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지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전공지(田拱之, 미상 ~ 1014년 6월 21일(음력 5월 21일)[1])는 고려의 문신이다. 본관은 영광으로, 벼슬은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에 이르렀다. 승려 지겸(志謙: 1145년~1229년 7월 29일(음력 7월 8일)[2])은 그의 6대손이다.

이력[편집]

  • 성종 재위기[3] : 진사과(進士科)에 급제함.
  • 목종 재위기
    • 말기: 태학박사로 임명됨.[4]
    • 10년(1007년): 탐라(耽羅: 현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상서로운 산이 바다에서 솟아나왔다고 보고해오자, 조정에서 전공지를 보내어 알아보게 한 뒤 직접 산 밑에 가 그 모양을 그려서 왕에게 바침.[5]
  • 1012년(현종 3): 6월[6]에 형부시랑으로서 하절문후사가 되어 거란에 가서 현종이 병이 있어 몸소 입조할 수 없다는 최종 통고를 전함. 이에 분노한 거란 성종이 강동 6주(흥화(興化)·통주(通州)·용주(龍州)·철주(鐵州)·곽주(郭州)·귀주(龜州))를 무력으로 빼앗겠다고 천명함.[7]
  • 1014년(현종 5): 중추원부사로서 이부시랑에 이르렀으며, 같은 해 5월 21일(양력 6월 21일)에 죽음.[1]

평가[편집]

외교문서를 잘 작성했으며 중앙과 지방의 벼슬을 지낸 이십여 년[8] 동안 근면하며 조신했다고 평가받았다.[4]

상훈과 추모[편집]

죽은 뒤에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로 추증되었다.[4]

전기 자료[편집]

  • 《고려사》 권94, 〈열전〉7, 전공지

각주[편집]

  1. 《고려사》 권4, 〈세가〉4, 현종 5년(1014년) 5월 21일(병오)
  2. 이규보, 《동국이상국집·전집》 권35, 故華藏寺住持王師定印大禪師追封靜覺國師碑銘
  3. 이규보, 앞의 글에는 광종 때 일로 되어 있다.
  4. 《고려사》 권94, 〈열전〉7, 전공지
  5. 《고려사》 권55, 〈오행지〉3, [토행], 산붕(山崩), 목종 10년(1007년). 이 화산 폭발 기록의 해석은 다음을 참고할 수 있다. 고기원·전용문·박준범·박원배·문수형·문덕철, 〈제주도 화산활동에 관한 역사 기록의 이해(원제: Understanding of historical records about volcanic activities in Jeju Island, Korea)〉, 《지질학회지》 55-2, 대한지질학회, 2019년 4월.
  6. 《요사》와 《속자치통감》에는 모두 8월의 일로 적혀 있다. 《요사》 권15, 〈본기〉15, 성종(聖宗) 31년(1012년) 8월 24일(기미); 《속자치통감》 권30, 대중상부(大中祥符) 5년(1012년) 8월 24일(기미).
  7. 《고려사》 권4, 〈세가〉4, 현종 3년(1012년) 6월 28일(갑자)
  8. 여기서의 '이십여 년'을 21~29년이라고 가정하고 사망 시점을 기준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한 해를 거꾸로 헤아리면 985년(성종 4)부터 993년(성종 12), 즉 성종 재위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