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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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李琚) 생년월일미상 ~ 연산군 8년(1502) 임술년 3월 29일. 조선의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자미(子美), 호는 참의(參議)이다. 이공진(李公晉)의 증손으로, 조부는 대제학 이변(李邊), 부는 이효조(이孝祖)이며, 충무공 이순신의 증조부이다.

생애[편집]

생원. 성종(成宗) 11년(1480) 경자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시다. 사헌부장령, 한림[예문관(藝文館) 검열(檢閱)의 별칭], 홍문관 박사, 순천부사, 통정대부 병조참의 등을 역임하시다.

1484년 암행어사로 나가 과천에서 현감 최급(崔伋)을 오리(汚吏)로 잡아 올렸다. 1486년 사간원정언, 1489년 이조정랑, 1491년 장령, 1495년(연산군 1) 보덕을 지냈다. 이 해에 장악원정, 승문원참교·한학교수를 겸하여 춘추관편수관으로 『성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497년 순천부사에 이어 호군이 되었다. 성격이 강직하여 언관으로 있으면서 부정한 관리에 대해서는 관직의 고하를 가리지 않고 탄핵하였다. 묘는 서울 봉천동 탑골 앞 봉례공 묘 아래에 위치하여 표석이 있음. 배위는 숙부인 임피진씨로 부는 현령 진세번이다. 묘는 상하분 성원공. 배위는 임피진씨로 부는 군사 진극충이다. 조부는 삼군진무선판 목사 진여안 증손이다. 외조부는 참판 초계 변효경이다. 초계변씨 족보에 기록되어 있다. 공의 졸년월일은 구 족보에 적지아니하다. 조선왕조실록 연산군 8년(1502) 3월29일 사기에 의거하여 기록하다. 과정은 신유보에 따르다.

가계[편집]

장남 이백복음보로 관직에 올라 1535년(중종 30) 형조좌랑을 거쳐 통훈대부 함종현령에 이르렀고, 차남 이백록생원시에 합격한 후 선교랑 평시서봉사에 이르렀다. 이순신은 둘째 아들 이백록의 손자이다.

평가[편집]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성격이 강직하여 언관으로 있으면서 부정한 관리에 대해서는 관직의 고하를 가리지 않고 탄핵하였다.'고 평가했다. 또한 왕조실록은 '이거는 젊었을 때에는 청직(淸直)하다고 이름이 났으나, 순천부사가 되어서는 자못 청렴하지 못하였다' 고도 한다.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