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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파군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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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회가 파군태수라는 기록을 믿을 수 있을까요?[편집]

삼국지 동윤전에 주석으로 전해오는 양양기에 따르면 동회가 파군태수를 지냈다고 나옵니다. 그러나 배송지는 이를 믿을 수 없다고 보았는데 일리가 있습니다.

먼저 동윤전에서는 동윤이 일찍이 상서령 비의, 중전군 호제 등과 함께 연회를 여는데, 이미 수레를 메었거늘 젊고 관직이 낮은 동회가 인사를 하자 그와 대화하고자 수레를 풀어버렸고 비의와 호제도 나가지 않기를 함께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비의가 상서령이 된 것은 비의전에 따르면 제갈량이 죽어 후군사가 되었다가 장완을 대신한 것이라고 합니다. 장완은 제갈량이 죽은 후 상서령을 지냈다가 대장군·녹상서사로 승진했고 연희 원년(238년)에 대사마가 되는데 녹상서사가 상서대의 장관을 겸임한단 뜻이므로 비의가 상서령이 된 것은 238년에 장완이 대사마가 된 이후일 것입니다. 즉 동회가 238년 이후 시대에 아직 젊고 관직이 낮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양양기에 따르면 입촉 후 비의의 부사로서 손권에게 사자로 가, 손권이 양의와 위연을 힐난하자 쩔쩔맨 비의를 도와준 공으로 승상부속이 되고 후에 파군태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배송지는 승상부속이 되고 파군태수까지 지낸 사람이 젊고 관직이 낮다고 하는 게 말이 안 되므로 이를 부정한 것인데, 파군태수야 나중에 됐다쳐도 승상부속은 확실히 비의가 상서령 되기 전에 된 것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양양기의 기록을 신뢰할 수 없다면 동회가 파군태수가 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Synparaorthodox (토론) 2019년 3월 26일 (화) 14:00 (KST)답변

일단은 기록하되, 사정을 병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비슷한 예로는 같은 시기에서 정양태수·운중태수로 기록이 모순되는 한안국이 있습니다. 동회와는 약간 사정이 다르긴 합니다만, 일단은 두 곳 모두 기록해 두었습니다. 글을 써놓고 생각해 보니, 예전 광릉여왕의 남리후 운운했던 글이 생각나는군요. --威光 (토론기여) 2019년 3월 26일 (화) 15:15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