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만 (법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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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만(趙鎭滿, 일본식 이름: 朝家庸夫, 1903년 10월 20일[1] ~ 1979년 2월 12일[2])은 대한민국의 제3·4대 대법원장을 지낸 법조인이다. 본관은 배천이며, 인천 출생이다.

생애[편집]

1923년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1925년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였다.[3] 1927년 해주지방법원판사, 1929년 평양지방법원판사, 1930년 3월 평양복심법원판사,[4] 1933년 대구복심법원판사, 1939년 대구지방법원부장판사를 역임한 뒤 1943년 변호사를 개업하였다.

1951년 제5대 법무부 장관을 지낸 뒤, 1952년 다시 변호사를 개업하여 1960년 서울제일변호사회의 초대회장이 되고, 1961년 법무부장관고문을 역임하였다.

1961년 제3대 대한민국 대법원장에 임명되어 1968년까지 재직하였다. 이 때 하급심에서 올라오는 사건기록을 틈틈이 검토하여 법관들의 재판능력을 파악해 두었다가 인사에 반영하기도 하였다. 1968년 다시 변호사를 개업하고, 1971년 한국합동법률사무소 대표를 지냈다.

상훈[편집]

1963년에 1등 근무공로훈장, 1968년에는 청조근정훈장을 받았다.

평가[편집]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에서 선정한 친일파 708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사법 부문에도 선정되었다.

각주[편집]

  1. “조진만”. 한국 브리테니커. 2007년 11월 1일에 확인함.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2. “趙鎭滿 전大法院長 별세” (PDF). 동아일보. 1979년 2월 13일. 7면. 2016년 3월 6일에 원본 문서 (PDF)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3월 29일에 확인함. 
  3. 《동아일보》(1927.1.18)[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4. 《동아일보》(1930.3.13) 1면[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참고 문헌[편집]

  • 《대한민국명사감(大韓民國名士鑑)》(大韓民國名士鑑編纂委員會, 1963)
  • 《한국인사가보(韓國人士家譜)》(韓國人士家譜編纂委員會, 1966)
  • 《한국법관사(韓國法官史)》(大法院, 1975)
  • 《한국변호사사(韓國辯護士史)》(大韓辯護士協會, 1979)
  • 《한국법조인대관(韓國法曹人大觀)》(法律新聞社, 1982)

외부 링크[편집]

전임
김준연
제5대 법무부 장관
1951년 5월 7일 ~ 1952년 3월 4일
후임
서상환
전임
조용순
제3·4대 대한민국의 대법원장
1961년 7월 2일 ~ 1964년 1월 31일
1964년 2월 1일 ~ 1968년 10월 19일
후임
민복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