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토론:威光/보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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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의견: 5년 전 (威光님) - 주제: 석현

문서 이동[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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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 (춘추)단 (춘추)로 이동하였습니다. --관인생략 토론·기여 2013년 3월 28일 (목) 10:33 (KST)답변

감사합니다. 토론 문서를 확인 부탁드립니다. --威光 (토론) 2013년 3월 28일 (목) 18:45 (KST)답변

시황제, 이세황제, 삼세황제 관련의 답변[편집]

이번에 위 세 표제어 중 시황제와 이세황제는 '황'을 뺀 형태로 시제, 이세제, 그리고 삼세황제는 상제로 바꾸셨던데... 이유를 '황'자를 붙이지 않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표기는 처음 보는 형태입니다. 혹시 근거를 알 수 있을까요? 꼭 답변 부탁드립니다. 답변이 없으실 경우, 이전 상태로 복구하겠습니다.--威光 (토론) 2013년 4월 12일 (금) 12:48 (KST)답변

답변) 진시황제의 정식 명칭은 '시제' 입니다. 누가 한 무제를 한 무황제 라고 합니까? 혹시 바꾸셨다면 원래 대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의견을 2013년 4월 13일 (월) 12:01 (KST)에 작성한 사용자는 Kangyg99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威光 님이 추가하였습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토론 문서를 참조해 주세요. --威光 (토론) 2013년 4월 13일 (토) 22:43 (KST)답변

질문이 있습니다[편집]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어병음을 입력하는 방법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 한어병음을 입력하는 방법을 혹시 알고 계십니까?!

만일에 알고 계시다면 친절하게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미국과 중국과 영국과 프랑스와 독일과 러시아와 같은 선진국들에 대해서 관심이 좀 많은 편이라서요. (특히 중국이요!)

만정밀37 (토론) 2013년 4월 20일 (토) 10:55 (KST)답변

죄송합니다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모처럼 찾아오셨는데 -_-;; --威光 (토론) 2013년 4월 21일 (일) 00:49 (KST)답변

이의 제기[편집]

전숙을 '진말의 인물 田叔과 중복.'이라는 까닭으로 삭제 신청하셨던데, 그렇다면 동음이의 문서를 만들거나, 해당 대상의 문서를 만드는 것이 올바른 태도라고 생각되지 않는지요? 무턱대고(?) 삭제 신청을 하는 것은 잘못되었습니다. - Mer du Japon (토론) 2013년 5월 19일 (일) 09:54 (KST)답변

지적 감사합니다. 한서를 편집할 당시 진말의 인물 田叔을 곧 새로 작성할 요량으로 했던 것입니다. 헌데 이미 문서를 작성하셨군요. --威光 (토론) 2013년 5월 19일 (일) 22:01 (KST)답변

관우가 쌀을 훔쳐먹은건 명백히 정사에 나와있는 내용입니다.[편집]

자기 마음에 안든다고 무조건 사견이라 박박 우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사 오서 여몽전에는 이런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여몽전] 위나라는 우금을 시켜 번성을 구하도록 했지만(219년 7월), 관우가 우금 등 인마 수만 명을 모조리 포로로 잡았는데, 이로 인해 식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손권의 영지인) 상관(湘關)의 쌀을 마음대로 탈취하였다. 손권은 이 소식을 듣고 즉시 행동을 시작하여 먼저 여몽을 보내 앞에 가도록 했다.

118.36.192.59 (토론) 2013년 6월 16일 (일) 21:46 (KST)답변

문서를 편집할 때, 일괄적으로 특정 시점의 편집본으로 되돌리면서 일어난 일 같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점 사과드립니다. 다만, 말씀을 좀 상냥히 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여담입니다만, 관우 문서의 이력을 보니 쌀 관련 부분 이외 모든 내용을 다시 복구하셨던데... 이 부분에 대하여 말씀 부탁드립니다. 분명히 118.36.192.59님께서는 쌀 관련해서만 말씀하셨습니다. --威光 (토론) 2013년 6월 16일 (일) 22:57 (KST)답변

책 제목 외국 문자 병기 문제와 문서 내부 연결시 한자 병기 문제[편집]

안녕하십니까, 위광님. 두예 문서에 기여하신 것을 보고 알려드릴 것이 있어서요. 책 제목의 외국 문자를 병기할 때는 꺾쇠표 바깥에 하더군요. 위키백과:편집 지침 중 “5.2.3 작품 제목 표시에 쓰이는 부호”항목을 참고하세요. 그리고, 중요 표제어를 위백 내부로 연결할 때는 굳이 한자어 병기를 하지 않더군요. 관련 토론을 읽어 보셔요.--Eggmoon (토론) 2013년 8월 15일 (목) 01:53 (KST)답변

앗, 지침이 있었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준수하도록 하겠습니다. --威光 (토론) 2013년 8월 15일 (목) 02:48 (KST)답변

다른 언어판 위키백과 항목 연결[편집]

새로 만드신 심이기 항목을 보니 위키백과:인터위키 항목에서 말하는 지역 링크(이 항목의 1장 2절)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현재에는 위키데이터를 쓰는 방법(이 항목의 1장 1절)이 널리 쓰이고 있으니, 알아두시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Synparaorthodox (토론) 2013년 10월 14일 (월) 12:58 (KST)답변

오오, 그렇군요 -_-;; 앞으로 유용히 써먹어야겠습니다. --威光 (토론) 2013년 10월 16일 (수) 20:53 (KST)답변

주(州)와 군(郡) 항목[편집]

威光님께서 연주, 예주, 기주 등 각 주에 하위 군현의 목록을 두시는 것을 보았습니다만, 속현의 목록은 주 문서에 두지 아니하고, 따로 군 항목을 두어 거기로 빼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예를 들면, 현재는 형주 항목에 남양군과 그 속현 목록이 주르륵 나와 있는데, 이걸 항목에서는 남양군만 남기고, 따로 남양군 항목을 만들고 그 남양군 항목에 남양군의 현 목록 - 완, 찬, 신야 등등등... - 을 두는 대로입니다. 이렇게 해서 주 항목이 지나치게 번잡하게 되는 것을 완화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의견을 2013년 10월 30일 (수) 11:06 (KST)에 작성한 사용자는 Synparaorthodox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威光 님이 추가하였습니다.

음...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해당 군이 현재의 어느 곳으로 비정되는지를 기록하고자 할 때에는 더없이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다만 그렇게 할 경우, 항목을 개설할 군의 수도 상당히 많고 또한 왕조별로 군의 이름, 혹은 속현이 다를 것에 대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威光 (토론) 2013년 10월 30일 (수) 20:21 (KST)답변

동명이인 가르기[편집]

진 영공은 晉靈公, 陳靈公, 秦靈公이 있으며, 진 회공은 晉懷公과 秦懷公이 있습니다. 이들을 제가 예전에 이름으로 나누지 않고 (희성 후작, 기원전 xxx년)과 같은 식으로 까닭은 秦靈公과 秦懷公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진(秦)나라 임금의 이름은 유난히 누락된 게 많은데, 모두 전해진다면 진작에 이름으로 나눴을 겁니다. 지금 진 회공진 영공은 모두 진백에게 돌아갔는데, 저는 동음이의어 항목이어야 한다고 여깁니다.--Synparaorthodox (토론) 2013년 12월 16일 (월) 19:51 (KST)답변

저의 의도는, 영공과 회공 모두 유독 秦만 휘가 전해지지 않으므로 식별자가 없는 문서는 秦으로, 晉과 陳은 휘를 식별자로 덧붙임으로써 각기 독립 생성이 가능하게끔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희성 후작' '춘추, 晉' 등보다는 그나마 간결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진 회공 등의 경우에는 대신 문서 첫머리에 다른 뜻 틀을 이용해서 陳과 晉의 회공을 언급하는 식으로요. 이건 어떠신가요? --威光 (토론) 2013년 12월 18일 (수) 01:01 (KST)답변
그렇다면 진 영공을 검색하는 사람은 무조건 우선 秦靈公을 보게 됩니다. 진 영공이 秦靈公으로 월등히 많이 쓰이지 않기 때문에, 이는 위키백과:동음이의어 문서 지침에 어긋납니다. 진 영공으로 검색해서 秦靈公으로 우선 연결되게 한다면, 보는 사람들이 '아, 진 영공이라고만 하면 보통 秦靈公을 말하는구나'라고 생각하도록 유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Synparaorthodox (토론) 2013년 12월 18일 (수) 19:25 (KST)답변
알겠습니다. 다만 식별자를 정하는 법은 총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가장 확실한 건 아예 국호에 해당하는 한자를 하나 박아넣으면 좋을 텐데(예를 들어 (秦), (晉) 등), 식별자에 한자가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다고(?) 들었을 뿐더러 사실 문서에 대한 접근성도 떨어지는지라... --威光 (토론) 2013년 12월 19일 (목) 18:35 (KST)답변

분류를 달아주세요.[편집]

조 효백 등의 문서를 만드실 때, 적당한 분류를 달아주셨으면 합니다. 적당한 분류가 없으시면 만들어서 붙이셔도 됩니다. -- 흑메기Sjsws1078 (토론·기여) 2014년 1월 2일 (목) 23:43 (KST)답변

매번 까먹는군요 ㅎㅎ;; 조언 감사드립니다. --威光 (토론) 2014년 1월 3일 (금) 20:09 (KST)답변

송공 계 (3대)[편집]

반갑습니다, 威光님!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편집에 참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위키백과의 문서를 옮길 때는 문서 위의 이동 버튼(그림에서 7번)을 이용하셔서 문서를 이동해 주세요. 복사/붙여넣기로 문서 내용을 옮기시면 그 문서의 편집 역사가 끊기게 됩니다. 만약 이동하려는 문서 제목이 이미 존재하거나, 권한이 없어 이동을 하지 못할 경우에는 문서 이동 요청에 요청해주세요. 위키백과를 편집할 때 궁금한 점이 있다면 길라잡이사용법을 참고하시거나, 질문방을 통해 얼마든지 다른 사용자에게 질문해 주세요. --ted (토론) 2014년 1월 5일 (일) 22:44 (KST)답변

그림으로 입력한 한자 관련[편집]

지원하는 폰트가 많지 않다고 해서 유니코드에 등재된 문자를 저해상도 비트맵 이미지로 대체하는 게 바람직한지는 개인적으로 의문이지만 각설하고, 사용하실 경우 이미지에 대체 텍스트를 추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 합니다. 흔치는 않지만 이미지를 사용 불가능한 환경에서의 열람도 가능하고, 브라우저에 따라서는 복사-붙여넣기할 때에 대체 텍스트가 복사되어 조금은 쉽게 활용할 수 있기도 합니다. - IRTC1015 (talk) 2014년 1월 18일 (토) 18:59 (KST)답변

앗, 이런 기능도 있군요. 감사합니다. 앞으로 유용히 쓰겠습니다. --威光 (토론) 2014년 1월 18일 (토) 23:27 (KST)답변

분류해 주세요[편집]

요즘 항목을 만드실 때 분류를 전혀 하지 않으시는 일이 잦아 뵙니다.--Synparaorthodox (토론) 2014년 2월 10일 (월) 10:28 (KST)답변

아이고, 또 까먹었네요. 요즘따라 왜 이러는지-_-;;... 정말 죄송합니다 ㅎㅎ;; --威光 (토론) 2014년 2월 10일 (월) 17:26 (KST)답변

주보언 문서[편집]

영어판에는 기원전 127 또는 126, 중국어 판은 기원전 126년 사망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연도가 확실치 않다면 두 개 다 기술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Namoroka (토론) 2014년 5월 5일 (월) 15:52 (KST)답변

영어판이 수정을 가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이런 부분은 영어판이 부정확한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주보언의 사망 시기는 원삭 2년(기원전 127)으로, 《자치통감》 권18에 주보언의 죽음에 관한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혹시 이 부분에 대한 학자들의 주석 등이 있다면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威光 (토론) 2014년 5월 5일 (월) 15:57 (KST)답변
그렇군요. 저도 다른 언어판에 출처가 전혀 없어서 좀 미심쩍었습니다. 영어판 문서는 바이두백과를 출처로 써놓았고요. --Namoroka (토론) 2014년 5월 5일 (월) 16:07 (KST)답변
바이두백과는 개인적으로 묘하게 생각합니다. 도움 되는 부분도 있거니와, 실소를 금치 못하는 부분도 있어서요... ㅎㅎ;; 관심 감사드립니다. --威光 (토론) 2014년 5월 5일 (월) 16:09 (KST)답변

진기[편집]

해당 문서들 사이에 문서 역사가 꼬였습니다. 문서를 복사 붙여넣기로 옮기시면 기존에 누가 어떤 구문을 넣었는지 알 수 없게 됩니다. 문서가 있어서 이동이 안될 경우에는 위키백과:문서 이동 요청을 통해서 관리자에게 권한 사용을 요청해주세요. --이강철 (토론) 2014년 8월 6일 (수) 23:28 (KST)답변

뿐만 아니라 복사 붙여넣기로 이동하게 될 경우 외국어 위키백과에 같은 인물이나 내용에 대한 서술이 있을 경우 연결고리가 끊어지게 됩니다. 현재 해당 문제에 대해 해결을 진행중입니다. --이강철 (토론) 2014년 8월 6일 (수) 23:29 (KST)답변

말씀 감사드립니다... 헌데 제가 또 사고를 쳤네요. 진식 문서도 동음이의로 처리하는데, 이런 식으로 해버렸습니다. 송구할 따름입니다... -_-;; 이대로 진행해도 괜찮을까요? --威光 (토론) 2014년 8월 6일 (수) 23:29 (KST)답변
이제라도 아셨으니 다행이시죠. 지금 바로 해당 문제에 대해 수정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위키백과에 처음 오신 분이라면, 능히 그럴 수 있으니, 제가 복구 작업을 진행하겠습니다. --이강철 (토론) 2014년 8월 6일 (수) 23:32 (KST)답변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알려주신 방법을 사용토록 하겠습니다. (--)(__) --威光 (토론) 2014년 8월 6일 (수) 23:33 (KST)답변
그런데 진기 문서는 진기(원술)로 이동해도 되지 않나요? 이 부분을 선행해서 확인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강철 (토론) 2014년 8월 6일 (수) 23:35 (KST)답변
음... 식별자의 우선순위를 이렇게 두고 있었습니다.
1. 소속 국가
2. (특히, 제후왕 등의 경우) 작위
3. 별호(자, 호 등)
4. 관직
'원술' 처럼 일개 세력으로 식별자를 정하는 것은, 여타 소속을 바꾼 인물이라던가... 이런 경우에 대비해 일관성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생각해, 가급적 피해 왔습니다. 물론 두 陳紀 모두 후한 시대 인물인 건 동일하지만, 진기 (원방)이 3순위의 식별자를 씀으로써 (별호 기록이 없는) 진기 (후한)에게 1순위 식별자를 양보하는 식으로 하면 어떨까 했었거든요. --威光 (토론) 2014년 8월 6일 (수) 23:39 (KST)답변
가급적이면, 동명이인의 경우 해당 사람들을 구분할만한 대등한 기준이 있으면 좋겠죠. 고향에 따른 구분은 어떻습니까? 삼국지연의의 진기야 가공의 인물이니 그대로 두어야 된다고 보고요. 한 명은 양주 사람, 예주 사람이니, 이것은 동등하면서도 명확한 구분이 가능합니다. 생년이 달랐다면, 제일 좋았겠지만, 차선책으로 의견 내봅니다. --이강철 (토론) 2014년 8월 6일 (수) 23:50 (KST)답변
의견 감사합니다. 사실 이건 일종의 총의가 있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_-;; 비단 삼국지라던가 중국사가 아닌, 역사 관련 모든 문서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威光 (토론) 2014년 8월 7일 (목) 00:42 (KST)답변

진식 문서는 예전에 복구가 끝났고, 일단 임시로 진기, 진기 (양주), 진기 (원방) 진기 (삼국지연의)와 같이 조치하였습니다. 일단 동명이인 토론에서 관련 의견을 개진하시긴 했는데, 저 논의는 현대의 인물까지 범용적으로 하는 논의라 威光님의 의견에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점 알려드리겠습니다. --이강철 (토론) 2014년 8월 7일 (목) 00:54 (KST)답변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_^ --威光 (토론) 2014년 8월 7일 (목) 00:56 (KST)답변
좋은 밤 되십시오 :) --이강철 (토론) 2014년 8월 7일 (목) 00:59 (KST)답변

임치군, 제국, 제군[편집]

행정구역 제군(齊郡)이 성립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 진나라에서 제나라를 멸하고 옛 서울 임치를 중심으로 임치군(臨淄郡)을 세웁니다.
  • 진나라 말기에 제나라에는 전담 일족이 주도해 나라를 세웠다가 한나라의 장수 한신에게 뺏기고, 한신은 임시 제왕을 일컫습니다.
  • 한나라는 임시를 떼고 한신을 제왕으로 삼았다가 나중에 나라를 뺏고, 얼마 지나서 고조의 아들 제도혜왕 유비에게 왕위를 줍니다. 이때 도혜왕의 봉국 제나라는 임치군·박양군·교동군·교서군·제북군·낭야군·성양군 7군을 통치했습니다. 임치군에는 제나라의 서울이 있으므로 태수가 관할하는 다른 군과는 달리 제나라의 내사가 관할했습니다.
  • 도혜왕의 손자며 3대 제왕인 문왕이 아들 없이 죽자 한나라는 제나라를 폐합니다.
  • 얼마 지나서 문제는 옛 제나라의 관할 구역을 다시 왕국으로 만들었는데, 옛 임치군 일대만이 제나라가 됐고 교동군은 교동나라, 교서군은 교서나라, 제북군은 제북나라, 제남군(박양군)은 제남나라, 성양군은 성양나라가 됐으며 임치군의 일부를 갈라 치천나라를 만들었습니다. 낭야군은 한 조정의 관할 하에 남았습니다.
  • 이미 제나라의 관할 구역은 1군 정도로 축소됐지만, 이후 오초칠국의 난을 거치면서 한 조정은 제후국의 권한과 영역을 줄였고, 그 결과 이전까지는 여러 군을 통치하던 제후국의 규모가 1군 정도로 축소됩니다. 이제 국과 군의 차이는 명목에 불과한 것이 됐고 국도 실질적으로는 군의 기능을 하게 됐습니다. 군국제에서 원래는 행정구역의 의미가 아니던 제후국은 이제는 군급의 행정구역으로 전락했습니다.
  • 이후 제여왕이 범죄로 자결하면서 제나라는 폐지됐고, 그 자리에는 임치군이 아니라 제군(齊郡)이 들어섭니다.

이상의 변천 과정을 살펴보았을 때, 威光님은 임치군, 제 (전한), 제군 항목을 어떻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게 몇 가지 방안이 있습니다.

  1. 임치군, 제 (전한), 제군 항목을 다 따로 만든다.
  2. 제군 항목에 임치군과 제 (전한)의 내용을 모두 서술한다. (현재 중국어 위키백과 齊郡 항목의 체제)
  3. 행정 구역인 임치군과 제군은 하나의 항목으로 만들고 행정 구역의 의미가 아닌 제 (전한)은 다른 항목으로 만든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나 후한 이후의 제후국 제나라는 제 (전한)이 아니라 제군 항목에서 설명해야 할 것입니다.

이상의 논의는 제군뿐만 아니라 조군, 초군, 광양군 등의 진의 군이었고 전한 제후국의 내사 지역이 된 군들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Synparaorthodox (토론) 2014년 9월 29일 (월) 11:25 (KST)답변

임치 · 제 (전한) · 제군 항목을 모두 따로 만든 후, 이 문서들을 통합해서 설명할 문서를 별도로 만드는 게 어떨까 합니다. 임치제 (전한)은 보시다시피 제군의 전체 연혁이 아닌 특정 시기의 연혁만을 필요로 하는 문서일텐데... 워낙 내용 자체가 방대할 터이니, 한 문서에 제군 전체의 연혁을 모두 담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제군 문서(혹은 다른 문서)를 제군의 (왕조를 구분하지 않는) 전체 연혁을 다루는 문서로 하고, 거기에 왕조별로 소제목을 나눈 후 {{본문}}이나 {{참고}}틀을 활용해 해당 문서(앞서 말한 '임치'나 '제 (전한)' 등)를 가져다 쓰는 형식으로 하면 어떨까요? 이렇게 하면 혹여 특정 왕조에서의 제군 관련 정보를 보완해야 할 때도 그렇게 어렵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통합 문서' 말미에는 참고 문서 단락을 만들어 시기별 문서(임치, 제 (전한) 등)를 기록해 두고요. 어떠신가요? --威光 (토론) 2014년 9월 29일 (월) 17:51 (KST)답변

파일[편집]

파일이 퍼블릭 도메인일 경우, 되도록 {{PD}}보다는 {{PD-self}}를 이용하여 주세요. 명확한 저작권 포기 선언이 가능합니다. — by revi^ at 2014년 10월 4일 (토) 21:22 (KST)답변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이용하도록 하겠습니다. --威光 (토론) 2014년 10월 4일 (토) 21:43 (KST)답변
로그인이 풀려있었네요... ㄷㄷ;; 위의 IP는 접니다. --威光 (토론) 2014년 10월 4일 (토) 21:46 (KST)답변
IP 주소는 숨겨드리겠습니다. — by revi^ at 2014년 10월 4일 (토) 22:06 (KST)답변

토론 문서[편집]

타인의 토론 문서 내용은 함부로 삭제하시면 안됩니다. 정 없애고 싶으시면 해당 토론 문서의 주인에게 부탁하시거나 취소선 기능을 이용해주세요. --양념파닭 (프로필 | 토론 | 기여) 2014년 10월 25일 (토) 20:56 (KST)답변

잘못남겼습니다. 죄송합니다. --양념파닭 (프로필 | 토론 | 기여) 2014년 10월 25일 (토) 20:59 (KST)답변

정황을 확인했습니다. 戚光이란 분은 혹시 제가 생각하는... 그런 분이신 걸까요? 당황스럽네요 ㅎㅎ;;...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威光 (토론) 2014년 10월 25일 (토) 22:44 (KST)답변
누군진 모르겠지만 잘 해결 보시기 바랍니다. --양념파닭 (프로필 | 토론 | 기여) 2014년 10월 25일 (토) 22:45 (KST)답변

조온 (후한) 문서[편집]

안녕하세요. 해당 문서에서 다른 사용자와 이견이 있으셨던 것 같아, 글을 남깁니다. 토론:조온 (후한) 문서에 의견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강철 (토론) 2014년 11월 20일 (목) 17:52 (KST)답변

해당 문서에 답변을 올렸습니다. 번거롭게 해드려 송구합니다 -_-;;.. --威光 (토론) 2014년 11월 20일 (목) 20:01 (KST)답변

문서 편집하실때[편집]

그냥 생애를 다루는 문단이면 생애라고 정확하게 써주십시오. 사적이라는 낯설고 이상한 단어를 써서 혼란을 초래하느니 그냥 여기서 잘 쓰이는대로 생애라고 쓰는게 보기 쉽고 간결합니다. -- S.H.Yoon · 기여 · F.A. 2015년 3월 8일 (일) 12:35 (KST)답변

그러죠. --威光 (토론) 2015년 3월 8일 (일) 18:33 (KST)답변
제 위의 의견 제대로 안 들으셨나 보군요. 대답하신 전이나 후나 다른게 없어보입니다. -- S.H.Yoon · 기여 · F.A. 2015년 3월 13일 (금) 11:11 (KST)답변
해당 문서들은 생애라고 하기엔 너무 간단해 보여서요. 저게는 이젠 그냥 전부 '생애'로 바꿔버리라고 하시는 것으로밖에는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기준이 다르겠지요. --威光 (토론) 2015년 3월 13일 (금) 11:44 (KST)답변

곡부 공씨.png 파일에 대해[편집]

손보신 그림파일과 아래 문서의 세계도와 다른 부분이 많습니다. 그림에서 누락된 부분도 여기 다 있더군요.


https://zh.wikipedia.org/wiki/%E5%AD%94%E5%AD%90%E4%B8%96%E5%AE%B6%E6%80%BB%E4%B8%96%E7%B3%BB%E5%9B%BE_(%E4%B8%AD%E5%85%B4%E7%A5%96%E5%89%8D) (세계도에서 첫째 아들을 왼쪽 아래에 두었습니다)

여기 있는 세계도를 참고하시어, 곡부 공씨.png 파일이 수정되기를 바랍니다. 多勿 (토론) 2015년 8월 6일 (목) 00:37 (KST)답변

해당 가계도는 신빙성에 큰 문제가 있는 《신당서》나 위서로 판명된 《공자가어》를 인용한 부분이 상당해서... 개인적으로는 조금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특히나 《신당서》의 경우 독보적으로(?) 자세한데, 여남 원씨나 관씨의 세계 등을 보건대 완전히 날림으로 작성된 것이 분명한지라 개인적으로는 전혀 믿질 않고 있습니다 -_-;;;... 금석문 등으로 존재가 확인된 공표(孔彪)라던가, 공융의 자식 및 형제들이 수록되지 않은 점은 참... --威光 (토론会話기여) 2015년 8월 6일 (목) 04:33 (KST)답변

맛스타[편집]

오리지널 반스타
나는 술을 먹어서 평소 동양사 부분에 기여가 출중하신 님께 이 반스타를 드립니다. 삼국지 문서들을 만지고 있으면 과장 약간 해서 어디 하나 손길이 안 간 문서가 없더군요.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8월 28일 (금) 02:16 (KST)답변
맛스타는 사과맛이 최곱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威光 (토론会話기여) 2015년 8월 28일 (금) 17:43 (KST)답변

안녕하세요[편집]

안녕하세요. 얼마 전 삼국지 프로젝트의 토론들을 확인해보다가 분류명 관련 토론이 있어 의견을 추가했는데 이에 대해 검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BIGRULE (토론) 2015년 9월 4일 (금) 19:00 (KST)답변

삭제 신청 취소와 관련해서[편집]

안녕하세요. 편집 요약에 토론 후 결정할 사안이라고 써 놓으셨던데, 무슨 뜻이신지 정확히 듣고 싶습니다. --Ysjbserver (토론) 2015년 9월 28일 (월) 18:51 (KST)답변

아 죄송합니다. 이 토론이 있는지 몰랐네요. --Ysjbserver (토론) 2015년 9월 28일 (월) 18:52 (KST)답변

안녕하세요[편집]

안녕하세요. 한스게오르크 가다머 문서 관련해서 독일어 표기법으로 한스게오르크 가다머가 올바른 용례인지라 수정했으니 참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BIGRULE (토론) 2015년 10월 22일 (목) 04:43 (KST)답변

이와는 별개로 해당 문서의 역사를 확인해보니 번역투 단어 및 문장이 상당히 많았는데 수정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BIGRULE (토론) 2015년 10월 22일 (목) 05:09 (KST)답변
도움 감사드립니다. 특히나 알려주신 URL이 상당히 유용해 보이는군요. 덕분에 앞으로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ㅎㅎ --威光 (토론会話기여) 2015년 10월 22일 (목) 23:05 (KST)답변

한자 병기[편집]

항상 수고하십니다. 그런데 내부 링크가 있는 것들은 한자 병기를 할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가독성을 해치는 것 같습니다. 숫자만 봐도 토가 나오는 것처럼(?) 한자만 봐도 토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한자와 각주는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역사 문서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인명, 지명, 관직들의 문서를 만들어서 링크를 걸고 한자를 지우는 것입니다." 하고 대답할 것입니다.;; & 유표 (후한) 문서를 전체적으로 손보고 있습니다. 그중 《채중랑집》은 저자가 옛날에 죽었고 원본은 일실되어 여러 종류의 편집본만이 남아있는데 그 책들마다 순서가 다르고;; 글자가 달라서;; (어차피 소제목이 있으니) 권수는 생략하고 내용도 어느 정도 고칠려고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6년 1월 30일 (토) 09:39 (KST)답변

이 경우에는 사례를 조금 더 연구해보는 것이 필요해보입니다. 예를 들어 우금 같은 경우 비슷한 시기에 두 명의 인물이 활동하고 있어 이러한 경우에는 한자를 병기해주는 편이 오히려 혼동의 여지를 줄일 수 있지 않나 합니다. --BIGRULE (토론) 2016년 1월 30일 (토) 18:26 (KST)답변
그 경우는 예외요. 다른 예로 양주 같은 것만 해도 서량이랑 강동이랑 동음이의어라 한자를 병기해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다만 혼동을 피하기 위한 한자 병기는 더 고려해볼 것이... 어차피 대부분의 일반인은 한자를 보고는 구분하지 못합니다;; 결국은 내부 링크를 클릭해야 압니다;; 한자를 통해 동음이인을 구분할 정도의 소양이 있는 독자는 이미 어느 정도 배경지식이 있어서 굳이 한자를 병기하지 않아도 구분합니다;;;; 또한 인지도에 따른 구분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위나라의 승리를 위해 관우의 쌀을 먹어서 응원한 우금은 걍 냅두고 인지도가 많이 딸리는 잡장 우금만 한자를 병기해주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조순 같은 경우는 인지도나 활동 시기나 모두 차이가 있으니 한자 병기를 안해주어도 될 것 같습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6년 1월 30일 (토) 19:45 (KST)답변
예. 일단술먹고합시다님의 의견도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일단은 문맥에 따라 한자 병기 여부를 각 편집자들의 재량에 맡기고, 만약 편집자간에 이견이 생기면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토론을 통해 해결하는 방식이 가장 나을 것 같습니다. --BIGRULE (토론) 2016년 1월 31일 (일) 00:14 (KST)답변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때문에 요즘은 한자 병기를 점점 줄여나가는 중입니다. 예외로 언급하신 우금이나 양주의 경우도, 어차피 문서가 연결된다면 그걸로 충분하기 때문에 한 문서 내에서 于禁과 牛金을 동시에 언급하지 않는 이상 굳이 한자를 병기할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합니다. --威光 (토론会話기여) 2016년 2월 2일 (화) 20:59 (KST)답변

병기에 관해서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하자고 하면 아직 준비는 덜 됐고, 저도 한자를 최대한 안 쓰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진(晉)나라와 진(秦)나라는 한자 병기만으로 구분이 충분한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한자를 아예 모르는 사람이라도 괄호 뒤에 뭔가 서로 다른 게 있는 것만으로 저 두 진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한자를 너무 안 쓰려다가 진 영공 (이고) 난에서는 '진나라는 진나라의 무성을 취해 작년의 영호 싸움을 보복했고, 진영공 4년(기원전 617년) 진나라는 진나라의 소량을 취했으며'라는 보기만 해도 헷갈리는 이상한 문장이 남발되고 있는데 저걸 한자 병기로 해결할까 말까 하고 있습니다.--Synparaorthodox (토론) 2016년 2월 3일 (수) 11:21 (KST)답변
‘진나라는 진나라의...’ 이거 '가가 가가?'같은 건가요ㅋㅋㅋㅋㅋㅋㅋㅋ 이렇게 동일 문서 내에서 동음이의어가 반복될 때는 한자 병기를 해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6년 2월 6일 (토) 09:19 (KST)답변

동명이인 문서의 대표 처리[편집]

백:동음이의엔 월등히 마니 쓰이는 사례가 있다면 그걸 대표로 선정한다고 하였는데 현재 삼국지 관련 인물 문서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프토:삼국지#동명이인 문서의 대표 처리에 새로운 토론 발제를 하였으니 건실한 의견을 바랍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6년 2월 11일 (목) 23:49 (KST)답변

酇과 䣜[편집]

남양군에도 酇현이 있고 패군에도 酇현이 있는데, 패군의 酇현은 《설문해자》에서는 䣜현으로 씁니다. 그래서 패군의 酇현은 찬현이 아니라 차현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신나라에서 패군의 酇현을 찬치(贊治)현으로 바꾼 것을 보니 혹시 왕망이 헷갈려서 패군의 차현을 찬현인 줄 잘못 알았고 그 후에는 다들 찬현이라고 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좀 더 찾아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소하의 봉국은 패군의 酇이 아니라 남양군의 酇이라는 주장을 찾았습니다. 이게 맞는지 아직 확증은 없지만 일단 威光님께도 보이고자 합니다.[1]--Synparaorthodox (토론) 2016년 4월 6일 (수) 02:56 (KST)답변

감사합니다. 다만, 소하의 봉지가 남양 쪽인지, 패군 쪽인지가 정말 문제긴 하군요. 처음에 '차'라고 제가 고쳤던 것도 나름 음주를 봐서 그런 것이었는데,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안 나서 되돌렸습니다... -_-;; 참 복잡미묘하군요. --威光 (토론会話기여) 2016년 4월 6일 (수) 02:59 (KST)답변

연도 표기[편집]

한나라 시기의 연도를 표기하실 때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중3년([[기원전 147년|기원전 147]])

위와 같이 굳이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괄호 앞에 이미 “중3”이라고 “년”자를 썼기 때문에 괄호 안에도 그냥 “년”을 붙여서 쓰시면 됩니다.

  • 중3([[기원전 147년|기원전 147]])
  • 중3([[기원전 147년|기원전 147]])년

위 두 경우에는 괄호 안에 “년”을 쓰지 않습니다.

일부러 표기를 복잡하게 하시기에 글 남겨 봅니다. --Knight2000 (토론) 2016년 4월 10일 (일) 19:39 (KST)답변

음, 저는 반대로 생각했습니다. 앞에 이 붙어있으니, 괄호 안에 '년'을 붙이는 것은 군더더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귀찮음을 무릅쓰고... 계속 그렇게 해왔었습니다. 모처럼 말씀도 해주셨으니, 앞으로는 편하게-_-;; 하겠습니다.
여담입니다만, 겹낫표(『』)는 현행 한국어 가로쓰기 규정에서 허용된 표기입니다(꺾괄호와 동일하게 쓰임). 문서를 수정하실 때마다 고쳐주시기에 말씀 드립니다. --威光 (토론会話기여) 2016년 4월 10일 (일) 20:04 (KST)답변
겹낫표는 한국어 위키백과에서 서적을 인용할 때 쓰이기에 고치고 있었습니다. 또한 온라인가나다 - 낫표와 겹낫표의 쓰임 질문과 답변에서 겹낫표와 낫표는 세로쓰기에 쓰인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Knight2000 (토론) 2016년 4월 11일 (월) 23:30 (KST)답변
해당 규정은 14년 말에 제정되어, 지난해부터 적용되고 있습니다. (문체부 한글맞춤법 일부개정안) 한국어 위키백과에서 인용할 때 쓰인다고 말씀하신 건 겹낫표인가요, 겹화살괄호(이 명칭도 같은 개정안에서 제정이 됐네요-_-;;)인가요? --威光 (토론会話기여) 2016년 4월 13일 (수) 00:09 (KST)답변
아, 제가 모르던 사실이군요. 고맙습니다. --Knight2000 (토론) 2016년 4월 16일 (토) 23:37 (KST)답변
위키백과:편집 지침#작품 제목 표시에 쓰이는 부호 부분에 화살괄호를 사용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Knight2000 (토론) 2016년 4월 16일 (토) 23:43 (KST)답변
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리스트형 항목에서 겹화살괄호를 적용하지 않는다'라는 구절의 뜻이 조금 의아하네요. 출전 단락에서도 적용이 가능한 걸까요? 겹낫표를 쓰겠다는 뜻이 아니라, 어쩌면 그냥 아예 괄호 없이 적어도 되려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_-;;--威光 (토론会話기여) 2016년 4월 17일 (일) 21:13 (KST)답변

알찬 글 후보 및 좋은 글 후보 토론에 참여해주세요![편집]

위키백과:알찬 글 후보위키백과:좋은 글 후보에 많은 글들이 사용자들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참여 부탁드립니다. Nt 2016년 4월 11일 (월) 22:37 (KST)답변

(현)令은 縣令으로 하는 것이 독자들의 이해가 쉽지 않는지요[편집]

유훈에서 사마지의 직책을 현령에서 령으로 바꾼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냥 광평령이라고 하면 아는 사람만 알 것 같은데요...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6년 4월 14일 (목) 04:19 (KST)답변

실제 사료에서의 표기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직책 이름은 현령 · 현장이지만, 실제 지명에 붙을 때는 ~령 · ~장으로 쓰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문서 연결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相)을 일부러 사수상이라고 하거나, 군수(郡守)를 위남수라고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일종의 절충으로, '광평현의 현령' '광평 땅의 현령' 등으로 풀어쓸 순 있다고 생각합니다. --威光 (토론会話기여) 2016년 4월 14일 (목) 04:41 (KST)답변
음... 그러니까... 그 령이 현령이잖아요. 해당 령이 그 문장에서 다른 의미로 쓰인다면 모르겠습니다만 그냥 령보다는 현령이라고 바로 알려주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예전의 사서에서도 태수를 군수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다만 태수가 워낙에 흔히 쓰는 말이라서 군수가 밀리는 거죠. '상' 내지 '국상'은 관련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다른 해야할 편집이 많네요. ‘광평현의 현령’이란 말씀은 왜 꺼내셨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뭐하러 그렇게 길게 풀어씁니까? 광평현령이라고 바로 간단하게 표현하면 안됩니까? 어쨌든 이전부터 말씀드린 바와 같습니다. ‘틀린 것이 아니라면 보다 쉬운 말을 쓰자.’ 광평령과 광평현령은 같은 말이고 광평현령이란 용어가 틀린 것이 아니므로 보다 대중이 알기 쉬운 광편현령이라 하겠습니다. 이는 유훈뿐만이 아니라 다른 인물들도 그래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각주의 최소화, 한자 병기의 최소화, 쉬운 말의 사용을 추진하는 것은 (트롤을 포함한) 신규 유저의 조회 내지 유입에도 더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트롤은 제가 상대하도록 하겠으니 님께선 지금까지 해오셨던 것처럼 내용을 튼실하게 보강해주셨으면 합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6년 4월 14일 (목) 05:05 (KST)답변
이런 말씀 드려서 유감스럽습니다만... 저는 해당 표현을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현령 · 현장을 -령 · -장으로 표기한 것은 비단 사서 뿐만이 아니라, 금석문 등에서도 확인되고 있습니다. 현대의 우리가 어떠한 이유로 말을 바꾸어 쓰던, 정식 명칭은 -령 · -장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광평현령'은 조금 과장되게는, 안양시장을 '안양시시장'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님의 의도는 충분히 공감합니다만, 경우에 따라서는 원칙을 지켜야 할 때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威光 (토론会話기여) 2016년 4월 15일 (금) 23:24 (KST)답변
참, 논의와는 무관합니다만... 군수와 태수의 관계는 사용 빈도가 아닌, 시대별 명칭의 차이입니다. 군수는 태수의 옛 명칭으로, 진나라 ~ 전한 초기까지는 군수라고 하였고 지명에 붙을 때는 ~군수가 아닌 ~라고 붙었습니다. --威光 (토론会話기여) 2016년 4월 15일 (금) 23:26 (KST)답변
조선에서는 현령을 '현명'+'현령'으로 부르고 중국에서는 현령을 '현명'+'령'으로 부르는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 이게 맞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을까요?--Synparaorthodox (토론) 2016년 4월 14일 (목) 10:40 (KST)답변
현령과 완전히 부합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현감의 예를 볼 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_-;; 만약 차이가 있음이 확인된다면, 중국에서의 표기와 조선에서의 표기를 확실히 구분해야 할 것입니다. --威光 (토론会話기여) 2016년 4월 15일 (금) 23:24 (KST)답변
안양장은 감히 말쓰드리건대 그래서 더더욱 해당 장이 무엇인지 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안양장이라고 한다면 안양이 시인지, 도인지, 군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안양장이 아니라 안양시장이라고 표현을 해주어야할 것 같습니다... (물론 장은 장, 령은 령이라고 표현한 사례가 많긴 합니다만) 또 현령처럼 군수 역시 지명+군수로 쓰는 사례도 꽤 있습니다. '郡守'를 검색해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땡땡군+수라고 이해하신다면... 그것도 그럴 수는 있습니다만 어쨌든 일반 독자들이 알기 어려운 그저 령, 장으로 쓰기 보다는 현은 현이라고 써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만약 김문수를 전임 경기지사라고 하면 경기는 시입니까? 군입니까? 리입니까? 아니면 도입니까? 관심이 없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 '나 도지사인데'라고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6년 4월 21일 (목) 04:02 (KST)답변
저는 안양시장을 안양장이라고 하자고 말씀드린 적은 없습니다(다시 확인 부탁드립니다. '안양시장'을 '안양시시장'이라고 하는 거라고 말씀드렸지, '안양장'을 '안양시장'이라고 하는 거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 당연히 안양시장은 안양시장이지요. 시장을 원래 -장이라고 붙인 적이 없으니깐요. 경기도지사도 마찬가지고요. 위의 Synparaorthodox님의 말마따나, 중국에서 현령을 -령이라고 붙였었다면, 그에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알기 쉽게 하는 것, 좋습니다. 하지만 원래 있었던 용례를 어겨가면서까지 그렇게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威光 (토론会話기여) 2016년 4월 21일 (목) 14:13 (KST)답변
그러니까 님이 비유를 잘못 드셨다는 겁니다. 흔히 경기지사로 줄여쓰는 것은 경기도지사를 뜻합니다. 경남지사로 줄여쓰는 것은 경상남도지사를 뜻해요. 서울시장으로 줄여쓰는 것은 서울특별시장을 뜻합니다. 양자는 호환 관계이고 무엇이 틀렸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서울특별시 시장 역시 마찬가지예요. 뭐어... 이건 그냥 비유 문제니까 넘어갑시다. 님께서는 ‘직책 이름은 현령 · 현장 · 군수이지만, 실제 지명에 붙을 때는 ~령 · ~장 · ~수로 쓰인다.’라는 내용을 근거로 ‘광평+현령 따위는 원래 있었던 용례를 어기는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제가 이미 지명+현령 따위로 쓰는 용례도 있다고 검색해보시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제가 나름 위백에서 이쪽 분야에서만 활동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제 신뢰성이 많이 떨어지나 봅니다...
郫縣令의 인장입니다, 費縣令의 인장입니다 郫令, 費令이라고 새기지 않았습니다. 제가 능력이 없어서 잘 가는 漢籍電子文献資料庫에서 郫縣令을 검색해보면 삼국지41권 촉서 양홍전에 인용된 익부기구전잡기, 남사70권 견법종손빈(甄法崇孫彬)전, 구당서173권 李紳전에서 사용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費縣令은 구당서 185권上 高智周전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郡守 역시 (당해 사이트 기준, 각주 포함) 후한서에 89회, 삼국지에 64회, 진서에 39회, 구당서에 52회 등장하며 가끔씩 앞에 지명이 붙습니다. 이로써 님이 말씀해오신 근거가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太守가 압도적인 것처럼 郫令이나 費令으로 쓴 사례가 훨씬 많습니다. 이것의 이유는... 관련 논문과 서적들을 더 뒤적거려본 결과 역시 제가 말씀드렸던 것처럼 지명+령은 지명+현령을 그냥 줄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지명+현령은 틀린 용어라고 서술한 것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감히 생각해보건대 님께선 저의 대중어 사용 운동(?)이 고깝게 보이시던 차에 무엇보다 고수의 함정에 빠지셨던 게 아닌가 합니다. 1차 사료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분들은 1차 사료를 직접 인용하다보니 남들보다 뛰어난 해석관이 생기고 직역을 넘어, 자기 나름의 연구를 덧붙이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해석 혹은 내용이 맞는지 필히 2차 자료를 확인해보아야 합니다. 혹은 다른 1차 사료를 더 찾아보아야 합니다. 금석문에 남생이 요동군 평양에서 태어났다고, 문무왕이 김일제의 후손이라고 써진 게 있다고 이를 그즉시 사실로 받아들일 수는 없듯이 말입니다. 님께서는 지명+현령 등 ‘해당 표현을 틀렸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근거는 1차 사료를 활용한 님의 연구였지, 어떤 2차 자료를 근거로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1차 사료조차 반대되는 사례들까지 존재하였습니다. 항상 이 점만 살짝- 유념해주신다면 제가 감히 범접할 수 없지 않을까 합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6년 4월 25일 (월) 18:01 (KST)답변

기분 언짢게 느껴오셨다면 사과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무왕 김일제 운운을 믿는 사람으로 취급하시면 정말 섭합니다... -_-;)

1. 費縣令: 덕분에 좋은 구경 합니다. 확실히, 중국사 전(全) 시대를 통틀어서 -령, -장으로 불렀다고 주장할 순 없겠네요. 이 부분은 제가 섣불리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해당 유물이 당나라 것이라는 게 조금 걸립니다. 《예석》·《예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용례와, 그것 말고도 현재 확인 가능한 한대의 비문들은 하나같이 -령, -장이라고 표기했기 때문입니다. 이걸 전부 '약칭'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듭니다(예석, 예속은 어떻게 보여드리기가 곤란하군요...-_-;; 김에, 메일 같은거라도 알려주시면 보내드리겠습니다).

2. 郡守: 실제로는 전한 초기에 폐지된 명칭인 만큼, 용례를 찾기 위해선 사기 · 한서 쪽에서 찾는 것이 옳다고 생각됩니다(비단 사서가 아니더라도, 이야진간 등 출토된 죽간 등에서도 용례를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지적하신 바와 같이, '태수'가 정착된 이후에도 '군수'가 보이는 예가 왕왕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歷郡守' 등의 표현이고(물론 이때는 '-수' 문제와는 연관이 없겠습니다만), 무엇보다도 실제로는 쓰이지 않았을 명칭임을 생각해 보면 조금 걸러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전한 중기 이후에도 '郡守'가 사용된 유물 등이 있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요.

3. 사실 지금까지 일단술먹고합시다님과 이 이야기를 나누는 이유는... 앞으로 모든 관련 문서의 표기에 '현'을 붙이느냐 마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일 겁니다(사실 이걸 저희 둘이서 결정할 순 없는 문제이긴 하지만요).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아직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일단 모든 시대에 걸쳐서 -령, -장으로 통일할 수 없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대신 각 문서에서 해당 시대에 통용된 명칭으로 표기할 순 있다고 생각합니다. --威光 (토론会話기여) 2016년 4월 25일 (월) 22:36 (KST)답변

아직 입증되지 않은 주장이지만 한나라에서는 결코 현명+현령 식의 표현을 쓰지 않았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래도 이 표현을 위키백과에서 쓰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한나라 말에서는 지명+령이 일반적이지만 현대 한국어에서는 현명+현령이 일반적이므로 한나라 말로 낙양령은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면 낙양현령이 되는 셈입니다. 이는 사트라프를 태수로, 차르나 카이저를 황제로 번역하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다만 차르나 카이저를 황제로 번역한 글을 보고 원어가 황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낙양령을 낙양현령으로 번역한 글을 보고 원어도 낙양현령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걱정할 수는 있겠는데, 그건 현령 항목에서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으로 절충할 수 있습니다.--Synparaorthodox (토론) 2016년 4월 26일 (화) 01:12 (KST)답변
어어... 금석문 전자화 데이터베이스는... 없나요... 이걸 다 들여다보며 확인하기에는 좀... 헤헤. 예석이나 예속 같은 건 골치 아파서 보고 싶지 않은.......... 디지털의 노예가 되서 죄송합니다orz 군수는 군수 역시 지명+군수도 존재한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으... 이 문제는... 우리가 현재 있는 곳이 '위키문헌'이 아니라 '백과사전'이라는 것만 유념하신다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백과사전은 현대어로 일반 현대인에게 해당 정보를 잘 알려주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직역을 권장하는 것은 '독자연구의 배제'를 위함이지 '사서를 번역한 것의 1차 자료로서의 전자화'는 아닙니다. 사서를 번역하고, 이를 좀 더 대중적으로 표현하자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령, 수, 장, 승, 위 (또 뭐있죠...?;;;) 따위로 줄여쓰는 게 많다는 건 현령(현장), 군수(태수), 승(은 독립 생성보다는 관직표에서) 교위·도위·현위 따위의 항목에서 설명해주면 그만...이 아니라 내용도 풍부해지고 더 좋습니다. 제가 항상 드렸던 말씀인데... 우리는 '백과사전을 만들고 있습니다' '예전 기록 자체의 번역문'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닙니다. 또 해당 용어가 틀린 것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의 관련 논거가 필요합니다. 일단은 전문가들의 서적에서 그냥 지명+현령 따위로 쓰는 경우가 많고 이를 틀렸다고 지적하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주장은 여기서 처음 봤습니다. ― 물론 이는 제 능력이 미천해서일 수는 있습니다. ― 덧붙여 김일제는 1차 자료와 2차 자료를 모두 혼합해서 봐야한다는 사례로써 든 것이지 님이 정말 그렇다는 건 아니예요;;;
님과 토론할 때 기분이 언짢았던 적은 없습니다. 다만... (레알 전문가 혹은 책이 안 팔리는 분들의 특징인;)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모습이 적어보여서 안타까웠고, 되레 저로 인해 화내시며 떠나가지 않으실까를 가장 염려하였습니다. 책을 출판할 때 타인의 교정은 필요합니다. 단순히 맞춤법을 맞추는 것을 떠나 대중의 입맛에 맞게끔 말입니다. 이는 해당 저자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 저자의 정보가 더 잘 팔리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물론 우리가... 위키백과라는 백과사전을 만들어 어떤 수익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만ㅡㅜㅡ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6년 4월 26일 (화) 07:29 (KST)답변
답변이 늦어 죄송합니다. 요새 좀 바빠져서... -_-;; 두 분 말씀 감사드립니다. '현령'이란 표현 자체를 일종의 번역어로 볼 수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충분히 당위성이 있을 테고요. 아마 이러한 방침은 현령(+현장) 뿐만 아니라, 승(丞) 등 여타 관직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다. 대신 어디까지 적용할지가 문제일 텐데... 일단 현 주제였던 현령(+현장)과 승, 그리고 군수(?) 까지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태수야 뭐 워낙 고착되었으니 생각할 필요도 없고... 낭중령이나 중위 등 제후국의 속관은 좀 생각을 해 봐야겠네요. --威光 (토론会話기여) 2016년 4월 30일 (토) 19:32 (KST)답변

반스타[편집]

오리지널 반스타
나는 귀하의 동양사 분야 기여에 대한 경의에서 이 반스타를 또 드립니다. 님은 반스타를 꼭 보고, 두 번 봐도 됩니다. 다만 대중과의 소통에 있어서는 저와 이견 차가 있습니다. 저는 위백이 좀더 대중에게 다가가기를 바랍니다. 위백의 컨텐츠를 소비하는 자들은 거진 삐알못 일반인들입니다. 혹여 이러한 시도에 대한 방어기제가 지금까지의 숱한 트롤들로 인한 것이 아닌가도 합니다. 트롤들은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물론 말은 이렇게 던져놓고 저도 바빠서 제대로 대응 못 할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ㅇㅅㅇ 어쨌든 적어도 기여만큼은 제가 신뢰하는 몇 안되는 사용자십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6년 4월 14일 (목) 05:22 (KST)답변

위광님 저 마음에 안 들죠?[편집]

아니아니... 제가 독자연구나 허위정보를 등록하는 것도 아닌데 계속 주시하고 계시네요... 어쨌든 우금 편집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전투명을 왜 괄호로 빼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링크를 다는 게 훨씬 보기도 좋고, 클릭 수도 유도할 수 있지 않은지요? 아예 팝업에 링크명까지 뜹니다. (꼭 따라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리그베다나 나무, 리브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가독성 면에서도 훨씬 좋은 것을 굳이 괄호를 넣는 것은... 수고의 眭는 수로도 휴로도 발음됩니다. 중국 한자의 한국식 발음의 차이일 뿐입니다. '수'와 '휴'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한국식 한자의 발음은 중국식 한자와 (나름 비슷하긴 합니다만) 일치되지 않습니다. 또 휴고도 통용되고 있기도 하고요 이런 건 그냥 지워버리기보다는 병기해놓으면 찾기도 좋지 않을런지... '죄다'는 이런 뜻입니다. '모두' 따위의 한 단어로 통일하기 보다는 여러 단어를 다채롭게 사용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국어에는 정말 여러 단어가 있습니다. 이걸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한국인조차 한국어의 매력과 장점을 잘 모른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마지막 문장인 '우금이 이를 보고 부끄럽고 분한 마음에 이 나 죽었다. 시호(厲)라 하였다.'의 조사 역시 왜... 수정하신 것인지... 이건 이거나 저거나 별 차이가 없어 보여서 딱히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 이유가 정말 궁금해서 여쭙습니다. 또 시호는 본인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닌지라... '를'이란 조사보다는 '는'이란 조사가 더 어울릴 것도 같긴 합니다만...

어쨌든......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게 이다지도 관심을 가지시는 이유의 근원을 알... 것 같지만 확신은 서지 않습니다... 제게 왜 이러시는지요?

덧. 최염의 생몰년 전거는 어떻게 됩니까... 이건 정말 잘 몰라서 여쭙습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6년 5월 14일 (토) 00:24 (KST)답변

끼어들어서 죄송합니다만, 오히려 일단술먹고합시다님께서 좀 까다롭게 구시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위광님께서 독자연구나 허위정보를 등록한 것도 아니고, 거의 다 내용이 아니라 형식의 문제인데...--Synparaorthodox (토론) 2016년 5월 14일 (토) 00:38 (KST)답변
전투명을 괄호로 빼는 것과 전투명 없이 본문에 적당히 링크를 거는 것은 제가 일관성 없이 쓰고 있는데 뭐가 더 좋은지 판단이 안 서서 그러고 있으니 제 의견을 말씀드립니다. 괄호로 전투명을 알려주는 것은 본문이 약간 길어져서 보기 안 좋아지는 것 같고, 본문에 적당히 링크를 거는 것은 링크를 클릭하거나 커서라도 갖다대서 팝업을 보지 않는 한 전투의 명칭이 안 보여서 불편한 점이 있습니다.--Synparaorthodox (토론) 2016년 5월 14일 (토) 00:38 (KST)답변
그 형식의 수정을 지속하고 계신 분이 지난 번에도 그렇고;; 위광님이십니다. 저는 위광님이 편집하신 것에 대한 단순한 형식 수정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의 비생산적인 편집을 막기 위해서라도 왜 그러한 수정을 하신 것인지에 대한 의문 해결은 필요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왜 제게 이러시는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말씀하신 링크에 대해서만 말씀드리자면... '링크'라는 것은 그것을 클릭'할' 사용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링크가 있으나 마나 클릭하지 않을 사용자에게는 거추장스런 파란 색일 뿐이지요. 위백을 제외한 거의 모든 위키, 대표적으로 리그베다, 나무, 리브레, 디키에서는 괄호 사용보다는 본문에 적당히 링크를 겁니다. 이게 링크를 클릭하지 않을 사용자나 클릭할 사용자나 모두에게 좋거든요. 아무리 타 위키라도 좋은 건 받아들여야 합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6년 5월 14일 (토) 00:53 (KST)답변
굳이 하이퍼링크 타고 가려는 건 아니지만 전투명만 기억해 두려는 사람에겐 전투명이 안 나와 있는 게 아쉽고, 링크를 쳐다보도록 강제하는 불편한 장치라는 겁니다.--Synparaorthodox (토론) 2016년 5월 14일 (토) 01:28 (KST)답변
그건 그냥 해당 링크에 커서만 대도 팝업이 뜹니다. 굳이 링크를 클릭하게 강제하는 불편한 장치는 없습니다. 타 위키가 괜히 그 방식을 선호하는 게 아닙니다. 뭐... '커서까지 대고 잠시 기다리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냐?'라고 말씀하신다면... 그건 생각할 여지가 있긴 합니다만, 거기까지 생각하기 전의 편의가 훨씬 큽니다. 뭐든지 장점과 단점이 있습니다만, (틀린 것이 아니라면) 장점이 더 많은 쪽을 택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6년 5월 14일 (토) 01:59 (KST)답변
예, 제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한 거였습니다. 갖다대도 팝업이 잘 안 뜨는 당황스러운 상황을 자주 겪었거든요. 특히 느린 컴퓨터라면... 그에 비하면 글이 몇 글자 길어지는 것 정도는 별 것 아닌 것 같기도 해서요.--Synparaorthodox (토론) 2016년 5월 14일 (토) 02:07 (KST)답변
요즘엔 느린 컴퓨터가 잘 없자나요.............................. 왠지 예외의 예외를 자꾸 제시하는 것 같다는 건 저만의 느낌적인 느낌일까요;;; 앞으로도 컴퓨터의 속도는 더 빨라질텐데 그렇담 더더욱 몇 글자 길어지는 건 좋지 않지요. 근데 (의도하신 것은 아닐 것 같습니디만) 빠른 컴퓨터라도 무진장 긴 각주는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습니다. 즉! 각주도 적으면 적을수록 좋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고, 오히려 절대 다수의 한알못 사용자들은 토만 나온다는 한자 원문은 넣지 않는 게 가독성 측면이나 효율성 측면에서나 좋을 것 같습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6년 5월 14일 (토) 02:15 (KST)답변
개인적인 경험은 둘째치더라도 (전투명을 별도로 쓰지 않는 것의) '편의가 훨씬 크다'라는 것은 일단술먹고합시다님의 주관적인 생각 아닌가요? 그리고 느린 컴퓨터가 별로 없다는 것도 그렇고요. 진짜 성능이 안 좋은 컴퓨터도 드문 게 아니고(물론 옛날 똥컴보단 지금 똥컴이 좋기는 하는데 그만큼 소프트웨어들도 컴퓨터 자원 많이 먹는 쪽으로 바뀌어갑니다), 성능 좋은 컴퓨터도 쓰는 사람이 혹사하면 별 수 없고요.--Synparaorthodox (토론) 2016년 5월 14일 (토) 02:35 (KST)답변
편의가 훨씬 크다라는 부분은 이 링크이 링크 로 대신합니다. 예외의 예외에 대해서는 이 링크로 대신합니다. '성능 좋은 컴퓨터도 쓰는 사람이 혹사하면 별 수 없고요'라는 말씀은 가능성이 있긴 한데... 우리는 그냥 대다수의 일반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면 됩니다. 이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진짜 성능이 안 좋은 컴퓨터도 드문 게 아니다'라거나 '쓰는 사람이 혹사하면 별 수 없고요'라거나 일단 특수한 상황을 전제하신 상황의 말씀이 아닙니까? 우리 그냥... 일반적인 상황에서 더 장점이 많은 쪽으로 선택하면 안 됩니까? 모든 결정엔 일장일단이 있습니다. 뭐든지 장점만 있는 결정은 없습니다. 그속에서 우리가 하면 좋은 것은 최대한 다수에게 장점이 되는 쪽...을 선택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동음이의어 문서도 그렇습니다. 누군가는 소수 문서를 바로 클릭하고 싶어합니다. 그분들에게 대표어 설정은 매우 불편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다수 문서를 클릭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불편하지요. 통용 표기도 그렇습니다. 소수 사용자들은 통용 표기가 아닌 것을 선택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말 그대로 통용 표기를 선택합니다. 우리 그냥... 대중이 흘러가는대로 가면 안되나요... 왜 위백만 유독 대중과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 거죠...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6년 5월 14일 (토) 02:52 (KST)답변
근데 그러고보니... 님도 어떻게 알고 바로 말씀을 달아주셨네요... 으음.................. 제가 나름 관심을 받기는 하나 봅니다ㅇ_ㅇ??? ............. 부담스럽네요orz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6년 5월 14일 (토) 01:04 (KST)답변
굳이 그렇게까지 부담 느끼시진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그냥 글이 있으니까 쓴 것일 뿐입니다. 예전부터 그나마 위광님과는 자주 토론하는 편이었고...--Synparaorthodox (토론) 2016년 5월 14일 (토) 01:29 (KST)답변
제가 워낙 토론 페이지 편집 횟수가 많긴 합니다만... 전 레알 부담습럽습니다-_-;;;;;; 그냥 농담따먹기라면 모를까............. 친목에 주안점을 두지 않는 사용자는 (제 착각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말 한번 삐끗해도 바로 나가리되기 쉬운 게 위백 세계인 것 같거든요.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6년 5월 14일 (토) 01:59 (KST)답변

처음 토론 주제명을 봤을 때 강렬한 표현에 잠깐 놀랐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작년에 한때 떠들썩했던 모 연예인의 발언을 이용하신 농담이라고 생각해 조금은 안도(?)했습니다. 하지만 메일 등 개인적인 연락수단이라면 모를까, 토론 또한 모두가 함께 보는 문서인만큼 재고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편집을 할 때, 딱히 일단술먹고합시다 님의 글을 특별히 주시하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그저 주시문서로 등록했던 문서가 변경점이 있는 것이 확인될 때마다 넘겨보거나 고치는 것이고요. 습관 중 하나가 조금이라도 일단 편집을 하면 주시문서로 등록을 해두는 것인데, 때문에 수 년 전에 편집했던 문서라던가, 혹은 이제는 관심을 갖지 않은 문서들이 나중에 '변경된 문서'로 통지가 뜰 때가 왕왕 있습니다. 이번 우금 문서도 그렇고요.

사실 편집하는 동안에도 나중에 문제시되거나 하는 일이 있지 않을까 불안한 느낌이 들었는데, 정말이었군요.

1. 링크 문제

사실, 저는 여타 위키에서 흔히 사용하는 '본문에 걸친 링크 연결'을 그렇게 좋게 보지 않고 있습니다. 당장 독자의 호기심을 사게 하는 데에는 충분히 효과가 있을지 모릅니다만, 문서의 이해면에서는 최악이라고 생각합니다. 링크는 클릭할 사용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현재 추천하시는 서술 방식은 (저처럼) 클릭하고 싶지 않은 독자들에게 링크의 확인을 강요하는 방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우스 포인터를 갖다대는 식으로, 어떻게든 링크를 살펴보지 않는 이상 정확한 의미를 파악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수고를 다른 사용자들도 기꺼이 받아들일지 의문이고요. 계속적으로 해당 방식의 편익을 강조하시고 또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씀까지 하시는데,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에둘러서 강요받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2. '느린 컴퓨터'

'느린 컴퓨터' 사용자입니다. 지금도 XP 쓰고 있고요. 일단 이렇게 쓰긴 했습니다만, 사실 컴퓨터의 성능 문제는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3. 관심

제가 일단술먹고합시다님께 관심을 갖고 있고 또 그 이유를 알 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아마 틀렸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예상하는 바가 맞다면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저는 일단술먹고합시다님을 견제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현재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에, 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 드릴 말씀이 있을 경우 차차 더 적어가겠습니다. --威光 (토론会話기여) 2016년 5월 14일 (토) 16:21 (KST)답변

표제의 의미를 알고 계시니 님과의 커뮤니티케이션은 성공한 것이고, 만약 오해하셨다면 그때는 사과를 남기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토론 메시지만 봐서 잘 알기 어려웠는데 생각보다 더 유쾌하신 분인듯ㅋ 어쨌든... 모든 선택이 다 그렇겠습니다만 편집 역시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습니다. 링크 문제는 위광님이 말씀하신대로 '클릭하지 않더라도 팝업조차 불편하다'라는 문제가 존재합니다. 다만... 제 생각에는 소수에겐 미안하지만...;; 좀더 다수(내지 대중)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택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 합니다... '틀리지 않으면 통용(표기든 사용이든)'을 주장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무엇보다 아직도 XP는... 그리고 최염 생몰년의 전거는 어떻게 됩니까... 덧붙여 제가 좀 까칠하게 쓴 것 같습니다. 위백에 대한 인상이 갈수록 낙하하던 차에 그게 좀 묻어나온 것 같습니다. 앞으로 좀더 개소리를 넣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ㅇ_ㅇ 하실 말씀이 있다면 천천히... 남겨주세요.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6년 5월 16일 (월) 05:11 (KST)답변
해당 문서는 일본어 위키백과의 崔琰 문서를 번역한 것이었습니다. 생몰년 기록도 거기서 따왔고요... 아직 초보(?)이던 시절, 검증 없이 행한 저의 잘못이군요. 평소 일본어 위키백과는 그나마 믿을 만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최염의 경우를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군요. 일단은 생몰년을 수정했습니다. 생년은 최염전에 기록된 황건적의 서주 침입을 기점으로 비정했습니다. 필요하실 경우, 자세한 건 해당 문서의 토론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威光 (토론会話기여) 2016년 5월 16일 (월) 17:46 (KST)답변
아... 역시 그랬군요. 위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제가 보기엔... 그냥 위백은 어떤 언어든 다 똥이에요. 정말 그런가 출처를 확인해보면 아닌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절대 외국어 위백을 전거로 삼지 말자고 얘기해오고 있습니다만... 듣는 분이 잘 없는 것 같습니다... (이는 갠적으로 생각하건대 그저 외국어 위백을 번역하는 것이 문서 기여에 훨씬 쉽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스스로 이것저것 출처를 찾는 것은 정말 귀찮고 힘든 짓이죠.) ‘브리태니커가 위키피디아보다 신뢰도가 높은 것은 아니다’는 논문도 보긴 했습니다만... 그건... 그만큼 위백의 신뢰성이 높다기보다는.... 그만큼 사전도 똥이라고 생각합니다ㅋ 사전 집필자가 전거 등록해놓은 거 추적하다보면... 아... 정말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되지요. 어쨌든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위광님은 한국어 위백 내에서 스스로 지식을 생산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몇 안 되는 사용자십니다. 부디 탐탁치 않더라도 대중화 운동에도 협조해주셨으면 정말 좋겠습니다orz 님께 어떤 이익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적어도 저는 지식이란 될 수 있는 한 다수에게 편히 다가갈 수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위백의 존재 목적도 거기에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전 능력이 없어가 책도 몬 쓰고, 여친도 없어서 위백합니다만............ 아, 절대 몬 만드는 건 아닙니다. 그만큼 지식은 공유하기 조아야 한다는 마인드가 투철한 겁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6년 5월 16일 (월) 18:45 (KST)답변
일단술먹고합시다님이 말씀하신 것 중에서 '대중이 선호한다'를 입증할 증거를 잘 못 찾겠습니다. 그나마 “위백을 제외한 거의 모든 위키, 대표적으로 리그베다, 나무, 리브레, 디키에서는 괄호 사용보다는 본문에 적당히 링크를 겁니다.” 정도? 그러나 이것도 명백한 뒷받침되는 증거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지 정말로 입증된 것으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본문에 전투명, 나아가 어떤 것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그것과 관련된 문장에 링크를 거는 것은 이해에 방해가 됨을 뒷받침만할 연구 결과가 있다는 글은 찾을 수 있었습니다. 글 내부에서 출처를 사용하지 않기는 합니다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란 제목의 글인데, 책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글이고, 그 중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또한 인터넷에 널리 사용되는 기술인 ‘하이퍼링크’ 기 역시 독자의 인지적 부하를 상당 수준 증가시켜 사람들이 대상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능력을 약화시킨다고 주장한다. 일련의 연구결과들은 청각 및 시각자료를 포함하는 하이퍼텍스트 자료와 전통적인 종이 문서를 통한 읽기 능력시험에서 텍스트로 이루어진 문서를 읽는 사람들이 링크가 가미된 문서를 읽는 사람보다 더 많이 이해하고, 기억하고, 더 배운다는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오히려 링크가 학습을 방해하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링크가 가미된 문서조차도 아니고, 링크를 배제하고서는 정보를 주지 않는 문서라면 이해를 더욱 방해할 것 같습니다. 지금의 제 의견은 괄호로 전투명을 쓴다와 전투명 없이 본문에 적절하게 링크를 건다를 절충해서 '적절히 본문에 전투명이 직접 드러날 수 있도록 서술한다'이고, 그걸 환범의 설명 중 고평릉의 변과 관련된 부분에서 적용해보았습니다만.--Synparaorthodox (토론) 2016년 5월 17일 (화) 21:05 (KST)답변
제시하신 근거는 '링크가 없는 텍스트'와 '링크가 있는 텍스트'의 차이입니다. 제시하신 근거는 ‘텍스트에서 링크를 아예 없애고 관련 각주를 상세하게 달자, 즉 전통적인 종이 문서로 휘귀하자’란 주장에 어울리는 근거십니다. 하이퍼링크란 그것을 클릭할 사용자를 위해 존재합니다. 그것을 클릭해 읽지 않으면 당연히 그에 관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습득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링크가 아예 없이 각주만 있는 문서는 그 페이지에 있는 모든 텍스트를 읽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히 '더 많이 이해하고, 기억하고, 더 배'울 수밖에 없지요. 그렇다고 링크를 아예 배제해야할까요? 이건 오히려 정보의 바다 속에 살아가는 21세기인에게는 비효율이 아닐까요? 어쨌든 위백에서 링크를 배제하자는 주장은 보지 못했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말씀드린 적이 없습니다. 그저 동사 표현에도 (제한적인) 링크를 거는 대중적 표기를 위백에도 도입하자는 것뿐입니다. 말씀하셨듯이 '위백을 제외한 거의 모든 위키, 대표적으로 리그베다, 나무, 리브레, 디키에서는 괄호 사용보다는 본문에 적당히 링크를 겁니다.'란 문장이 바로 '대중이 선호한다'를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것이 대중적인 표기라는 것은 증명됩니다. '링크'란... 그것을 클릭할 사용자에게만 필요합니다. 그리고 모든 인터넷 문서는 그 링크를 클릭하지 않을 사용자도 존중해야 합니다. 동사에 링크를 바로 거는 것과 동사에 링크를 걸지 않고 괄호로 빼는 것에는 단점이 모두 존재합니다. 이것들의 차이를 옳고 그름으로 논할 수는 없습니다. 단 제가 항상 말씀드리는 것은... 그냥 '위백의 정체성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면' 대중이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자는 것입니다.
전투 명을 문장 속에 바로 삽입하는 방법도 있습니다만 그것이 모든 문장에 쓰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은밀히 전쟁 준비를 하고 있던 여몽이 이를 핑계로 바로 진공하여 형주를 점령하였다. 덕분에 우금은 풀려나 오나라로 인계되었다.'란 문장에 '형주 공방전' 내지 '여몽의 형주 침공'이란 단어를 삽입하기는 어렵습니다. 보통 명사 표현의 삽입은 줄글로 쓸 때의 매력을 많이 해칩니다. 하이퍼링크엔 커서만 대도 팝업이 뜹니다. 그것을 클릭하지 않더라도, 그 단어를 괄호로 뺀 것마냥 확인이 가능합니다. 어느 정도 단점의 보완도 됩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6년 5월 21일 (토) 06:58 (KST)답변
우선 보통의 글에서 괄호를 쓰는 것은 괄호를 쓰지 않고 유려하게 서술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흔히 등장하는 것일 테니 제 대안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다는 꼴임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토론을 하면서 제 견해가 중립에서 괄호 치는 쪽으로 치우쳐감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란 책에서 무슨 주장을 하는지 궁금했는데 어느 정도 실마리를 찾은 게 있습니다. '하이퍼텍스트' '이해' '방해'로 구글에서 검색하니 이 책 얘기가 나옵니다.[2] 그래서 “하이퍼텍스트 내에서 부가적으로 의사 결정과 시각적 처리까지 신경 써야 하는 탓에 읽는 행위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는데”라는 말을 찾았고, 이 말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관련된 글로 당신도 '인터넷의 저주'에 걸리셨나요가 있는데, 여기에서는 하이퍼텍스트가 선형성을 깨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선형성이란 것은 이 글에서 “글은 왼쪽이나 오른쪽 어느 한 방향에서 시작해 반대편에서 마무리되는 방향성 또는 선형성(linearity)을 갖는다. ”라고 설명합니다. 하이퍼텍스트는 독자에게 이것을 클릭해서 정보를 찾아볼 것을 권유하는 것인데 이게 부가적인 의사 결정을 하게 하고 글의 방향성을 깨는 것이 이해를 방해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합니다. 커서를 대서 팝업을 확인하는 행위도 부가적인 의사 결정이고, 선형성을 깨는 것임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괄호로 부가적인 정보를 주는 것은 선형적인 독서에서 자연스럽게 내용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저는 링크를 없애고 각주를 달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가적인 의사 결정이 필요하고 선형성을 깬다는 문제는 하이퍼텍스트뿐만 아니라 각주에도 적용됩니다. 다만 하이퍼텍스트의 이런 문제에 주목하고 글을 더 잘 이해하고 싶은 독자는 하이퍼텍스트 기능을 부차적으로 쓰고 일단은 글을 선형으로 읽는 시도를 할 것이므로 이를 배려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전투명을 밝히지 않고 적절하게 링크를 달기만 하면 확인할 방법이 링크를 클릭하거나 팝업을 확인하는 것밖에 없으므로 선형으로 읽는 시도에 방해됩니다.
그럼에도 대중적으로 선호하는 방식이 그거라면 이해를 방해하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실 것 같은데, 전체 네티즌 대중이 아니라 위키 시스템에 익숙한 사람들만의 선호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위키백과에서 처음으로 들어와 익숙하게 글을 쓰지 못하는 분들이 쓴 글들에서 링크가 과소하거나 아예 없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영문 위키백과에선 그런 글을 정비하기 위해서 en:Templete:Underlinked라는 틀도 두고 있습니다. 링크라는 기술을 일반 대중이 익숙하게 접할 수는 있으나 자신이 직접 만들어내는 글에서 적극적으로 사용할 기회는 별로 없고요. 사실 적극적으로 인터넷에 글을 쓰는 분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마는. 위키에 올라오는 글만큼 내용을 갖춘 글 중에 링크를 위키만큼 충실하게 갖출 수 있는 데도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같은 사이트 내부에서 쉽게 관련된 내용을 찾아서 링크를 걸어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러다 보니 위키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링크 성애자'가 돼서 글을 읽을 때 링크를 적극적으로 누르는 습관이 생깁니다. 리그베다위키나 나무위키 이용자들 중에서는 링크 타고 다니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하는 사람이 좀 있는데 이것은 이 위키 이용자들이 링크 성애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면 글을 쓸 때에도 아무데나 링크를 걸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을 다 링크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생기는 게 아닐까 합니다. 한 예로 나무위키의 말레이시아항공 17편 격추 사건 글의 넷째 각주는 링크로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이 있는데 이게 1984년 개정된 시카고 협약에 대한 주라고 해서 사건 이름을 숨기고 '이 사건'이라고만 표시합니다. 1983년에 칼기 격추된 거 아는 사람은 이 사건이라는 표현에서 위트를 느끼겠지만 모르고 링크 확인해보고 싶지 않은 사람에겐 그저 짜증을 유발할 뿐입니다. 이런 표현이 버젓이 쓰이는 건 이 위키 사용자는 하이퍼링크를 적극적으로 누를 거야라는 사고 방식이 만연하다는 거 아닐까요?--Synparaorthodox (토론) 2016년 6월 4일 (토) 11:04 (KST)답변

공손속 항목의 '저각' 관련[편집]

안녕하세요. 공손속 항목에서 저각(屠各)을 '도각'으로 수정한 것에 대하여 편집을 돌리시고 지적해주신 점 감사합니다. 다만, 만약 말씀하신 대로 休屠를 휴'저'라고 읽어야 한다면 현재 휴도왕 항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수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흉노 관련 항목에서 휴저, 저각 관련한 내용의 도(屠)를 저로 바꾸는 전반적인 작업에 대해 의견 구하고자 합니다. -- 耿君 (토론) 2016년 12월 21일 (수) 14:34 (KST)답변

저로써는 동의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屠는 '저'라고 읽어야 하며, 애초애 그것 때문에 옛날부터 著, 箸 등으로 표기가 뒤섞였었습니다 -_-;; 다만 총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외효처럼 그대로 두어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일단 저는 바꾸는 데에 동의합니다. --威光 (토론会話기여) 2016년 12월 22일 (목) 23:05 (KST)답변

가의의 가족 관계 기술 보충 요청[편집]

신당서』 「재상세계」에 의하면, 가후 또한 가의의 후손입니다.

위 링크에서 원문을 참고해, 가의의 가족 관계 기술을 보충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全彦謙 (토론) 2017년 1월 7일 (토) 21:29 (KST)답변

한때 신당서 재상세계표를 토대로 신나게 가계도를 쓰긴 했었지만... 신빙성에 크나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나서는 손을 놓고 있습니다. 관우를 관용봉의 후손이라고 기록한 하동 관씨나, 특히 이미 비문상으로도 신당서의 기록이 잘못되었음이 입증된 여남 원씨의 기록 등을 보건대... 재상세계표는 믿을 것이 못 되는 자료입니다. ㅎㅎ;; 이외에도 당대 사료들과는 상이한 점이 상당히 많고요. 정말 정말 흥미로운 자료긴 하지만... --威光 (토론会話기여) 2017년 1월 10일 (화) 21:32 (KST)답변

위맹 문서[편집]

역사 합치기로 처리합니다. 문서 이동 기능을 사용해 주세요. --IRTC1015 2017년 1월 25일 (수) 01:54 (KST)답변

그러고 보니, 간단한 일인데 혼자 바보짓을 했네요-_-;;... 조치 감사합니다. --威光 (토론会話기여) 2017년 1월 25일 (수) 02:49 (KST)답변

진등 아빠의 가계 그림에 대해서[편집]

파일:진규.png

잘 지내십니까. 새해 복 마니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요즘 진구(陳球) 아들 진우(陳瑀)를 만들고 있는데 그 가계 그림에 질문이 있습니다. 《후한서》56권 진구전에는 ‘子瑀, 吳郡太守. 瑀弟琮, 汝陰太守. 弟子珪, 沛相’이라 하여 진규는 진구의 조카라 하였는데, 다르게 적힌 출처가 있는 것인지요? & 토론:육가를 보았는데 혹시 진전사항이 있습니까? 없다면 유고 (형왕)(劉賈) 등을 본문에 쓸 때는 ‘유고(유가)’라고 병기처리하려고요.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7년 2월 11일 (토) 11:44 (KST)답변

진규는 진구의 조카가 맞습니다. 제가 당시에 잘못 만든 건데, 고친다고 한 걸 잊은 지금까지 시간이 흘렀네요 ㄷㄷ;;;... 아예 해당 이미지를 삭제 신청토록 하겠습니다.
'육가'에 관해서는, 따로 진전이랄 게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일단 저는 '고'로 읽는다는 입장이긴 한데,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밀어붙이진 못하겠네요. --威光 (토론会話기여) 2017년 2월 11일 (토) 17:11 (KST)답변
으아니챠!! 생각도 못한 답변이ㅋ 그리고 賈는 음... ‘이 음가에 대해선 지지하는 발음은 있지만 확실한 건 아니다’란 말씀인 건가요....? 음.... & 앞으로도 음가에 대해 아리까리한 거 있음 님 찾아올게요. 음주고 광운이고 찾는 거 넘 골 아파욬ㅋㅋㅋㅋㅋ 혹여 제가 한국식 음으로 보나 중국식 음으로 보나 음가가 분명한 것인데도 잘못 적은 걸 발견하신다면 말씀해주시길. 건승하십쇼!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7년 2월 11일 (토) 21:51 (KST)답변

Your feedback matters: Final reminder to take the global Wikimedia survey[편집]

(Sorry for writing in English)

으따 마 반스타라도 드려야 쓰겠구마[편집]

역사 반스타
나는 착해서 이 반스타를 드립니다. -- 고려 (토론) 2017년 3월 9일 (목) 22:43 (KST)답변

조용히 그리고 열심히 기여하시는데 다른건 없고 반스타 하나 받으세영--고려 (토론) 2017년 3월 9일 (목) 22:43 (KST)답변

나는 착해서 이 반스타를 받습니다. 감사합니다ㅋㅋㅋ --威光 (토론会話기여) 2017년 3월 9일 (목) 22:53 (KST)답변
뭐.. 따로 소주제를 파긴 그래서 물어보는건데 음... 항상 인물 문서를 만드시는데 출처가 없는 문서들은 대체로 어디 부분을 인용하셔서 쓰시는건가요? 출처 없이 쓰신건 아닌거 같아..서요.--고려 (토론) 2017년 3월 10일 (금) 23:45 (KST)답변
출처는 각 문서의 말미에 별도 소단원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해당 사료의 원문에서 직접 발췌하기 때문에, 여타 문서들처럼 구체적으로 ISBN 코드나 쪽수를 거론하기가 굉장히 힘듭니다. 고서 인용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네요. --威光 (토론会話기여) 2017년 3월 11일 (토) 23:26 (KST)답변
이해 했습니다. 고대에 ISBN 코드나 쪽수는 설명할 수 가 없죠 ㅋㅋ 근데 제가 말하는건.. 威光님이 작성하시는 글 중에서 아에 출처가 소단원에 없는 것도 있고.. (예 : 허광한, 이 문서는 자가 "백"이라는 문단에만 출처가 있고 다른 출처는..) 그리고 고서를 두권 이상 인용하기 시작하면 참고문헌에 책 두개 적는거로는 원문을 파악하기 힘들 것 같은데.. 수고스럽겠지만서도 고서 두개 이상을 인용하신다면 각주 틀:서적 인용 같은걸로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고려 (토론) 2017년 3월 20일 (월) 16:28 (KST)답변
해당 기능도 이용하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변수들을 보니 결국은 현대의 간행물을 기준으로 한 틀이고, 실제 사료들을 여기에 기입해보자면 쓸 수 있는 변수가 거의 없습니다. 이것에 대해 예전에 논의했던 적이 있는데, 해당 원문을 일일이 주석으로 남기는 것이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확실한 방법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출처가 필요하다면, 해당 사료의 진본이나 영인본을 촬영한 걸 보여드릴 수밖에 없겠네요. --威光 (토론会話기여) 2017년 3월 21일 (화) 15:58 (KST)답변

전후임, 유언, 백:등재[편집]

항상 수고하십니다. 그으... 일단 고대 관직은 고위직조차 그 전후임을 명확히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몇 년의 텀이 있음에도 일괄적으로 전후임을 표시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전후임을 표시하는 것조차 웬만한 고위 관직이 아니라면 써야하는지 의문이기도 하고요. 정확한 정보가 아닌 것은 올려선 안 될 것 같습니다. 한편 유언 문서에서 몇 개 단어들은 왜 지우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딱히 축약하신 것도 아니고요. 해당 표현들이 있다고 나쁠 것은 없습니다. 되레 표현은 풍부할수록 검색에 잡히기가 좋습니다. 아울러 고대엔 자를 이름 대신 부르긴 했습니다만 현대엔 자가 거의 무쓸모하므로 통용되는 자가 아닌 한은 볼드 처리를 안 하는 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사서에 기록이 한줌밖에 나오지 않는 이들까지 등재하는 것은 백:등재백:아님#낱말을 고려해봤을 때 좋지 않습니다. 장선이나 국승은 삭제되었습니다. 지나치게 짧으면서도 발전 가능성이 없는 문서들은 천천히 정리하려 합니다. (ex.장노, 왕함 (후한) 등) 덧1. 장로는 장로인데 축념은 왜 축염이죠? 덧2. 님 뭔가 예사롭지 않다 싶었는데 나름 유명한 분이더군요.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범디기범디기범범 디기디기차차ㅋ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7년 4월 16일 (일) 12:01 (KST)답변

전후임의 경우, 그래서 예전에는 (사실상) 등의 표기를 병기했지만 군더더기라는 생각이 들어 빼고 있었습니다. 또 '정확한 정보'가 아니라 하셨는데, 비록 사이에 공백이 있더라도 선후 관계가 입증된다면, 또 재임 시기를 기록한다면 충분히 정확한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유언 (후한) 문서는, 일부 군더더기라고 생각한 표현을 편집한 것입니다. 출신지는 군 이하만 표기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자사가 실질적인 통치가 아닌 그저 감찰직이었다는 걸 생각해봐도... 또, 현재 각 군 문서가 거의 갖추어져 있으니 더욱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와 '강하군' 표기는 문서 내에서 중복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고, '유여'는 앞선 '노왕'을 '노공왕'으로 표기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威光 (토론会話기여) 2017년 4월 18일 (화) 16:17 (KST)답변
자를 굵은 글씨로 한 것은, 사실 그저 아주 오래 전부터 정착되어온 양식(?)이라서 그랬던 것 뿐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제가 딱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축염몽염 문서로 설명이 될까 합니다. 당초 두음법칙에 따라 恬은 '념'으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몽염의 예를 생각해보면 그걸 제가 억지로 밀어붙일 수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단순히 염/념만의 문제가 아니라, 최열도 그렇다면 최렬이, 손노반손로반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威光 (토론会話기여) 2017년 4월 18일 (화) 16:17 (KST)답변
개요와 본문은 성격이 좀 다릅니다. 개요는 본문을 축약 설명 및 소개해주는 곳이라 중복이 있을 수밖에 업어요. 주자사가 초반엔 감찰직으로 시작했더라도 중반 이후론 쭉 실제 통치권을 가졌으니 있어도 나쁠 건 없습니다. 듣보잡 작위의 사람들은 위백 내외부에 성명까지 표기해주는 곳이 많습니다. 모두 지우기보다는 살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최렬은 렬의 앞자가 모음이고, 손노반은 노의 앞자가 ㄴ받침이라 그렇습니다.(ex.왕렬, 장로) 물론 김안로, 몽염 같은 케이스도 있으니 일종의 통용 표기라 생각하시면 될 듯. 근데 축념은 마땅한 통용 표기가 없어요... 한자는 다르지만 다른 축념은 축념이라 쓰기도 하고... 축념엔 두음법칙도 적용되지 않으므로 일단은 념으로 해놓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해당 틀에서의 전후임은 앞사람, 뒷사람을 뜻합니다. 근데 고대 기록의 특성상 그 전후임을 명확히 밝힌 곳이 많지 않습니다. '사실상'이란 표현은 어디까지나 님의 생각인 것이지 기록에는 정확히 나와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공백이 있다면 벌써 직접적인 선후관계가 아닌 겁니다. 그 공백을 무시하고 일괄적으로 전후임이라 표시하는 것은 독자 연구입니다. 알 수 없는 부분은 그냥 알 수 없는 부분으로 놔두어야 합니다. 관직에 대한 님의 관심과 기여는 높이 삽니다만 그걸 무리해서까지 적을 순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대수' 계산은 어찌 하신 건지 여쭈어봅니다.
덧1. 이는 다른 말로 하면 고위직이며 선후임을 명확히 알 수 있는 경우엔 적어도 무방하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덧2. 치검이 아니고 극검이 맞다는 걸 각주에 적어놓은 건데 그걸 날리심 어캄;;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7년 4월 19일 (수) 07:01 (KST)답변
구경이면 삼공 다음이니 충분히 고관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전후 관계를 독자연구라고 하셨는데, 해당 인물의 재임시기를 충분히 고증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를 '독자 연구'라고 과연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알 수 없는 부분을 추정해서 적은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기록상 확인이 되는 시기를 적어놓은 것뿐입니다. 이십오사보편 같은 것만 봐도 충분히 이러한 류의 기록이 많습니다. 옌겅왕의 《양한태수자사열표》처럼, 아예 한술 더 떠서 시기별 역대 지방관을 정리한 사료도 있고요. 이쪽이야말로 실제 위키백과에 적기에는 좀 지엽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삼공 대수 계산은, 원하시는 대로 정말 선후 관계가 아주아주 명백합니다. 구경 이하와는 달리, 후한서의 기(紀)에 해당 삼공의 취임 · 퇴임시기가 구체적인 일자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경 이하처럼 '어느 시기에 재임이 확인된다' '어느 시기에 취임/퇴임했다' 수준의 단편적 기록이 아니라, 모든 삼공의 취임/퇴임기사가 확인됩니다. 다만 제가 중간에 한 명 빠뜨린 것이 확인되어서, 상당수 인물의 대수가 하나씩 밀리는 실정입니다. 기회를 봐서 고치거나... 아니면 아예 지워버리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구경 이하는 이게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대수를 적지 않은 것입니다. 만약 적는다면 그건 정말 독자 연구가 되겠죠.
축염축념으로 되돌리겠습니다. 해당 인물이 몽염에 비해 저명성이 크게 떨어지기도 하거니와, 그러한 만큼 통용표기 또한 정착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이제 와서 별 상관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최열은 '烈'의 앞글자가 모음이라서 그렇다면, 李良도 '이양'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요? 이 부분은 특별히 맞춤법 규정의 예외인 것이 아니라, 정말 관용표현으로 굳어진 게 아닐까 합니다.
극검/치검 관련 주석은, 지금 여기서는 '그래서 극검이 옳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해당 주석에서는 그런 표기 없이 오로지 '여기서는 삼국지와 통감을 따랐다'라는 중립적인 표기만 있었습니다. 때문에 처음에는 '이러이러해서 극검이 옳다'라고 적을까 하다가, 송균(宋均)/종균(宗均)의 예처럼 논할 가치도 없는 이야기다 싶어서 지웠었습니다. 별도 각주가 필요하다고 느끼신다면, 앞서 말씀드린 '이러이러해서 극검이 옳다'라는 내용의 각주를 쓰면 될 것 같습니다. --威光 (토론会話기여) 2017년 4월 20일 (목) 19:01 (KST)답변
① 개인적으로는 구경급도 좀.... ② 삼공처럼 '재임시기를 충분히 고증'한 건 말씀대로 독자연구가 아니지요. 제가 문제 삼는 부분은 앞뒤관계에 공백이 있는 경우들입니다. 그저 '언제즘 재임했다'란 기록만으로 앞뒤를 유추하는 게 독자연구라고요. 공백이 있다는 건 선후관계를 명확히 알 수 없다는 얘기지 않습니까. ③ 오기나 발음 오류, 각종 이표기 등은 싹 지울 것이 아니라 각주 형태로 남겨주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잘못됐지만 통용되는 단어를 검색할 사용자들이 해당 문서를 열람할 수 있고, 또 그래야 사람들이 해당 오기에 대해서 알게 되지 않겠습니까? ex.구글에서 위연 횡문이라 검색했을 때 구글에서 위연 광문이라 검색했을 때 구글에서 우금 광위라 검색했을 때 구글에서 우금 광척이라 검색했을 때 ④ '어디에서는 땡땡이라 하였으나 저기를 따른다'는 표기는 편집자의 시각은 반영하지 않으면서도, 어느 하나의 표기에 무게를 줄 수 있는 합리적 방법 중 하나입니다. 해당 부분의 고이부터가 그렇게 써져있기도 하고요. 《考異》曰:范《書》作「郗儉」,今從陳壽《蜀志》. ‘여기의 땡땡은 오기이다. 저기를 따른다’는 식의 표기 방법도 쓰기는 하는데 그 입증에 대한 부담이 상당하고, '어디에서는 땡땡이라 하였으나 저기를 따른다'고 써도 그 의미가 통하는지라 그냥 웬만하면 그렇게 쓰고 있습니다. 두 개 이상의 표기가 그 우열을 가릴 수 없다면 각주가 아닌 본문에 병기 처리합니다.
덧. 삼국지 인물들의 구별 식별자를 삼국지로 하는 것은 프토:삼국지#삼국지 인물의 동음이의어 문서를 가를 때는 국적보다 '삼국지'를 우선으로 합시다를 참고해주십시오. 해당 토론은 백:의견 요청을 거쳤습니다. 진온은 바로 이전 판으로 되돌리겠습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7년 4월 20일 (목) 23:13 (KST)답변
한글 맞춤법 제11항은 “한자음 ‘랴, 려, 례, 료, 류, 리’가 단어의 첫머리에 올 적에는, 두음 법칙에 따라 ‘야, 여, 예, 요, 유, 이’로 적는다.”인데, 붙임 2에서는 “외자로 된 이름을 성에 붙여 쓸 경우에도 본음대로 적을 수 있다. ”라고 규정합니다. 이는 성명에서 이름의 첫소리에는 두음 법칙이 적용되는 것이 원칙이나, 두음 법칙을 적용하지 않고 본음대로 적는 것을 허용함을 암시합니다. 이대로라면 축염이 원칙이고 축념은 허용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허나, 제10항은 “한자음 ‘녀, 뇨, 뉴, 니’가 단어 첫머리에 올 적에는, 두음 법칙에 따라 ‘여, 요, 유, 이’로 적는다.”인데, 제11항의 붙임 2와 같은 내용은 없습니다. 이대로라면 축염이 원칙이고 축념은 그냥 틀린 것 같기도 합니다.--Synparaorthodox (토론) 2017년 4월 21일 (금) 12:05 (KST)답변
恬의 본음이 념 아닙니까?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7년 4월 22일 (토) 07:11 (KST)답변
념이죠. 그런데 성명에서 이름의 첫 글자는 두음이기 때문에 두음법칙이 적용되어서 '염'으로 하는 것이 맞춤법 원칙이라는 것입니다.--Synparaorthodox (토론) 2017년 4월 22일 (토) 10:11 (KST)답변
영 좋지 않은 모양새가 됐습니다만, 그렇다면 다시 축염으로 되돌리겠습니다. 몽염의 예가 단순히 관용이 아닌 규정에 의거한 것이었다면 얘기가 달라지죠. 목내선이나 최양업의 예도 설명이 되고, 顔良 · 張遼를 예전에는 안양 · 장요(특히 적벽가...)라고 했던 것도 이러한 맥락인가 합니다. 아울러, 답답하게 느끼실지 모르겠지만 재임시기를 근거로 전임/후임을 표기한 것을 독자연구라고 하시는 것은 저에게는 너무 엄격한(?: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네요) 잣대라고 느껴집니다. 인물들 사이에 공백이 있다는 것은 재임시기의 표기로 충분히 밝혔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인정하기 어려우시겠다면, 《한서》 백관공경표를 근거로 그간 작성했었던 수많은 인물들의 그것을 지워야 할 것인데... 어떻게 하시든 저로서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威光 (토론会話기여) 2017년 4월 24일 (월) 20:26 (KST)답변
① 으음... 성+이름을 한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성 따로, 이름 따로의 단어로 여긴다는 것인가요? 규정만 봐서는 명확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② 가령 차차가 종정에 160년 - 161년 재직하고, 뚜뚜는 그냥 그즈음 그 자리에 있었는데 180년에 잘렸으며, 빙빙이 180년 - 184년 재임했다는 기록만이 있다면 빙빙과 뚜뚜는 전후임이란 걸 알 수 있지만 차차와 뚜뚜는 전후임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 사이에 칭칭이 있을지, 요요가 있을지 어떻게 알아요...... 그러한 공백을 무시하고 일괄적으로 적는 건 사실이 아닌 걸 적는 거죠... ③ 유언 편집은 조만간, 과도한 전후임틀의 제거와 등재 미달 문서의 삭제는 앞으로 천천히 진행합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7년 4월 25일 (화) 06:56 (KST)답변

가계[편집]

가계도를 표현할때는 이미지로 만들어서 표현하는거 같던데 틀:차트을 표현하는게 더 좋아보이지 않을까요?

당신을 위한 반스타![편집]

꾸준한 기여자 반스타
돌아오신거 화녕해여. 고려 (토론) 2017년 9월 5일 (화) 01:56 (KST)답변

주 표기[편집]

무슨 주 출신인지는 중요 정보가 아닙니까? 중복이라며 지우기보다는 주와 군을 모두 표기하는 것이 정보의 전달 면에서도 검색의 촉진 면에서도 모두 좋지 않겠습니까?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7년 10월 14일 (토) 05:59 (KST)답변

검색의 촉진은 잘 모르겠고요. 주 급의 표기는 별도의 인물정보 틀을 만든다면 거기에는 넣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威光 (토론会話기여) 2017년 10월 18일 (수) 20:20 (KST)답변

아무래도 해당 글자로 검색했을 시에 노출 확률이 높아지죠... 또 인물정보 틀은 그야말로 본문의 내용을 축약하는 것이니 출신 주는 본문에 적어두고, 인물정보 틀에서 생략해야겠죠... 이미 말씀드렸듯 무슨 주 출신인지는 매우 중요한 인적 사항입니다. 편의 면에서도 굳이 군 문서를 클릭하지 않아도 무슨 주 출신인지 확인이 가능하게 됩니다. 지금부터 주 표기는 남겨주시기를 요청드리며 지금까지 삭제하신 주 표기는 제가 복구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7년 10월 23일 (월) 22:13 (KST)답변
어떻게 하시든 개의치 않겠습니다만, 모든 사용자가 일단술먹고합시다님의 의견에 동조하는 것은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威光 (토론会話기여) 2017년 10월 23일 (월) 22:16 (KST)답변
지우는 것이 남기는 것보다 더 좋다는 합당한 근거를 제시해주신다면 위광님의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7년 10월 23일 (월) 22:25 (KST)답변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위광님의 몇 년에 걸친 역사 기여엔 항상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다만 주 표기를 지우진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님께선 지우시고, 저는 살리고 이 얼마나 비효율적인 기여입니까... 중국 고대사에 있어 출신 주는 정말 중요한 정보입니다. 이걸 지우시면 검색은 물론이거니와 해당 정보를 바로 찾기가 어려워져요... 출신 군만큼이나 중요한 게 출신 주입니다. 항상 건강하시기를 바라며 앞으로도 양질의 기여를 기대하겠습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8년 1월 3일 (수) 18:15 (KST)답변
제가 그간 옹졸하게 굴었습니다. 많이 간소하지만, 여기서 사과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기여 부탁드립니다...^^ --威光 (토론会話기여) 2018년 1월 3일 (수) 19:08 (KST)답변
아닙니다. 전 다른 사이트에서부터 님의 팬이었습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8년 1월 7일 (일) 09:01 (KST)답변

변함없는 질 높은 기여를 기대합니다[편집]

한쿡어 위백은 원해 널
귀하께선 작년에 위백을 관둔 적이 있었기에 이 상(?)을 드립니다. 위광님께서 그간 남기신 기여는 위백을 보다 풍족하게 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뵙기를 소망합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8년 1월 16일 (화) 21:44 (KST)답변

당신을 위한 반스타![편집]

편집자 반스타
꼼꼼하게 문서들을 정리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칼빈500 (토론) 2018년 5월 15일 (화) 23:03 (KST)답변
정말 정말 별 것 아닌 일인데, 띄워주시니 좀 쑥스럽네요...ㅎㅎ;; 앞으로도 잘 부닥드립니다. --威光 (토론会話기여) 2018년 5월 15일 (화) 23:29 (KST)답변

당신을 위한 반스타![편집]

로제타 반스타
오타, 링크, 한자등 문서를 온전하게 새롭게 단장하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칼빈500 (토론) 2018년 5월 21일 (월) 09:06 (KST)답변

서명 수정 권고[편집]

현재 사용하고 계신 서명에, HTML 5에서 사용이 권장되지 않는 엘리먼트(태그)인 <font>가 포함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다음과 같이 서명을 변경하거나, 다른 필요한 조치를 취하시기를 권고합니다.

아울러, 환경에 따라 의도한 대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는 특정 글꼴의 사용이나, 독자가 알아차리기 힘든 링크에 대한 title 속성의 사용 혹은 타언어판의 토론 문서로 가는 링크 자체의 필요성을 재검토해 보시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글꼴의 경우, serifsans-serif 등의 generic family를 사용하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사용자:威光|<span style="font-family: 'MS Mincho'; color: #C90000;">威光</span>]]''' <span style="font-size: smaller; font-family: '돋움';">([[사용자토론:威光|토론]] ・ [[:ja:利用者‐会話:威光|<span style="font-family: 'MS Mincho';" title="なるべく左側の「토론」にご投稿お願いいたします。">会話</span>]] ・ [[특수:기여/威光|기여]])</span>

--IRTC1015 2018년 6월 1일 (금) 00:25 (KST)답변

답변 조치했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威光 (토론기여) 2018년 6월 6일 (수) 18:31 (KST)답변

표제나 본문에서의 통용 표기 사용을 부탁드립니다(조위, 동오, 식별자 등)[편집]

위광님이 워낙에 전문 자료를 만지며 양질의 편집을 하는 분이시다보니 그 용어의 익숙도가 남들과 같지 않은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그렇지 않으므로 웬만하면 어렵거나 일반적이지 않은 용어보다는 통용 표기의 사용을 부탁드립니다. 글은 가능한 한 간결하면서도 쉽게 쓰는 것이 독자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검색의 편의성도 높여주고요. 아울러 현을 군으로 링크하는 것은 그 대상이 알맞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8년 6월 17일 (일) 15:58 (KST)답변

현 부분은 좀 마음에 걸리긴 했습니다. 현대의 해당 지명을 링크할까 했지만 100% 들어맞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일이 군 명칭을 본문에 삽입하자니 그건 군더더기라서 나름 타협을 해보았습니다.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단, 그래도 군을 링크해서 간접적으로라도 해당 군에 속했다는 정보를 내포하고자 한 건데... --威光 (토론기여) 2018년 6월 17일 (일) 16:02 (KST)답변
현대의 대략적인 위치를 써주는 동시에 군 명칭도 본문에 삽입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고대의 현과 현대의 지명이 링크를 걸만큼 들어맞는 경우는 많지 않으니 무작정 현대 지명 문서로 링크할 수는 없습니다. 어차피 사서에서도 현 썼다 군 썼다 왔다갔다 하는 마당이니 군 삽입이 그렇게 군더더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각각의 현 문서도 신설하여 거길로 링크를 다는 게 있겠습니다만 각종 문서들도 엉망인 마당에 거기까지 하는 건 좀 오바 같습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8년 6월 17일 (일) 16:36 (KST)답변
현 문서를 만들 수 있다면 만들어서 독립시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토막글 수준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아서 부득이하게 군에 합쳐둔 것입니다. 군은 토막글로 안 만들 자신이 있어서 주에서 분리시켜서 새 문서로 만들고 있습니다(몇 년째 하고 있는데 아직 완료도 못 했습니다만).--Synparaorthodox (토론) 2018년 6월 26일 (화) 10:46 (KST)답변

'파일:Made In Japan.png' 크기에 대해서[편집]

음반 표지 사진의 크기에 대하여 지침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2. 인용된 사진은 출력 시 가로와 세로 중 짧은 것을 기준으로 150 픽셀 이상, 250 픽셀 이하이어야 합니다. 표지 사진은 고품질의 디지털 이미지를 사용하며, 직접 찍은 표지 사진을 업로드하지 않습니다. 또한, 저장된 사진의 크기와 품질은 적당한 수준이어야 합니다. 지침 문서(위키백과:비자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음반 표지 참고.)를 확인·참고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해당 파일 문서를 비롯하여 기준보다 크게 올리신 파일에 대해서는, 적절한 크기로 다시 올려주시기를 바랍니다. -- 메이 (토론) 2018년 8월 19일 (일) 00:01 (KST)답변

해당 출처에서 '그대로' 파일을 가져와서 업로드했었습니다. 제가 크기를 임의로 조정한다면, 결과적으로는 파일을 자체 조달한 셈이 되는데... 이래도 문제가 없나요? --威光 (토론기여) 2018년 8월 19일 (일) 00:07 (KST)답변
크기만 줄이는 것이라, 원래 이미지와 차이가 날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편집(축소)시 파일 품질이 너무 떨어지지 않도록, 이 부분에는 주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 메이 (토론) 2018년 8월 19일 (일) 00:20 (KST)답변
공연히 신경을 쓰이게한 점에 대하여 양해를 바랍니다. 내용에 대해서는 각각 취소선(●) 처리합니다. 제가 출력 기준에 맞추어 파일을 올렸던데에서 다소 착오하였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지침의 해당 부분에 대하여 다시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양해를 바랍니다. -- 메이 (토론) 2018년 8월 19일 (일) 00:33 (KST)답변

가계도를 차트로 수정하시는 것은 어떨까요?[편집]

다른 언어판 위키백과에서도 대부분 틀:차트로 가계를 설명하더라고요. 그림보다도 직관적이라서 다른 이에게 더 쉽게 읽힐 것 같은데 어떠시나요?--고려 (토론) 2018년 10월 17일 (수) 23:58 (KST)답변

예전의 경험으로 말씀드리자면... 가계가 방대한 가문의 경우 페이지가 한없이 커지기 때문에, 이미지로 대체해왔었습니다. 일단, 차트가 더욱 유용하다는 데에는 동의합니다. 가계도 자체가 쓸데없이 지엽적인 정보라 여겨 손을 뗐습니다만, 만일 손을 쓸 일이 있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威光 (토론기여) 2018년 10월 18일 (목) 00:04 (KST)답변

알찬 글 후보 및 좋은 글 후보 토론에 참여해주세요![편집]

위키백과:알찬 글 후보위키백과:좋은 글 후보에 많은 글들이 사용자들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참여 부탁드립니다.--Kenlee77 (토론) 2018년 10월 19일 (금) 15:41 (KST)답변

威光님께서 생각하시는 높은 관직이나 최초이지만 특이하게도 기록이 별로 없는 인물은 누구인가요??[편집]

저는 신라 신분제 중 대각간으로 기록 상 가장 먼저 보이는 인물인 구진(仇珍)인데 분명 551년(진흥왕 12년) 신라가 백제와 함께 고구려를 공략하였을 당시 출정한 8명의 장군 중 한명이었고 대각간이라는 신분이 거의 죽어서 추증된 사례인 것을 보면 분명 신라 정계에 많은 영향을 끼친 양반인 것같은데 신기하게 기록이 없더라고요;; 그리고 김옹(金邕)이라는 인물도 분명 대각간이니 여튼 정계에 영향력은 매우 큰 인물일텐데도 남아있는건 종에 새겨진 글자가 전부고;; 생각나시는 인물이 있으시나요?--고려 (토론) 2018년 10월 19일 (금) 23:52 (KST)답변

국사에 문외한이라서, 딱히 드릴 말씀이 없네요. 일단은 백제의 사택지적·사택적덕이 있겠습니다. 지금 한창 파는 전·후한이라면 열심히 말씀드릴 수 있으니, 이거라도 말씀드릴게요. 보시다시피, 대부분 열심히 문서를 만들어 놓아서... 그걸 읽어보시면 되겠습니다.

전한[편집]

  • 위맹: 어사대부 1
  • 우저: 어사대부 2. 사실, 전한의 어사대부는 특히 기록이 부족합니다. 특별히 위맹·우저가 눈에 띄어서가 아니라, 이런 식의 땡처리 어사대부들이 여럿 있습니다.
  • 풍경: 어사대부 3이자, 초한전쟁기의 소년 장수. 원래 유방의 적이었는데, 수십 년의 시간차를 두고 뜬금없이 전한의 고관으로 등장함. 이후 증발.
  • 영면: 거기장군을 단숨에 엑스트라로 만들어버리는 위엄.
  • 중위 패·정위 패: 동일인물로 확실시됨. 사마안·의종·왕온서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 혹리일 듯.
  • 이충: 역사상 최초의 사례교위로 확실시되는 인물. 당초 사례교위의 설치 목적을 생각하면, 수많은 사람의 목을 날렸을 인물.
  • 대홍려 현: 백관공경표에 이름자만 실린 구경들 중, 유달리 오랫동안 한 자리를 지킴. 상당히 유능한 관료였나 봅니다.
  • 사요: 역임한 관직을 보면 경력이 매우 화려한데, 오로지 표에서만 확인됨. 경력만 보면 열전이 있었을 법할 수준입니다.

사실, 이쪽은 제 사용자 문서(사:威光/拾遺)에 실컷 갈겨놨습니다. 그냥 그걸 읽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후한[편집]

  • 유요: 삼국지의 유요 말고, 다른 사람입니다. 금석문에서만 존재가 확인됩니다.
  • 백리숭: 송나라 때까지 사당이 있었을 정도로 칭송받은 명신인데, 범엽후한서에는 언급조차 없는 인물. 사승후한서의 기록 두어 줄이 현전하는 전부입니다. 청대 고증학자들의 주석을 보면, 이런 것때문에 범엽을 까는 게 왕왕 보입니다. 이런 식으로 범엽이 날려먹은 인물이 상당히 많거든요. 거기장군도 날려먹은 사례가 보입니다.
  • 대부분의 삼공들. 그냥 ko:틀:후한의 재상 문서 중 만만해 보이는 것 아무 거나 눌러보세요. 정리가 안 돼서 그렇지, 구경 급도 똑같습니다.

촉한[편집]

  • 상관승: 촉한의 태위. 신당서 재상세계표라는, 신빙성은 쌈싸먹은 사료에서 보여서 좀 문제지만... 어쨌든 그렇습니다. 신당서에서 이름만 확인됩니다. 삼국지·진서 따위에는 전혀 안 나옵니다.

동오[편집]

  • 승상 연: 금석문으로만 존재가 확인되는 승상은, 중국 역사상 이 친구가 유일무이하지 않을지...
  • 태위 구: 이 친구는 금석문으로만 확인되는 태위. 유일무이 어쩌고저쩌고 2
  • 대사도 섭: 금석문으로만 확인되는 대사도. 삼국지에는 그냥 동오 멸망까지 내리 '사도'였던 것처럼 나오지만, 도리어 금석문 덕분에 '대사도'였음 또한 알 수 있습니다. 유일무이 어쩌고저쩌고 3
  • 대창: 역시나 땡처리 태위. 동오의 기록이 이렇게나 빈약하답니다.

--威光 (토론기여) 2018년 10월 20일 (토) 02:08 (KST)답변

중국은 땅도 넓을테니 금석문이나 다른 사료도 좀 있을 것 같은데 어찌 자료가 부족하나보네요 ㄷㄷ; 특히 한-삼국시대는 그래도 여러 시대의 왕이나 신하가 이야기 했던 것을 보면 좀 남아있을줄 알았는디;--고려 (토론) 2018년 10월 20일 (토) 10:46 (KST)답변

사기와 한서랑 어떤 책이 더 중요시 여겨지나요?[편집]

저는 중국사는 전공이 아닌지라 그저 나무위키의 평을 보면서 그 분위기를 파악하는데 사기랑 한서 모두 중국 역사서에서는 중요히 여기는 책으로 여겨지더라고요. 전한-삼국시대를 주로 편집하시는 것 같은데 어떤게 더 중요해 하나요? 그리고 제 개인적인 궁금함인데 중국 역사서도 없어진 책이 많은데 威光님이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역사서는 뭐가 있을까요? 동생을 찾으셨다고 하길래 궁금해서 물어봅니다,--고려 (토론) 2018년 10월 28일 (일) 23:04 (KST)답변

저도 전공 아닙니다ㅎㅎ;;, 어쨌든, 뭐가 더 중요하다고 제가 평을 내릴 수 있는 위치는 아닌지라... 그냥 둘 다 중요하다고밖에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사기야 뭐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될 테고, 한서는 상당수 사기를 복사+붙여넣기했지만, 사마천 사후의 일들은 오리지날이니 또한 중요합니다. 유실된 사료 중, 아깝다고 여기는 건 동관한기·사승후한서를 투톱으로 생각합니다. 동관한기는 후한판 조선왕조실록과 비슷한 물건이고, 사승후한서 또한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보면 볼수록 범엽이 싫어지는, 참으로 대단한 물건이에요. 아, 위략도 빼먹을 뻔했네요. 중국사 뿐만 아니라, 국사에서도 정말 중요한 물건인데... --威光 (토론기여) 2018년 10월 28일 (일) 23:15 (KST)답변
말씀하신 '동생'은 일단 한서에서 발굴한 것이긴 한데... 문서에도 적어놨지만, 현행 판본에는 동생의 이름자가 적혀있지 않습니다. 태평어람에는 이런 식으로 전질이 확보된 텍스트와도 다른 부분이 왕왕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태평어람에 인용된 위지(魏志; 삼국지 위서)에는 장로의 차남 장광張廣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현전하는 삼국지에는 아예 장광의 존재 자체가 안 나옵니다. 태평어람에 인용된 위지·촉지·오지가 삼국지의 원형일 것이라는 견해가 있는 만큼, 상당히 흥미로운 일입니다. 위지·촉지·오지가 삼국지로 편수되면서 텍스트를 좀 날려먹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합니다(아니, 확실시되는 수준...) --威光 (토론기여) 2018년 10월 28일 (일) 23:19 (KST)답변
날린 것 중에서 그냥 소실된 것도 있겠지만 의도적으로 날려버렸다는 확신이 드는 사례가 몇몇있나요?--고려 (토론) 2018년 10월 28일 (일) 23:21 (KST)답변
그쪽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냥 범엽이 동관한기·사승후한서를 기초로 해서 후한서를 집필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사승후한서의 그렇게나 많은 인물들을 '고의로' 날려먹었다고밖에 해석이 안 되네요. --威光 (토론기여) 2018년 10월 28일 (일) 23:35 (KST)답변
ㅋㅋㅋ;; 사고전서 같은 것을 뒤져보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욧--고려 (토론) 2018년 10월 28일 (일) 23:48 (KST)답변
나오긴 나오는데, 이름자가 잘못 적힌 사례를 별개의 인물로 해석해서 같은 일을 여러 번 기록하거나, 타 사료의 해석 자체를 잘못해서 있지도 않은 사실을 단장취의 하는 등(방덕공의 자를 '상장'이라고 단정한 사례) 검증이 부족한 부분이 꽤 있습니다. 좀 조심해서 봐야겠죠. --威光 (토론기여) 2018년 10월 29일 (월) 00:02 (KST)답변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면 우리의 사소한 일기라도 언젠간 내 직계 자손이든 친척이든 유명한 사람이 되면 읽어볼만한 사료가 된다는 느낌을 강하게 드네요 ㅋㅋ. 항상 수고하십니다.--고려 (토론) 2018년 10월 29일 (월) 00:15 (KST)답변

노최?[편집]

노인이 이름이 아니라 노+인이었나요? 저는 이런 주장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요...--고려 (토론) 2018년 11월 3일 (토) 20:47 (KST)답변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예전엔 '이름'으로 배웠고, 또 그렇게 알아왔습니다. 한서 공신표에서도 '최'라고만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달리 볼 건덕지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요즘 학계의 경향인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노최'라고 쓰인 예가 많이 보이더라고요. 타국어 위키백과까지 그렇게 점령(?)되었고요. 그것 때문에 당초 '최 (위만조선)'으로 바꿨다가, 나중에 토론으로 문제제기가 들어오면 설득시킬 자신이 없어서 되돌렸답니다. --威光 (토론기여) 2018년 11월 3일 (토) 22:28 (KST)답변
노가 성인지도 알 수 없고 인도 “노 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표현이라고 하는 주장도 있고;; 그래도 나름 공신인데 기록을 별로 안해주네요... 여튼 근데 궁금한게 아버지가 왕, 공, 후 같은 작위를 받아도 아들에게 자동승계가 아니라 아들이 왕에게 새로 작위를 받는건가요? 유럽도 보니깐 아버지가 죽고 아들이 있는데도 임명을 안해주니 그대로 국가가 사라지더라고요;--고려 (토론) 2018년 11월 3일 (토) 22:36 (KST)답변
'노 성을 가진 사람' 이야기는 말도 안 되는 억지라고 생각합니다. 표를 보기라도 했다면 그런 주장을 할 리가... 어쨌든, 이민족은 공신이더라도 표기가 빈약합니다. 기록 부족이 아니라, 성씨가 없었을 가능성도 생각해둬야 할 겁니다(고려 때까지도 정착이 안 된 성씨를, 위만조선에서 꼭 갖고 있었어야 한다는 강박을 왜 갖는지 모르겠습니다).
한나라의 작위 승계는, 그냥 아비가 죽었다고 아들이 반드시 잇는 것이 아니라, 작위를 이어도 되는지 조정의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대홍려가 이걸 담당함). 자식이 있더라도, 죄가 있으면 후사를 둘 자격을 박탈당하기도 했습니다. 시무·평간유왕·위홍의 예를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威光 (토론기여) 2018년 11월 3일 (토) 22:43 (KST)답변
감사합니다. 한나라는 이성왕을 때려잡고도 반란이 계속 일어났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렇겠네요... 대홍려는 실제 맘이 어떻든 참 미움많이 받고 왕에게 버려지면 끔살 확정이겠군요... 과거도 그렇고 현재까지도 저런 역할을 하는 사람은 참 고달픈 것 같습니다.--고려 (토론) 2018년 11월 3일 (토) 22:50 (KST)답변
아, 대홍려는 아무 잘못 없습니다ㅋ 제후가 조정의 대홍려에게 '누구누구를 후사로 삼겠습니다' 하는 글을 제출하면, 대홍려가 허락을 받아다 주는 메신저 역할을 하는 겁니다. 황제가 안 된다고 하면 그냥 끝이죠. 물론 왕우처럼 말 한 마디로 제후국을 끝장내기도 하고, 이외에도 대행령 구처럼 시호에 대해 의견을 내는(*'대행령'은 대홍려의 옛 이름), 그래도 비중이 쏠쏠한 양반입니다. --威光 (토론기여) 2018년 11월 3일 (토) 22:56 (KST)답변
시호까지 허락을 받아야 올릴 수 있는거였군요;; 사실 여러 역사를 보면 그 메신저 땜시 될 것도 안되고 참 ㅋㅋ... 물론 황제도 믿을만 한 놈을 앉히겠지만... 여튼 가끔 모든 기록이 편년체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도 합니다. 그 많던 행정 문서와 기록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련지... 참 아쉽습니다.--고려 (토론) 2018년 11월 3일 (토) 22:59 (KST)답변
아... 그냥 드리는 말씀인데, 사마천은 이미 '~ 성을 가진 사람'이란 의미의 고정표현으로, 을 썼습니다. 田씨 아무개 田甲, 徐씨 아무개 徐甲, 石씨 아무개 石甲 등 이미 여러 차례 용례가 확인됩니다. 즉, '路 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路甲이라고 적혔어야겠죠. 혹시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꼭 이 얘길 해주시기 바랍니다...ㅎㅎ--威光 (토론기여) 2018년 11월 3일 (토) 23:11 (KST)답변

아 맞다. 『사기색은(史記索隱)』에서는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노인을 “어양현 사람(漁陽縣人)”이라고 했는데 이 경우에는 대체로 이 기록을 부정하나요? 그리고 사기색은이라는 사서는 신빙성이 있나요--고려 (토론) 2018년 11월 20일 (화) 23:39 (KST)답변

앗, 전혀 모르는 기록이었네요. 삼가주를 살펴봤는데, 바로 다음에 '「노인」은 이름자이다.'라는 여순의 주석까지...-_- 더 볼 것 없습니다. 그냥 이걸 최 문서에다가 기록하고, 당당히 '최 (위만조선)'이라고 돌려야 겠습니다.--威光 (토론기여) 2018년 11월 20일 (화) 23:44 (KST)답변
근데 여순이 누군진 잘 모르겠고 여양현 사람이라고 단정지은것도 그렇고 흠.. 신뢰할 수 있는 기록일까요?--고려 (토론) 2018년 11월 20일 (화) 23:57 (KST)답변
여순은 거의 알려진 게 없는 사람입니다. 색은에, 여순의 주해가 상당수 인용된 것이 확인될 뿐입니다. 어쨌든 색은을 살펴보면 아시겠지만, 어양 사람이라는 기록은 응소가 남겼군요. '단정'이 왜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애당초, 사료의 출신지 기록은 '단정' 뿐이거든요. 의심을 하려 한다면 한도 끝도 없겠죠 ㅎㅎ;;... 색은 자체의 신빙성은 제가 따로 말씀드릴 것은 없습니다만, 초한춘추 등 전한의 1차사료까지 인용한 물건이라서 가치는 상당히 높습니다. 일단은 출전을 명기하고 문서에 기록할 만한 사항이락 생각합니다. --威光 (토론기여) 2018년 11월 21일 (수) 00:03 (KST)답변
너무 명백하게 노인은 이름자고 출신지도 어디다 라는게 적혀잇는데도 남들이 쓰지 않고있길래 신뢰성이 떨어지나 궁금해서 무러봤는데 문제는 없나보네요. 근데 진짜 어양현 사람이면 베이징에서 태어났다는 건데 흥미롭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고려 (토론) 2018년 11월 21일 (수) 00:08 (KST)답변
일종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사료의 주석서라는 게 다 그렇더라고요. 마치 훈고학을 보듯이, 그냥 'A는 B다'라는 식의 기술이 파다합니다. 그저 사료에서 다뤄진 시기와 그리 멀지 않은 시기의 양반들이니, 그만큼 믿고 읽는(?) 관계랄까요... 명청대의 고증학자들의 주석도, '응소가 참조한 판본은 그만큼 더 오래된 것이니, 그쪽이 옳았을 터이다' 뭐 이런 식으로 넘어가는 경우도 꽤 보입니다. (둔막여가 그러한 예입니다) ㅎㅎ; --威光 (토론기여) 2018년 11월 21일 (수) 00:14 (KST)답변

威光님께서 보시는 전한은 어떤가요?[편집]

제가 요즘 중국 개략사를 대충 읽고 있어서 후한까지 읽었는데 왠지 참 알게모르게 무너져간다라는 느낌이 크게 들더라고요. 그나마 장제까지가 좀 정상적으로 가다 틈만 나면 급사에 요절에 갑자기 죽어버리니 의심도 많이가고... 사실 통일 왕조의 말기는 참 고달프긴합니다만 후한은 그런 언급이 좀 적은것 같은데.. 여러 인물을 글을 쓰시니 잘 알것 같으니 대충 어떤 느낌이시나요?--고려 (토론) 2018년 11월 13일 (화) 20:51 (KST)답변

개설서 같은 걸 읽어보지 않아서,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냥 제가 느끼는 바로는, 전한은 후한에 비해서 멸망 직전의 상황이 훨씬 나았는데도 너무나 뜬금없이 망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후한이야 조조가 협천자 이후 근 20년을 군림했지만, 전한은 왕망이 정말 짧은 시간동안 설쳤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원제 때부터 망조가 들었고, 성제 때 제대로 썩었다고는 하지만... 그냥 성제가 급사하지만 않았어도, 아니 한 발 더 양보해서 애제가 좀더 오래 살았더라도 그럭저럭 버티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애제가 죽고나서,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광속으로 무너졌다고 느껴집니다.
사족으로, 열전에서는 전한에 대한 애국심(?)을 잊지 않은 인물로 그려지는 왕정군은... 그냥 미화된 기록이고, 실제로는 '성공한 고황후'가 아녔을까 생각합니다. 옥새를 집어던졌네 뭐네 해도, 왕씨가 기세등등하니까 좋다고 꿀 빨았잖아요. 옥새 이야기도 개인적으로는 뻥 같고(헌목황후 생각나죠?).--威光 (토론기여) 2018년 11월 14일 (수) 21:43 (KST)답변
그렇군요... 사실 읽다보면 한 왕조 때려치고 새로운 왕조가 나왔으면 차라리 나았을 것 같긴 합니다. 어째 궁중에서 태어난 사람 보다 민간에 살던 후손들이 더 오래사는;--고려 (토론) 2018년 11월 14일 (수) 22:14 (KST)답변

올해의 위키인 후보 추천[편집]

올해의 위키인 후보
귀하께서는 2018년 올해의 위키인 후보로 추천되셨습니다. 올 한 해 동안 위키미디어 프로젝트를 위해 열심히 활동해 주셔서 감사합니다.--Motoko C. K. (토론) 2018년 12월 7일 (금) 23:12 (KST)답변

올해의 위키인 선정[편집]

올해의 위키인
귀하께서는 2018년 올해의 위키인으로 선출되셨습니다. 올 한 해 동안 귀하의 위키미디어 프로젝트에 대한 기여에 감사드리며, 귀하의 노고를 치하하고자 위키미디어 사용자의 뜻을 모아 이 상을 드립니다. --Motoko (WMKR) (토론) 2018년 12월 27일 (목) 23:04 (KST)답변

석현[편집]

삼국지에 관심이 많으신가본데 중국의 析縣도 있고, 부적절한 이동 요청으로 생각됩니다. 취하를 요청드립니다. --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2001:2d8:300:fba9::10e6:f0b1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威光 님이 추가하였습니다.

남의 토론란이지만 여튼 개인적인 생각에는 석현리, 동을 여기에 넣는 것은 과도한 넘겨주기라고 생각하고 화가는 등재 조건에 부합한 인물이며 전투와 관련된 정보는 석현 전투를 만들면 됩니다. 부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고려 (토론) 2018년 12월 30일 (일) 23:35 (KST)답변

답변

  1. 본 문서는 삼국지와 일절 연관이 없습니다.
  2. 중국의 析縣이라면 (현대 중국의 지명일 경우) 한어병음에 따라 표제어를 생성하면 될 일이며, 한국의 지명은 그에 따른 행정구역 단위를 병기(석현동, 석현리 등등)를 함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威光 (토론기여) 2018년 12월 31일 (월) 10:26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