 얼굴, 흉배, 관대, 족좌 부분이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어 당시의 초상화의 기법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1]

현전하는 조선시대 어진은 전주 경기전(慶基殿)의 태조 어진, 고궁박물관 소장의 철종 어진과 익종 어진 등 극소수만이 남아 있는 실정이라 이 상은 영조가 연잉군 시절의 초상이라 할지라도 어진 연구에 참고 자료가 된다. 특히 1713년(숙종 39년) 숙종 어진 도사(肅宗 御眞 圖寫)의 주관(主管) 화사였으며, 이후 조영석의 형 <조영복상>(趙榮福像) 등 사대부들의 초상화 제작에도 참여한 진재해의 초상화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 또한 이 상은 보물 589호로 지정된 <강현상>과 함께 18세기 초기 정장관복형식의 초상화의 형식을 대표하는 기준작으로 평가된다.[1]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문화재청고시제2006-112호,《국가지정문화재(보물)의 지정》, 문화재청장, 관보 제16410호 1191쪽, 2006-12-29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