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현리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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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의견: 7년 전 (Skky999님) - 주제: 내용 검토

내용 검토[편집]

본인은 그 전투에 직접 참가한 사람 중 한사람이고 현장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일부 오류점을 바로 잡고자 합니다. 오마치 고개가 포위 당한 건 맞고 아군 지위체계가 무너저 적에게 적극 대응 못한 건 사실이지만 병력 40%만 생존했다는 건 좀 과장 된 것 같고. 특히 무기를 적에게 빼았겼다는 건 전혀 사실고 다릅니다. 야포 추럭등 각종 큰 무기등은 한데 모아 휘발류를 부어 불질러 적이 못쓰도록 하였고 특히 적이 사용할만한 야포와 총포는 공이 등 주요 부속품을 파괴하여 사용 불능상태로 만든 후 불살러 버려 적이 사용을 못하도록 조치한 것은 본인이 생생하게 현장에서 목겨한 사항들입니다. 하진부리까지 후퇴한 것 또한 사실인데 여기서 안타까운 것은 9사단 포병대 관측 장교(소의)었던 조창호 소위가 후퇴 중 어느 화전민가에 음식물 얻어 먹으러 들어갔다가 마루에서 식사중이던 중공군에게 붙잡혀 인민군에게 넘겨진후 북에 끌려가 탄관 등지에서 가진 고초를 겪다가 43년만에 탈출, 생환하였으나 하도 심한 고생을 한 여파로 몇 년 못살고 타계한 것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입니다. 본인은 3일간 산중에서 헤매면서 계곡의 물과 단 한 끼 화전민가에서 메물가루로 만든 수재비 한 그릇 얻어 먹고 그 힘으로 하진부리 어느 학교 집결지에 귀환 할 수 있었습니다. (3일만의 귀환) 지금까지도 생생한 것은 1951.5.18일 방태산 능선길을 걸어 후퇴하는데 능선상에는 그 때까지도 잔설 (눈)이 남아있었던게 기억납니다. 방태산은 해발 1,450미터 가량의 워낙 높은 산이었기 때문인 것이지요.

방금 전 118.222.94.180 IP로 추가된 내용입니다. 이 내용이 사실인지, 독자 연구에 해당되지는 않는지 확인이 필요할 것 같아 여기에 올립니다. -- Skky999 (토론기여) 2016년 6월 12일 (일) 10:03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