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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주 문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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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의견: 5년 전 (Tol6560님) - 주제: 서주 문왕 ⇒ 주 문왕

서주 문왕 ⇒ 주 문왕[편집]

본 문서의 이름인 '서주 문왕'을 '주 문왕'으로 바꿀 것을 제안합니다.

서주 문왕이란 표현은 잘 쓰이지 않으며, 다른 외국어판에서도 '주'라고만 칭하지 '서주'라고 칭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습니다. 또한 문왕 때는 주나라가 상을 대신하여 정식으로 건국되기 전이고, 그 시호도 주나라 건국 후에 추숭된 시호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서주와 동주의 구분을 둘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주라는 표현을 억지로 붙이려고 한다면 어찌 그 조부인 주 태왕을 '서주 태왕'이라 칭한 경우를 찾을 수 없으며, 한 경시제도 현한 경시제, 전한 경시제, 후한 경시제 등 어떻게든 구분을 두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또한 한국어 화자 사이에서 가장 이용도가 높은 네이버를 검색해 봐도 해당 인물을 소개하는 제목이 주 문왕, 주문왕이지 서주 문왕이라고 한 경우는 오직 위키백과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일부는 통일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 통일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냥 보기 좋게 하려거나, 전대, 후대 군주들과의 명칭의 연결성을 매끄럽게 한다는 것입니까? 삼국 시대와 남북조시대의 군주들의 문서 제목을 보십시오. 진패선은 왜 진 무제가 아닙니까? 사마염은 왜 서진 무제가 아닙니까? 여러 폐제들도 이름이 아닌 폐제라고 칭해야 하는데 왜 그렇지 않습니까? 조조, 유비, 손권은 왜 각각 위 무제, 한 소열제, 오 대제가 아닙니까? 열거된 예시에 대해서 사람들이 많이 알고 사용하는 명칭을 선택했다고 한다면, 어찌 이 문서도 사람들이 많이 알고 사용하는 주 문왕이 아닌 서주 문왕이 된단 말입니까?

이상 제 의견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지요? 문서 이동에 대한 생각을 남겨주십시오.

-- 에이니스 (토론) 2017년 2월 23일 (목) 16:50 (KST)답변

지금 행하신 조치는, '제안'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문서 이동을 먼저 하신 상황에서 제안이라니... 저도 토론:왕경 (전한) 같은 문서를 이동하고 싶은 맘이 굴뚝같은데, 괜히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단 종래의 표기를 유지했으면 하는 것이 제 입장이긴 하지만... 일방적인 조치 이후에 의견을 구하시는 모습으로 인해서라도 '주 문왕'이 꺼려집니다. --威光 (토론会話기여) 2017년 2월 23일 (목) 23:29 (KST)답변
제가 제안을 해 놓고 성급하게 이동을 한 점은 죄송하며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종래의 표현을 유지해야 하는 근거를 마련해 주신다면 이동의 조치를 취해 주십시오. 다시 죄송합니다.

-- 에이니스 (토론) 2017년 2월 23일 (목) 23:43 (KST)답변

--Tol6560 (토론) 2019년 3월 26일 (화) 12:11 (KST) 서주를 잘 쓰지 않는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성씨 관련해서, 사기에서 은본기, 주본기를 읽고 위키를 접했을 때, 검색어는 주나라였습니다. 서주는 나중에 검색하게 됐는데, 초기 주나라 설명에 넣을 만한 내용을 별도로 분리된 것 있어서, 서주 검색하기 전까진, 주나라 시작이 화북=오르도스란 내용 보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답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은, 주 문왕을 주 무왕이 주나라를 창업하면서 왕이 아닌데 왕으로 추승 했다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기에서 주문왕과 강상 관계에서 강태공으로 불린 이유가 설명되지 않나요? 태공때부터 기다리던 현자를 만났다 해서 강姜상尙 은 강태공으로 불렸습니다.

왜 태공을 언급했을까요? 주본기를 보면, 주周나라 창업은 태공이 했습니다. 태공이 주周나라를 창업했는데, 왜 희창은 상나라 벼슬인 서백으로 불렸을까요? 호족 단위 읍제 국가, 하나라를 멸망시키고 창업한 상나라는 중국 최초의 국가로 불립니다.

주나라는 역성 혁명 후 중국을 여러지역으로 나눴고, 희성 혈족을 제후인 왕으로 봉했지만, 상나라 지역 제후들은 그렇게 왕으로 분봉한 것이 아닌, 그냥 지역 토착 호족인 혈연 부족 국가로, 강대국인 상나라가 제후 벼슬만 내린 형태로 생각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자기가 분봉해준 동일한 국가들인데, 주변국을 토벌해도 된다고 군권 상징인 도끼 부월을 하사할리 없습니다. 초기 희성혈족 중심 부족국가 주나라를 태공 때 세운 것이고, 주 문왕은 강대국 상나라를 멸망 시키기 전에 천하의 3분의 2를 토벌해서 얻고 사망했고, 주 무왕은 상나라 역성 혁명만 했습니다. 실력으로 중국 혈족 국가들을 통합했기에 상나라와 달리 지역을 분할 친족을 왕으로 50개 지역에 봉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주나라는 언제부터 상나라 제후국이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태공이 1대조 왕인 것이고, 주 무왕 희발은, 주 문왕 희창 사후, 태자 신분으로 문왕 위패를 모시고, 아버지 문왕의 유훈 상나라를 멸망시켰습니다.

친족들을 중국 50개 지역에 왕으로 분봉하면서, 실질적 황제국 주나라가 된 것. 주나라, 서주로 구분하는 자체가 논센스라 생각됩니다. 황제국 주나라고, 친족들을 분봉한 지역 제후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멀리있는 친척도 가까운 이웃사촌보다 못하다고, 별개 국가로 점차 변하게 됐는데, 황제 직할령이 망했다고 서주로 끊기 보단, 주나라가 친족들을 분봉한 지역 왕들이 남아있는 만큼, 진시황제가 통일 할 때까진 그냥 주나라 입니다.

그걸 분리해서 보여주니까, 춘추전국시대 단편적으로 보면, 친족, 황제와 제후국 상하 관계 이해가 어렵습니다.