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백과:좋은 글 후보/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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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안녕하세요.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는 다이쇼 천황의 손자로, 한국에 최초로 공식방문한 일본의 황족입니다. 한국어판 위키백과에 있을줄 알았는데 없길래, 작업해 보았습니다. 좋은 글 기준에 부합해 보여서 후보로 올려봅니다.--Shine for all (토론) 2011년 2월 16일 (수) 22:09 (KST)[답변]

의견 전체적으로 좋습니다. 단, 인물 평 부분만 다듬으면 찬성 표 던지겠습니다.--Saehayae (토론) 2011년 2월 16일 (수) 22:23 (KST)[답변]
어떻게 다듬어야 좋을까요 (..) --Shine for all (토론) 2011년 2월 16일 (수) 22:25 (KST)[답변]
목록이 아닌, '한 문단의 글'로 녹이는 게 좋겠죠.--Saehayae (토론) 2011년 2월 16일 (수) 22:31 (KST)[답변]
완료했습니다. --Shine for all (토론) 2011년 2월 16일 (수) 22:45 (KST)[답변]

반대 개인적인 생애에 대한 부분이 부족하고 대부분의 내용이 '한국 방문'입니다. 사소한 내용으로는 '「'와 같은 모양의 꺾쇠표가 쓰이고 있네요. --Nt (토론) 2011년 2월 16일 (수) 22:30 (KST)[답변]

꺾쇠표는 쓰면 안되나요? 쩝. 그리고 일본 황실 중에서 그나마 활동적인 사람인데, 내용은 아무리 찾아봐도 이 정도 뿐이네요;; --Shine for all (토론) 2011년 2월 16일 (수) 22:37 (KST)[답변]
한국어 위키백과에서는 일본어에서 쓰이는 꺽쇠표 대신 하단에 보이는 세모형 꺽쇠표를 편집에 사용하고 있습니다.(위키백과:편집 지침 참고) --가람 (논의) 『Carpediem』 2011년 2월 16일 (수) 22:41 (KST)[답변]
완료 대대적으로 수정했습니다 ^^ --Shine for all (토론) 2011년 2월 17일 (목) 02:20 (KST)[답변]
찬성조금만 손 본다면 좋은 글이 되겠군요. :)--Sienic (토론) 2011년 2월 17일 (목) 00:54 (KST)[답변]
반대 영어로 프로프즈, Will you marry me, yes 같은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봅니다. 그리고 나머지 출처들도 일부 불필요한 주해가 보이는데 이부분도 해결해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공적인 자리에 많이 있었다 적혀있는데 그부분이 좀 부족한 듯 싶군요. -- 윤성현 · 기여 · F.A. 2011년 2월 17일 (목) 08:29 (KST)[답변]

완료 전혀 이유같지않은 반대네요. Will you marry me와 yes의 경우 당사자가 밝힌 당시의 프로포즈라는데 왜 어울리지 않다고 보십니까? 그리고 불필요한 주해가 있으면 구체적으로 지적을 해 주세요. 모호한 표현으로 둘러대지 마시고요. --Shine for all (토론) 2011년 2월 17일 (목) 12:16 (KST)[답변]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대단히 지엽적인 표현이구요. 영어로 프로프즈했다는 사실만 기술해도 문제없습니다. 문서가 모든 정보를 담는 것은 아니니까요. 간단히 영어로 프러포즈를 성공하여 결혼하였다만 하는 것이 오히려 더 깔끔합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1년 2월 17일 (목) 13:09 (KST)[답변]
님 혼자만의 생각이니 이건 수용하지 않겠습니다. --Shine for all (토론) 2011년 2월 17일 (목) 13:19 (KST)[답변]
그리고 22번 주석에 그에 대한 비판이 전무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출처도 필요하다고 봅니다만. -- 윤성현 · 기여 · F.A. 2011년 2월 17일 (목) 13:16 (KST)[답변]
몇년전 방영한 <<천황의 나라 일본>>이라는 다큐멘터리나 (공중파에서 했습니다) 일본 천황 관련 서적을 아주 조금만 읽으셔도, 일본은 아직까지도 황실에 대한 비판이 금기시된다는 걸 아실 수 있을 겁니다. 거의 상식이지요. --Shine for all (토론) 2011년 2월 17일 (목) 13:19 (KST)[답변]
다큐맨터리가 출처라는 것입니까? 비판이 전무하다는 것은 저도 압니다. 그런데 그것을 주석으로 처리할 것까진 없다고 봅니다. 이미 금기시되는 사항이구요. 그리고 영어로 된 지엽적인 주석은 제 생각만이라고 하신다면... 저역시 반대를 고수할 수 밖에 없습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1년 2월 17일 (목) 13:21 (KST)[답변]
고수하든지 말든지 상관 없습니다. 윤성현님에게는 다음과 같은 부분의 출처를 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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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흔히 순치제가 이 때 천연두로 붕어하였다 하나, 그때엔 이미 천연두가 진정되었고 조정에서 급작스럽게 붕어 사실을 발표하여 순치제의 죽음에 의문을 제기하는 주장이 만만치 않았다. 이로 인해 불심이 깊어던 순치제가 스스로 황위를 버리고 출가하였다는 설이 있다.
  • 보정대신들은 과거 환관들이 여러 번 나라를 망치는 데 주범이었다는 것과 당시 환관들은 모두 한족 출신이라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을까 봐 신속히 십삼아문을 폐지하였다.
  • 당시 오배의 전횡으로 많은 백성들이 조정과 관아에 탄원하였으나, 오배의 권력이 워낙 막강하였기에 들어주지 못하고, 심지어는 오배의 하수인들이 탄원한 백성들의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죽이기까지 하여 백성들의 눈총을 받았다.
  • 당시 섬서와 하남 지역을 지키던 장군들은 거의 한족이었는데 이들은 삼번에 대해 동족감을 느꼈으며, 군부에서 오배 다음으로 실세였으며 막강한 군세를 지닌 오삼계에게는 적수가 되지 못하여 스스로 삼번 연합군에게 무기를 내려놓았다.
  • 당시 서양 사회에서 보내는 선물을 동양의 강희제는 이것을 조공으로 오해하고 러시아가 자신의 신하국이 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였다.
  • 현세적인 유교를 숭상한 강희제는 내세를 따지는 기독교의 교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 선교사들은 부유한 궁정에서 설교하는 대신, 청나라의 한족 서민들에게 포교하려 하였으나 현세적인 한족과 만주족 등은 포교에 잘 응하지 않았다.
  • 선교사들은 같은 서양인인 러시아인들에게 청나라의 정보와 중국의 지도 등을 건네주는 간첩 역할을 맡기도 했다고 한다.

--Shine for all (토론) 2011년 2월 17일 (목) 13:23 (KST)[답변]

여기서 어울리지 않군요. 다른 장소에서 논의하세요. -- 윤성현 · 기여 · F.A. 2011년 2월 17일 (목) 13:23 (KST)[답변]
이미 해당 장소에도 올려 놓았습니다. 위의 부분들에 대해 출처를 명시하십시오. 님이 제게 요구하는 것들을 정작 님은 갖추셨습니까? --Shine for all (토론) 2011년 2월 17일 (목) 13:26 (KST)[답변]
의견 구성은 좋네요. 다만 한국 방문 부분은 줄이면 좋겠네요. 프로포즈는... 빼야 할 것 같기도 하네요. -- 행유 (Erdős) ☆1 () 2011년 2월 17일 (목) 13:31 (KST)[답변]
완료 한국 방문 부분은 이 정도가 적당합니다. 프로포즈는 필수고요. --Shine for all (토론) 2011년 2월 17일 (목) 13:33 (KST)[답변]

토론:강희제에서 공연한 의심을 당해서 기각처리합니다. --Shine for all (토론) 2011년 2월 17일 (목) 15:40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