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단군/보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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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의견: 9년 전 (10k님) - 주제: 규원사화 의 위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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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단군' 항목 관련[편집]

중요한 항목인데 사학계에서 위서로 판정한 환단고기가 주종을 이루고 있네요. 공정한 판단을 위해 다른 사서의 견해를 추가합니다. [2006년 7월 11일 (화) 04:05 Jtm71]

각 사서에 있는 내용들을 나열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각 내용들을 각자의 문서로 돌려보내고, 본문에는 요점만 남기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jtm71 2007년 5월 26일 (토) 11:19 (KST)답변

일본과의 관계[편집]

일본 개국신화, 단군신화에서 나왔다 (공병설 기자) 혹시 이것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아는 분 있습니까? Komitsuki (토론) 2010년 10월 2일 (토) 18:34 (KST)답변

규원사화 의 위서론[편집]

규원사화는 국립중앙도서관 측에서 해방 직후(1945~1946년) 조선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필사본을 구입하여 이 때 구입한 책은 1972년에 이가원, 손보기, 임창순 고서심의위원의 심의를 거쳐 조선 왕조 숙종 1년인 1675년에 작성된 진본임을 확인하고 국립중앙도서관 귀중본으로 등록되었습니다.

저는 이 문서에서 중립성을 지키려 합니다. 따라서 '진본'으로 인정된 고서에 위서론과 진서론이 각각 있으며 양측의 주장을 중립적인 시각으로 사람들이 바라보도록 하기 위해서는 '규원사화'가 '위서'라 비정하는 부분은 생략함이 옳으리라 생각합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역사는 '정설'로만 입각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분이 계속 '정설'을 복창하시는데, 소위 '정설'에 입각하지 않은 학설을 무시하는 것은 상당히 잘못된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한 서울대학교 교수가 단군은 실존 인물이 아니고, 고조선은 7세기 경에 세워졌다. 라는 논문을 발표하고 그것이 학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학계의 교수들이 정설로 만들어 버리면 위키백과에서 단군은 실존하지 않았다고 기록해야 하며 (모 분에 따르면) 단군이 실존하였다는 주장은 학계의 정설이 아니므로, 소수설에 불과하므로 기록될 수 없습니다. 설령 이것이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기록되었더라도 말입니다.

'정설' 이라는 이름 하에 다른 학설을 매장시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 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문서에서 규원사화의 내용을 삭제할 것이며, 토론할 의지가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182.212.6.95 (토론) 2014년 5월 18일 (일) 22:33 (KST)답변

1. 현재 규원사화를 진본이라 확인한 것은 사실이나, 그에 대한 학계의 반론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아니, 여전히 위서론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판입니다. 또한, 규원사화를 진본이라 확인한 것은 책이 숙종 때 써졌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지 책의 내용이 사실이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현재 학계의 그 누구도 규원사화의 내용이 사실에 입각한 것이라 인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작해야 북한 학계에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수준입니다. 저 북한 학계에서조차도 47명의 단군 명칭은 그대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귀하의 삭제는 엄연한 비중립적 편집입니다.
2. 학계의 정설은 수많은 학자들과 토론과 반박을 이겨내고 난 뒤에야 확립되는 것입니다. 반발하는 학자들까지도 모두 인정하게 된 이후에야 정설이라는 지위를 획득하는 것입니다. 즉, 학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학계의 교수들이 정설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학문의 세계에서 아예 일어날 수도 없는, 자칭 재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허구 속의 강단사학일 뿐입니다. 귀하의 머리 속에서는 반발하는 학자들이 많을지 몰라도, 학문의 세계에서 그런 자칭 재야사학자는 학문을 하고 있지도 않고, 학문으로 정설을 논파하지 못하니까 식민사학자라느니 강단의 파벌이라느니 하는 정치 논리로 학자들을 매도해서 자신들을 음모론의 희생자로 만들어 내고 있는 자들일 뿐입니다. 바로 지금 귀하가 하고 있는 그 행동 말입니다. 위키백과는 대원칙 차원에서 저러한 음모론에 가까운 주장을 더 철저히 검토하고 배격할 것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귀하가 주장하는 소수설은 영원히 위키백과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5월 18일 (일) 22:51 (KST)답변


(저는 님에게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이 논쟁에서 벗어난 많은 분들이 이 글을 봐 주시고 다양한 생각이 떠오르게 함이 목적이지요) 1→ 저는 이 자리에서 규원사화가 진서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중립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위서론'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습니다. 위키백과는 중립성을 표방하고, 논란이 있는 이 책에 대해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 옳은 처사입니다. 위키백과는 '정설'만을 표기하기 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해석에 대한 중립성도 지향합니다. 역사는 다양한 해석이 공존하는 학문입니다. 하지만 소위 '정설'에 입각하지 않은 해석을 무조건 소수설로 치부하는 행위는 지양해야 합니다. 그 정설이라는 게 때로는 틀릴 수도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규원사화나 환단고기의 단군세기·태백일사, 삼성기 그리고 발해시조 대조영의 아우 대야발이 쓴 단기고사 등을 국사서적에 정식으로 인용하여 제1대 단군성조부터 47대 고열가단군까지 47대 단군과 단군세계를 기술하고 있다.(허종호, 고조선력사개관, 사회과학출판사 남- 도서출판 중심 펴냄, 2001. 3. 40쪽 등 참조). 옳고 균형있는 정보만을 전달하십시오.

2. 아닙니다. 실제 송호정 한국교원대 교수가 말하기를 "많은 사람들이 고조선을 단군조선으로 알고. 교과서에서까지 버젓이 기록하고 있지만 이는 부정확한 기록에 의거한 몰상식이자 소설" 이라며 재야사학계의 주장을 통렬히 비판했습니다. 이 분의 의견을 '역사학계 아닌 역사학계'에서 무비판적으로 수용합니다. 일반인들의 상식과 다른 내용이죠. 실제로 위 내용은 학계에서 주장한 바와 일치하고, Xakyntos 님의 주장도 그와 같은 맥을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 낙랑군의 논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취급조차 안하는 것을 논란이라 말하지는 않습니다.
*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현재 고고학적으로 고조선 자체의 실존조차도 불확실합니다.
* 해당 연도는 추정이 아니라 "신화"일 뿐입니다, 기원전 2333년은 신화적인 연대일 뿐 실제 역사가 아닙니다


위 부분은 Xakyntos 님 께서 언급하신 내용입니다. 비록 대한민국의 역사학계? 에서 송호정을 비롯한 여러 학자들의 주장을 수용한 것은 맞지만, 이는 한국인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며, 일제 강점기 때 황국 사관을 주장한 학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고조선의 역사는 기원전 7세기에 여러 부족의 연맹을 거쳐 기원전 4세기 쯤 국가의 면모를 갖추었고 이후 위만의 즉위로 우수한 철기의 유입으로 발전했다는 말을 합니다. 바로 송호정입니다. 한사군은 미개한 조선의 문화를 완전히 발달한 문화로 변화하는 시기었고 삼국사기 초기 기록은 믿을 수 없고 '원삼국시대'라는 용어까지 사용하여 삼국이 4세기때 제대로 된 국가를 갖추었다는 궤변을 일삼습니다. 완전히 역사서를 무시한 내용이며 동북공정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의견과 조선사 편수회 학자들의 궤변과도 유사한 모습을 보입니다. 실제 위와 같은 내용은 학계에서 정설화 되었죠. 두 번째 것은 개인적인 의견에 가깝습니다만.

서울대 역사학과 원로 교수였던 김용섭은 저술한 책에서 일제의 식민사학을 비판하는 논문을 발표했다가 이병도의 제자였던 김철준, 한우근 등 교수들에게 공식 석상에서 모욕을 당하기도 하고, "우리 이제 민족사학 그만하자" "무슨 글을 그렇게 써!"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또 역사학도들을 만세일계를 주장하는, 팔굉일우를 옹호하는 덴리대학교에 보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병도 본인은 해방 후에도 신사를 참배했다고 전해지죠. 김용섭 교수 본인도 초청을 받았지만 거절했습니다. 출처 : 역사의 오솔길을 살면서 - 김용섭 (이런 식민사학의 행패에 서울대학교 원로교수 김용섭과, 윤내현, 이덕일, 이주한 등이 그들을 비판하고 그 후 매장되었습니다.) --182.212.6.95 (토론) 2014년 5월 19일 (월) 01:08 (KST)답변

1. 했다고 합니다라는 음모론 말고 제대로 된 출처를 갖춘 내용을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아니, 그보다 현재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중핵을 이루고 있는 대다수 역사학자들이 식민사학을 하고 있다는 사실부터 증명하시기 바랍니다. 귀하가 아무리 그런 식으로 주장해봤자 위키백과는 물론이고 학문의 세계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귀하의 머리 속에서는 학자들의 엄정한 학문적 성과가 식민사학에 불과할지 몰라도, 학문의 세계에서는 귀하의 주장이야말로 망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 문제는 저 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도 식민사학을 비판합니다. '저 뿐만 아니라.--182.212.6.95 (토론) 2014년 5월 19일 (월) 01:02 (KST)답변

2. 위키백과:비주류 이론이라도 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위키백과는 지지를 얻지 못하는 주장이나, 관련 학계의 주요 관점과 대치되는 주장. 지지자들이 그들을 침묵하게 하려는 음모가 있다고 주장할 때에는 특별히 주의할 것을 지침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바로 귀하가 말하고 있는 그 행동말입니다. 학계의 인사들이 식민사학이라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묵살한다라고 주장하고 계신 그 행동 그 자체가 위키백과의 원칙에서 경계할 것을 명시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귀하가 아무리 여기서 글을 써봤자 아무도 신경도 안씁니다. 애초에 귀하의 주장은 대한민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수많은 역사학자들이 모조리 다 일제의 식민사학을 추종한다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는 한 절대 인정될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이 사실은 절대 증명될 수 없습니다. 애초에 귀하와 같은 자칭 재야사학자들이 학문적으로 논파할 수 없기 때문에 상대편을 식민사학자라 매도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귀하와 같은 부류와 위키백과에서 싸워온지가 벌써 5년도 넘었습니다. 귀하가 무엇을 주장하려는지, 그것이 얼마나 허구에 가득차 있는 것인지 저는 이미 10년도 넘게 경험하고 논파해온 사람입니다. 귀하가 아무리 중립을 논해봤자, 귀하의 주장 그 자체가 위키백과의 원칙에 어긋난 비중립입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5월 19일 (월) 00:16 (KST)답변

당신은 글 자체를 이해 못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처음에 역사학계의 정설은 수많은 학자들과 토론과 반박을 이겨내고 난 뒤에야 확립되는 것이라 말했지만 제 두번째 글은 그 무조건 옳다고 말한 주장에 대한 '반박'일 뿐입니다. 주제는 '규원사화'에 대한 것이죠. 주제에 어긋나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옳은 처사입니다. 또 식민사학 = 허구 라는 님과 식민사학계의 주장도 상당한 오류가 있습니다.--182.212.6.95 (토론) 2014년 5월 19일 (월) 01:10 (KST)답변

1, 귀하 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이 하는 비판을 공인된 출처를 통해 증거로 제시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진화론을 부정하고 창조설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화론이 거짓이 되고 창조설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소위 재야사학자들이 하는 역사학계에 대한 비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그 자체로 “'지지를 얻지 못하는 주장이나, 관련 학계의 주요 관점과 대치되는 주장. 지지자들이 그들을 침묵하게 하려는 음모가 있다고 주장할 때에는 특별히 주의할 것”에 해당하는 말 그대로 소수설이자 음모론입니다. 그런 비판은 아무리 많아도 쓸모가 없습니다.
2. 규원사화에 대한 일반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학계의 여러 학자들은 규원사화를 위서로 보고 있으며, 숙종 때 써진 것이 맞다고 인정한다고 해도 그 내용이 역사는 아니라고 보는 것이 정설입니다. 1803년에 저술된 《동사》를 비롯해서 여러 조선시대 저작에는 기자조선의 역대 군주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 기자조선의 역대 군주 목록을 인정하는 학자는 없습니다. 《기씨보》에는 기자조선의 군주 목록과 재위년이 기록된 비석을 도랑을 파다가 발견했다는 말도 안되는 변명만 늘어놓고 있는 수준입니다. 규원사화 역시 마찬가지로, 세상에 전혀 알려진 바 없는 기록을 산골에서 발견했다고 말하는 수준인데, 대체 이걸 어떻게 믿습니까? 하다못해 그 내용이라도 교차검증이 가능하면 모르겠는데 그런 것도 없는 상황입니다. 규원사화가 진서라고 해도, 그것은 숙종 시기 재야 지식인이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만 알려줄 뿐입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5월 19일 (월) 11:14 (KST)답변

역사학에 대해 잘 모르지만, 위키백과의 일반적인 규칙만 안내해 드리자면, 위키백과에는 '다수설/소수설'은 있지만 '정설/위설'은 없습니다. (백:중립성 참고) 만일 다수설이 있고, 그에 대한 소수 반론이 존재한다면, 그렇게 게재하면 됩니다. 어떤 내용이 정설이 아닌 소수 학자들만이 주장하는 내용이라고 해도, 정설이 아니라는 이유로 배제되어서는 안됩니다. --10k (토론) 2014년 8월 2일 (토) 23:28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