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가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요시다 가
抱き柏(だきかしわ)
抱き柏(だきかしわ)
한자 吉田家
가나 よしだけ
본성(本姓) 우라베아손 적류
가조(家祖) 요시다 카네히로
종별(種別) 공가 (반가)
화족 (자작)
출신지 야마시로국 오타기군 요시다무라,
가미교구 요시다초 (히다리교구 요시다)
근거지 야마시로국 요시다 신사
출신 저명인물 요시다 가네토모
요시다 가네미
요시다 겐코
지류·분가 하기와라가 (반가)
니시고리가 (반가)
후지이가 (반가)
범례 - 분류:일본의 씨족

요시다 가(일본어: 吉田家 요시다케[*])는 우라베씨의 혈통을 이어받은 공가이다. 26개 반가 중 하나이다.

개요[편집]

교토 무로마치 고지에 있던 자택의 부지를 아시카가 요시미츠에게 양도한 것으로 알려진 가조 요시다 카네히로요시다 신사의 사무인것을 기념해 가명을 "요시다"라고 했다. 이 카네히로는 신기대부와 시종을 지내며, 우라베씨로써 처음 공경에 올랐다.

5대 카네토모는 유일신토를 창시, 기존의 이세신궁계 신직과 치열하게 대립하면서 고쓰치미카도 천황을 신자로 얻고 세력을 확대해 신기관령 나가카미라는 새로운 칭호를 자칭했다. 이후 신기백의 시라카와 가문을 구축하여 전국의 신사에 대한 지배를 넓혀갔다.

9대 가네미에 이르러, 오다 노부나가의 천거로 가문이 당상가로 오르게 되었다. 코노에 사키히사에게 가례로써 섬겨, 아케치 미츠히데와 깊은 친교가 있던 카네미의 일기 『겸견일기(兼見卿記)』는 아즈치모모야마정권기 연구에 필수적인 1급 사료가 되고있다. 신직에 있어서 요시다가의 우위는 에도시대에 이르러, 칸분 5년 (1665년)의 제사이의신주법도를 확정한다.

역대 당주는 신시관 영장상을 칭하고, 정2위 신기대부까지 오를 수 있었다. 에도시대의 가록은 760석,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나카요시자작의 작위를 받았다. 분가로써, 에도시대 초기에 하기와라가가 나왔다.

에도 막부 말기의 영지[편집]

국립역사민족박물관의 『구고 구령 취조장 데이터베이스(旧高旧領取調帳データベース)』에서 산출된 막부 말기의 요시다가의 영지는 아래와 같다. (4개 마을 · 766석 9말 5되 3홉 6작)

  • 야마시로국 오타기군 요시다무라의 일부 - 593석
  • 야마시로국 카도노군 야마노우치무라의 일부 - 150석
  • 야마시로국 오토쿠니군 大藪村의 일부 - 9석 3말 3홉 6작
  • 야마시로국 키이군 吉祥院村의 일부 - 14석 6말 5되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