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LG 트윈스 시즌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1992년 LG 트윈스 시즌LG 트윈스KBO 리그에 참가한 3번째 시즌이며, MBC 청룡 시절까지 합하면 11번째 시즌이다. 이광환 감독이 팀을 이끈 첫 시즌인데 김용수의 부상[1], 김기범의 방위복무[2]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투수력이 붕괴된 것 외에도 김재박의 태평양 이적 - 이광은의 은퇴 등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1루를 제외한 내야진이 부실해져[3] 팀은 8팀 중 정규시즌 7위에 그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한편, 6월 30일에 있었던 태평양과의 윤덕규 - 박준태 트레이드로 인해 이광환 감독이 팬들로부터 원성을 샀는데[4] 윤덕규는 초구부터 스윙하는 타격 습관 때문에 이광환 감독 부임 후 주전 자리를 잃었고 이적 다음 날인 7월 1일 인천 LG전에서 연장 10회말 끝내기 안타를 친 뒤[5] LG 덕아웃을 향해 헬멧을 내동댕이쳐 간접적으로 이광환 감독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한편, 이광환 감독 부임 과정에서 조창수 수석코치가 일본 주니치 연수를 위해 팀을 떠났으며 백인천 전 감독의 추천을 통해 기용된 박현식 2군감독은 팀을 젊게 만든다는 구단방침에 따라 재계약을 포기했고 1990년 12월 4일부터 1년 계약한[6] 미국인 패튼 투수 인스트럭터가 1군 투수코치로 1년 재계약했다. 이 과정에서 당초 1군 투수코치-2군 투수코치를 각각 맡았으나 1991년 8월 6일 보직이 변경된[7] 정순명 2군 투수코치와 하기룡 1군 투수코치가 루키군 투수코치(정순명) 2군 투수코치(하기룡), 유종겸 훈련단 투수코치가 1군 불펜코치로 이동했다. 하지만, 김용수의 부상[8], 김기범의 방위복무[9]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투수력이 붕괴되자 패튼 1군 투수코치가 1992년 7월 6일 2군으로 내려갔으며[10]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에 따른 문책성 해고에 맞춰 정순명 김봉기 양승관 코치와 함께 시즌 후 팀을 떠나야 했다.


선수단[편집]

각주[편집]

  1. 최기영 (1993년 3월 10일). “프로야구 球團(구단)탐방 <1> LG트윈스”. 매일경제. 2021년 6월 18일에 확인함. 
  2. 최기영 (1993년 3월 10일). “프로야구 球團(구단)탐방 <1> LG트윈스”. 매일경제. 2021년 6월 18일에 확인함. 
  3. 김종훈 (1992년 5월 13일). “LG감독 자가진단 內野(내야)구멍·투수빈혈 악몽연속”. 경향신문. 2021년 6월 18일에 확인함. 
  4. “「지는 해」尹德奎(윤덕규)「뜨는 해」朴俊泰(박준태) LG-태평양 맞교환 得失(득실)”. 동아일보. 1992년 7월 2일. 2021년 6월 18일에 확인함. 
  5. “「지는 해」尹德奎(윤덕규)「뜨는 해」朴俊泰(박준태) LG-태평양 맞교환 得失(득실)”. 동아일보. 1992년 7월 2일. 2021년 6월 18일에 확인함. 
  6. “LG 美(미)코치 영입 연봉 12萬(만)불 계약”. 경향신문. 1990년 12월 4일. 2022년 4월 13일에 확인함. 
  7. 문갑식 (1991년 8월 7일). “LG코치진 창단 최대 물갈이”. 조선일보. 2022년 4월 13일에 확인함. 
  8. 최기영 (1993년 3월 10일). “프로야구 球團(구단)탐방 <1> LG트윈스”. 매일경제. 2022년 4월 13일에 확인함. 
  9. 최기영 (1993년 3월 10일). “프로야구 球團(구단)탐방 <1> LG트윈스”. 매일경제. 2022년 4월 13일에 확인함. 
  10. “스포츠短信(단신)”. 경향신문. 1992년 7월 5일. 2022년 4월 13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