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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서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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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거서지학, 기술서지학, 분석서지학이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서로 연관이 있는 것처럼 원문서지학(textual bibliography) 또한 그러하다. 원문서지학은 특히 분석서지학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양자의 관계는 적어도 기술서지학과 분석서지학과의 관계만큼이나 긴밀하다. 책을 물질적 형태로 기술하는 것이 기술서지학이라면, 분석서지학의 도움을 받아 책의 내용, 다시 말하면 책의 물질이 아닌 형태로 그 내용을 다루는 것이 원문서지학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양자의 불가분한 관계로 인해 어디까지가 분석서지학이고 원문서지학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원문서지학이 책의 내용을 다루는다는 말은 매우 제한적인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원문서지학은 우선 문헌에 담겨 있는 단어를 의미가 있는 상징과 가치로 보는 대신 '비개념적인 잉크 묻은 인쇄글자(nonconceptual inked prints)'로 본다.

따라서 원문서지학의 관점에서 책 속의 단어와 구두점은 우선 식자공들이 활자통에서 활자를 조직적으로 뽑아 식자하고 조판해서 짜놓은 활판 위에 종이를 놓고 인쇄한 잉크 묻은 모양일 뿐이다. 이 점에서 원문서지학은 분석서지학이나 기술서지학과 마찬가지로 책을 역시 유형적 물체로 본다.

원문서지학은 인쇄의 일반적 관행과 실무를 포함해서 종이 위에 찍힌 글자의 모양을 조사하고 검토함으로써 원고가 활자조판을 통해 유형적인 잉크가 묻은 모양으로 전수되는 원리를 알아낸다. 말하자면 기계적인 과정 혹은 기계적으로 생상된 현상의 구체적인 사실을 알아내서 설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레그가 The Function of Bibliography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원문서지학 혹은 본문비평은 문헌적 문서전달의 모든 복잡한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원문서지학 활동에 의해 인쇄원고의 진면목이 밝혀지고, 그것이 인쇄소에서 기계적인 과정을 거쳐 책의 형태로 된 원인이 밝혀지면, 이는 와전과 변형을 바로잡아 저자가 쓴 대로 복구하는데 응용된다. 복구하는 것이 불가능할 때에는 그가 쓴 것에 가장 가까운 형태의 본문을 확정한다. 원문서지학은 서지학의 다른 분과학과 마찬가지로 가치판단이 아니라 사실판단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서지학에서는 서지학적 발견에 바탕을 둔 기계적이고 객관적인 해석이 언제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해석에 우선한다. 이 점은 역으로 서지학적 방법이 얼마나 철저하고 흠이 없어야 하는가를 반증한다. 서지학적 증거를 잘못 해석했을 때는 매우 심각한 결과가 오기 때문이다.


출처: 서지학개론, 서지학개론 편찬위원회, 한울아카데미,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