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장영자 어음 사기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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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장영자 어음 사기 사건은 1982년 5월 4일, 사채시장의 '큰손'으로 불리던 장영자와 남편 이철희가 어음사기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면서 일어난 대규모 어음 사기사건이다.[1][2]

장영자는 국회의원과 국가안전기획부 차장을 지낸 이철희를 내세워 미모와 화려한 언변으로 고위층과 긴밀한 관계를 과시한 후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기업들에 자금지원 대가로 2배에서 최고 9배짜리 어음을 받아 이를 사채시장에 유통시키고 돈을 착복했다.[3] 어음과 담보조로 받은 견질어음을 몽땅 시중에서 할인한 후 다시 굴리는 수법으로 6400억 원의 어음을 시중에 유통시켜 1400여 억 원을 사기로 취했다.[4][5]

이 사건으로 인해 소위 ‘장영자 후폭풍’이라는 정계·경제계는 물론 사회 각 분야에 엄청난 파문이 몰아쳤는데, 특히 경제계에 엄청난 파문이 일었다.[6] 장영자는 ‘경제는 유통이다’라는 유명한 말로 항변했지만 어음이 한 바퀴 돌았을 때 어음을 발행한 기업들이 부도를 내고 무너지기 시작했다.[7] 이 사건으로 한국에서 처음으로 금융실명제 논의가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8] 검찰 수사 결과 이철희·장영자 뒤에는 장영자의 형부이자 전두환의 처삼촌인 이규광이 버티고 있었고, 이 사건으로 두 사람은 물론 은행장 2명과 공영토건, 일신제강 등 내로라하는 기업인 등 모두 32명이 구속됐다.[9]

장영자·이철희는 모두 1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이철희가 먼저 가석방된 뒤, 장영자는 복역 10년 만인 1992년 3월 역시 가석방으로 풀려났다.[10][11]

그러나 장영자는 1994년 다시 100억 원대의 어음 사기사건으로 구속되어 복역하였고, 2001년 5월에도 220억 원대의 구권화폐 사기 행각을 벌인 혐의로 구속됨으로써 세 번째로 복역하게 되었다.[12]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이철희·장영자 어음 사기 사건…대통령 처삼촌 등 30명 줄구속《헤럴드경제》2012년 12월 7일 하남현 기자
  2. 역사속 오늘 - 장영자·이철희부부 어음 사기사건《경기일보》2012년 5월 4일
  3. 탤런트 A씨, 장영자 딸과 재산분할소송 벌이는 내막《여성동아》2010년 7월호 정혜연·문형일 기자
  4. 장영자 어음사기, 6공 수서비리 등 굵직한 수사 도맡아《국제신문》2013년 2월 8일 정옥재 기자
  5. 부부 최대사기사건은 이철희·장영자 사건《일요서울》2004년 12월 28일
  6. 어음부도 15년만에 최악…장영자 사기사건이후 최고《동아일보》1997년 2월 12일 이용재 기자
  7. 부부 최대사기사건은 이철희·장영자 사건[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일요경제》2004년 12월 28일
  8. 실패에서 배운다..과거정권이 준 교훈《파이낸셜뉴스》2013년 1월 30일 조은효 기자
  9. 한국현대사증언 TV자서전 - 박철언의 정치비사 1부 (전두환과 나)《KBS》2012년 3월 18일
  10. 장영자씨 가석방 후 호화판 생활. KBS. 1994년 1월 24일.
  11. 이휘경. '큰손' 장영자, 항소심도 징역 4년… 네 번째 구속. 한국경제TV. 2020년 1월 6일.
  12. 박영자씨 어음사기사건 13년만에 수사《충북인뉴스》2007년 9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