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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황건적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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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의 난에서, 제목을 황건농민운동으로 바꾸는게 어떨까요?[편집]

황건의 난, 황건란이라는 표현은, 일단 지배층 중심적인 시각에서 서술했을때의 표현이지, 우리가 '동학 농민 운동'을 동학란이나, 동학의 난이라고 쓰지 않듯이, 중국의 농민들이 일으킨, 자주적인 농민 운동의 하나로써, 황건 농민 운동이라는 제목을 사용하는것이 어떨까? 하고 생각합니다. --박서희 (토론) 2010년 3월 6일 (토) 22:19 (KST)답변

새로운 용어를 만들자는 건가요? -- ChongDae (토론) 2010년 3월 10일 (수) 00:39 (KST)답변
음? 그렇게 되어버리는건가요? (..) 뭔가 큰 실수를 한 것 같군요. 죄송합니다. --박서희 (토론) 2010년 3월 14일 (일) 00:01 (KST)답변
삼국지를 몇 번 읽어본 저는 어느 정도 압니다. 하지만 저는 제목을 황건농민운동 으로 바꾸는 데에는 반대합니다. 삼국지에도 황건적의 난 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도 바꿀 마음이 있는데, 황건농민운동으로 바꾸지 말고 황건적의 난 으로 바꾸는 것이 어떻습니까? 황건의 난 이라는 이름은 공식 이름이 아닙니다. --양현우 (토론) 2010년 6월 8일 (화) 16:00 (KST)답변

이 당시 유비는 그리 높은사람이 아닙니다.[편집]

전투정보 틀에서 지휘관은 서열순서대로 기록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런데 유비가 그 상급자인 유언보다 윗칸에 있는 것은 납득이 안갑니다.

유비가 높은 사람이 되기 시작한 것은 적벽대전 이후부터이며 그 이전까지는 조조의 부하로서 조조가 추천하여 좌장군을 제수받았고 원소의 부하로 들어가기까지 했습니다. 유비가 원소의 부하로 있던 시절에 관우가 안량을 죽여버리는 바람에 유비가 위태롭기까지 했습니다. 118.36.192.170 (토론) 2010년 3월 27일 (토) 16:36 (KST)답변

하지만 제가 읽은 삼국지에서는 조조의 부하로서 조조가 추천하여 좌장군을 제수받았다는 사실은 아니 나오고 있습니다. 삼국지에 적힌 대로 말씀을 하셔야 합니다. --양현우 (토론) 2010년 6월 8일 (화) 16:03 (KST)답변

언급하신 삼국지가 소설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실제로 좌장군에 제수받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先主復得妻子,從曹公還許。表先主為左將軍。《삼국지(三國志)》촉서(蜀書)2 선주전(先主傳)
선주(先主;유비)는 처자를 되찾고, 조공(曹公;조조)과 함께 허(許)로 돌아왔다. (조조는)표를 올려 선주를 좌장군에 임명하였다. --威光 (토론) 2010년 6월 9일 (수) 11:44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