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낙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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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락전(芮樂全)은 고려의 문신이며, 의흥 예씨(義興 芮氏)의 시조이다.

1134년(인종 12)에 권지사문박사 금오위 녹사참군사(權知四門博士 金吾衛錄事叅軍事)로서 장문위묘지명(張文緯墓誌銘)을 지었다.

1145년(고려 인종 23년) 차예부시랑(借禮部侍郞)으로서 금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만수절(萬壽節)을 하례하였다.[1]

의종조(毅宗朝)에 보문각학사(寶門閣學士, 정3품)와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정2품)를 역임하고 의흥(義興)부계군(缶溪君)으로 봉군(封君)되시다.

시제(詩題) 한거(閑居)가 최자(崔濨)의 보한집(補閑集)에 남아 있다.

『만리행장춘기모(萬里行裝春已暮) 백년계활야하장(百年計活夜何長) 멀리 나그네 길차비에 봄은 이미 저물었고 앞으로 백년 살아갈 계획에 밤은 어이 이리도 긴가 // 계암곡연유연락(溪岩谷沿悠然樂) 엄호산간별야장(掩戶山間別野庄) 깊은 골짜기의 바위와 물소리를 유연히 즐기면서 외진 산곡에 문을 닫고 있으니 별다른 야장이로세』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