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이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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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의견: 26일 전 (InternetArchiveBot님) - 주제: 외부 링크 수정됨 (2024년 5월)

이완용이 기회주의자??[편집]

식민지 조선의 암담한 현실에서 그나마 가슴에 웅지를 품고 나름의 방법으로 출세의 길을 찾은 것을 기회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만약 지금 다시 일제시대가 된다면 과거 이완용처럼 하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지 궁금합니다. 이완용은 기회주의자가 아니라 그저 출세하고 싶었던 식민지 조선의 일개 청년에 불과합니다.--아이러브 위키백과 (토론) 2009년 11월 26일 (목) 19:51 (KST)답변

기회주의를 읽어 보십시오. 그의 생애의 행동과 비교하십시오.--Gwpei (토론) 2009년 11월 26일 (목) 20:00 (KST)답변
이완용에 대한 일반적인 토론을 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Q0v9z8 (토론) 2009년 11월 26일 (목) 20:07 (KST)답변
매국노 따위에게 무슨 말이 더 필요합니까? -- 윤성현 · 기여 · F.A. 2009년 11월 28일 (토) 01:10 (KST)답변

이완용 출생지에 대해 논란이 많군요.[편집]

전 이완용을 경기도 광주시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근거는 이완용 평전입니다. 이완용 평전은 경기도 광주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죠. 이완용 전라도 익산 출생지를 언급한 거는 역사학자 이병도의 대담을 기반으로 하는데, 이병도가 남긴 건 "이완용 어린 시절 전라도 익산에서 이완용을 봤다" 이겁니다. 그게 출생지로는 증거로는 미약하다고 생각합니다. 경기도에서 태어나서 사이에 전라도로 이사왔을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거든요. 이병도가 이완용 출생지는 전라도 익산이라고 썻으면 모르되, 이완용 출생지가 광주시라고 명시한 이완용 평전이 더 신빙성 가는 출처 자료 아닌가요. --yhpdoit (토론) 2011년 5월 30일 (월) 20:02 (KST)답변

참고로 구체적인 대담 내용이 궁금하신분은 다음 링크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출처로는 쓸 수 없지만, 해당 책의 내용을 웹 상에서 출처로 쓸만한 내용에서 올린게 없더군요. http://www.inven.co.kr/common/image/viewer.php?loc=&file=http%3A%2F%2Fupload.inven.co.kr%2Fupload%2F2011%2F05%2F19%2Fbbs%2Fi26361656.jpg --yhpdoit (토론) 2011년 5월 30일 (월) 20:30 (KST)답변
혹시나 해서 적어두는건데 일부 Dcinside 사이트 나온 이야기로 이완용은 전라도 익산 태생이 확실하며 이완용 평전은 잘못된 기록이라고 주장하는 블로그나 글을 자주 보게 되는데, 그 근거란게 이완용 평전 지은 사람이 "전라도 사람" 이라서 자기 고향의 치부를 숨길려고 그랫다는 겁니다. 참으로 어이가 없죠. 해묵은 지역감정의 발로로 보이므로 근거 하나 없는 이야기이므로 무시하시기 바랍니다. --yhpdoit (토론) 2011년 6월 15일 (수) 03:54 (KST)답변

저도 두계 이병도의 1984년 '학원'지 5월호 대담을 봤습니다만 익산설을 운운하는 폼이 왠지 자신과 이완용의 관련성을 부정하기 위해 매장지 익산을 마치 출생지인 것 마냥 슬쩍 흘렸구나 싶더군요. 사실 대담 내용에 익산이 출생지라 못박은 것도 아니에요. 말을 아주 모호하게 하더군요. 거기 대담엔 두계가 증조부뻘인 이호준이 익산까지 점쟁이를 대동, 양자로 데려왔다는 둥 운운하는데 당시 철도는 커녕 변변한 도로도 없어 강을 돛단배로 건너는 판에 경기도 용인,광주서 전북 익산까지 거리가 얼마나 먼데요. 당시 이호준은 조정을 비울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1867~9년 당시 병인양요와 제네럴 셔먼호 사건, 조선의 일본 국서 반송 사건등 조선이 몇백년만에 국제적인 위협에 노출되어 민심은 흉흉하고, 삼정의 문란이 백년가까이 계속되서 민심은 이반된 상태에 안동김씨 풍양조씨등 막강한 세도가들이 수면 아래로 숨었을 뿐 호시탐탐 재집권 기회만 노리고 있었죠. 명성황후도 막 시집와서 민씨들이 슬슬 나서기 시작해서 파워게임이 얼마나 치열할땐데 대원이 대감을 두고 서울을 비워요? 가장 결정적인 것은 두계 대담엔 이호준이 노인이었고 양자 욕심이 있었다 말했는데 이호준의 나이는 노인이 아니라 40대 중반 한창 나이였다구요. 두계가 거짓말을 한거죠. 게다가 자기의 사회적 위치를 이용, 폐묘후 원광대에 있던 이완용의 관뚜껑까지 불태웠던 것을 보면, 이완용을 자신의 집과 되도록 연관시키지 않으려던 게 확실하구요. 그래서 이병도의 본가쪽이던 경기도 출생 사실을, 매장지인 익산에서 자란 것마냥 얘기를 흘린 게 아니겠나 싶더라구요. 어쨌든, 익산 출생설은 근거로 내놓은 것들이 전혀 일고의 가치가 없습니다. 경기도 판교에 분명 이완용 생가터가 실재하고 있구요. 조선일보 기사뿐 아니라 연합뉴스, 해럴드 뉴스등 다수 매체가 이 사실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Sonchoripark (토론) 2013년 5월 7일 (화) 13:33 (KST)답변

경기도 성남시에 이완용 생가터라는 사적도 있죠. 이완용 평전이 나오기 한참 전부터 존재했던 곳입니다.--Amoeba (토론) 2013년 5월 9일 (목) 18:41 (KST)답변

이완용 생가 터는 증언을 통해 추정된 것으로 아직 생가터인지 아닌지 고증작업을 거치지 않은 곳을 졸속으로 사적으로 지정 한곳입니다. 즉 이완용 일가가 거주 했던 것은 맞는데 익산에서 이주해서 거주한것인지 이완용이가 태어난 것인지는 모르고 그냥 명칭만 생가터라고 붙이고 사적으로 지정한 겁니다. 이건 역사 자료 마사지죠. 이완용의 형이 1885년 과거 급제를 하면서 주소를 뜻하는 거주지 란에 광주라고 쓴것을 고향을 뜻하는 출신지를 광주로 썼다는 왜곡도 자행되고 있고요. 이완용의 형인 이면용 급제 관련 증거는 거의 코미디수준의 왜곡이죠. 1990년대 중반까지는 이완용은 전라도 출신으로 되어 있었는데 1990년대 후반부터 10년간 생가터의 지정, 평전의 광주설 등등 날조들이 나오고 있죠. 이완용 익산출신설을 제기하신 이병도씨는 주변 어른 들에게 이완용의 양아버지가 전라도 관찰사로 갔다가 전라도에서 이완용을 만났다고 했는데 실제로 이완용을 양자로 들이는 시점에서 관찰사로 가있었고요. 100년이나 지난 일의 사실관계가 100년 후의 사람이 알아 맞추는 걸로 봐서는 익산설이 확실 한거 같습니다.

전라도 관찰사로 간 것은 양자 입양 후 몇 년 뒤 일입니다. 그리고 판교 생가터를 졸속으로 사적으로 지정했는지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고 단정하는지요? 백보 양보해서 만약 초년에 익산에서 거주를 했다가 도로 이사를 왔다고 출신지가 달라지나요? 우봉 이씨 집성촌 자체가 판교고 진사시 합격한 큰 형이 거기 산다고 했는데. 이면용 급제 관련 증거가 왜 왜곡이라는 거에요? 분명 식년시사마방목에 정확히 써있구만. 자료 마사지? 그건 이병도 쪽이죠. 주변 어른들에게 들었다는 거야말로 그게 무슨 증거가 돼요? 그거야말로 조작 가능성이 훨씬 높죠. 이완용을 어떻게든 족보에서 파내고 싶었을 사람들인데. 중립성은 고사하고 떨렁 주변 어른들이 그러더라는 말 자체가 벌써 사실 여부와는 거리가 멀어요. 익산설은 이병도가 자기 친일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조작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렇게 아무 상관이 없을 거 같았으면 지가 이완용 관뚜껑을 왜 일부러 갖다 태워요? 멀쩡히 잘 전시되고 있는 걸. 그리고 생가터도 멀쩡히 있고, 친형이 광주 살면서 진사시보러 갔고, 양아버지는 입양 후 6~7년 가까이 지나서 전라도에 내려갔고 전부 반대증거뿐인데 그렇게 전라도설을 밀어서 얻고자 하는 게 뭔가요, 지역감정? --쏜치팍 (토론) 2014년 1월 21일 (화) 19:55 (KST)답변

직접 성남시에 직접 전화해서 고증은 거친거냐고 물어 보세요. 답변은 고증을 거지치 않았다고 합디다. 고증도 거치지 않은 곳을 최근에 국가가 나서서 생가터로 지정해버리는 해괴한 일이 발생한것을 알겁니다. 이면용은 주소를 광주라고 썼습니다. 하지만 광주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고향을 광주라고 썼다고 말하죠. 즉 주소가 고향은 아니죠. 왜곡입니다. 완벽한 날조입니다. 즉 이완용 광주설을 주장하는 1가지 근거가 날조고 다른 한가지 근거는 증명없이 특정 정부에서 공권력을 통해서 지정했다는 거죠. 역사왜곡을 해서라도 지역보호 이기주의를 관철해야 할까요? 진실을 말하는 사람에게 지역감정을 부추긴다고 몰아 붙이는 분들이 있습니다. 특정 지역 사람들 때문에 해가 서쪽에서 뜬다고 말해야 하나요?

경고하는데 서명을 해야 글이 남습니다. 서명없는 글 경고먹으니 알아두시고요. 정부가 억지로 고증없이 선정을 했네 어쨌네 그게 당신이 주장할 팩트입니까? 생가터라고 인터뷰한 게 다른 일보도 아니고 조선일보 기사에 떡하니 나와있구만 아무 증거력도 없는 주장만 하는군요. 날조를 했다고 자꾸 그러는데 그 쪽이야말로 내가 볼 땐 아무 근거없이 지역감정만 부추키고 있네요. --쏜치팍 (토론) 2014년 1월 21일 (화) 20:20 (KST)답변

성남시에 직접 전화를 해보세요.

전화를 하던 말던 당신이 지시할 사항이 아니고요. 분명 공용 증거를 대야할 역사적 사실을 다투는 문서에 다분히 정치적 색안경을 끼고 주변 어른이 어쨌니 전라도 정부가 외압을 넣었느니 아무 증거력이 될 수 없는 사항들을 사실처럼 밀지 말아야 합니다. --쏜치팍 (토론) 2014년 1월 21일 (화) 20:31 (KST)답변

확인해보기 두렵죠. 고증 거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까. 직접적 증명력 앞에는 다들 뒤로 빼죠.

지금 당장 당신하고 통화했다는 성남시 담당자 이름과 직책, 부서 적으시고요. 녹취한 거 있으면 역시 같이 제시 바랍니다. 분명 당신은 정부가 외압을 넣어서 성남시가 급하게 출생지 선정을 했다는 졸속 행정 사실까지 의심할 내용을 적었습니다. --쏜치팍 (토론) 2014년 1월 21일 (화) 21:08 (KST)답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6&aid=0000023369 남선우 성남문화원장은 “이완용 생가 터는 주민들의 증언을 통해 추정된 것으로 아직 고증작업을 거치지 않았다”신문기사 찾았습니다....읽어 보세요. 남선우 성남문화원장을 고소하던가. 고증 과정 없이 표시석을 세우네 연못을 파네 이러고 있다는 기사네요.

뭐 이딴.. 그 위 아래 전부 판교 맞다는 얘기고 그나마 남선우 씨 얘기도 생가 터가 정확히 연못 자리인지 아닌지 알아보자는 얘기네. 됐고요, 당장 성남시 공무원 담당자 이름 직책, 부서 적으라고요. 허위 사실을 말했든 전화 통화 내용을 왜곡했든 당신이 한 발언은 명예 훼손 내지 정당한 행정 절차에 대한 부실 사항을 공언했습니다. 빨리 담당자 이름,직책,부서명 대라고요. --쏜치팍 (토론) 2014년 1월 21일 (화) 21:46 (KST)답변

토지박물관 김주홍 학예사는 “원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생가 터를 알아냈으며 지번은 정확하지 않으나 사진 촬영한 가옥은 이완용의 집터가 확실하다” --> 집터를 생가터로 바꿔 버리는 센스를 보여주는데 이게 조작이지 뭐가 조작입니까? 생가터라는 고증이 뭐냐고요?? 집터가 언제 부터 생가터가 되냐고요. 그걸 증명할 고증을 내가 왜합니까?? 입증책임은 생가터라고 주장하는 자가 지는거지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 지라느게 말이 됩니까? 증거가 나와도 계속 고소니 법타령이니 역사 토론에 무슨 법 타령 합니까?

담당자 이름을 못대네? 분명 전화해서 고증을 거치지 않았다는 답변 들었다면서요? 되도 않는 저열한 가정을 주장하기 위해 허위 사실을 막 주절대는 데 그게 토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사실로 보일만한 주장을 거듭함으로서 명예훼손 및 행정 절차의 부실을 의심케 할만한 주장을 계속했습니다. --쏜치팍 (토론) 2014년 1월 21일 (화) 21:46 (KST)답변

내가 직접 전화를 안했지만 고증 없었다는 말은 성남시 문화원장이 말했습니다. 기사 까지 찾아 줬으니 성남시에 진짜인지 확인은 댁이 하세요. 집터가 왜 생가 인지라는는 고증을 했냐고요.

전체 삭제라니.ㅎ 편집 취소란 기능이 있는지 몰랐지? 위키는 한 번 적으면 기록이 계속 갑니다. 당신은 거짓말을 했습니다. 전화를 하지도 않고서 통화로 답변을 들었다고 했으며 성남시 공무원을 팔았습니다. 이 밑에 공개적으로 사과하십시요. --쏜치팍 (토론) 2014년 1월 21일 (화) 21:55 (KST

통화답변 들었다는 것은 거짓이지만 나머진 사실입니다.. 그 사소한 부분에 관해서는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부분에서는 거짓이 없다는게 제가 제시한 자료에서 전부 들어 났습니다. 사소한 거짓을 흠 잡아 큰 거짓말을 하는 게 더 나쁜니다...이완용의 생가가 성남에 있다는 것은 날조 맞고요 집터만 발견 되었고 생가터라는 고증이 없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토지박물관 김주홍 학예사는 “원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생가 터를 알아냈으며 지번은 정확하지 않으나 사진 촬영한 가옥은 이완용의 집터가 확실하다” --> 집터를 생가터로 바꿔 버리는 센스를 보여주는데 이게 조작이지 뭐가 조작입니까? 집터가 생가터라는 고증이 무엇일 까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6&aid=0000023369 남선우 성남문화원장은 “이완용 생가 터는 주민들의 증언을 통해 추정된 것으로 아직 고증작업을 거치지 않았다”신문기사 찾았습니다....그리고 그 사소한 거짓도 제가 읽어 봤고 또 기억을 하고 있었던 이 기사를 토대로 한것이라 완전 거짓으로 보기도 힘들죠. 성남시 공무원이 고증작업 없었다고 밝힌 적이 있으니까요. 사소한 거짓은 분명 제 잘못입니다. 그리고 고소 대신 앙망을 할수 있는 기회를 주신 쏜치팍 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니 생가터가 조작이란 것을 이제 인정하시죠. 쏜치팍님

고증을 거치지 않은 것이 날조라니... 더더욱 할말이 없어집니다. 물론 역사란 고증을 거치기 전에는 확답을 할 수 없는 것이긴 합니다만, 날조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증명이 안되었다허위 날조의 차이까지 설명드려야 합니까? 그리고 쏜치팍님, 위키에선 법적 위협은 인신공격 금지조항의 위반입니다. --팝저씨 (토론) 2014년 1월 21일 (화) 22:19 (KST)답변
헌법 기관의 구성원인 공무원을 팔아서 자기 주장을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보이게 한 데 대해 분노한 게 너무 지나쳤습니다. 책임을 지라는 말은 삭제하겠습니다. 문제 제기가 계속될 경우 피드백을 주시면 고쳐나가겠습니다. 거듭 사과말씀드립니다. --쏜치팍 (토론) 2014년 1월 21일 (화) 22:36 (KST)답변

집터의 발견을 생가터의 발견으로 확장해석했다는 것은 날조성 확장해석 아닌가요? 집터의 발견은 집터의 발견일뿐 해석할 수 있는 문리적 단어의 한계를 넘어서 확장해석하는 것은 날조의 영역이죠.

이완용의 형이 이면용인데요. 이완용은 이호준에게 입양이 됐고, 이면용은 입양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완용 뿐만 아니라 이면용도 과거에 합격했는데 이면용의 출생지도 경기도 광주로 되어있습니다. [1] --Amoeba (토론) 2014년 1월 22일 (수) 18:49 (KST)답변

이면용 출생지 광주설은 진짜 조금만 조사해보면 거짓말이라는걸 알수 있습니다. 그 설을 주장하는 분들이 증거라고 내놓는 것이 과거를 보면서 거주지를 적는 곳에 광주라고 적었다는 것이고. 거주지라는 단어를 출생지바꿔 놓고 고향이 광주라고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증거 자료 입니다. http://people.aks.ac.kr/front/tabCon/exm/exmView.aks?exmId=EXM_SA_6JOc_1885_037316&curSetPos=0&curSPos=1&isEQ=true&kristalSearchArea=B 광주설을 제기하는 측들이 내 놓은 자료들은 항상 이런식으로 날조가 되어 있습니다.

당신이 제시한 본문 중에 그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판교가 출생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단 한 명 고증이 더 필요하다고 말한 남선우 씨 조차도 정확한 위치를 더 고증해야 한다고 말했지 판교가 출생지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친형 이면용의 거주지를 출생지라 했다는 것조차 익산설을 뒷받침하는 것이 아닐 뿐더러 당신이 주장하는 익산설은 전적으로 주변 어른들에게 들었더라라는 매우 부정확한 이병도 개인의 84년도 대담만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당신은 자신의 억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국가 공무원과 직접 통화를 했다는 새빨간 거짓말, 국가 기관의 공복에게 명예 훼손의 여지마저 있는 거짓말까지 둘러댔습니다. --쏜치팍 (토론) 2014년 1월 24일 (금) 22:52 (KST)답변
게다가 당신이 제시한 본문에도 잘 나오는군요. 이완용의 사위인 김명수가 엮은 이완용 문집인 <일당기사>에도 이완용의 고향이 지금의 판교인 성남 백현리라고 나와있다고 나오네요. 1920년대 이완용의 가족이 직접 쓴 글보다 1984년의 어디서 들었는지도 확실치 않는 특수 이해관계자의 대담을 믿겠다는 건가요 지금? 글뒤에 반드시 붙이게 돼있는 서명도 없이? --쏜치팍 (토론) 2014년 1월 24일 (금) 22:56 (KST)답변

제가 정확하게 '통화 했다'라고 말 한적 없죠..쏜치팍님의 거짓말이죠.."전화해보세요 공무원이 고증이 없다고 합디다"라고 직접 공무원에게 들은 뉴앙스로 말했죠. 그리고 전화통화는 아니지만 직접 공무원이 말한 반박 못할 증거를 제시 했고요. 주제를 증명하는 내용의 거짓이 아닌 주제를 증명해 나가는 과정에서의 거짓이지만, 그런 뉴앙스를 풍기는 것 자체도 잘못이니 그 부분은 사과를 했고요. 과정의 거짓을 부각시켜 진실적 내용에 회칠하려 드는 쏜치팍님도 같은 방법을 쓰시고 계시는 겁니다. 그리고 저는 사실관계에서 그러한 방법을 사용했지만 쏜치팍 님은 인신공격적이라 상당히 졸렬합니다. 또한 쏜치팍님은 9급 말단 공무원의 통화 내용을 요구했지만 전 문화원장의 발언을 증거로 제시했으니 내용 면에서는 차고도 넘치죠. 그리고 쏜치팍님은 '남선우 씨 조차도 정확한 위치를 더 고증해야 한다고 말했지 판교가 출생지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내용이 거짓말을 하시네요. 남선우씨는“아직 고증작업을 거치지 않았다"라고 고증작업을 안했음을 말했지 판교 출신을 부정하거나 긍정하거나 한 말은 한적 없어요. 그리고 김명수는 이완용 사위 아닙니다. 그리고 상당히 큰 문제는 있지만 역사학계에 한획을 그은 이병도씨를 만만한 역사학자로 모시는게 억지고요. 그리고 일기당사도 평전이지 자서전 아닙니다, 즉 이완용 죽은뒤에 쓴 글입니다. 일기당사와 이병도씨의 언급이 틀려서 이런 문제가 나오는 것이고. 이병도씨도 이완용이랑 왕래는 있었습니다.

통화했다면서요? 진실력이 어쩌고 진실을 알기가 두렵냐 개소리한게 누군데 지금 오리발이신지? 그리고 또 공무원 운운하면서 문제될 거 같으니까 출생지 논란 토론 전체를 지우고 반달리즘 했잖아 당신? 그리고 공무원 통화 사실이 없는데 거짓말하다가 문화원장이 실은 당신이 말하려던 공무원이었다 말까지 돌리는데, 애시당초 그 문화원장이 한 말이 어떻게 익산설의 근거로 둔갑하는 거요? <이완용 생가 터를 연못으로 … -내일 신문 2005년 8월 11일 기사> 당신이 제시한 글 맞지? 본문 전체를 아무리 봐도 익산설을 얘기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데 그걸 익산설의 근거로 들고 와서 혼자 단정을 내리고 억지를 피우고. 일당기사 간행한 김명수가 사위가 아니고 조카군. 사후 1주년 이완용 글을 모은 간행집인 일당기사같이 이완용이 세력을 갖던 일제 시대, 가족이 직접 1927년 간행한 그게 정확한 거지, 어떻게 나라 되찾고 이완용을 족보에서 파내고 싶었던 인간이 슬쩍 흘린 한마디에 출생지가 바뀐다는 거요? 그리고 이병도가 이완용과 왕래가 있었다고 대단히 아는 체를 하는데 말이요, 정작 84년도 학원지 5월호 인터뷰서 이병도 자신은 이완용과 왕래가 없었다고 열심히 발뺌 중이던데 재밌군요? 다음 대담을 보니 이병도가 이완용을 만나서 '아재, 당신 고향 전라도지. 고향 세탁한 거지?' 요딴 식으로 확인했을리도 없겠더군요. --쏜치팍 (토론) 2014년 1월 25일 (토) 06:08 (KST)답변
<이병도가 84년 인터뷰에서 이완용과의 관계성을 열심히 발뺌하는 장면>
①정홍준: ... 구한말 학부대신이자 총리대신 이완용과 선생님과는 친척간이라고들었습니다.
이병도: ...(중략)...나와는 별 상관이 없는 사람이지요.
②정홍준: 그런데 저도 들은 얘깁니다만, 선생님 아버님이 이완용 대신 옆에서 일을 거들어 주셨다고 들었는데요.
이병도: 천만의 말씀이에요..(중략)..그 벼슬도 이완용과 관계되서 된 것은 아닙니다.
③정홍준: 잘못들 알고 있었나 봅니다. 그러면 선생님께서는 이완용과 전혀 왕래가 없으셨습니까?
이병도: 그래도 문중 사람이고 우리 셋째 형님이 글씨를 배우러 다녀 같이 가본 적은 있습니다. 그 외에는 일체 왕래가 없었죠. --쏜치팍 (토론) 2014년 1월 25일 (토) 08:54 (KST)답변
이 말도 안되는 논란에 더 이상 말할 가치도 뭐도 느끼지 못하는 지금 확실히 못박아둘건 당신이 주장하는 익산설의 근거는 1984년 학원지 5월호에 이병도가 슬쩍 흘린 한마디 외에 근거가 없다는 점. 이완용이 익산 출신이다라는 근거를 이병도의 인터뷰 말고 신빙성 있는 것들로 찾아서 제시하고 익산 생가터나 생가에 대한 새로운 주민 증언을 발견하기 전엔 절대 이완용의 고향은 경기도 광주에서 일점일획도 바뀌지 않을거라는 거 알아두시길. --쏜치팍 (토론) 2014년 1월 25일 (토) 06:29 (KST)답변

쏜치팍님이 저는 한개의 거짓을 말했지만 쏜치팍님은 여러개의 거짓을 말했습니다.

1. 제가 정확하게 '통화 했다'라고 말 한적 없죠...."전화해보세요 공무원이 고증이 없다고 합디다"라고 직접 공무원에게 들은 뉴앙스로 말했죠. 그리고 고증없다는 것을 말을 한 분을 제시해줬고요. 쏜치팍님의 졸렬하고 유치한 꼬투리죠 예를 '김명수가 사위라다'고 말한 님에게 제가 '쏜치팍님은 김명수가 사위라는 인척관계를 가진양 거짓말을 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했다' 라고 말하면 웃기는 거죠..인척 맞죠 조카니까..마찬가지 입니다. 공무원이 고증 없다고 말했습니다. 말단도 아니라 고위직이요. 이런 토론에 고소고발 떠들어서 놀라서 도망갔었습니다. 상식적으로 굽시다.
2. 쏜치팍님은 '남선우 씨 조차도 정확한 위치를 더 고증해야 한다고 말했지 판교가 출생지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거짓말을 하셨어요. 남선우씨는“아직 고증작업을 거치지 않았다"라고 고증작업을 안했음을 말했지 판교 출신을 부정하거나 긍정하거나 한 말은 한적 없어요...
3. 저는 문화원장의 말을 익산설로 둔갑시킨적 없고요..전 문화원장의 말을 성남시가 고증없이 이완용의 집터를 생가로 지정했다 것에대한 '증거'로만 사용 했습니다...그리고 '사료를 날조 하는 것'은 정당성에 상당한 문제를 유발 시키기 때문에 광주설을 주장하는 자들에게 문제가 많다라는 데까지 이용 했습니다.. 합리적이죠.
4. 이병도씨가 이완용과 거리를 두고 싶어서 일체 왕래가 없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왕래 했습니다. http://blog.naver.com/eksrns0918?Redirect=Log&logNo=130172470055 이병도씨도 이부분에 대해서는 환담내용중에 살짝 언급하는데 하지만 이완용과 거리를 두고 싶은 발악으로 보이고요.
5. 이면용이 과거급제시에 고향을 광주라고 했다고 하셨지만 거주지죠..증거입니다.http://people.aks.ac.kr/front/tabCon/exm/exmView.aks?exmId=EXM_SA_6JOc_1885_037316&curSetPos=0&curSPos=1&isEQ=true&kristalSearchArea=B
6. 익산설로 단정을 내렸다고 하는데...이건 진짜 날조구요..거의 확실한거 같다고 했죠..왜냐?? 광주설 주장하는 사람들이 제기한 자료가 상당한 부분에 문제가 있으니까요. 왜 사료를 날조합니까? 사료를 날조해서 자기 주장의 증거로 삼는 것은 증거가 전혀 없다는 것을 뜻하죠..그게 바로 광주설이죠..증거 하나 없는 조작된 설..
이병도라는 사학자는 최소한 사료 날조는 안해요. 이병도를 만만한 사람 처럼 말하시는데 문제는 있지만 사학계의 대학자는 맞죠. 이병도 살아 있을적에는 찍소리도 못하다가 죽은뒤에 들고 일어나는건 뭡니까? 그렇게 자신 있었으면 살아 있을 때 반박을 하지. 문중에서 들었다는 것을 현대적 의미로 해석하면 안되죠 90년대 이전까지 유교를 바탕으로 둔 사회였던 한국에서 문중 어른들 사이에 나오는 말들이 허튼소리가 있나요. 김명수는 우봉 이씨가 아니라 외척 조카입니다. 외척조카가 문중 사람들보다 이완용 가계에 대해서 더 많이 안다??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죠. 평전이라는것 자체가 100% 맞는건 아니고 사실관계 틀린 것도 많죠. 특히 출생 등에 관해서는...그건 문중 사람이 더 잘알죠.
거짓 생가를 만들어 놓고 다람쥐 챗바퀴논리를 구사하고 싶은 광주설 주장자들에게는 생가가 성지겠지만.......제가 반박 못하는 증거 다 제시 했죠...생가는 날조--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58.122.67.254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추가하였습니다.
자꾸 이병도 논리로 이완용 경기도 광주 출생을 부정하시는데, 이병도는 날조 안 했습니다. 이건 날조라고 하지 않지요. 이병도가 말한건 전라도 익산에서 태어났다는 게 아니라 전라도 익산에서 이완용을 보았다 이겁니다. 그게 맞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익산에서 이완용을 보았다는게 갑자기 출생지가 될 수 있죠? 이완용 평전은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 들어가고, 그걸 반박할라면 반대 쪽도 그걸 반박할 만한 증거를 가져와야 최소 병행 표기라도 가능합니다. 이병도가 이완용 출생지는 전라도 익산이다. 라고 말한 증거를 가져와 주세요. 그럼 두말없이 올려 드립니다. 최소 논란중인 사건으로 기록은 되겟네요. 근데 이병도가 말한 건 이완용을 보았다 니까 출생지 근거로는 0점입니다. 그 자료 가지고는 익산에 살았다 라는 주장까진 할 수 있어도 익산에서 태어났다는 주장은 불가능합니다. --yhpdoit (토론) 2014년 2월 10일 (월) 12:36 (KST)답변

이병도가 인터뷰 중에 익산이라고 툭 던진 말인데, 뒷받침할 근거는 하나도 없잖아요. 익산설이 더 증거가 없습니다.--Amoeba (토론) 2014년 2월 11일 (화) 14:58 (KST)답변

이병도가 인터뷰 중에 '익산이라고 툭 던졌다'와 '익산에서 보았다' 모두 거짓말인거 이미 위에서 제가 논파 했습니다. 논판될걸 가지고 계속 주장하시면 안되죠..http://blog.naver.com/eksrns0918?Redirect=Log&logNo=130172470055 인터뷰 이전에 이미 제자들 증언이 있습니다. 인터뷰에서 익산설을 처음 말했다는것 자체가 광주설 주장자들의 거짓말 입니다. 익산설의 증거가 없어서 못믿으니까 광주설이다..장난이 심하네요. 어떻게 이런 논리가 성립하죠?? 광주설의 자료가 전부 조직적으로 날조가 되었으니까 익산설이 신빙성이 큰거겠죠. 그리고 광주설 주장자들은 이병도 살아 있을때는 찍소리도 못했다가 정확한거고요. 정황상 광주설보다는 익산설이 더 사실로 추정되겠죠. 광주설은 날조란게 증명 되었죠. 역사자료 날조를 하지 말던가요. --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58.122.67.254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추가하였습니다.

서명을 안하시면 의견 구분이 안돼서 내용 파악이 힘듭니다. ~~~~(물결표시 4개)를 추가하면 자동으로 작성자와 작성 시간으로 치환 입력됩니다. 꼭 서명해 주세요. --10k (토론) 2014년 8월 2일 (토) 23:36 (KST)답변

위에 제시하신 자료들을 읽어 봤는데, 아직 광주설, 익산설 모두 추정일 뿐인 것 같습니다. 위키백과에서 인물에 대해 가장 확실하게 인정받는 것은 1차 자료(출생증명서 등)를 인용한 2차 자료(서적 등)입니다. (백:독자참고) 문서의 수정이 필요하다면 두가지 설 모두 게재되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만일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하시면,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학설을 반박할 수 있는 “1차 자료를 인용한 2차자료”를 제시하시면 됩니다. --10k (토론) 2014년 8월 2일 (토) 23:47 (KST)답변

무책임한 양비론입니다. 서적은 이미 이완용 평전이나 25년 이완용 사후 간행된 일당기사 본문, 그리고 위에 익명의 사용자가 제시한 공청회 자료만 봐도 대부분 판교를 생가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익명의 사용자가 익산설 근거로 내세운 공청회 발언자의 '아직 고증이 더 필요하다'는 말 역시 현재 생가터로 추정되는 집 위치를 더 고증해야 한다는 거지 출생지 자체를 부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익산설의 희미한 논거로 제시되는 건 이병도의 87년 대담에 자기가 이완용과 관련없다고 발뺌하는 내용에 잠깐 나올 뿐입니다. 위 글타래만 잘 읽어봐도 답은 이미 나와있습니다. --쏜치팍 (토론) 2014년 8월 3일 (일) 15:07 (KST)답변
토론이 좀 과열된 것 같군요. 공격적인 내용을 삭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위에서 말씀하신 내용들에서 문헌출처를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을 모두 써 주시면 되겠습니다.
한 가지 주의하실 것은, 이완용 평전에서 언급했다는 것이 궁극적인 확증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완용 평전에서 저자가 무엇을 근거로 광주설을 주장했는지 인용을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광주설의 근거자료가 충분하다고 해서, 확증이 되지 않는 한 익산설을 전적으로 배제해서는 안됩니다. 심지어, 광주설이 확증되었다고 해도, 익산설은 “이와 같이 알려져 있었다”는 형식으로 게재되는 것이 문서의 충실성을 위해 더 바람직할 것입니다. 사:58.122.67.254님의 반박을 기다려보고, 이의가 없는지 확인을 하시면 되겠습니다. --10k (토론) 2014년 8월 4일 (월) 02:31 (KST)답변
님 말씀이 맞는 말이긴 하나 여기에 맞는 말은 아닙니다. '선동은 한 문장으로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것을 반박하려 준비를 마칠 때면 이미 사람들은 선동돼 있다' 괴벨스의 말이죠.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익산 출생설의 근거로 드는 건 87년 이병도 대담 내용 하나뿐입니다. 다른 어떤 근거도 더 이상 그들은 대지 못합니다. 그 내용조차 위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완용과 자신의 관계를 부정하기 위한 발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글타래 보시면 압니다. 익산설을 주장하려면 광주 출생 사실보다 더 많은 증거를 대야 하는 데도 말입니다. 이완용 문서는 이미 광주 출생에 대해 증거를 여러가지 제시해서 쓴 것입니다. 익산설에 대해서 이완용 문서에 포함하는 것을 전 반대하고요, 차라리 아무 근거도 없는 주장이나마 그 내용을 넣고 싶으면 이병도 문서에 넣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봅니다. 이상입니다. --쏜치팍 (토론) 2014년 8월 19일 (화) 11:59 (KST)답변

불필요한 한자 병용 표기[편집]

지나치게 많네요. 이완용 문서를 편집하신 분들 가운데 꼭 필요하지 않는 한자 병용으로 문서를 편집하신 분은 무슨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별 이유가 없다면 가독성을 위해 필요없는 한자 표기는 삭제하는것이 당위라고 봅니다.--Grampus (토론) 2013년 4월 25일 (목) 18:06 (KST)답변

그 말도 일리 있군요. 일본이나 중국에서 혹시 이 문서를 참고하거나 보러올 걸 생각해 넣었습니다만. 좀 국제적인 인물이라. 가독성이 안좋은 단점은 인정합니다. --Sonchoripark (토론) 2013년 4월 26일 (금) 03:55 (KST)답변

현재 불요(不要) 한자 제거 및 다듬기 중입니다. --Sonchoripark (토론) 2013년 4월 26일 (금) 06:16 (KST)답변

다듬기 일단 완료입니다. --Sonchoripark (토론) 2013년 4월 26일 (금) 12:18 (KST)답변

네. 저는 한국어를 모르는 한자 문화권 외국인이 이완용 문서를 보고 참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인을 비롯한) 한국어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가독성에 있어서 편의가 더 중요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런 의견을 남겼습니다. 아무쪼록 감사드립니다.--Grampus (토론) 2013년 4월 26일 (금) 14:15 (KST)답변
필요하다면 타국어판으로 번역해 주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팝저씨 (토론) 2014년 1월 22일 (수) 00:38 (KST)답변

이완용의 3남이 이찬우?[편집]

이완용의 가계도는 요절한 장남과 작위를 승계한 차남 항구 뿐입니다. 이찬우가 뭔가해서 봤더니 이병철 회장의 친부의 이름으로 이항구의 아들, 즉 이완용의 손자인 이병철과 삼성 창업자 이병철 회장이 동명이인인 점을 이용해 둘을 엮어보려는 시도였던 것 같습니다. 손자 이병철 씨는 이항구의 아들인데, 이에 반해 이병철 회장이 진주 향반 이찬우의 아들이니 이찬우를 이완용의 3남으로 변형시키고 족보를 꼬이게 만들었습니다. 이에 삭제했습니다. 반론이 있으시거나 혹시 이완용의 늦둥이(?)에 대해서 다른 정보가 있으신 분은 출처를 공유해주시고 같이 공부했으면 좋겠습니다. --쏜치팍 (토론) 2017년 4월 20일 (목) 11:36 (KST)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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