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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박영효/보존문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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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의견: 10년 전 (Lena92님) - 주제: 범씨소생 논란

박영효의 일본 이름

박영효의 일본명 山崎永春를 '에이하루'라고 읽은 근거가 무엇인가요? '나가하루'라고 읽을 수도 있는 것인데... 우장춘박사의 이름은 박영효의 일본명 永春를 따서 한자는 다르나 발음은 같게 하여 지은 것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보았는데..... 長春은 '나가하루'일 수밖에 없는데 말이죠. 애초에 처음 '에이하루'라고 올려주신 분께서 정확한 근거자료를 제시해주셨으면 좋겠군요, 적당히 때려적으신 거라면..... 우선은 독음을 삭제해야 할 듯 싶구요.

--북극웅 (토론) 2008년 9월 17일 (수) 00:16 (KST)답변

범씨소생 논란

박영효 가계에 편집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영효 가계가 불분명한 점이 많습니다. 그래서 중립적으로 '정실과 후실' 또한 '자손'으로 나누어 편집한 것입니다. <주간조선> 기사에 따르면 범씨가 셋째 부인으로 나오는데 편집하신 것을 보면 범씨 보다도 더 늦게 혼인한 후실인 박경희가 두번째 부인으로 될 수 있나요? 기사에 나온 셋째와 넷째라는 표기 때문에 이렇게 편집하신 것 같은데 기사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아서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기사에 나온 박흥원이라는 인물도 범씨가 나은 첫째인지 둘째인지 알 수 없으며 족보상의 계사년생으로만 적혀있는 박진서와 박흥원이 동일인물인지 아니면 다른 인물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기사를 기고하신 이정희 교수님과 직접 이메일을 교환해 보았지만 이정희 교수님께 해당 기사 내용을 알려주신 재일 사학자 분께서 책을 출간하시기 전에 별세하셔서 구체적 내용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해당 기사에서 정확한 정보를 추론해 내기 어렵기 때문에 중립적으로 '정실과 후실' 그리고 '자손'으로 일단 분류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천리주단기 (토론) 2014년 1월 16일 (목) 23:16 (KST)답변

Lawinc82님의 의견을 수용해 몇번째 부인인지 모를 경우에는 부인으로 적었습니다. 그리고 네번째 부인인 것이 걸려 이정희 교수님께 메일로 문의드렸으나 그때 당시에 기사에 나온 것이라면 해당 박영효 연구하신 분께 들은 그대로 적혔을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이정희 교수님의 기사를 출처로 박송암과 박혜륜에 대해 적시하면서 넷째부인이라는 사실은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는 말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Lena92 (토론) 2014년 1월 16일 (목) 23:26 (KST)답변
부마는 옹주 이외에 정실 부인을 둘 수 없기 때문에 후실(첩)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셋째, 넷째라고 적혀있는데 정확한 인명도 없고 부인의 순서도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중립적인 편집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기사에도 범씨 소생의 2남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중 2남 중의 한 사람이 1893년생(계사년) 박진서인지 아닌지도 기사를 통해서는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박영효가 갑신정변을 일으켜서 일본으로 망명하는 것이 1884년인데 그럼 1893년생인 박진서가 기사에 나오는 범씨와 자살을 시도하였다는 2남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기사 자체에서도 자살은 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천리주단기 (토론) 2014년 1월 16일 (목) 23:44 (KST)답변

가계 부분에서 만큼은 누가 누구의 자식인지 알 수 있게 중립적인 편집을 해서는 안됩니다. 불분명하지 않은 부분까지만 적시하세요 그럼. 미우와 일우에 대해서는 반남박씨 대종중에 직접 질의해 받은 답변입니다. 그리고 Lawinc82님이 말씀하신 모호한 부분을 제외하고도 범씨소생이 박묘옥이라는 것은 나와있으니 적시해야 합니다. 셋째후실의 이름이 범씨라 적혀있으니 적고 밝혀진 대로 적으면 되고 넷째부인도 알수없음으로 표기하고 많은 후실들도 몇째부인인지 밝혀지기 전까지 그대로 표기하시면 됩니다. 누차 말씀드리지만 부인이 많다고 해서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게 편집을 한다면 혼란이 옵니다.--Lena92 (토론) 2014년 1월 16일 (목) 23:45 (KST)답변

현재 기사와 밝혀진 내용으로 누가 누구의 자식인지 너무 불분명하다는 것입니다. 확실한 것은 기사에서도 나와있는 박묘옥이 범씨의 소생이라는 점입니다. 일례로 도르곤 문서를 보면 부인과 자녀를 따로 구분하여 편집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미우와 일우는 반남박씨세보를 통해서도 정확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방금 족보를 확인하였습니다. --천리주단기 (토론) 2014년 1월 16일 (목) 23:47 (KST)답변

그리고 Lawinc82님이 문서편집을 하기 이전까지는 불분명해도 누구의 소생인지는 나눠져 있고 많은 위키들이 이런식으로 가계를 표기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렇게 편집을 하면 족보도 없는 집안이란 소리가 나옵니다. 어떤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공표된 출처가 있다면 반영해야 옳습니다. 그 사실이 반박당하는 출처가 나온다면 그때가서 수정하면 됩니다. 어려울 게 없습니다.--Lena92 (토론) 2014년 1월 16일 (목) 23:49 (KST)답변

부인과 자녀를 구분하여 편집한 방식은 다른 위키백과 문서에도 있습니다. (도르곤) 그리고 해당 기사의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천리주단기 (토론) 2014년 1월 16일 (목) 23:53 (KST)답변

찬웅의 사망원인과 미우의 졸업결과는 문의해서 얻은 것입니다. 어떤 특정한 위키를 보는게 아니라 보편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죠. 넷째부인이 누구인지는 모르겠다는 게 중론이고 Lawinc82님이 많은 부인들 중의 이름들 중 몇개를 밝혀내셨을 수도 있다는 것인데 최소한 알 수 있는 부분까지는 표기해야 옳다고 봅니다. --Lena92 (토론) 2014년 1월 16일 (목) 23:57 (KST)

토론은 한 곳에서만 해주십시오. 그리고 넷째 부인이라고 적혀있는 것이 중론이라고 하셨는데 <주간조선> 이외에 다른 출처가 있나요? --천리주단기 (토론) 2014년 1월 16일 (목) 23:58 (KST)답변

구체적이지 않은데 박혜륜과 박송암의 출처로는 잘 가져다 쓰셨지 않습니까.--Lena92 (토론) 2014년 1월 16일 (목) 23:57 (KST)

넷째 부인이라는 출처가 저 기사 이외에 다른 곳에 있나요? 박흥원과 박혜륜에 대해서는 해당 기사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기에 그 문장만 해당 문서에 실었을 뿐입니다. --천리주단기 (토론) 2014년 1월 17일 (금) 00:00 (KST)답변

그렇게 믿지 못하는 기사를 박혜륜과 박송암을 적시하는데 출처로 사용하신 것은 Lawinc82님입니다. 뭐가 불분명하다는건지 알 수 없군요. 넷째부인의 자손이라는 사실이 적시되어 있는게 불분명 한 것인가요? 넷째부인의 이름을 모른다면 적지 않고 적시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부인이라고 표기하면 되지요. 굳이 기사에서 셋째부인은 범씨이며 넷째부인이라고 따로 밝혀져 있는것을 뭉뚱그려 자손과 부인을 나눠서 표기할 이유가 없습니다. 뭔가가 맘에 안들거나 숨기려고 하는게 아니라면요. --Lena92 (토론) 2014년 1월 17일 (금) 00:04 (KST)답변

님께서는 박진서와 박흥원을 범씨 소생의 동복 형제로 표기하셨습니다. 기사에 그렇게 나와 있던가요? 없던데요. 그리고 박경희를 둘째 부인으로 표기하셨는데 기사에서 박경희가 둘째 부인으로 나와 있던가요? --천리주단기 (토론) 2014년 1월 17일 (금) 00:06 (KST)답변

그러니까 그 부분은 Lawinc82님의 의견을 수용하겠다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부인의 서열을 알 수 없으니 부인으로만 표기해놨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뭐가 맘에 안드셨는지... 알 길이 없군요. 그리고 여태 박찬주씨는 범씨소생의 자손으로 알려져 있는것이 중론입니다. 그게 중론이 아니라요 말꼬리좀 그만 잡으시죠. 그 사실이 다르다고 적시된 유일한 자료입니다. 메일로 확인한 결과 박영효 가계에 대해서 몇년간 조사하셨던 분은 사망하셨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박영효 가계에 대해 책이 나올 수 있었는데 못 나왔다고도 전해주셨죠. 그런 분의 조사자료를 불분명하다라고 표현하시는데 그렇다면 Lawinc82님이 분명하다고 생각되는 기사는 뭐며, 출처는 무엇입니까? --Lena92 (토론) 2014년 1월 17일 (금) 00:10 (KST)답변

그 분의 자료가 불분명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간조선>에 나와있는 내용이 출처로서 불분명하다는 것입니다. 넷째 부인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이 중론이라는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인 출처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서명은 문장 끝에 한 번만 넣으시면 됩니다. --천리주단기 (토론) 2014년 1월 17일 (금) 00:15 (KST)답변

도대체 뭔소릴 하는건지. 이정희 교수님이 그분을 인터뷰해서 기사를 썼지 본인이 직접 쓰셨답니까? 뭐가 불분명하다고 불분명 불분명 거리는 겁니까? 그리고 박묘옥옆에 범씨소생이라고만 적어놓으면 박찬주가 범씨소생 손녀가 아닌게 됩니까? 뭉뚱그려서 표현해야 될 이유를 말해보세요. 님이 밝혀놓은 부인들은 부인들대로 적어놓고 넷째부인, 범씨소생이 아니라는 것을 적시하자는 거잖아요. 대체 Lawinc82님은 왜이러시죠?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부분에 대한 기사를 링크걸 수 있는데 무슨 위키가 자기것도 아니고 뭐 이런;; 이우항목도 거의 독점적으로 수정하고 계시던데... 뭐라도 되는줄 아시는건 아니겠죠. 모두의 위키입니다 어휴 헐스러워라.--Lena92 (토론) 2014년 1월 17일 (금) 00:20 (KST)답변

자 그러면 님의 편집대로 부인과 자녀를 함께 적을 때 박진서와 박일서 박흥원을 어떤 방식으로 배치하시렵니까? 지금까지 토론을 보면 님께서는 셋째와 넷째라는 용어를 집어넣기를 바라시는 것 같은데요? 박진서는 누구의 소생인지 불분명합니다. 기사 내용을 보면 박흥원만이 범씨의 소생으로 유추할 수 있습니다. --천리주단기 (토론) 2014년 1월 17일 (금) 00:24 (KST)답변
아니 그니깐 불분명한건 다 위로 올리고 해놨더니 내내 편집한거 다시 도로 편집해놓고 또하라고 이러십니다. 님은 뭐 얼마나 예의가 있으시다고.. 부인 이름앞에 숫자도 안적고 적시해놨잖아요. 셋째부인 범씨랑 넷째부인이랑 다르다고 해서 올려놨더니 도로 본인 입맛에 맞게만 편집해놓고 또하라는 고압적인 태도가 이해가 안갑니다. 지금까지 한 토론은 백업하고 박영효 토론문서에 옮겨놓겠습니다. Lawinc82님이 뭘 숨기고 싶어하는지는 몰라도 맘대로 편집하세요. 전 상관 안할테니까 --Lena92 (토론) 2014년 1월 17일 (금) 00:30 (KST)답변
그리고 중간부분도 그렇고 죄다 범씨소생이라고 적혀있는데 범씨는 무슨.. Lawinc82님 그러지마세요. 뻔히 보이는걸 숨기려고 하니까 문제입니다. --Lena92 (토론) 2014년 1월 17일 (금) 00:36 (KST)답변
중간 부분의 범씨 소생의 표기는 제가 한 편집이 아닙니다. 그리고 기사에 나온 재일 사학자 김경해 씨의 의견을 가족관계 상단에 추가하였습니다. 확인하세요. --천리주단기 (토론) 2014년 1월 17일 (금) 00:38 (KST)답변
--Lena92 (토론) 2014년 1월 17일 (금) 00:53 (KST)다른 사람들 의견도 그런식으로 표기합니까? 그 사람들의 단발성적인 의견은 믿을만한 것이고 재일사학자의 의견일 뿐이다 그런식으로 표기하시려는거에요? Lawinc82님 그렇게 안봤는데 무서운 분이시네. 단순히 한 사람의 의견으로 좁히려는 그 노력이 가상합니다. 다른사람들의 의견도 다 한줄씩 언급되고 마는것도 그런식으로 표현하시죠 그럼. 그리고 중간에 표기된건 본인이 한게 아니라고 하는데 그거 수정하면 또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고압적으로 나오실거잖아요. 위키 오래한게 벼슬입니다.답변
셋째 부인과 넷째 부인으로 표기된 것이 저 기사 이외에 또 있습니까? 확인된 사실입니까? 정확하게 이야기 해주시지요. 이와 같은 편집방식이 맞습니다. 재일사학자가 이야기 했다고 적어놓았다고 그게 단 한 사람의 의견으로 좁아진다는 의견은 동의할 수 없습니다. 님의 말처럼 범씨 소생이라는 기존의 의견에 다른 의견으로 비춰질 수도 있고요. 어떻게 단 한 사람의 의견으로 치부된다고 보십니까? --천리주단기 (토론) 2014년 1월 17일 (금) 00:46 (KST)답변

--Lena92 (토론) 2014년 1월 17일 (금) 00:53 (KST)아니 그니깐요 님아. 다른 박영효.. 아니 다른 어떤 기사들도 단발성 기사가 많고 책에 한줄로 나오고 마는것도 출처로 표기되고 올라오는데요? 무슨 편집방식. 본인 입맛에 맞을때는 내용으로 포함해주고 본인 입맛에 안 맞을때는 OO의 의견일 뿐이다 라고 표현하는게 위키의 편집방식이라구요? 님만의 편협한 편집방식이 아니라요? 전 처음알았네요. 위에 예의를 지키느니 마느니 하는말은 왜 지웠습니까. 누가 먼저 예의없이 굴었는데요. 결국에 님은 위키에 박찬주씨가 범씨소생이 아니라는 사실이 표기되기 싫으셨던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토론이 여기까지 왔죠. 그게 본인내에 내린 결론이면서 무슨 여기서 토론을 하느니 마느니.. 어이가 없네요.답변

제가 무슨 글을 지웠다고 성을 내십니까? 그리고 의견일 뿐이다라고 적혀있나요? 소개하였다라고 적혀있지요. (서명은 문장 서두가 아니라 끝에 다세요.) --천리주단기 (토론) 2014년 1월 17일 (금) 00:55 (KST)답변

근데 왜 그렇게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범씨소생이 아니라고 표기하는걸 못하게하는지 이해 불가. 범씨 소생이 아니면 상궁 순길당인가 그사람 소생일수도 있고 뭐.. 여러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뭘 그렇게 구구절절.. 그냥 범씨소생 아니라는 걸 표기하겠다는데 그게 싫다고 하는 이유가 뭘까. 토론문서 본 분들은 아실지 모르겠네.. 아무것도 아닌걸 표기하는것도 싫다고 거부하는 걸까 더 이상하게 느껴지는군요. 그리고 위키 안할꺼니까 그만 가르쳐요. 님때문에 안함--Lena92 (토론) 2014년 1월 17일 (금) 00:59 (KST)답변

글고 왜 이건 수정을 안하십니까? 출처도 없는데요?????? 대체 출처가 어딥니까 이거? 이거 어디서 출처받고 갖다 적어놨는지 몰라도 아주 근본없네요. 24시간 대기타고 고쳐주실 분이니 얼른 고쳐주시죠. 왜 내가 안하냐구요? 수정하면 또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니가 뭘잘했냐고 하실 분이라 감히 함부로 뭘 수정하질 못하겠어서 보고드립니다 Lawinc82님.

그를 근친으로 보고 총애하던 고종은 영혜옹주 사후 후사가 없음을 안타깝게 여겨 첩을 축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14], 궁궐의 상궁 범씨를 비롯한 몇인의 궁녀들을 그에게 하사하였다. 박영효는 상궁 범씨에게서 아들 박진서와 박일서를 보았고, 둘째 아들 박일서의 딸이 바로 뒤에 의친왕의 왕자와 결혼하는 박찬주이다.--Lena92 (토론) 2014년 1월 17일 (금) 01:13 (KST)답변

여기에는 버젓이 상궁 범씨에게서 아들 박진서와 박일서를 봤다고 적혀있네요. 출처도 없이 감히.. 참.. 어이가 없네요. 언제 수정되나요? 위키 수정하려면 Lawinc82님 허락받고 해야되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Lena92 (토론) 2014년 1월 17일 (금) 01:15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