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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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순(趙季珣[1], 생몰년 미상)은 고려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횡성(橫城)이다. 조충(趙冲)의 막내아들이다.

생애[편집]

1250년(고종 37) 좌승선(左承宣)으로 재직 중, 당시 무신 집권자였던 최항(崔沆)에게 딸을 출가시켰으며[2], 같은 해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로 승진했다.[3]

그 후 관직이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에 이르렀다.

시호는 광정(光定)이다.[4]

가족 관계[편집]

  • 증조부 - 조시언(趙時彦) : 증(贈) 사공(司空)·좌복야(左僕射)
    • 조부 - 조영인(趙永仁, 1133년 ~ 1202년) : 문하시중(門下侍中)·수문전태학사(修文殿太學士)·감수국사(監修國史)·판이부사(判吏部事)·태자태사(太子太師)·상주국(上柱國), 문경공(文景公)
      • 아버지 - 조충(趙冲, 1171년 ~ 1220년) : 수태위(守太尉)·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수문전태학사·수국사(修國史)·판병부사(判兵部事), 증 문하시중, 문정공(文正公)
      • 어머니 - 수태사(守太師)·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수문전태학사·감수국사·판이부사·상주국, 문의공(文懿公) 최선(崔詵, 1138년 ~ 1209년)의 장녀[5]
        • 형 - 조백기(趙伯琪)
        • 형 - 조숙창(趙叔昌, ? ~ 1234년) : 상장군(上將軍)
          • 첫째 부인 - 수태사(守太師)·중서령(中書令)·상주국·상장군·판어사대사(判御史臺事)·진강군개국공(晉康郡開國公)·식읍(食邑) 10000호·식실봉(食實封) 3000호, 경성공(景成公) 최충헌(崔忠獻, 1149년 ~ 1219년)의 장녀[5][6]
          • 둘째 부인 - 수태사·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門下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상장군·판이부사, 강정공(康靖公) 기윤숙(奇允肅, ? ~ 1257년)의 장녀[5]
            • 차남 - 조변(趙抃, ? ~ 1288년) : 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상장군·전리판서(典理判書)
            • 3남 - 조개(趙䀭)[5] : 소경(少卿)
            • 4남 - 조유(趙宥)[5]
            • 첫째 사위 - 최항(崔沆, 1209년 ~ 1257년)[2] : 수태사·중서령·상주국·상장군·감수국사·판이부어사대사(判吏部御史臺事)·태자태사·진평군개국공(晉平郡開國公)·식읍 3000호·식실봉 1000호, 광정공(光正公)
            • 둘째 사위 - 채인평(蔡仁平, ? ~ 1284년)[5] :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

각주[편집]

  1. 사돈 김방경(金方慶)의 묘지명에는 조계순(趙季恂)으로 기록되어 있다.
  2. 《고려사》, 「최충헌전」
  3. 《고려사》, 「고종세가」
  4. 《고려사》 「조충전」
  5. 『씨족원류』
  6. 『최충헌 묘지명』은 저자가 조계순의 아버지 조충임에도 불구하고, 사위로 조계순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데, 조계순이 후에 재혼했기 때문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