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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배달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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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의견: 5년 전 (InternetArchiveBot님) - 주제: 외부 링크 수정됨 (2018년 11월)

배달 문서의 넘겨주기 삭제 이유[편집]

우리들이 흔히 사용하는 배달의 기수, 배달민족 등의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배달은 한민족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그런데 이유립의 《환단고기》가 등장한 이후부터 소위 신시배달국의 등장으로 인해서 배달이 어느새 "환웅이 다스리는 나라"로 변화했습니다. 현재까지 찾아본 바로는 《환단고기》를 제외하고 배달이 "환웅이 다스리는 나라"로 사용된 예는 전혀 없으며, 심지어 국가명으로 사용된 예도 많지 않습니다. 엄밀하게 말해서 배달과 배달국은 전혀 다른 별개의 존재입니다. "배달국"이나 "신시배달국"이라면 관계 없지만, "배달"을 신시에 연결 시키는 것은 전혀 중립적이지 않으며, 엄밀하게 말해 틀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넘겨주기를 삭제하고 독립적인 배달 문서로 작성하였습니다.--Xakyntos (토론) 2008년 8월 21일 (목) 10:45 (KST)답변

배달에 대해서[편집]

기껏 신문에 보도된 내용을 인용하여 배달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지적하였는데 내용이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되돌려 놓았더군요. 물론 견해가 다르니 되돌려 놓을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배달은 실국시기(일제강점기를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맞다고 보기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인용한 내용대로 조선 숙종 2년(1675년) 3월 상순 북애노인(北崖老人)이 지은 '규원사화'라는 역사책에도 나오는 어휘입니다. 그래서 '한국학에 전통한 당시 고서심의위원이었던 이가원(李家源), 손보기(孫寶基), 임창순(任昌淳) 등이 1972년 11월 3일, 심의를 하여 규원사화가 숙종 때 쓰여진 진본임을 확인하였다'는 것을 인용하였던 것입니다. 분명 '배달(倍達)'은 실국시대이후에 나온 말이 아니고 이전에도 쓰였던 어휘입니다. 오히려 의미의 혼동을 주기 위하여 일제가 만들었다고 추측되는 '배달(配達)'이라는 일본식 한자어가 실국시대 이후에 만들어진 글자라고 생각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고 있는 '반도(半島)'라는 글자에서 찾을 수 있는데 영어로 'peninsula'라 하여 육지가 바다에 길게 돌출하여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부분을 일제가 자신들의 나라를 '온섬' 혹은 '완전한 섬'과 대칭되는 말로 '반쪽 섬'이라는 의미로 '반도(半島)'라 하였고 우리나라를 '한반도(韓半島)'라 하였던 것과 같은 경우일 것입니다. 굳이 일본식 한자어를 사용한다면 '뿌리의 땅'을 의미하는 '한근지(韓根地)'같은 글자도 만들 수 있는데 다분히 고의성이 있어 보입니다. 이것을 증명하라면 이미 100년 가까히 사용하여 학술용어가 되어버린 현재, 자료는 없어 증명할 길없고 무능력하게 되어 버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정말 '반쪽 섬'입니까? 한자를 사용하는 나라는 한국,중국,일본,대만뿐이라는 것을 상기한다면 그 간악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紫桃꽃 2009년 2월 10일 (화) 12:53 (KST)

위키백과는 증명되지 않은 명제를 독자연구로 수록할 수 없습니다. 《규원사화》는 현재까지도 진위 여부가 논란에 있는 책입니다. 진본임을 증명하였다고 하나, 내부적인 사료비판으로는 그 문제점이 많이 지적되어 아직까지 진위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규원사화》의 실질적인 등장 연도인 1920년대가 아닌 그 이전에 대해서는 소급 적용이 불가능합니다. 규원사화 문서를 참조하세요. 또한, 《규원사화》에 등장하는 용어는 박달 또는 백달이며, 이것은 분명 배달이 아닙니다. 배달이라는 용어가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글자'라는 것은 증명되지 않은 추측일 뿐입니다. 반도에 대한 내용 역시 증명되지 않은 추측일 뿐입니다. 이미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위키백과는 증명되지 않은 명제를 독자적으로 수록하는 것을 독자연구라고 하여 금지하고 있습니다. 충분한 근거와 더불어 공신력있는 출처를 통해서 주장하세요.--Xakyntos (토론) 2009년 2월 10일 (화) 13:13 (KST)답변
그러면 '백채(白菜)'가 '배추'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을 증명할 수 있는 기록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재야사학자로 불리는 임승국씨가 생전에 주장하였듯이 '백천온천(白川溫泉)'이 '배천온천'이라고 하고 '박고개(赤峴) 혹은 '붉고개'가 '배오개(동대문시장)'로 한다는 지명의 경우를 어떻게 증명해 낼 수 있을까요? 또한 우리말 응달(陰地)·양달(陽地)을 예로 들며 오름.솟은 땅(地)으로 풀이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고 '배달(倍達)은 백달(白達)의 자음접변에 의한 음운변형이고, 박달(朴達)은 백달(白達)의 모음변형이며, 백달(白達)은 백산(白山)의 다른 표기이다'라는 주장은 결국 허황된 얘기밖에 안되는 거겠지요. 어디에도 이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니 모든 것이 헛된 주장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실증사관에 의한 주장들이 한국고대사를 병들게 만들고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역사왜곡같은 일련의 사건에서 무위무책일 수밖에 없게 되는 거겠지요. 오직 실증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무시되고 배척되는 역사관은 계속될 것입니다. 실국시대에 집중적으로 소각되거나 유실, 폐기된 조선 상고사 자료가 자승자박의 결과를 만들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더욱이 언어와 글자는 진화나 변형성이 있어 자료보다는 현상으로만 증명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紫桃꽃 2009년 2월 10일 (화) 14:13 (KST)
맞습니다. 모두 허황된 주장입니다. 특히나 우리들과 같은 평범한 개인이 제대로된 논거도 갖추지 못한채 주장하는 것은 모두 허황된 주장으로 분류될 뿐입니다. 紫桃꽃 님이 그러한 주장을 위키백과에 올리시려면, 그에 합당한 공신력 있는 근거를 갖추도록 하십시오. 일개 개인이 출처도 불분명한 것을 근거로 주장하는 것은 위키백과의 원칙상 수록될 수 없습니다. 백달이 배달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또한 그러한 인식이 조선 숙종 시대에 있었음을 증명하는 논문이나 저서를 갖추지 못한 주장은 위키백과는 물론이고 학문의 세계에서 인정될 수 없습니다. 위키백과는 개인의 생각이나 추측을 공개하는 블로그가 아닙니다. 합당한 근거를 갖추지 못한 주장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위키백과:중립적 시각이나 위키백과:독자연구 금지를 참조하세요.--Xakyntos (토론) 2009년 2월 10일 (화) 14:14 (KST)답변


저도 실증사관은 싫은데, 실증없는 소설사관은 더욱 싫습니다. 일부 학자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일본 천황 소속 도서관 속에 실제로 한국 고대사 자료들이 많이 들어있다면 '소설사관'이 아닐 가능성은 있지만, 가능성만 가지고 백과사전에 올리시면 안됩니다. adidas (토론) 2009년 2월 10일 (화) 17:30 (KST)답변

(1) 배달은 몰라도 “반도”의 경우는 일본인이 만든 용어입니다. peninsula라는 “바다로 돌출한 땅”이고, 굳이 한자로 옮긴다면 반토(半土)가 되는데, 일본인이 조어할 때 반도(半島 : 반쪽짜리 섬)로 조어했고, 이것이 한자 문화권에 퍼졌습니다. 게다가 일제 강점기에 그저 “반도”라고 쓸 때 지리 용어인 반도로 쓰일 때도 있고, 한반도를 가리킬 때도 있었습니다. (2) 배천의 경우는 “白” 또는 “百”의 발음이 변형된 예가 있습니다. 황해남도 배천군 참조. 그밖에 끝소리 /ㄱ/이 탈락한 예는 육(六)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Knight2000 (토론) 2009년 2월 10일 (화) 19:30 (KST)답변

그리고 저도 소설사관이 실증사관보다 싫습니다. 그보다 더 싫은 것은 “실증 없는 실증사관”이고, 그보다 더 싫은 것은 반증이 나와서 기존 이론에서 부정해야 타당한 부분까지도 껴안고 있는 경우입니다. --Knight2000 (토론) 2009년 2월 10일 (화) 19:33 (KST)답변

白(흰/환할/밝을 백)의 자음 백이 종성 ㄱ이 탈락되어 배로 변한, 이른바 'ㄱ음 탈락현상'은 너무나 많다고 합니다. 다음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밝'이 '박' -> '백' -> '배'로 변한 예가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①復(돌아올 복, 다시 부) : 復歸(복귀), 復活(부활)

②讀(읽을 독, 구두/이두 두) : 讀書(독서), 句讀(구두)

③惡(나쁠 악, 미워할 오) : 善惡(선악), 憎惡(증오)

④食(밥/먹을 식, 밥/먹일 사) : 食氣(사기), 食鼎(식정)

(대종언어연구소의 박대종씨의 주장 참조)

이것은 현상일뿐 증명할 자료가 못되는 것이 안타까울뿐입니다. 또한 정통 실증사학자에 대비하는 말로 재야사학자라 하는 분들이 주장하는 사관을 '소설사관(이런 말 자체가 있는지 모르지만..)'이라 호도하는 것도 위험한 생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실국시대에 주도적으로 조선상고사 말살정책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 紫桃꽃 2009년 2월 10일 (화) 21:38 (KST)

일제강점기에 '주도적으로 조선상고사 말살 정책'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 이상 그러한 말씀은 모두 무용합니다. 저는 그러한 주장들을 여럿 보아왔고, 그들 가운데 그 누구도 말살 정책이 실제로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이를 보지 못했습니다. 증명하지 않은 채 주장만 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입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10일 (화) 21:52 (KST)답변

당연히 일제 시대에 일제의 주도하에 한국사를 왜곡하려는 시도가 상당히 있었겠지요. 그래서 친일사관 등이 생긴 것이고요. 그렇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재야사학자들의 허황된 주장이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adidas (토론) 2009년 2월 11일 (수) 01:00 (KST)답변

찾아보면 분명히 자료는 있습니다. '이병도사관'에 놀아난 한국역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119&aid=0000001014 )라는 신문사 기사로 단서를 찾을 수 있지만 Xakyntos님의 주장처럼 '누구도 말살 정책이 실제로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이를 보지 못했습니다'는 결코 아닙니다. 실국시대 때 사학자 이마니시 류(今西龍), 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나 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의 역사날조나 문화정책으로 말살에 대한 자료는 일제가 패망후 문서를 가져가거나 소각한 탓에 별로 남아 있지 않지만 아직 남아있는 문서기록이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힘있는 친일파들의 후손이나 이해관계자들에 의해 공개를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아직 친일청산이 안되어 자국민의 친일행각과 공개하기 곤란한 다른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 紫桃꽃 2009년 2월 11일 (수) 09:42 (KST)
친일파의 후손이나 이해관계자들에 의해 공개를 못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증명하실 수 있습니까?? 아니, 공개를 하지 않고 있는데 그 내용이 일제에 의한 상고사 말살-날조라는 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모두 다 추측과 협잡에 의거한 것일 뿐입니다. 링크를 거신 신문기사는 이미 잘못된 팩트에 근거한 비난을 하고 있습니다. 일제가 수거한 51종 20만권의 책은 현재까지도 대부분 남아 있거든요. 물론 51종류의 책들 자체도 민족의 역사서 따위가 아님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 링크를 참조하시죠.( http://orumi.egloos.com/214612 ) 51종류의 책들의 목록도 멀쩡하게 전해지고, 심지어 그 책 자체도 대부분 현재까지 전해진다는 사실을 감쪽같이 감춘 채 이병도를 까기 바쁜 겁니다. 나머지 부분들 역시 잘못된 팩트에 근거한 협잡이라는 것은, 조금만 자료를 찾아봐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이런 것을 두고 범죄라고 하는 겁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11일 (수) 10:20 (KST)답변
물론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살고 있듯이 생각과 사상과 주장들이 다를 수 있습니다..대학 곳곳에 아직도 세워져 있는 친일파 동상을 보면서 그리고 위의 같은 내용을 읽고는 해방은 되었지만 깊이 뿌리내린 일제들의 쓰레기같은 유산들이 청산될 수 없음을 느끼게 해주는군요. 잘못된 팩트인지, 추측과 협작인지, 역사관이 다른 주장인지는 두고봐야 될 것같습니다. 범죄로 까지 언급하는 것을 보면 또다른 심각성을 느끼게 해줍니다. 더이상의 논쟁은 무의미하고 언젠가 자유롭게 진실이 밝혀져 이런 시비가 없어지길 바랍니다. -- 紫桃꽃 2009년 2월 11일 (수) 13:23 (KST)
아무리 그런 말을 해도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이상 모두 무용한 말씀일 뿐입니다.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과, 현재 우리나라의 역사학계나 기타 부문에 일제의 쓰레기 같은 유산들이 청산되지 않았다는 것은 전혀 무관한 팩트죠. 명명백백하게 존재하는 자료를 무시한 채 오로지 일제의 잔재, 식민사관이라 주장하는 것이 범죄가 아니면 무엇일까요?? 이미 위에서 예를 들었듯이, 일제가 우리 역사서를 수거해서 폐기했다는 것은 일제의 51종 20만권 분서가 근거인데, 정작 그렇게 수거된 51종의 책들도 멀쩡하게 남아 있고, 수거된 책들 자체도 고대 역사서 같은 것이 아님을 보여드렸습니다. 여기서 더이상의 논쟁은 무의미하다라고 말씀하신다면, 紫桃꽃 님의 편협한 인식만 드러내는 증빙 자료 밖에는 안됩니다. 아니라면, 저처럼 명명백백한 증거를 가지고 일제의 쓰레기 같은 유산들이 청산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세요. 그런 증명이 없는 이상 紫桃꽃 님의 말씀은 헛된 추측에 불과한 겁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11일 (수) 14:14 (KST)답변
더이상의 논쟁은 무의미하다것은 어떤 증거를 제시한다해도 잘못된 팩트로 취급당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느 인터넷 사이트 '국학원'에 있는 이런 내용( http://kookhakwon.org/_new/info1.htm?cat=&mode=V&id=157&SN=&tbl=khw_board02&SK=&SW=&no=117 )도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Xakyntos 님의 주장대로 51종 20만권의 책들이 분서되었다고 하지만 규장각 등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 주요 골격인데 문서 진위에 대한 것, 목록의 진위 등 논란거리가 있기에 그것도 잘못된 팩트일 가능성이 많다고 보고 서로 논쟁의 가치가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논란이 오래전 한일관계 게시판에 올려진 내용 중 일부임을 보고 어떤 트릭에 빠졌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 紫桃꽃 2009년 2월 11일 (수) 16:24 (KST)
국학원에 있는 내용이 대체 무슨 관계입니까?? 국학원은 국가기관도 아니며, 사학계의 공식적인 입장을 대변하는 곳도 아닙니다. 해당 내용 안에서도 잘못된 팩트가 넘쳐 흐르고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요. 게다가, 제가 제시한 팩트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신다면, 그것을 증명하면 되는 일입니다. 문서의 진위니, 목록의 진위니 하는 의심은 증명되지 않는 이상 말 그대로 무위일 뿐입니다. 트릭에 빠진 것 같다구요?? 그렇다면 트릭을 깨고 자신의 주장을 증명해 보세요. 이곳은 위키백과 토론 문서입니다. 위키백과는 신뢰할만한 출처를 가진 내용만을 인정합니다. 신뢰할만한 출처-증거도 하나 제시하지 못하면서 트릭에 빠졌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무의미한 일입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11일 (수) 16:40 (KST)답변

의견 자두(자도인듯?)님, 일제시대 친일파들에 의한 여러가지 잘못된 학문적 기풍은 바뀌어야 하겠습니다만, 그렇다고 자동적으로 재야사학자들의 환국이니 대쥬신제국이니 하는 주장들이 입증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문가에 의한 학문적 저서, 논문 등을 근거로 들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adidas (토론) 2009년 2월 11일 (수) 17:40 (KST)답변

예로 든 사이트의 예문을 보고는 짜임새 있게 작성한 예문의 작성자가 '이 X 영'로 되어있어 찾아보니 역시 출신대학 답습니다. 몇년전 그대학 명예교수로 있는 한아무개 교수가 연상이 되는군요. "일제강점기는 정당하며, 한국에 축복, 일본에 감사해야"한다는 어이없는 감상연설이 본의아닌 실수라고 하였지만 이런류의 인간들이 의외로 많은 것같습니다. 예로든 내용처럼 상고사 환인을 언급하면 좀비에 비유하여 환비(桓匪)나 '환빠'라 지칭할 정도이니 지금 어느 세상에 살고 있나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오히려 '일비(日匪)'나 '일빠'라고 해야 할 이런 인간들을 보니 한심하다는 느낌입니다. 더구나 노무현 정부때 발표한 친일인명사전에 대한 논란이 한동안 매스컴의 토론거리가 되었으니 아직도 한국은 친일청산이 요원하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Xakyntos님의 명명백백하게 존재하는 자료를 무시한 채 오로지 일제의 잔재, 식민사관이라 주장하는 것이 범죄가 아니면 무엇일까요? 이말이 여러가지로 이러한 현실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봅니다. 아무튼 희한한 대한민국입니다. -- 紫桃꽃 2009년 2월 11일 (수) 18:22 (KST)
자도님의 의견이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 나라의 역사학계가 친일사학계/재야사학계로 이분화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위에 xakyn님이 예로 드신 블로그의 글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일제가 금지했다는 51종의 책 중 그나마 일제의 '한국사 절멸음모'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는 책은 "신정 동국역사, 대동역사략, 을지문덕" 이랑 역사 교과서 정도 같습니다. 물론 자료는 없지만 일제에서 한국사 탄압을 했겠지요 안했겠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환단고기, 규원사화 등 사료적 가치가 크지 않은 자료들을 맹신해서는 안됩니다. 친일청산만큼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근거 없는 추측성 역사쓰기는 지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 일부 환단고기 맹신자들의 주장은 시오노 나나미의 친제국주의적, 소설적 역사서술과 상당히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도한 민족주의가 역사에 개입하면 일제와 같은 결과물이 나타날 수 있다고 봅니다. adidas (토론) 2009년 2월 11일 (수) 19:00 (KST)답변
저도 이병도의 제자인 이기백의 제자인 김두진의 제자인 문창로의 제자입니다만, 그것과 이 사안이 대체 무슨 관계일까요?? 어떤 대학의 명예 교수가 커밍아웃을 하면 그 대학의 모든 교수들도 같은 등급으로 매겨지는 것입니까??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다 인신공격의 오류까지 엿보입니다만. 환비나 환빠라 불리는 자들은, 그것이 싫다면 그에 합당한 증거와 실력을 갖추고 오면 될 일입니다. 저 역시 그들을 일컬어 환빠라고 부릅니다만, 그것은 개인적인 표현일 뿐, 그들을 무시하는 이유는 그들이 허황된 주장을 하기 때문일 뿐입니다. 허황된 주장을 하기 때문에 비난하는 겁니다. (물론 그렇다고 환빠라 부르는 행위가 잘했다는 말은 아닙니다만, 저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기에 개의치 않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지만, 저 역시 이병도의 학맥(?)이지만, 그렇다고 이병도가 친일파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병도의 친일파 행적과 그의 연구성과를 분리해서 바라볼 뿐입니다. 당연한 말이지요. 이병도가 친일파(A)라는 것과 그의 역사 연구(B)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A가 B에게 영향을 끼쳤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면 그러한 부분을 판별하고 연구할 일이지, 친일파라는 이유로 연구 성과를 모조리 부정하는 어이없는 행위는 하지 않습니다. 친일 청산이란, 친일 행위에 대해서 명확하게 인식하고 그에 합당한 연구를 하는 것이지, 친일파라는 이유로 모조리 싸잡아 욕하고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11일 (수) 19:17 (KST)답변
사학계에서 양비론(兩非論)에 가까운 주장을 하는 재일사학자 이성시(李成市) 와세다대 교수의 '동아시아 고대사 인식의 분기(分岐)와 연환(連環)'에서 언급한 '이나마 이와키치'나 '구로이타 가츠미'의 주장과도 Xakyntos님 말의 논지가 조금은 일맥상통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 일본이 강제점령후에 민족의식으로 조성되기 시작한 단군신화라고 하는 논거'를 예로 들면서 그는 글에서 '중국'이나 '일본' 그리고 '한국' 등, 동아시아의 모두가 꾸며진 역사를 가지고 허황된 역사를 만들고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지요. 흥미로운 것은 후세에 친일파로 분류되는 시인이자 사학자이기도 한 '최남선'씨가 실국시대 당시 이러한 주장들을 보고 오히려 상고사 연구에 치중하게 하는 분기심(憤氣心)을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지요. 지금부터 86년전인 1922년 최남선은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가 단군 신화를 몽골의 침략시(13세기 후반) 나타난 역사적 산물이라는 설을 전개할 때 이케우치 제설에 대항하는 논진을 폈고 또한 조선사 편수회 위원회에 대해 단군의 취급을 둘러싼 편집 방침에 철저한 반항을 하였다는 것이 그글에 밝혀져 있는데 최남선이 조선 총독부의 조선고적조사 사업에 대해 아주 중요한 것을 언급하였던 것이지요. '조선인이 하지 않는 일, 조선의 일'을 일본인이 하였다는 것은 칭찬해주고 싶지만 이 치욕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였던 것입니다. 최남선의 지적처럼 우리 민족이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 히브리인과 다른 아킬레스 건은 그들은 기록문화가 잘 발달했다는 것과 우리 한민족은 기록문화가 왕실과 양반같은 사대부집안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혀 발달되지 않았던 차이였고 그런 전통과 정서가 전혀 없었다는 거지요. 아무튼 꾸며진 역사로 치부하는 한국의 송모교수와 같은 또다른 실증사학의 맥락이 형성되어 간다는 느낌이고 과연 그게 맞는 주장인지는 좀더 지켜 볼 일이겠지요. -- 紫桃꽃 2009년 2월 12일 (목) 10:47 (KST)
아쉽죠. 고대부터 기록문화가 잘 발달되어 있었다면 고대사 연구하기에 참 좋았겠습니다. 하지만 세종대왕 이전에 자체적인 문자도 없었고(가림토가 있었다고 하나 널리 쓰이진 않았던 것 같고요) 그 이후 조상들이 삼국시대에 분명히 편찬되었을 저작들을 잘 보관하지 못한 탓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추정'만 가지고 허황된 역사를 만드는 것도 잘못이 아닐까요. 배달 말고도 고대사 관련한 많은 항목들이 있는데, 자두님께서 '충분한 근거'에 입각하여 해당 내용들도 잘 편집해주셨으면 합니다. 환단고기, 대쥬신제국사, 단기고사, 단군조선, 단군, 환인, 환웅 등의 문서에서 혹시 잘못된 편집이 있다면 직접 참여해서 바꿔주셨으면 합니다. adidas (토론) 2009년 2월 12일 (목) 23:14 (KST)답변
  • 의견 뒤늦게 수정하지 마시고 새롭게 달아주시면 좋겠네요^^ 아울러 환빠도 문제지만 일빠가 더 큰 문제죠. 특정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사료가 없는 상태에서 무리한 추론을 하거나 자의적으로 역사를 해석해서는 안되겠지요. 지금 딱히 일빠스러운 문서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adidas (토론) 2009년 2월 23일 (월) 09:21 (KST)답변


배달 어원 찾기에 대한 비판[편집]

'배달'이라는 말은 일제 강점기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는 말에 대해서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가령 우리가 쓰고 있는 말중에 어원을 밝혀낼 수 있는 말들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해 본다. 같은 논리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일제 강점기에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누가 주장한다면 그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밝혀낼 수 있을까? 이같은 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에서 연유된다. 한글은 1907년부터 주시경(周時經)은 '하기국어강습소'를 운영하기 시작해서 1908년에는 '국어연구학회'(한글학회의 전신)를 창립했고 1911년에는 '국어'란 말을 쓰지 못하게 되자 학회의 이름을 '배달말글 몯음'이라고 했다가 1913년에는 다시 '한글모'로 바꾸었으며, 1927년에 기관지인 〈한글〉을 펴내기 시작하면서 이 말이 널리 쓰이게 되었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이같은 일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자료가 없다는 것으로 이것을 마치 허접한 우리의 역사처럼 매도하는 데에 아찔함을 느낀다. 紫桃꽃 2009년 4월 26일 (일) 15:10 (KST)

네 정말 안타까운 일이죠. 하지만 자료도 없는 것을 '추정'해서 백과사전에 실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배달'의 어원에 대해 일제 강점기 이전의 자료가 명확하게 발견되면 참 좋겠습니다. adidas (토론) 2009년 4월 26일 (일) 17:33 (KST)답변
안타깝기는 커녕, 의미없는 허언일 뿐입니다. 아버지의 어원은 아비이며, 이 말은 훈민정음이 반포된 이후에 기록된 수많은 한글 문헌에서 셀 수도 없이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현존하는 한글 어휘의 대부분은 훈민정음을 비롯한 수많은 한글 문헌 속에서 그 어원과 원형을 모두 찾을 수 있습니다. 반면 배달은 그 실체가 의심스러운 《규원사화》를 제외하면 단 하나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추측성 발언을 통해서, 그리고 본문과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내용으로 터무니없는 의문을 표시하시기 이전에, 먼저 배달의 어원으로 찾아보는 것이 가능한 문헌부터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해당 부분의 편집은 저나 일개 아마추어의 추측성 발언이 아니라, 신채호나 길림성민족사무위원회와 같은 명명백백한 출처를 찾을 수 있는 공인된 기관의 견해입니다. 고작 일개 개인, 그것도 공인이 아닌 사람의 억지스러운 추측을 실을 만큼 위키백과는 허술한 백과사전이 아닙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4월 27일 (월) 01:36 (KST)답변
일제강점기가 1910년 한일합방이후라고 한다면 1911년 왜 한글학회이름을 '배달말글 몯음'이라고 했을까요? 당시에 '배달'이라는 말이 통용되지 않았다면 한때 학회이름을 '배달말글 몯음'이라고 정할 수 있을까요? 불과 몇년만에 만들어진 '배달'이란 어휘를 '배달말글 몯음'이라고 학회이름을 어떻게 생각해 낼 수 있을까요? 여기서 벌써 '배달'이라는 말이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어휘가 아님을 분명히 밝혀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훈민정음 어디에 한글 어휘로 '아버지'나 '어머니'가 나온다는 얘긴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기에 그냥 이해를 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한글 어휘나 맞춤법 제정이 언제부터 되었는데 정확한 출처를 알 수 있다는 것인지 어폐가 있군요. 그리고 한글로 된 사전을 언제부터 만들었는데 한글어원을 밝힐 수 있다는 것인지 자가당착적인 말에 지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본인에게는 님도 '의미없는 허언'이라고 무시하는 말로서 실증사학적인 망상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紫桃꽃 2009년 4월 27일 (월) 02:49 (KST)

4월27일 편집 되돌리기 사유[편집]

해당 부분의 내용은 출처도 불분명하며, 사실상 독자연구로 추측되는 불분명한 내용입니다. 게다가 설사 독자연구가 아니라고 해도 해당 내용은 "한글"이라는 용어에 대한 내용일 뿐, 배달이라는 문서와는 전혀 무관한 내용입니다. 해당 내용은 한글은 수백년 동안 쓰이지 않다가 일제시대에 일상화된 말이다라는 주장을 통해서 배달의 어원을 추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라는 전혀 무관한 결론을 유추하고 있습니다. 독자연구라고밖에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애초에 유추 자체도 잘못된 것입니다. 명명백백한 오류이므로 삭제하였습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4월 27일 (월) 01:44 (KST)답변

'배달'이라는 어휘가 한글이 아니고 한자라면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지요. 한글 어휘이기에 한글은 수백년 동안 조정(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쓰이지 않다가 일제시대에 일상화된 말이다라는 말도 할 수 있고 배달의 어원을 추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라는 주장도 할 수 있는 거지요. 뭐가 명명백백한 오류인지 애초에 유추 자체도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정말 이해가 안되는군요. 즉 '배달=한글'이라는 등식이 성립되기에 이런 주장을 하는 겁니다. 紫桃꽃 2009년 4월 27일 (월) 03:05 (KST)
한글이 수백년간 쓰이지 않다가 일세지대에 일상화되었다는 말이 틀릴 것 같습니다만^^... 적절한 출처가 없다면 결국 독자연구가 되기 때문에, 담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adidas (토론) 2009년 4월 27일 (월) 04:07 (KST)답변
한글은 '언문'이라해서 사대부 양반들이 공식적으로 사용하던 말은 아닙니다. 아녀자나 평민이하 사람들이 쓰던 말이기에 낮춰 불렀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한 '아버지'나 '어머니'는 그래서 '아비 부'나 '어미 모'로 낮춰 말했던 거지요. 지방에 가면 지금도 '박달나무'를 '배달나무'라고 부른다는데 왜 '배달'이라는 말이 없었겠습니까? 중국 한나라때 지은 예기(禮記)중 단궁(檀弓)편이 나온다는데 단궁은 동이족들이 만든 활을 말함이고 '맥궁','낙랑단궁','동예 단궁'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얘기는 지금도 '박달나무'로는 활을 만들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단궁(檀弓)이라 하였는지 의아스럽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단군조선'이나 '배달국(檀國)'이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라는 얘기입니다. 얼마전 TV나 신문에서 신라인들이 '흉노족'이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보도한 적이 있는데 기타 중앙아시아나 만주에 살던 동이족들이 '배달겨레','배달민족'의 후예들인지 누가 알겠습니까? 아직도 실증사학의 논리에 벗어나지 못하고 어휘 하나에도 이렇게 혼란을 주고 있으니 답답한 일이지요. 紫桃꽃 2009년 4월 27일 (월) 06:14 (KST)
일단 단궁->배달나무 활이라는 주장은 '독자연구'이거나 '무리한 추론'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신라인들이 흉노족이었네 어쩌네 하는 것은 김일제 문서에 잘 설명이 되어 있군요. 증거도 없이 '이것이 역사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역사 서술이란 역사가 임의대로 당시 상황을 '구성'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주장이라고 봐도 무방할지요? 하긴, 그런 입장이라면 역사 소설이나 역사 연구나 오십보 백보이니 문무왕 비문만 가지고도 신라=흉노이며 만주인, 몽골인, 일본인 등이 모두 우리와 함께 '쥬신'의 일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adidas (토론) 2009년 4월 27일 (월) 06:53 (KST)답변
혹시 모르죠. 만에 하나 일제시대 이전의 사료가 발견되어 가령 '배달'이라는 말은 고구려에서 머시기를 뜻하는 표현이다. 라는 자료가 나올 수도 있겠지요. 그런 확률이 0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최소한 현재로서는 아무 것도 없군요. adidas (토론) 2009년 4월 27일 (월) 06:55 (KST)답변
이번에 TV 그것도 대한민국 대표적인 방송에서 '방송내용이 방송사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라든가 '아직 밝혀진 내용이 확실하지 않다'라는 문구도 없이 2회에 걸쳐 방영하였고 중앙일간지에도 보도한 내용을 '독자연구'이거나 '무리한 추론'이라고 단정하네요. 본인도 아직은 흉노족이라는 말에 신빙성을 두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배달'이라는 어원에 대해서는 어처구니 없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몽골족의 고려침공이후 700년동안 철저히 외면된 한자문화권에서 한자가 아닌 힌글로 된 '배달'어원 찾기란 삶은 배추에서 살아있는 미생물 찾는 것과 같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그러나 어투가 빈정대는 투이고 언급하지도 않은 얘길 들먹이며 확대해석하는 모습이 영..이것이 무슨 소설얘기하는 것처럼 보이나요? 님이나 'Xakyntos'이나 계속 실증사학적인 망상으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님도 나에게 그리 느낄지 모르지만 참으로 개인적으로 한심스럽습니다. 紫桃꽃 2009년 4월 27일 (월) 08:29 (KST)
실증사학이 비판받을 지점은 있겠지만, 1차 사료에 대한 '실증'은 모든 역사학의 기본 출발이 아닐까 합니다. TV방송이나 중앙일간지 역시 신뢰할 만한 출처로 볼 수는 있겠습니다만, 신채호나 길림성민족사무위원회의 말을 뒤집을 정도인지는 의심스럽습니다. 이런 기본적인 실증마저 무시한다면, 역사학이 아니라 문학의 범주라고 생각됩니다만. adidas (토론) 2009년 4월 27일 (월) 10:54 (KST)답변

1[편집]

죄송합니다만, 자도꽃 님은 애초에 배달 문서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 상태에서 독자연구만 주구장창 파고 있습니다. 배달이라는 말 자체의 가장 오래된 출처인 <규원사화>는 한자로 되어 있습니다. 배달=한글로 된 어휘라는 귀하의 테제 자체가 틀리다는 가장 명백한 증거지요. 또한, 박달나무 檀자의 훈이 박달이라는 사실은 유득공(柳得恭)의 ≪사군지 四郡志≫에 보면 “속(俗)에 단(檀)을 일컬어 박달(朴達)이라 하는데 박달나무로 활을 만든다.라고 하여 한자 문헌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이 문헌 자료를 통해서 어떤 단어의 어원을 찾는 일은 결코 불가능하지도, 무의미하지도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귀하는 무려 한글이 일제시대에나 상용화된 말이므로 배달의 어원은 찾기 어렵다라는 아무런 의미없는 주장을 통해서 그러므로 배달의 어원을 찾지 못하더라도 배달은 고대로부터 전해진 것일 가능성이 많다라는 역시나 무의미한 결론을 도출하시려 합니다. 참으로 재미있군요.

게다가 단궁 운운하면서 배달과의 관련성을 어떻게든 추측해보려 하십니다만, 박달나무는 활의 재료로 멀쩡하게 사용 가능한 목재입니다. 활의 재료로 사용 가능한 목재는 수없이 많으며 그 가운데 박달나무를 포함한 자작나무과 목재는 활의 재료로 잘만 사용됩니다. 하다못해 백과사전에서 맥궁만 찾아보아도, 박달나무로 만든 활이라 명백하게 적혀 있지요. 위에 제가 인용한 유득공의 발언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귀하는 팩트마저 왜곡하시고 있군요. 팩트마저 왜곡하시고 실증이라는 학문의 가장 기초적인 방법론까지 부정하시면서 찾으시는 진실이 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그런 방법으로 찾아낸 것이 과연 진실일지가 궁금할 따름입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4월 27일 (월) 09:36 (KST)답변

팩트의 왜곡이 아니라 '역사스페셜'에서 활제작 기능보유자의 입을 통하여 증언해준 내용입니다. 박달나무로는 활을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李瀷)은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단궁을 '단군의 나라에서 쓴 활'이라고 말하였지요. 인터넷을 통하여 살펴보세요. 박달나무가 활제작에 합당한 나무가 아니기에 아직도 의견이 분분한 것입니다. 각궁 제작법을 보면 박달나무가 들어가지만 주요재료가 뿔인데 왜 각궁이 옛날에는 '단궁'이라고 하였는지 그 당시에도 의문를 가졌던 것인데 한 개인의 '독자연구'로만 주구장창 몰고 있군요. 생각하는 것과 보는 시각이 다르니 주장이 다르게 나올 수는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허접하게 생각지는 마세요. 그분들도 배울만큼 배운 박사들도 많습니다. 어느 중앙일간지에 보니 이런 글도 있습니다. "활의 생명은 바로 활의 탄력성에 있다. 우리의 각궁은 당시로서는 가장 탄력성이 우수한 무기였다. 활의 탄력성을 높이기 위해 산뽕나무, 참나무, 대나무를 주재료로 하면서 안팎으로 무소뿔과 쇠심줄을 둘렀고, 접착 효과를 높이기 위해 민어 부레를, 방습 효과를 위해 자작나무 껍질을 사용했다. 각궁은 백팔십도 뒤집어서 쓰는 만곡궁(彎曲弓)인 까닭에 다른 민족의 일자형(一字弓)보다는 탄력이 우수하였다. 중국에서는 고조선의 활을 단궁(檀弓), 맥궁(貊弓), 낙랑단궁(樂浪檀弓)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자작나무 껍질이 박달나무라고 보는데 이렇게 주요재료가 아닌데도 단궁(檀弓)이라고 불렸던 것이 이상스럽지 않은가요? 기사참조(http://news.nate.com/view/20071213n13094)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배달'이란 어휘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말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지금도 '박달나무'를 많은 곳에서 '배달나무'로 부르듯이 1911년 한때에는 '한글학회'를 '배달말글 몯음'이라고 했다는 사실에서 조선 후기 당시에도 '배달'은 흔히 사용하고 있었던 '어휘'였다는 것입니다. 그때 지금처럼 한글사전이 있었다면 증거자료가 있었겠지만 본격적인 사전 편찬,편집작업은 해방이후에나 가능했기에 이런 오류나 혼란도 생기는 것입니다. 紫桃꽃 2009년 4월 27일 (월) 13:24 (KST)
귀하의 주장은 애초에 생뚱맞은 곳에 핀트를 맞추고 있습니다. 단궁이라는 이름이 단군·고조선에서 비롯된 것이건, 박달나무에서 비롯된 것이건 간에 단궁과 배달은 전혀 관계가 없는 물건입니다. 단궁이라는 명칭이 고조선의 활이라는 의미에서 단궁이 되었다는 것과, 배달이라는 말이 고대부터 있었다는 것이 어떻게 연결되는 것입니까? 둘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습니다. 단군의 檀자가 박달나무 단이라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것이며, 실제로 일제시대 많은 사가들이 배달과 檀을 동일시하였습니다. 즉, 고대에 박달나무 단자가 쓰인 예를 수천 수만가지를 찾아오더라도, 일제시대 사가들의 논의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수준일 뿐입니다. 귀하께서 배달이라는 말이 일제강점기 및 구한말, 즉 근대 이전에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박달나무 단자와 관련된 이야기를 수집할 일이 아니라, 배달이라고 명백하게, 혹은 비슷하게 발음될 수 있는 옛 단어를 찾아오실 일입니다. 한글사전의 유무는 그것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나무, 뿌리, 샘, 물 같은 수많은 단어들은 이미 훈민정음이 창제될 무렵까지 소급해서 어원을 찾아가고 있으며, 심지어 훈민정음 창제 이전까지도 어원을 찾는 것도 많습니다. 근대, 정확하게 말해서 1909년에 공개된 단군교포명서 이전에 어떠한 실존 증거도 찾을 수 없는 배달과는 천지차이지요. 물론 그러한 작업에는 국어사전과 같은 것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합니다. 어차피 국어사전은 귀하의 말씀대로 근대에나 완성된 것이니까요. 불휘, 아비, 어미와 같은 단어의 어원을 찾는데 대체 국어사전이 왜 필요합니까?? 귀하는 여기서 통하지도 않을 억지를 부리며 시간낭비를 할 것이 아니라, 고문헌들을 뒤져서 배달이라는 어휘가 실제로 단군이나 조선을 의미하는 단어로 쓰인 예를 찾아보셔야 할 것입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4월 27일 (월) 16:47 (KST)답변
은진 송씨의 족보에 쌍청당 송유 선생의 행적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은진 송씨가 '회덕 송씨'라고 할 만큼 크게 번성한 것은 송명의의 손자(6대)인 쌍청당 송유(雙淸堂 宋愉 : 1389∼?)때부터로 유는 고려 창왕 원년(1389)에 진사 송극기(宋 克己)와 고흥 유씨(柳氏)사이에서 태어났으나, 4살 때 아버지가 죽자 홀어머니와 함께 당시 서울이던 개경에서 은진군 고향으로 내려와서 살게 된 것이 기원이다..(생략)..쌍청당부군께서 이 곳 배달촌(지금은 계족산으로 불리는 백달산=배달산의 자락이라 백달 혹은 배달이라 불림)에 자리 잡으신 것을 덕은가승이란 책의 기록에서 보면 『쌍청당께서 세 번째 자리를 옮겨 백달촌(白達村: 지금의 송촌)에 정착하셨다』와 『쌍청당께서 44세 되던 1432년(세종14) 쌍청당을 짓고 화초를 가꾸며 담백한 생활을 하였다』고 전해 온다.." 이렇게 은진 송씨의 족보에서도 찾을 수 있듯이 지명이나 나무이름에 사용되었고 또한 현재도 사용되고 있는 '배달'이라는 어휘를 왜 계속 실존증거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되는군요. 문헌이나 족보에는 구한말까지 한자로 쓰여져 있어 자료를 찾을 수가 없는 겁니다. 다시말해 '한글'은 1910년 한일합방이 되기까지 주로 아녀자나 평민들이하의 백성들이 부분적으로 사용하였던 글자이니 당연히 찾을 수가 없는 거지요. 자료를 찾다보니 단군의 檀자가 박달나무 檀자를 예로 드는 것이구요. 단궁도 그래서 언급했던 것인데 '생뚱맞다'니요. 물론 다른 분들처럼 한글 위키백과에 대해서 '배달'에 대해서 뭐라하든 신경끊고 외면해도 상관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달라질게 없으니까요. 그러나 대한민국 사람으로 고향에 가보면 박달나무를 배달나무로 옛부터 불려져 왔었고 증조할아버지도 가끔 들려주었듯이 '배달겨레','배달민족'을 들어왔던 말인데 '배달'이라는 말이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계속 주장하고 있으니 실소를 금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님은 그게 한편으론 우숩게 보이는지 모르지만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차라리 이런 일이 우리에게 더 유익한 모습이라 싶습니다. 참조(http://video.cyworld.com/204403343) 紫桃꽃 2009년 4월 27일 (월) 17:53 (KST)
백달이니 배달이니 박달이니 하는 어휘를 아무리 찾으셔도 의미가 없습니다. 그 배달, 백달 등의 어휘가 단군이나 고조선을 의미할 때에야 비로소 가치가 있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제가 고려·조선시대 고문헌을 뒤져서 예수로 발음되는 어휘를 아무리 찾아다 쌓는다 한들 그것이 그 시대에 기독교가 전파된 흔적이 될 수는 없겠죠. 예수라는 발음의 어휘가 기독교의 그 예수에 해당하는 뜻일 때 비로소 가치를 가지는 것이지요. 배달이나 백달이라는 어휘, 혹은 박달나무와 박달나무 檀과 관련된 어휘를 아무리 찾아다 쌓아 놓아봤자 배달=단군이라는 어휘가 아닌 이상 무의미한 것입니다. 그리고 참고삼아 말씀드립니다만, 족보라는 것은 아무리 연원을 깊이 추적해 보아도 조선 후기를 넘어서지 못하며, 대부분의 족보는 근대에 이르러 새로이 추가된 사항이 많기 때문에 현대판 족보는 사료적 가치가 전무합니다. 즉, 해당 족보의 배달촌 기록이 언제 형성되어 언제 추가된 것인지를 명확하게 확인하지 않는 이상, 그것은 그저 근대에 편집된 족보에 기록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이 링크를 참조하세요.--Xakyntos (토론) 2009년 4월 27일 (월) 18:23 (KST)답변

2[편집]

추가합니다. 위에 인용된 <덕은가승>이라는 책을 찾아본 결과 1998년에 출판된 책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즉, 해당 족보는 1998년에 출판된 가문 문집을 출처로 된 것이며, 전혀 전근대 문헌이 아닌 것입니다. 물론 이런 것을 확인하고 찾아볼 필요도 없이 해당 족보 또는 <덕은가승>이라는 책에 등장하는 배달이라는 어휘가 단군이나 고조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은 주지의 사실이지요.--Xakyntos (토론) 2009년 4월 27일 (월) 18:41 (KST)답변

참 답답한 얘기군요. 물론 국수,민족,맹신주의 등에 빠져있는 것도 보기가 안타깝지만 학교에서 배운 주입식교육에 의해 고지식한 틀에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안타깝습니다. 우리가문의 발행족보를 보면 갑자보니 을축보니 하며 옛날 한자로 되어있는 족보들을 번역하여 새롭게 편집을 하고 있지요. 님의 지적해준 바와같이 1998년에 개정, 출판되었더라도 <덕은가승>은 조선초기 족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한자형 족보를 한글형 족보로 현대화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현실에서 '배달'이라는 우리 옛이름을 한글자료로 증명해 찾아내라는 얘기는 고궁에 가서 현대식 모습의 옛건물을 찾는 것과 같은 논리입니다. 분명히 쌍청당부군께서 이 곳 배달촌(지금은 계족산으로 불리는 백달산=배달산의 자락이라 백달 혹은 배달이라 불림)에 자리 잡으신 것을 덕은가승이란 책의 기록에서 보면 『쌍청당께서 세 번째 자리를 옮겨 백달촌(白達村: 지금의 송촌)에 정착하셨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내용을 1998년 출판되었으니 믿을 수 없는 자료로 치부하는군요. 기대도 안하였지만 역시나 님의 변함이 없는 답습된 논리에 감탄스럽습니다. 그러나 말이란 갑짜기 만들어낼 수 있는 어휘가 아니지요. 우리가 아직도 한자식 혹은 중국식 이름을 사용하듯이 변함없이 2글자나 3글자로 자식이나 손자의 이름을 짓고 있지요. 그래서 집안에서 쓰는 이름과 족보에 올린 이름이 다른 분들도 많습니다. '배달'이란 어휘도 이와같습니다. 우리 이름들이 한자식으로 되어 있듯이 '배달'을 '倍達' 등처럼 굳이 한자식 이름으로 바꾸어 사용하는 예입니다. '배달'이란 어휘가 '朴達','白達','倍達'등처럼 여러가지로 변용되어 부르는 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배달'이란 어휘가 고조선이나 단군을 지칭하는 말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증명해내라는 얘기인데 중국사서등에 나오는 '檀'이라는 글자와 '朴達','白達','倍達'등 글자의 상관관계를 현대식 사전처럼 어떻게 도식화할 수 있을까요? 정식적인 사전식 한글편집도 해방이후일텐데 자료수집이 가능할까요? 그래서 입으로 전해지는 부분적인 단서를 찾을 수밖에 없는 거지요. 또한 몇번이고 언급하지만 '박달나무'를 '배달나무'로 부르듯이 음이나 훈에서 찾아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어머니'가 '아비(父)','어미(母)'로 부르는 이유를 현대식 사전처럼 설명하라면 님은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6하원칙처럼 언제,어디서,어떻게,무엇을,왜,어떤 방식으로 바뀌게 되었는지 도식화하라는 것이 합리적인 주문이겠는지요? 님이 이곳에서 '배달'의 어원을 그런식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고 그게 답답하고 안타까운 모습으로 오늘도 변함없이 이곳에 자리잡고 있는 겁니다. Xakyntos님 무슨말인지 아시겠어요? 紫桃꽃 2009년 4월 28일 (화) 10:06 (KST)
제가 이해하기로는, xakyn님은 "명확한 근거도 없는 독자연구를 자제하라"라고 말하고 계신 반면, 자도님은 "애초에 명확한 증거를 제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라고 말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만약 자도님의 의견이 맞다고 가정한다면, '배달'의 어휘에 대해 국어학자들이 연구를 한 부분이 분명히 있지 않을까요. 그러한 (아마추어가 아닌) 학자들의 의견을 첨부한다면 더욱 더 확실하지 않을까 합니다. 여기서 아무리 자도님이 이런저런 주장을 한다 한들, 그런 것들은 결국 '독자연구'의 범위 안에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설령, 자도님이 '배달'의 어원을 명확히 증명했다 쳐도, 자도님이 전문가가 아닌 이상, 그 역시 '독자연구'일 뿐입니다.(참고로 독자연구란, '새로운 문제 해결 방법 또는 이론을 소개', '고유한 아이디어를 소개', '기존 용어를 새롭게 정의하거나, 새로운 의미를 가정하여 부여', '믿을 수 있는 출처가 없는 주장을 소개하고, 이를 다른 아이디어·이론·주장·입장을 반박하거나 지지하는 데 사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자도님 입장에서는 답답하시겠지만, 위키백과에 글을 올리실 때는 꼭 '근거'를 올려 주시길 바랍니다. 아울러 계속해서 망상이니 무슨 말인지 알겠냐느니 하는 식으로 불쾌한 표현을 쓰면서 토론하지는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adidas (토론) 2009년 4월 28일 (화) 11:20 (KST)답변
착각하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덕은가승>은 족보가 아니고 1998년에 출간된 단순한 문집일 뿐입니다. 또한 족보 자체가 <덕은가승>에 이렇게 써 있다.라고 되어있으니 갑자보니 을축보니 하는 옛 족보에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구절이 분명합니다. 1998년에 처음 출간된 책이니 그 이전의 족보에 있을 수가 없지요. 결론은 1998년 이전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 구절일 뿐입니다.
또한, 사전 따위가 없어도 우리말에서 어원을 찾는 작업은 국어학자들이 수도없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돼지의 어원은 돝이며, 용비어천가에 분명하게 적혀 있습니다. 또한 돝을 신라 때 음차해서 사용했던 표현인 독(髑), 도치 등을 모두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돼지에 해당하는 으로 사용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학자들은 허투루 돈이나 받아먹는 식충이들이 아닙니다. 하다못해 국어사전을 처음 편찬할 때 그 사람들은 그럼 대체 무엇을 보고 어원을 찾아서 사전을 만들었겠습니까?? 사전을 만드는데 참고자료가 되는 사전이 또 있었을까요?? 일제시대에 사전이 처음 나왔으니 그 이전의 어원 찾기는 불가능하다는 말씀은 사전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사람의 투덜거림일 뿐입니다.
귀하께서 배달이라는 말이 고대로부터 쭉 이어져 내려온 단군, 고조선을 가리키는말이라고 생각하신다면, 그 증거를 찾아오시면 됩니다. 이미 앞서 예를 들어 드렸지만, 예수라는 발음의 단어를 아무리 찾아 모아도 그 말의 뜻이 기독교의 예수를 가리키는 것이라는 증거가 없는 이상 모두 쓸데없는 행동일 뿐입니다. 혼자서 넋두리를 한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제 말이나 세상이 틀렸다고 생각하신다면 혼자서 투덜거리지 말고 직접 증거를 찾으십시오. 아니라면 더 이상 말을 마십시오. 위키백과는 귀하의 투덜거림이나 싣자고 존재하는 사전이 아닙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4월 28일 (화) 11:26 (KST)답변
넋두리니 투덜거림이니 아마츄어니 이런 상대방을 폄하하는 말들이 님들에게 '망상에 사로잡혀있는 실증사학도들에 불과하다'는 내 생각에 비해서 다를 게 뭐가 있겠는지요?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조상들의 역사를 이렇게 편협된 생각으로 평가절하하는 이런 류의 사람들도 있구나' 치부하고 외면하면 그만이겠지요. 결론은 '전문가'가 아니면 넋두리나 투덜거림처럼 더이상 논하지 말라는 얘기인데 그렇지요. 부질없는 짓처럼 아무 의미는 없습니다. 그리고 님들도 전문가로 보기엔 많이 부족하다고 느껴져서 한말이 별로 없습니다. 다만 '배달'이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말처럼 매도하지는 말라는 얘기만 해주고 싶습니다. 결코 '배달'이라는 어휘는 님들의 생각처럼 '일제강점기'에 만든, 일본인들이 말하는 '단어'가 아닙니다. 자칭 정통사학자로 자부하는 실증사학자들과 그들이 재야학자로 외면,무시하는 재야 역사학자들의 학술자료가 쓰레기로 취급하는 현재 관행들에 의해 이같은 모습들이 연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끝으로 님들도 전문가들이 아니라면 이곳을 찾는 관심자들의 말들을 '전문가'처럼 평가.판단.매도하지 않길 바랍니다. 원래 '위키 백과'는 전문가를 포함 모든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으로 알고 있는데 위같은 표현은 정말 한심하고 우수광스럽습니다. 한글 '위키 백과'의 뜻은 좋지만 참여하고 있는 구성원들이 의식이 너무 초보적라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바꿀 수 없는 벽같은 생각이 들어 더이상 논쟁은 하지 않겠습니다. 紫桃꽃 2009년 4월 28일 (화) 12:01 (KST)
아마추어라고 폄하한 것이 아닙니다. 님도 아마추어고 저도 xakyntos님도 아직은 아마추어죠. 위키백과에 참여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최소 박사학위를 딴 전공 분야가 있어야 전문가라고 할 수 있지 않을지?) 다만 xakyntos님은 기존의 연구 등 '전문가'들의 의견을 전달하는 데 비하여 자도님은 본인의 의견만 가지고 이야기를 하니까 당연히 xakytosn님의 말이 좀더 설득력있는 것 아닐까요? 재야 사학자들의 주장 중에서도 일정한 근거가 있거나, 널리 알려진 것은 위키백과에도 일정 부분 반영되어 있습니다. 자도님 말마따라 '배달'이라는 단어에 대한 기존의 연구가 있는지요? 그동안 자도님은 '배달'에 대해서 재야건 아니건 학자의 의견을 전혀 넣지 않았습니다. 진짜 맞다고 생각하시면 '전문가'의 입장을 추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adidas (토론) 2009년 4월 28일 (화) 12:13 (KST)답변
이미 재야학자로 불리우는 수많은 교수님들이 '배달'의 어원에 대해서 언급한 적은 많습니다. 이곳에 거론하지 않는 이유는 똑같은 논리로 '매도'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에게 '쓰레기'정도로 취급당하는 현실처럼 욕되는 일이 되겠기에 인용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리고 Xakyntos님의 주장처럼 일부분의 한글은 어원을 밝혀내고 있는 것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도 믿지못할 추론이라고 얘기한다면 할말은 없습니다. 다만 많은 학자들이 수긍하기 때문에 인정되고 있을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배달'의 어원에 대해서도 많은 학자들이 발표를 하고는 있지만 자칭 정통사학자들이 인정하지 않기에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록문화가 발달이 안된 과거 한민족보다는 중국의 역사서가 기록과 보존이 잘되어 인용할 수 밖에 없는데 그들은 주변국가들에 대해서 '동이','서융','남만',북적'에서 보듯이 나쁘게 제멋대로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토록 '단군조선'과 '배달국'들의 기록을 찾을 수 없는 것도 중국인들이 기록습관의 나쁜 버릇때문에 다르게 기록해 놓았기에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동이족(東夷族)','흉노족(匈奴族),몽고족(蒙古族))' 어디 좋게 부른 이름들이 있습니까? 더구나 사대주의에 빠져있던 고대 우리나라가 제대로된 이름들을 기록해 놓을 수가 있겠는지요? 여기에서 좋게 표현된 과거 우리 이름들을 찾다니요? 2중 3중,4중의 늪속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모습일 뿐입니다. 과거에 쓰던 기록문자가 한자이고, 기록문화가 발달되어 있지 못하고, 전쟁으로 그나마 보존되던 기록들이 전소나 유실되고, 사대주의로 제대로된 기록도 못하고, 그렇게 현재까지 오게 되었는데 '바다에서 잃어버린 바늘찾기'이지요. 어떤 자료를 찾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까? 더구나 한글도 해방이후 제대로 된 사전편찬을 할 수 있었는데 거기에서 고대 우리말을 찾다니요? 코메디같은 현실이 아닌가요? 紫桃꽃 2009년 4월 28일 (화) 13:37 (KST)
결국은 찾을 수 없다는 말 아닙니까? 그렇다면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합니까? 찾을 수 없다. 하지만 내 말이 맞다라는 주장이십니까? 그리고 그런 주장을 무려 백과사전에 실어야한다는 주장이십니까?? 그런 것이 실린 것을 백과사전이라 부를 수 있습니까? 그것은 그냥 소설책일 뿐입니다. 그야말로 코메디 같은 주장이지요. 귀하는 그리 하지 못하십니다만, 수많은 국어학자들은 있는 자료 없는 자료를 총 동원해서 어원을 찾고 역사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귀하가 그렇게 믿어 마지않으시는 재야 학자분들께서 어떤 방법으로 어떤 근거를 찾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인용하면 반론당할 것이 무서워 인용하지 않겠다는 말씀 아닙니까? 저 같은 아마추어의 반론이 두려워서 옮기지도 못할 그런 근거라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니라면 인용을 해 보십시오. 얼마든지 그 주장의 비논리성을 알려드리겠습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4월 28일 (화) 14:18 (KST)답변

3[편집]

Xakyntos님이 하는 얘기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두려워서가 아니라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되어 반론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동안 다른 분들이 아예 참여도 안하는 이곳에서 관심을 보였던 이유는 님이나 adidas님이나 본인이나 다같은 한국사람이니 생각의 차이를 좁여보자는 의도에서 얘기를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자칭 정통사학자들이라고 하는 소위 실증사학자들이 중국의 역사서나 국내 '삼국사기'같은 역사서에 의존하여 재야학자들을 무시,외면하고 있기에 조금은 언급하였던 것입니다. 있는 기록을 증명하기란 쉬운 일이고 위에 언급한 말대로 유실,소실,폐기,왜곡,소각 등과 여려가지 나쁜 여건때문에 자료증명이 불가능한 것을 약점으로 넉두리, 투덜거림, 비논리성, 환빠, 코메디 등처럼 매도하니 그 위세에 더이상 할말이 없습니다. 그래 그냥 그렇게 사세요. 신화날조로 매도하는 송모교수나 일제강점기가 우리에겐 축복이었다고 말하는 한모교수나 환단고기를 들먹이면 미친 사람처럼 얘기하는 '일빠'들이나 그들도 그렇게 살고 있는데 무엇이 대수겠습니까? 나도 그렇게 살렵니다. 우리민족 우리나라의 조상들은 결코 그리 무시당할 사람들은 아니었다고 믿으면서 말입니다. 님도 한국사람이니 무언가 생각하며 살겠지요. 망각, 유실되어 없는 역사를 있었던 것으로 만드는 건 '소설'이라고 주장하면서 말이지요. 그만합시다. 나도 더이상의 논쟁거리는 사양합니다. 紫桃꽃 2009년 4월 28일 (화) 14:57 (KST)
누가 우리 역사를 무시하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망각, 유실되어 없는 역사를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있었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겁니까?? 그런 놀라운 방법이 있으시면 제발 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없어져 버린 역사만들어 내는 것이 과연 우리 역사를 사랑하고 진실을 수호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는 겁니까?? 단언컨대, 그것이야말로 진실된 우리 역사를 망가뜨리고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자료 증명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태양이 지구를 돈다는 말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귀하가 말씀하시는 그런 행위가 바로 중국이 동북공정을 하면서 하는 짓이고, 일본 우익들이 하는 역사왜곡행위입니다. 논쟁을 사양한다고 하셨습니까? 귀하는 논쟁의 대상조차 되지 못합니다. 논쟁이란 서로 논리적이고 합당한 근거를 들면서 하는 것이지, 귀하와 같이 아무런 증거도 없이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4월 28일 (화) 15:54 (KST)답변
보자보자하니까 말을 함부로 하는군요. 왜곡,망각,유실되어 없어진 역사를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자료로 살려내는 것이 올바른 역사학도들의 할일이지 그럼 그것도 삼국사기나 중국역사서에 없으니 믿을 수 없다고 무시하고 외면하는 것이 할일인가요? 그런데 님이 말하는 증거가 무엇이고 합당한 근거가 무엇인가요? 다른민족을 무시하는 주변국가들의 왜곡된 기록의 탓도 있겠지만 과거에 쓰던 기록문자가 한자이고, 기록문화가 발달되어 있지 못하고, 전쟁으로 그나마 보존되던 기록들이 전소나 유실되고, 사대주의로 제대로된 기록도 못하고, 그나마 해방이후 제대로 된 한글사전 편찬.편집을 하여 증빙할 옛자료가 없다는 것이 님에게는 고려대상도 안되는 헛소리처럼 들리나요? 님이나 나나 다른 게 무엇인가요? 님은 쓰여진 글을 삭제하고 편집하고 다른 사람들이 주장한 것을 적어놓은 것외에 무엇이 있던가요? 교과서에 나온 것외에 내놓을 만한 무엇이 있던가요? 그게 논리적이라는 얘긴가요? 우리 조상들이 아니면 재야학자들이 존재하지도 않은 얘기를 소설처럼 꾸며서 한다는 것이 과연 논리적인 얘긴가요? 겉으로는 그럴듯이 얘기하지만 결국 미친 동족들이 많다는 것외에 무엇을 주장할 수 있다는 말인가요? 내가 미친사람이라 여기서 이런 실랑이를 벌인다고 생각하나요? 시간이 남아 돌아서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런 글을 쓴다고 생각하나요? '귀하는 논쟁의 대상조차 되지 못합니다???' 정말 웃기는 사람이군요. 나도 님이 별로라는 생각은 들지만 같은 한국인으로 무언가 신념이 있으니 이런 일도 하려니 이해를 하려고 노력을 하였는데 이제보니 '일빠'들의 주장과 거의 같은 별볼일 없는 사람으로 밖에 인식이 안되네요. 지금까지 설득력있게 설명이 되었다고 느껴 이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지만 adidas님 보다도 한참 멀었습니다. 오히려 adidas님이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자질도 없어 보이는데 이곳의 문서를 계속 통제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착각하지 마세요. 내가 보기엔 님의 글은 전혀 논리적이지 못합니다. 그 많은 실증사학자들이 내놓은 주장도 설득력있게 알려주지 못하였는데 위세부릴 일도 전혀 아닌데 감정부터 앞세우며 상대방을 무시하는 태도가 지성있는 사람의 올바른 태도인가요? 紫桃꽃 2009년 4월 28일 (화) 22:05 (KST)
역사학도들은 재야라는 분들이 하는 왜곡과 협잡을 통하지 않고도 우리의 역사를 충분히 합리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미 귀하가 달포 전에 재야의 주장이랍시고 가져온 몇몇 팩트들에 대해서 어디가 어떻게 왜곡되었고, 어떻게 사실을 협잡하고 있는지 낱낱히 보여드렸습니다. 물론 귀하는 눈과 귀를 가린 채 저의 충심어린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계시죠. 귀하의 눈과 귀에는 증거는 없지만 아무튼 위대하고 거대한 역사만 보이겠지만, 올바른 시각을 갖춘 역사학도들은 그런 거짓에 신경쓰기에는 찾고 밝혀내야 할 진실된 우리 역사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역사를 밝히기 위해 노력하시는 수많은 학자와 역사학도들이 있습니다. 귀하처럼 일단 위대한 역사라면 덮어높고 믿고 보는 심성을 가지신 분은 모르시겠지요.
저는 이미 귀하에게 재야라는 분들이 보여주는 절정의 개그와 가증스러운 왜곡, 악랄한 협잡을 차고 넘칠만큼 보여드렸습니다. 귀하가 믿는 재야의 말씀을 그대로 믿자면, 전 세계적인 음모로 한국의 역사를 은폐·조작하려는 세력만이 나타날 뿐이지요. 수십개 왕조가 명멸한 중국의 기록이 마치 하나의 왕조에서 작정하고 왜곡한 것처럼 하나같이 한민족의 역사를 철저하게 은폐하고 있고, 일제는 고작 36년의 세월 동안 한반도는 물론이요 중국 대륙 전체에 퍼져 있던 고대 한민족의 위대한 사실들을 은폐하고 있다는 말씀이시겠지요. 네. 가히 전 지구적인 신디케이트, 프리메이슨도 저리가라 할 거대한 음모로군요. 귀하의 답변대로 참으로 온몸이 떨리는 트릭에 빠졌습니다. 누가 더 열린 생각으로 진실을 받아들이고 거짓에 철퇴를 날리는지, 귀하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입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4월 28일 (화) 23:21 (KST)답변
님의 말에 일고의 가치도 없지만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건 가증스러운 왜곡, 악랄한 협잡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나 있어 하는 얘기인가요? 어찌 들으면 우리 재야사학자와 역사학도들을 악랄한 사기꾼이나 협잡이처럼 얘기하고 있는 것같군요. 거짓이요? 무엇이 거짓이라는 얘긴지요? 누가 한민족을 오랑캐라고 표현했던가요? 올바른 시각을 갖춘 역사학도들이고 합리적이어서 자신의 동족을 협작꾼이나 거짓말쟁이로 매도한답니까? 또한 자칭 정통사학자로 말하는 실증학자들이 얼마나 천재라서 자신의 역사를 중국인에게 맡기고 난도질 당한답니까? '고조선'의 단군신화를 꾸며진 신화처럼 얘기해놓고 '동북공정'에 의해 고구려의 역사도 빼앗길 판에 '삼국사기'나 중국의 '사기'만을 들먹이며 정통 역사임을 자인하며 방관하던 자들이 이제와서 무엇이 올바른 시각이라는 건지 참으로 가증스럽습니다. 세계적인 음모? 곳곳에서 발견되는 고조선의 유물을 보고 세계적인 음모라니요? 고조선의 유물과 장신구, 고인돌 곳곳에 그려져 있는 천문도를 보면서 그딴 소리가 나옵니까? 증거들이 보존될 수 없는 조건과 환경하에서 춘추필법같은 중국인들이 만든 왜곡된 거짓 정보에 맹신하다보니 재야학자들이 말하는 것이 모두 협작이나 거짓, 왜곡처럼 보입니까? 님이 자료로 보여준 모든 것들은 '일빠'나 얼빠진 실증사학자들의 주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게 정통사학자라고요? 이제와서 단군신화나 고조선의 역사를 교과서에 올려놓고 한다는 소리가 충분히 합리적으로 연구하고 있다구요? 그같이 잘못된 역사교육이 되고 있으니 단군의 동상들이 우상처럼 보여 목을 자르고 파괴를 일삼는 것이지요. 그게 열린 사고이고 생각이라고 착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철퇴는 이렇게 동족의 역사를 철저히 폄하하는 자들에게 내려야겠지요. 멍청한 자들에게는 그것이 개그처럼 보이는지 형언교색의 말만 늘어놓고 있군요. 참으로 한심한 사람들입니다. 사대주의에 빠져 있던 김부식보다도 못한 가증스러움에 할말이 없습니다. 紫桃꽃 2009년 4월 29일 (수) 00:56 (KST)
xakyntos님의 의견은 단지 '증거가 없는 사실을 있었던 것으로 서술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증거가 보존될 수 없었던 사실은 안타깝지만, 증거가 없는 사실을 있었다고 하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닙니다. 그런 태도는 한국원조론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됩니다. 아울러 xakyn님의 편집은 '일빠'나 단군상 목자르는 일부 몰지각한 특정 종교인과는 별 상관 없어 보입니다만. 솔직히 자도꽃님의 의견이 뭘 말하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증거도 없이 한민족의 위대한 역사니 뭐니를 설파하시는 분 같지는 않은데 adidas (토론) 2009년 4월 29일 (수) 01:18 (KST)답변
증거요? 재야역사학자들이 증거제시를 많이 하였죠? 하지만 인정하지 않으니까 문제지요. 그런데 님도 역시 가재는 게편이라서 말도 그런 식으로 말하는군요. 뭘 말하는지 위에서 읽어보면 충분히 알텐데 무얼 그리 두둔하시나요? 나는 족보의 예를 보면서 결론이 예상됐지요. 모든 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1998년? 모든 족보가 개정 편집하면서 없는 얘길 꾸며서 족보에 올려 놓던가요? 나도 족보편집에 참여해봐서 알지만 절대로 그렇게 할 수는 없지요. 이해되지 않는 말을 바꾸는 예는 있어도 없는 얘길 꾸며넣지는 않습니다. 조상들에게 불효나 욕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다른 가문의 예를 들면서 족보도 아니고 문헌이니 믿을게 못된다고 하네요. 그럼 믿을 책들이 어디 있다는 건가요? 족보나 문헌들이 대부분 한자로 된 문헌들이어서 당연히 한글로 개편할 수 밖에 없는데 그 개편작업을 믿을 수 없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한글학회도 1911년 '배달말 몯음'이라고 이름을 정한적이 있었는데 대종교의 영향으로 그렇게 정했다고 외면,무시할 것이 뻔하지요. 그당시 한글을 '배달말'이라고 했다면 대종교가 했다고 할 것이고..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에 단군조선(檀君朝鮮)의 계승을 얘기한다고 해도 그 의미를 외면,무시할 것인데 모든 것이 부질 없는 일이지요. 아무리 자료를 제시해봤자 결국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겁니다. 그러니 이제 더이상 뭐가 필요하겠습니까? 이미 고지식화된 도식에 의미없는 일이지요. 그나마 같은 동족으로 부탁하건대 延世大學校人文科學硏究所 신학자 유동식박사가 쓴 학술논문집 '한국의 얼과 새 밀레니엄 문화'나 전 원광대학교총장 김삼룡박사가 쓴 '동방의 등불 한국'을 꼭 읽어보시길 추천하고 싶네요. 왜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우리나라를 '동방의 등불'이라고 칭송했는지 최소한도로 제대로 된 조국의 위대함을 조금은 알게 될테니까요..紫桃꽃 2009년 4월 29일 (수) 02:17 (KST)

타고르의 '동방의 등불'조차도 재야들은 왜곡하여 소개하곤 하지요. 원래 동방의 등불은 4행짜리 짧은 시였습니다. 아래와 같은.

일찍이 아세아의 황금 시기에
빛나던 등촉의 하나인 조선
그 등불 한 번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In the golden age of Asia
Korea was one of its lamp - bearers
And that lamp is waiting to be lighted once again
For the illumination in the East.

보시면 알겠지만, 타고르는 한국이 무슨 수천년 역사의 전설적인 민족이라 칭송한 것도 아니고, 3·1운동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짧은 시를 통해서 한국의 독립을 염원한 것입니다. 그러나 재야라는 작자들은 저 시를 요상망측하게 번역하여 한국(Korea)은 문명의 횃불을 높이 들었던 나라중의 하나였다.라고 터무니없는 과장을 하거나,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던 기나긴 구절 - 타고르의 가장 유명한 시 기탄잘리 - 을 덧붙여서 왜곡을 하지요. 심지어 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라는 이 세상에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구절을 덧붙이기도 하더이다. 시성 타고르가 우리나라를 칭송했다구요? 타고르의 칭송은 일제 치하에서 고통받고 있는 한민족이 광복을 맞이할 것을 염원한 것이지,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던 거대한 제국의 역사를 칭송한 것이 아닙니다. 저따위 왜곡이나 자행하는 자들에게는 안된 일이지만.--Xakyntos (토론) 2009년 4월 29일 (수) 09:45 (KST)답변

뭐눈엔 뭐만 보인다고..본래의 의도와 본질은 보지 못하고 그저 동족의 실수에만 관심을 두고 요리조리 들쳐내는군요. 그것도 왜곡으로만 매도하면서 참으로 불쌍합니다. 그러나 한번 이화여대 석좌교수로 계시는 신용하님의 의견이나 읽어보세요.."타고르가 3·1운동 10주년에 한국 찬송시 '동방의 등불'을 써 준 것이나, 네루가 감옥에서 딸에게 써준 '세계사편력'에서 3·1운동을 격찬한 것은 3·1운동의 감명과 영향을 잘 기억한 때문이었다. 미국 식민지였던 필리핀의 마닐라 대학생들이 1919년 6월 독립운동을 일으켰는데, 3·1운동을 언급하면서 큰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영국 식민지였던 이집트의 카이로 대학생들이 1919년 6월 독립운동을 일으켜 아랍 세계에 파급되었는데, 역시 3·1운동의 큰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라고 말한 이유를 알테니까요..紫桃꽃 2009년 4월 29일 (수) 10:16 (KST)
귀하가 타고르 운운 한 것이 그런 의미는 아닐 것이라고 사료되오만. 왜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한국을 '동방의 등불'이라 칭송했는지 이제라도 바로 알게 되셨으니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군요. 그렇게 하나씩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가다 보면 귀하가 지금껏 얼마나 부끄러운 일을 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4월 29일 (수) 10:39 (KST)답변
위에 언급한 두분의 글이 바로 '동방의 등불'에 대한 책이기에 이곳에 적은 것인데 무슨소리.. 님은 "일찍이 아세아의 황금 시기에 빛나던 등촉의 하나인 조선"이란 말이 무엇을 얘기하는지 모르기에 그저 동족을 헐뜯는데만 신경이 곤두서있는 거겠지요. 언급한 두분의 마음엔 그것이 아니시기에 위대한 민족의 얼을 말씀하신 것이고..이렇게 못된 안목만 발달되어 있어 지적하는 것마다 동족을 폄하하는 얘기뿐이지요..그래서 이곳을 지킬 자격이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겁니다..부끄럽긴 누가 부끄럽다는 것인지 한심하군요..쯧쯧쯧 紫桃꽃 2009년 4월 29일 (수) 13:33 (KST)
빛나던 등촉의 하나라는 말에서 어떤 결론을 유추하시는지요? adidas (토론) 2009년 4월 29일 (수) 13:34 (KST)답변
내가 하는 얘기보다 언급해드린 두분의 글이 더 설득력이 있을 거외다..紫桃꽃 2009년 4월 29일 (수) 13:38 (KST)
그런데 님은 왜 설득력 있는 말을 '동족 폄하'라고 하시는것이죠? 저도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역사가 장대한 제국이고 훌륭했으면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으면 인정할 줄도 알아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adidas (토론) 2009년 4월 29일 (수) 13:42 (KST)답변
우리나라의 역사가 장대한 제국이고 훌륭했으면이 아니라 훌륭했는데 자꾸 이런 빈정거림이 계속되니까 하는 얘기입니다. 님의 보는 시각과는 이런 차이겠지요. 님과 달리 Xakyntos님의 말은 하나도 설득력이 없어보이고 말이죠..紫桃꽃 2009년 4월 29일 (수) 13:56 (KST)
귀하의 눈에는 빛나던 등촉은 보이나 one of its는 보이지 않는가 보군요. 나는 물론이고,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그 누구도 우리나라의 역사가 아시아 뿐 아니라 세계 역사에서 빛나던 등촉의 "하나"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수많은 등촉들 중 하나였다는 점을 명백하게 인식합니다. 귀하처럼 The One을 추구하지는 않지요. 타고르의 시에는 The One이 아니라 one of it이라는 것을 끝끝내 인식하지 못하시는 귀하의 시각에 삼가 감탄할 뿐입니다.
저는 우리 역사가 장대한 제국이 아니라도 충분히 자랑스럽고 위대하게 여깁니다. 귀하께서는 장대한 제국으로서의 우리 역사만 위대하게 생각하시겠지만 말이죠. 장대한 제국이라면 물론 좋겠지요. 하지만 아니라는 것이 사실이건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짓에 거짓을 쌓아 존재하지도 않던 장대한 제국을 만들고 자위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범죄입니다. 동시에, 장대한 제국이 아닌 우리 역사는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엄청난 열등감의 소치일 뿐이지요. 귀하의 열등감에 삼가 경의를 표하지요.--Xakyntos (토론) 2009년 4월 29일 (수) 14:03 (KST)답변
장난하세요? 우리역사가 자랑스럽고 위대하게 여긴다는 사람이 '우리민족이 과거에 위대하였다'는 동족의 주장을 거짓이라 말합니까? 님이 보기엔 존재하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장대한 제국이 있었다고 믿기에 이런 말도 하는 것이라오. 여지껏 나는 우리 역사는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적이 없는데 이런 식으로 몰아가니 님이야말로 님이 말하는 협작꾼이나 거짓말쟁이가 아닌가 생각되는데요? 열등감은 님이 느끼는 것이지 내가 느끼는 게 아니라오. 자랑스럽게 생각하는데 열등감이 생겨날 이유가 없지요. 하는 말마다 참으로 유치찬란합니다. 그리고 'The One'이던 'one of its'이던 영어로 언급한 적이 없는데 스스로 북치고 장구치고 하네요. 상대방에게 이상한 소리나 해가며 말이죠. 미쳐가는가 봅니다. 紫桃꽃 2009년 4월 29일 (수) 14:18 (KST)
거짓을 거짓이라 말하는 것인데 무엇이 문제란 말입니까? 우리 역사가 자랑스러운 사람은 거짓이라도 우리 민족이 위대하다는 내용이면 그냥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까? 학문이라는 것이 그런 것입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우리 민족의 위대함을 자랑하는 것이라도 그것이 거짓이라면 버려야 합니다. 거짓을 가지고 우리 민족의 위대함을 포장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 민족의 역사에 범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귀하나 저나, 우리 민족을 자랑스러워하고, 자랑스러워졌으면 하고 바라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지요. 그렇다면 올곧이 진실로써 역사를 바로잡아가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적어도 지금까지 귀하는 제가 진실을 위해 거짓임을 밝혀내는 일에 대하여 저의 지적이 잘못된 것임을 증명하신 일이 없습니다. 그저 투덜거리기만 할 뿐이었지요.
이미 수도 없이 이야기 했듯이, 귀하의 주장이 사실이라 생각하신다면 사실이라는 증거만 가져오면 될 일입니다. 증거도 가져오지 못한 채 어떻게 우리 민족이 위대하다는 말에 틀렸다고 해? 너는 동족도 아니야 하고 넋두리나 하는 것은 귀하의 열등감만 증명해줄 뿐입니다. 역사는 학문입니다. 학문은 오로지 엄정한 연구와 합리적인 이성으로 구축하는 것입니다. 거짓으로 쌓은 상아탑은 모래 위에 쌓은 성일 뿐입니다. 거짓으로 쌓았던 중국의 동북공정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귀하는 똑똑히 보시기 바랍니다. 심지어 자국의 학자들에게까지 지탄을 받은 동북공정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귀하의 주장을 증명하십시오. 증명하지 못하신다면 거론조차 하시지 마십시오.--Xakyntos (토론) 2009년 4월 29일 (수) 14:32 (KST)답변
제발 아전인수격으로 말하지말고 말만 그럴듯하게 하지 마세요. 형언교색처럼 겉으로 번지르하게 말하지만 속은 텅빈 '속빈강정'이란 말이오. 거짓? 증거? 수없이 증거를 얘기하고 있는데 보지못할 뿐이고 인정치 않는 거외다. 한예로 조선이 개국하면서 '단군조선'의 위대함을 알기에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에 단군조선의 계승을 천명했던 것이고 한글을 나중에 '배달말'이라 했던 거외다. 그러나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니 증명하라고 고장난 축음기처럼 반복하고 있지요. 님들이 거짓이라고 하는 고조선의 위대함은 지금도 많은 박사급 학자들이 논의하고 있고 많은 대학에서 발표도 하고 있는 내용이오. 시덥지 않게 이곳에서 위세를 떨며 투덜거림이니 넉두리니 상대방을 무시하며 버릇없는 언사를 일삼는 게 아니라오. 그런 자질로 이곳을 지키려 한다면 당장 이곳에서 떠나시오. 한글 위키피아의 명성에 흠이 될 뿐이라오. 큰소리친다고 진실이 거짓이 되는 게 아니니까 더이상 님에게 할말은 없지만 지켜볼 것이오.紫桃꽃 2009년 4월 29일 (수) 15:18 (KST)

4[편집]

귀하의 증거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한 번 봅시다.

  • 조선이 개국하면서 '단군조선'의 위대함을 알기에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에 단군조선의 계승을 천명했던 것

=> 조선이 단군조선의 계승을 천명한 사실 => 그러므로 단군조선은 위대했을 것이다.

귀하의 저 증거라는 것이 말이나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아빠는 우리 집에서 제일 힘이 세. 그러니까 세상에서 제일 센 것은 우리 아빠야. 하는 말과 뭐가 다릅니까?? 조선이 단군조선을 계승했으니 단군조선은 위대했다면, 단군조선이 위대하지 않았다면 조선이 단군조선을 계승하지 않았을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대체 어떤 나라가 계승 관계를 천명한 것과, 그 나라의 창대무비한 과거는 무슨 관계입니까? 로마가 트로이아의 후계자를 자처했으니 트로이아는 로마에 버금가는 강대국인 겁니까?? 이런 웃기지도 않는 증명이라니. 속빈강정은 제가 아니라 귀하입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4월 29일 (수) 15:26 (KST)답변

그리고 참고삼아 말씀드리오만, 태조실록에 단군에 대한 기사는 딱 3번 나옵니다. 그 중 1번은 어제시(御製詩)에 언급되는 것이고, 나머지 두 번 역시 "우리는 위대한 단군조선의 후예" 같은 내용이 아님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게다가 "조선의 단군(檀君)은 동방(東方)에서 처음으로 천명(天命)을 받은 임금이고, 기자(箕子)는 처음으로 교화(敎化)를 일으킨 임금"이라고까지 말하고 있으니, 단군과 기자는 거의 동급이나 마찬가지로 언급되고 있소. 이것이 "위대한 단군조선의 계승을 천명"한 것입니까?? 최소한 뭐라도 주장하려면 직접 확인이라도 해보고 말해 보시구려.--Xakyntos (토론) 2009년 4월 29일 (수) 15:33 (KST)답변

  • 참고자료 : 태조실록 단군 기사

*예조전서 조박 상신문 중 - "조선의 단군(檀君)은 동방(東方)에서 처음으로 천명(天命)을 받은 임금이고, 기자(箕子)는 처음으로 교화(敎化)를 일으킨 임금이오니, 평양부(平壤府)로 하여금 때에 따라 제사를 드리게 할 것입니다."

  • 도평의사사 상신문 중 - "우리 나라는 단군 이래로 혹은 합하고 혹은 나누어져서 각각 도읍을 정했으나,"
  • 어제시 중 - "이것이 옛날 왕씨의 기업(基業), 단군(檀君)이 가신 지 오래이니 몇 번이나 경장(更張)하였노"

참으로 대단한 증거요. 감탄하고 또 감탄할 뿐입니다. 쯧쯧 --Xakyntos (토론) 2009년 4월 29일 (수) 15:37 (KST)답변

말의 뜻을 모르니 눈이 있어도 눈뜬 장님이지요. 그래요. '단군(檀君)은 동방(東方)에서 처음으로 천명(天命)을 받은 임금이고, 기자(箕子)는 처음으로 교화(敎化)를 일으킨 임금' 여기서 동급으로 취급할 내용이 어디있다는 것이오? '동방의 처음'이라는 말도 이해 못하오? '천명(天命)을 받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오? 그리고 예를 드는 것마다 참 유치하네요. 고작 아빠나 힘이예요? 조선은 최소한도로 동족을 헐뜯는 백성을 원하지 안했기에 '단군조선'의 계승을 천명했다고 봅니다. 님이나 님의 무리처럼 입으로는 민족의 위대성을 얘기하지만 모든 걸 거짓으로 매도하고 헐뜯지요. 중국의 일부 지식인들이 진실을 얘기하는 것도 꾸며낸 얘기처럼 말하고 있으니 말해 무엇합니까? 로마가 트로이아의 후계자를 자처한 본질을 이해못하니 이런 소리를 하겠지만 예를 드는 것마다 말도 안되는 것을 진실처럼 얘기하고 있으니 허장성세가 참으로 느껴지네요. 본질을 보세요. 왜 조선과 로마가 무엇을 천명하고 있었는지, 최소 그것은 알아야 말이 되는게 아니겠오? 그래야 대한민국이 왜 홍익인간 정신을 그토록 중요시하였는지 이해될 것이 아니겠오? 대한민국의 그많은 기독교 학교들에서 단군을 우상으로 배척하면서 홍익인간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지 용납이 될 것이 아닌가 말이오? 그런 것도 모르면서 웃기는 얘길 하고 있으니 '속빈강정'이라는 것이라오. 아시겠오? 紫桃꽃 2009년 4월 29일 (수) 15:53 (KST)
한문의 대구조차 모르는게로군요. 檀君, 東方始受命之主, 箕子, 始興敎化之君 이렇게 대구를 이루는 문장은 동격이나 반대되는 경우에 사용되는 구절이요. 대구를 이룬다는 것 자체가 이미 같은 등급이라는 말이지요. 게다가, 동방에서 처음으로 천명을 받았다는 것과, 위대한 단군조선 사이에는 하늘과 땅 만큼의 거리가 있다는 것 쯤은 역사학에 기초적인 상식만 가지고 있어도 알 수 있는 일이외다. 왜 기자가 교화를 일으켰겠습니까? 기자조선의 전승에는 네발로 기어다닐 정도로 미개했던 조선인들에게 기자가 예의범절을 가르쳤다는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 천명을 받으신 단군조선시대 사람들은 네발로 기어다닐 정도로 미개했던 게요? 역사학에 대한 기초도 모르고 있으니 마음에 드는 기록은 무조건 사실이 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기록은 왜곡된 것으로 몰아붙여버리는 것이로군요. 참으로 가관입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4월 29일 (수) 16:06 (KST)답변
님의 주어뱉은 말한마디로 몇천년의 시차가 동시대로 되는 것이오? 한자의 지식도 전혀 없는 자가 큰소리치는 격이오. 한문의 대구가 아닌 '대귀'..문장의 동격이라니? 어이가 없구만 한문을 배웠어도 님보다는 몇십년은 앞설 것이오. 내 부전공이 한문관련학과니까.. '단군은 이런 분이고, 기자는 이런 사람이다' 이것이 문장의 흐름과 무슨상관이오? 님이 말이 아주 개그스럽소.. '네발로 기어다닐 정도로 미개했던 조선인들에게 기자가 예의범절을 가르쳤다?' 이게 님의 감각이고 님의 생각이오..맨날 이런 못된 기록만 찾아 다니니까..이걸 믿는다는 것이오? 아니면 믿어달라는 것이오? 가치도 없는 말들을 주어뱉으며 나보고 웃긴다는니 기초를 모른다는 얘길 하는 거겠지요? 기초가 그리 많아 문장의 흐름도 파악 못하오? 한자는 영어와 비슷한 게 많으니 문법부터 다시 배우고 오시오. 그래야 말의 뜻을 제대로 알게 될 것이니..그리고 님의 조상이나 미개하다하고 우리는 끼어넣지 마시오. 역사학에 대한 기초가 참으로 많아서 그리 동족을 씹고 있는 거군요.. 정말 댁이야말로 가관입니다. 紫桃꽃 2009년 4월 29일 (수) 16:26 (KST)
역시나로군요. 대귀? 쯧쯧. 대구(對句)가 맞는 말이오. 게다가 단군이 천명을 받은 것은 인정하겠는데 기자가 교화한 것은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말씀이시군요. 귀하의 논리 대로 태조실록의 단군 운운하는 기록이 위대한 단군조선의 계승을 천명한 것이면, 같은 문장에서 등장하는 네 발로 기어다니는 조선인을 교화한 기자조선도 함께 받아들여야 마땅한 것 아닙니까?? 마음에 들면 취하고 마음에 안들면 무시하는 귀하의 인식이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우리 민족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귀하요. 태조실록의 같은 기록, 그것도 하나의 문장에서 단군에 대한 것은 마음에 드니 인정, 기자에 대한 것은 마음에 안드니 무시하겠다는 편협한 인식이지요. 그럼으로써 모두 똑같은 우리 민족의 기록임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 기록은 무시하는 가공할 행위를 감행하는 것이고. 나는 애초에 단군이나 기자나 기록된 사실로서 받아들이고, 고고학과 서지학, 사료비판을 통해서 밝혀진 학계의 연구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귀하처럼 마음에 드는 것만 받아들이는 우는 범하지 않고 있지요.--Xakyntos (토론) 2009년 4월 29일 (수) 16:38 (KST)답변
님은 대귀법(對句法)이 아닌 대구법이라고 하나 봅니다..뭐 틀린 글자가 아니니 넘어가지요..기자도 님이 알고 있는 기자가 아니고 다른 기자를 말함이오..기자(箕子)는 중국 상(商)나라때 전설상의 인물이고 단군은 동방(東方)에서 처음으로 천명(天命)을 받은 임금을 말함인데 동시대 사람이라니.. 님은 몇대조 할아버지와 동시대에 살고 있오? 누가 기자를 무시한답니까? 기자도 엄밀히 말하면 우리 조상인데..편협된 지식은 님이 있는 것이지 내게 있는 것이 아니오..자꾸 덮어 씌우지는 마시오. 내가 한말도 없는데 내가 했다하고 북치고 장구치고 혼자서 떠벌이면서 호도하지 마시오. 님이나 잘하면 됩니다. 紫桃꽃 2009년 4월 29일 (수) 17:01 (KST)
난독도 정도를 넘어서면 병이 되오. 나는 기자를 동시대 사람이라고 말한 적도 없고,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에 대한 내용은 역사학을 조금만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할 말이 없으니 가시는가 보군요. 마음대로 하시지요. 그리고, 국어사전이라도 한 번 찾아보시지 그러시오. 대귀를 찾아보시구려. 기초적인 상식 하나 공부하는 셈 치고. 쯧쯧.--Xakyntos (토론) 2009년 4월 29일 (수) 17:18 (KST)답변
말꼬리 잡는데는 아둔하지가 않은 것같소..쯧쯧쯧은 내가 낼 소리인데..동시대가 아니면 동급이 될 수 없는 거고, 대구나 대귀나 나는 대귀로 배웠으니 그리 알고 있는 거고..'箕子'나 '奇子'가 같은 사람이 아니면 되는 거고 님이 말꼬리잡고 늘어질 이유는 하나도 없소이다. 일개 정통사학자라고 하는 자들이 신봉하고 있는 김부식의 '삼국사기'나 왜곡의 극치를 이룬 중국의 '역사서'가 우리에게 잘못된 정보를 알려주었기에 '箕子'의 허명과 허세를 만들어 냈고 조상들은 잘못 기록된 그것을 보고 인용했을 뿐인데 나보고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폐한다고 몰아대오? 님들은 어디서 주변국가를 나쁘게 표현하거나 꾸며낸 고대 중국인들의 못된 기록들을 찾아내 무언가 폄하시킬 좋은 자료를 발견이나 한 것처럼 들먹이고 있으니 그게 님들과 근본적으로 보는 관점이 다른 입장 차이인 것이오. 그나저나 님은 무조건 주어뱉으면 말이 되는 것같소..난독이니 역사학이니 들먹이며 상대방에게 몰아대기나 하고 우둔한자가 우둔함을 모른다면 그건 병이지요. 억지도 정도껏 하시구랴..자신이 한말과 상대방이 한말을 구분못하고 들이대지나 말고..더이상은 시간낭비일 것같소..그만 하시구랴..님은 님대로 살고 나는 나대로 살면 될 것을..사람도 틀린데 생각도 틀려야지..그러나 없는 말 지어내거나 말꼬리잡고 큰소리 치지는 마시오..나에겐 개그나 코메디에 지나지 않으니까..(이사람들이 단군의 인용조차도 어떤 미친자의 해석처럼 '天'을 중국의 '天子'로 악의적으로 해석하여 '천자의 명'을 받은 것으로 '폄하의 극치'를 말하고자 하는것이 아닌지 몰라..참으로 들떨어지고 병신육갑질을 하는 것이지..정신이 나간자들이 아니고서야 그렇게 생각할 수는 없는 거지..제발 그정도의 쓰레기같은 인간으로 추락하지 않길 바라겠오..) 紫桃꽃 2009년 4월 29일 (수) 17:29 (KST)

의견 토론란에서는 다른 사용자가 아닌 문서의 내용에 대해서만 논의해야 합니다. 또한, 다른 사용자를 공격하는 글은 차단의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위키백과:인신 공격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jtm71 (토론) 2009년 4월 30일 (목) 22:19 (KST)답변

이해하여 주세요. 단 한가지 이유때문에 본의아니게 장활한 이런 실랑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Xakyntos님은 '배달'이란 말이 일제강점기 이상은 추적이 불가능하니 일제강점기에 나온 단어로 추정된다는 주장이고 본인은 '확실하게 도식화하여 증명할 수는 없지만 '檀'이란 한자가 있고 '朴達','白達','倍達'이라는 이두문자나 차음문자로 보이는 한자도 있으니 고대부터 있었던 순 한국어이다'라는 테제로 논쟁을 하였던 겁니다. 위에서도 몇번 지적했듯이 춘추필법같은 주변국가의 왜곡된 기록과 지정학적인 불리한 위치에 전쟁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수많은 책들과 자료들이 소실,유실,소각,폐기되었고 사대주의같은 자세와 보존,기록하는 문화가 미흡하여 남아있는 자료가 거의 전무하였으며 우리의 사용문자마져 한자에서 한글로 전용된 것은 '주시경'의 한글협회 활동과 같이 근세기에 이루워졌으니 옛글자의 자료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논의를 보였던 겁니다. 그러나 Xakyntos님은 확실하게 증명할 수 없으면 투덜거림에 불과하니 더이상의 의견은 사양한다는 모습인 것같습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으니 답답한 느낌이지만 그래도 국내 포털사이트(네이트,네이버,다음)에서는 인터넷 국어사전에 배달이란 어휘가 '[명사]<지명>우리나라의 상고 시대 이름. 한자를 빌려 ‘倍達’로 적기도 한다. ≒단국(檀國)·배달나라.'라고 풀이되어 있어 다행이라고 여기면서 접어두고자합니다. 하지만 '『규원사화』'단군기' 내용중에서..'東語謂檀曰朴達, 或曰白達'..'이라는 내용의 어느 정도를 인정하는 것도 아니고 한국 위키백과의 《규원사화》의 문서에도 나와 있는대로 1945년 구입한 고서에 대하여 1972년 11월 3일 국립중앙도서관 고서심의의원였던 이가원(李家源), 손보기(孫寶基), 임창순(任昌淳) 3인이 《규원사화》는 조선 중기에 씌여진 진본임을 확인하여 인증서를 작성하여 국립중앙도서관의 인증이 확인되었는데도 일제강점기의 추정을 고수하고 있으니 그동안 반복하여 문서수정이 되돌려지고 이런 실랑이가 있었던 것에는 유감스럽습니다. 인정하지 않겠다하니 개인적으로 이해가 안되지만 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동안 서로간에 이해를 시키려고 이런저런 주장들이 오갔던 거고 감정이 격해지니 말투도 좋지 않았던 것같습니다. 끝으로 결코 좁힐 수 없는 또한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시각과 견해차이가 있는 것을 확인하면서 이곳을 찾는 모든 분께 이해를 구합니다. 紫桃꽃 2009년 5월 1일 (금) 05:55 (KST)
위키백과에서는 사실이라는 것만으로는 수록되는 조건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위키백과의 특성상, 편집자가 아닌 외부의 '신뢰'를 빌어와야 하고 그 권위는 해당 출처의 신뢰도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경험상 비교적 논란이 많은 고대사와 관련된 내용의 경우, 널리 발표된 내용이나 학계의 의견(위키백과:신뢰할 수 있는 출처#신뢰할 수 있는 출처란? 참조)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편집 분쟁을 줄이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어떠한 내용을 본문에 포함시키려 한다면, 해당 내용을 주장한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찾아 제시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jtm71 (토론) 2009년 5월 1일 (금) 08:54 (KST)답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규원사화가 조선 중기의 진본임을 증명하였다는 내용을 넣으시면 됩니다. 물론 '출처'를 꼭 넣으세요. 그러면 되는 일 아닌가요? adidas (토론) 2009년 5월 1일 (금) 10:19 (KST)답변
아울러 東語謂檀曰朴達, 或曰白達라는 말이 '단군조선=배달'이라 하였다. 라고 해석될 수 있는지도 '출처'를 넣어서 표시하시고요. 그런데 Xakyntos님도 규원사화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 않았나요? 다만 東語謂檀曰朴達, 或曰白達라는 구절이 '배달=단군조선'으로 해석되기는 무리가 있다는 주장인 것 같습니다만? adidas (토론) 2009년 5월 1일 (금) 10:21 (KST)답변
adidas님도 아시잖아요? 몇번 수정을 하여 올려놓으면 되돌려지고, 삭제되는 것, 말입니다.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선입감같은 좋은 감정이 처음부터 생길 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동안의 감정을 이해바랍니다. 紫桃꽃 2009년 5월 1일 (금) 10:59 (KST)
규원사화가 진본임이 증명되었다는 것 조차도 현재 학계에서는 의심을 받고 있는 형편입니다. 내용 자체에서 너무나도 심각한 시대적 오류가 수도 없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지질과 같은 것으로 조선시대본임을 증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인성, 박광용과 같은 학자들은 규원사화를 위서로 판정하고 있지요. 그리고 진본이라고 치더라도 역사책이 아니라 종교적·민족적인 위서로 보고 있는 것이 절대적인 대세입니다. 규원사화의 진본이라는 것은 고작해야 조선 숙종 때 쓰여졌다라는 것이지 그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은 아니지요. 책 자체도 진본인지 아닌지가 여전히 학계에서 논란중이므로 책이 세상에 공개된 1920년대 이전으로 소급할 수 없습니다. 이상은 모두 규원사화 문서에 밝혀져 있는 사항입니다. 그러므로 애초에 백달이니 하는 것이 배달이라고 쳐도 그것이 숙종 때의 문헌이 될 수는 없지요. 이상이 저의 주장이며, 학계의 가장 기본적인 내용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자도꽃 님이 저의 이와 같은 주장을 확실한 출처를 가지고 반박하시면 될 일입니다. 출처도 근거도 없는 편집은 위키백과에서 용납될 수 없는 일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저는 귀하가 어떤 편집을 하시건 출처와 근거가 없거나 부적합할 경우에는 모두 되돌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귀하의 지적이 합리적일 때는 그것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11년에 배달말몰음이라는 단체명을 통해서 일제시대 이전에도 있었다는 주장에 대해 저는 그 지적을 받아들이고 일제강점기라는 표현을 근대로 순화한 바 있습니다. --Xakyntos (토론) 2009년 5월 1일 (금) 11:06 (KST)답변
이해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역사를 보는 시각도 그렇고 이곳 문서도 그렇습니다만 볼록렌즈로 볼 수도 있고 오목렌즈로 볼 수도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배달'이란 어휘가 고대로 부터 사용되던 어휘가 아닐 수도 있고 어휘일 수도 있습니다. 님은 '아닐 것이다'라는 데에 포커스를 맞춰 주장하는 것이고 본인은 '어휘일 것이다'에 포커스를 맞춰 주장하는 것뿐입니다. 정확한 자료가 없어 증명할 수 없다면 양쪽의 견해가 동일한 조건으로 기록이 되는 것이 합당하지 않습니까? 현재 '배달'의 문서는 긍정보다 부정의 늬앙스가 풍기기 때문입니다. 紫桃꽃 2009년 5월 1일 (금) 11:21 (KST)

의견 조선지지자료(《조선일보》, 2007.4.16. 기사 참조)를 찾아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jtm71 (토론) 2009년 5월 1일 (금) 11:23 (KST)답변

'白達坪'을 'ㅎ·ㄴ다리들'로 적은 경우가 있습니다. 옛 지명 중 '백달'이 모두 '배달'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이겠죠. jtm71 (토론) 2009년 5월 1일 (금) 12:44 (KST)답변
이두에서 같은 '한글 표현'을 다른 한자로 표현한 것은 알겠는데, 그렇다고 근거도 없이 백달=배달=위대한 단군조선으로 자동적으로 되는 것은 아니죠. adidas (토론) 2009년 5월 1일 (금) 17:18 (KST)답변
:? 어쨌든, 《규원사화》가 위서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것과 덧붙인 주석에 해당되는 북애자의 주장의 신뢰도는 서로 구별된다고 생각됩니다. '백달' -> '박달(배달)'은 북애자 또는 누군가의 착오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북애자는 '박달'이 '배달'이라는 주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jtm71 (토론) 2009년 5월 1일 (금) 19:06 (KST)답변

'규원사화'와 '배달'[편집]

《규원사화》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규원사화》에는 '박달 또는 백달 임검 = 단군'으로는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배달'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jtm71 (토론) 2009년 5월 1일 (금) 22:17 (KST)답변

비판 부분 내용 정리 및 수정 사유[편집]

비판 부분에 자도꽃 님께서 자료를 추가하였습니다. 이를 살펴본 결과 출처가 부정확하거나 독자연구로 의심되는 내용이 있어 일부 수정이 있었습니다. 또한 본문의 내용 중 출처로 제시해 놓은 부분은 주석 태그로 고쳐 달았습니다. 특히 독자연구로 밖에 볼 수 없는 내용은 추가된 두 번째 항목으로, 그와 같은 주장을 밝힌 정확한 출처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 삭제 대상이 됩니다. 출처와 비슷하게 주시경의 배달말몰음을 제시하였지만, 해당 학회의 목표는 한글을 연구하는 것이지 배달의 어원을 연구하는 것이 아님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해당 학회의 이름이 알려주는 사실은 1911년 당시에 배달이라는 말이 한민족 혹은 조선과 동일한 의미였다는 것 이외에는 없습니다. 배달의 어원을 직접적으로 연구한 학회나 연구 결과를 제시하지 않는다면 해당 내용은 근거가 없는 독자연구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유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세 번째 항목에서 마지막 부분에 제시한 박, 배, 백색의 예는 어떤 의미로 쓰신 것인지가 아예 해독이 불가능할 정도의 비문(非文)입니다. 무슨 의미인지 명확하게 밝혀서 올바른 문법으로 작성하시고 근거를 제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전체적으로 해당 부분의 내용은 임승국의 주장이나 국어사전을 제외하면 근거가 전무한 상황입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5월 1일 (금) 23:02 (KST)답변

결국 자도꽃님의 출처는 환단고기였다는? adidas (토론) 2009년 5월 1일 (금) 23:07 (KST)답변
환단고기 같은 부류의 출처였다는 것은 익히 짐작하고 있던 일입니다. 어쨌든 환단고기라도 공개된 출처임은 분명하니 실을 가치는 있다고 봅니다. 해당 내용은 비판과 무관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내용을 축약하여 어원 항목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환단고기는 특정 내용에 대하여 결정적인 증거가 되기에는 책 자체의 위서 문제가 크기 때문에 참고사항 이상의 의미는 가지기 어렵습니다. 물론 내용 자체도 비판과 무관하므로 어원으로 이동하였음을 밝히는 바입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5월 1일 (금) 23:11 (KST)답변
환단고기 자체가 논란이 많은 책이기 때문에 반드시 '환단고기 상에서는...'이라고 적어야 합니다. 박특, 소백손처럼 족보에만 나온 인물에 대해 족보에만 나왔다고 설명을 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adidas (토론) 2009년 5월 1일 (금) 23:16 (KST)답변
국어사전에 존재하는 것과 현재 사용하고 있는 '박','배',백색'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 적어 놓았을뿐입니다. 유추는 읽는 분들의 판단에 맡기고자 하는 것입니다. 한단고기를 설명하고자는 것도 아니고 견해의 내용을 적었을 뿐입니다. 님들의 견해가 존재하듯 또다른 견해도 있다는 것이 비판을 받을 이유가 있는가요? 紫桃꽃 2009년 5월 1일 (금) 23:26 (KST)
위에서 밝혔다시피, 해당 내용은 비판이 아니라 어원에 대한 혹자의 견해일 뿐입니다. 해당 카테고리의 주제는 비판입니다. 비판에 해당하는 내용을 적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두 번째 항목으로 제시하신 한자 문화 운운, 배달말몰음 운운 하는 내용의 출처를 제시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제시가 없다면 독자연구로 삭제하겠습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5월 1일 (금) 23:30 (KST)답변
참 어렵습니다. 위의 언급된 조건에 의해 배달의 옛글자에 대한 자료는 전무한 상태이고 충분한 증거가 없으면 독자연구나 혹자의 견해밖에 되지 않으니 이곳의 룰에 따라 문서의 편집은 불가능하겠군요. 그런데 이곳을 찾으면서 느끼는 것은 님들은 원래 긍정적인 시각도 아니고 부정적인 시각도 아닌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인가요? 그런데 누군가는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존재하지도 않는다면 할말은 없지만요..또한 님들은 소설처럼 황당한 내용의 얘기라 하겠지만 '한단고기'의 일부의 내용은 한민족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것이라 보여지는데 이곳은 배척대상의 1순위인가 봅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인용되거나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김부식의 삼국사기외엔 없을 듯하군요. 혹여 나중에 '배달'에 대한 새로운 자료가 발견되면 올려보지요. 그것도 이곳에서 인정을 받을지 모르겠지만..紫桃꽃 2009년 5월 2일 (토) 00:06 (KST)
어려우신 심정은 이해합니다. 저는 환단고기와 같은 부류의 역사학을 매우 싫어하며, 그들을 배척하고 있는 사람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을 비판하고 반박, 수정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 저 역시 그들의 주장을 비판할 때 출처, 근거가 없어서 손대지 못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근거가 없다면 아무리 틀린 내용이라고 생각하고 확신해도 손댈 수가 없는 겁니다. 자도꽃 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밝혀지지 않은 진실은 적어도 위키백과에서는 (사실 실제 학문의 세계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것, 즉 거짓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진실은 명징하게 밝혀진 것만이 수용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최소한 권위있는 학자의 합리적인 추측이라도 있어야지요. (참고삼아 말씀드립니다만, 저는 분명 자도꽃 님과 같은 주장을 하는 분들을 매우 싫어하고 그 주장을 모두 반박하고 부정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근거가 없는 반박을 하거나 무조건적으로 삭제하는 행위도 하지 않습니다. 자도꽃 님도 마찬가지로 행동해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5월 2일 (토) 00:17 (KST)답변
근거 없는 내용을 담는다면 위키백과 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하지 않을까요? 한단고기인지 환단고기인지 한민족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내용도 일부 있을 가능성은 있지만, 가능성만 가지고 예단하면 안되지 않을까 합니다. adidas (토론) 2009년 5월 2일 (토) 00:41 (KST)답변
됐습니다. 그리고 알겠습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 서로의 보는 시각을 탓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의 신념대로 느끼면서 살지요. 한단고기이던 환단고기이던 님들의 생각대로 생각하면 되고 서로의 입장을 간섭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무언가 다른 세계에 산다고 생각하지요. 서로의 입장이 다른 생각들을 알았으니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같은 동족으로 넓은 의미로 이해하겠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다른 렌즈로 세상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겠습니다. 황우석박사를 욕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듯이 세상은 늘 함께일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언젠가 진실은 밝혀지겠지요. 서로가 진실이라고 믿은 것으로 족하리라 봅니다. 紫桃꽃 2009년 5월 2일 (토) 00:53 (KST)
자도꽃 님께 다시 한 번 요청합니다. 비판 항목의 두 번째 단에 제시하신 내용에 대하여 출처를 제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없을 시에는 삭제하겠습니다. 세 번째 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독자연구라고 밖에 볼 수 없는 내용입니다. 이제 저나 이곳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의 진의는 아셨을 것 같으니 확실하게 요청드립니다. 숙고해 주시기 바랍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5월 2일 (토) 01:01 (KST)답변
입맛대로 수정하시길 바랍니다. 지하철인지 버스인지 자가용인지 가는 길이 각자 다르니 맞는 방식으로 수정하면 됩니다. 이미 정해진 규칙이 있으니 규칙에 따라 수정하면 됩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에 따라야겠지요. 그것이 현명할 듯 싶습니다. 紫桃꽃 2009년 5월 2일 (토) 01:36 (KST)
언젠가 자도꽃 님이 주장하시는 바를 뒷받침할 수 있는 1차 사료들이 발견된다면 재론의 여지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나 xakyntos님이나 '일빠'는 아니고(물론 자도꽃님도 무분별한 '환빠'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역사를 공부하는 입장에서(특히 xakyn님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한국사에 대해 일반적 아마추어 이상 공부하고 계신 듯 합니다) 최소한 지킬 부분은 지키는 것이 좋겠다는 뜻에서 의견을 낸 것입니다. adidas (토론) 2009년 5월 2일 (토) 02:07 (KST)답변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찾아야 한다는 것은 공감합니다만, 위키백과는 정책으로 그러한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위키백과의 장점이자 단점이라 생각합니다. jtm71 (토론) 2009년 5월 2일 (토) 05:11 (KST)답변
님들이 이런 원칙을 고수하는 것은 성서연구 역사가들이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는 생각에 세계종교인들처럼 보지않고 천지창조나 노아홍수 이전의 기록을 신화의 유형으로 보는 것과 같다는 생각에 좋은 의미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또한 임승국을 비롯한 재야사학자들도 미친 사람들이 아닌 바에야 없는 얘기를 꾸며 있는 것처럼 보겠습니까? 한민족의 역사를 밝혀낼 자료를 찾다보니 밝혀낼 자료는 남아있지 않고 '桓檀古記'라는 책들을 우연히 접하게되어 번역,주해,연구를 하게 된 연유이겠지요. 역사를 옳게 정확하게 바르게 보아야 한다는 것에는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다만 진서다 아니다를 떠나 진실을 찾는 것은 같지만 생각이 다를 뿐입니다. 각설하고 문서의 모호한 '출처'나 '독자연구'에 해당하는 글들은 모두 자진 삭제하였습니다. 나머지는 님들께 맡기겠습니다. 紫桃꽃 2009년 5월 2일 (토) 11:46 (KST)
지금은 그런 기대는 접었지만, 고등학교 때에는 환단고기가 정말 '오래된 저서'이기를 간절히 바란 기억도 있고^^... 20세기 초에 서양에서 중세사 연구가들이 중세사 관련 사료들을 책으로 편찬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충격적이게도 3/4 이상의 자료들이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교황령 기진문서처럼 조작된 것들이었다고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료를 조작하는 일은 흔하디 흔합니다. 그래서 엄밀한 사료비판이 필요한 것이고요. 최소한 환단고기는 실제 한국사를 오랫동안 연구하신 전문가들의 비판을 통과하지 못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adidas (토론) 2009년 5월 2일 (토) 12:18 (KST)답변
역사에 있어 정사(正史)와 야사(野史)의 구별은 어디서 정통성(正統性)을 찾는냐에 달려있다고 봅니다만 정통사학자와 재야사학자의 차이도 보는 관념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정통사서로 보고 일연의 삼국유사를 정통야사로 보아야 하는지 애매할 때도 있습니다. 북한은 통일신라를 민족반역의 국가로 보고 고구려에 정통성을 찾는 것처럼 김부식을 사대주의 사학자로 평가하기에 통일이후에도 혼란이 예고되는 역사학계의 어려움을 통감합니다. 이외에도 춘추필법의 중국의 사서들도 그렇고 일본서기를 비롯하여 주변국가에서 인정하는 역사서에 대한 정통성도 문제로 남을 것입니다.그런 맥락에서 환단고기에 대한 평가와 비판이 앞으로도 계속되리라 봅니다. 명징(明徵)즉,분명한 증거가 있어 밝혀낸다면 더 할말이 없겠지만 신채호가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으로 보았듯이 역사의 정통성 찾기는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떠나 역사에 대한 관심자들의 영원한 화두로서 작용할 듯합니다. 紫桃꽃 2009년 5월 2일 (토) 17:33 (KST)
솔직하게 말해서, 환단고기는 명명백백한 위서로 밝혀진지 이미 오래입니다. 재야를 자처하는 일부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고 있을 뿐, 역사학, 서지학, 문헌학, 고고학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이 책은 사형선고를 받았어요.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환단고기는 정말 수준이 떨어지게 날조된 형편없는 위서입니다. 게다가 임승국이 번역한 한단고기는 더 수준이 떨어져서 읽다 보면 엉터리 방터리인 부분이 수두룩하게 나옵니다. 말 그대로 아마추어인 저도 쉽게 그 오류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저 책은 형편없어요. 참고삼아, 저나 그 외 다른 분들이 밝혀낸 환단고기의 오류를 몇 개 링크합니다. 그냥 한 번 읽어나 보세요. [1], [2], [3], [4], [5], [6], [7] --Xakyntos (토론) 2009년 5월 2일 (토) 22:34 (KST)답변
이곳 오해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밝혀 두지만 adidas님의 언급대로 '환빠'도 아니고 '일빠'도 아닙니다. 환단고기를 거론하고 임승국을 언급했던 것은 '배달겨레','배달민족'의 어원을 찾다가 몇번 인용한 것뿐입니다. 우선 '일빠'니 '환빠'니 하여 사학계에서 서로 입장이 다른 어떤 무리들을 나눠 불려지는 것이 개탄스럽습니다. 본인은 전혀 이런 데에는 관심이 없고 참여도 안합니다. 오히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의 이덕일 소장을 지지하는 편에 있습니다. 위에 참조글들을 읽어보니 보기가 참 그렇습니다. 그중 '桓仁'과 '桓因'의 혼동이 눈에 들어오는군요. '지명'과 '인명'을 어떻게 혼동하게 되었는지 바로 알 수는 없지만 오래전 어느 사학계 교수의 지적이 생각납니다. 옛고구려의 국내성이 있는 곳이 현재 '集安'으로 불려지는데 '나라안'이 한자 '國內城'이 되기도 하였지만 순수 우리말 '집안'이 차음문자형식으로 '集安'으로 적은 것에 불과하다는 내용이었는데 연개소문의 가슴이 유난히 넓어서 '가슴이'가 '蓋蘇文'이 되었듯이 우리의 지명과 인명이 그런 것이 많다는 지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배달이란 어휘도 '朴達','白達','倍達'로 불려졌다는 강의였습니다. '백채(白菜)'가 '배추'로 불려지게 된 것도 그때 알았는데 그게 한국역사에 관심을 갖게된 연유인듯 싶습니다. 아무튼 님들을 '일빠'쯤으로 오해하고 싶지 않듯이 이후로 오해를 풀기 바랍니다. 참고로 환단고기에 대한 이덕일 소장의 글을 소개해 봅니다.[8] 紫桃꽃 2009년 5월 3일 (일) 01:29 (KST)

외부 링크 수정됨 (2018년 11월)[편집]

안녕하세요 편집자 여러분,

배달 (한국)에서 1개의 링크를 수정했습니다. 제 편집을 검토해 주세요. 질문이 있거나, 봇이 이 문서나 링크를 무시하기를 바라신다면 간단한 자주 묻는 질문에서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세요. 다음 변경사항을 적용했습니다:

봇의 문제를 수정하는 것에 관해서는 자주 묻는 질문을 참조해 주세요.

감사합니다.—InternetArchiveBot (버그를 제보하기) 2018년 11월 23일 (금) 10:23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